소태보 邵台輔[王國髦 高義和] 〔왕국모, 고의화(高義和)의 전기가 포함됨〕
#高麗史95卷-列傳8-邵台輔-001
○邵台輔史失世系
소태보(邵台輔)의 세계는 실전되었다.
文宗末授戶部侍郞宣宗時官累參知政事進中書侍郞平章事判刑兵部事奏:
문종 말기에 호부 시랑으로 임명되었고 선종 때에 여러 번 올라 참지정사로 되었다가 중서시랑 평장사 판 형, 병부사로 승진되었는데 그가 왕에게 진언하기를
"北路邊城將士多自山南州縣充入故丁田在遠 産貧乏脫有兵事 爲先鋒請自今令入遼使臣* {揀}壯健者爲 從因使偵察疆域事勢且有互市之利人必競勸." 制從之.
“북로(北路-북북 지방) 국경 지대 각 성(城)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의 대부분이 산(山) 이남 고을(州縣) 출신으로 입대한 사람들이어서 그들에게 배정된 밭(丁田)이 먼 곳에 있는 관계로 살림살이가 모두 가난한데 그 사람들은 혹시 병란이 생길 때에는 모두 선봉으로 동원될 사람들인즉 청컨대 앞으로 요나라에 사신을 파견할 때에는 사신에게 명령을 내리시어 그곳 병사들 중에서 건장한 사람을 선택하여 수행원으로 데리고 가게 하면 국경 지대의 정세에 익숙하게 될 뿐 아니라 한 번 가게 되면 물자를 교역하여 이득도 얻을 터이니 공사(公私)간에 모두 이익이 있을 것이며 이렇게 되면 저마다 수행하려고 할 것입니다”고 건의하였더니 왕이 그의 의견을 채납하고 명령을 내려 시행하게 하였다.
獻宗初拜門下侍郞平章事上柱國
헌종(獻宗) 초년에 문하시랑평장사 벼슬과 상주국 훈위를 받았다.
李資義謀亂台輔使王國 率兵入衛令壯士高義和斬資義及其黨
이자의(李資義)가 반란을 꾸밀 때에 소태보가 왕국모를 시켜 군대를 인솔하고 궁중에 들어가서 왕을 호위하는 한편 장사(壯士) 고의화(高義和)를 시켜서 이자의와 그의 일당을 베었다.
以功權判吏部事轉特進守司徒判吏部事.
이런 공훈으로 판 이부사 서리로 있다가 특진(特進) 수사도 판 이부사로 임명되었다.
肅宗受禪擢拜守太尉門下侍中賜金銀器衣 錦 綾羅布帛鞍馬及樂部花酒宴于其第.
숙종이 선위(禪位) 받은 후 수태위 문하시중으로 등용하고 금 은 그릇과 옷감과 비단, 모직물, 능라, 포목이며 안마를 하사하고 또 악사(樂部)들과 화주(花酒)를 그 집으로 보내 축하연을 배설하여 주었다.
台輔嘗奏: "國學養士 費不 實爲民弊且中朝之法難以行於我國請罷之." 不報.
소태보가 일찍이 진언하기를 '국학(國學)에서 학도를 양성하는 것은 비용이 방대하여 참으로 백성에게 페해를 주고 있으며 또 중국의 제도를 그대로 우리 나라에 적용하기는 곤난하니 페지하기를 바랍니다”라고 건의했으나 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八年年七十上表乞退不允遣尙書兵部郞中許慶賜 杖制曰:
숙종 8년에는 그의 연령이 70세에 이르렀으므로 표문을 올리고 퇴직할 것을 청하였으나 왕은 승인하지 않고 상서 병부 낭중 허경(許慶)을 보내 안석과 지팡이를 주고 또 교시(制)를 보냈는데
"禮: '大夫七十而致事若不得謝則必賜之 杖.' 盖以圖任舊人諮諏大政也卿吏幹秀而飾以儒雅兵機深而兼摠刑名加以中和理其身方正率其道眞所謂王佐之才也文考用卿爲腹心宣宗任卿爲宰輔朕在宗邸熟聞卿名受禪以來惟卿是賴凡所施設必資訪問擢置上宰以授大柄何遽引年而告老乎昔太公望七十而遇文王今卿年 至此而再三求退朕所不喜也 卿精神氣力强健不衰宜在廊廟論經燮理是用稽諸古典特示殊恩."
“예기에 의하면 ‘대부(大夫)는 70세가 되면 치사할 것이며 만약 치사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안석과 지팡이를 준다’고 하였는데 그 취지는 노성한 인재를 유임시켜 중대한 국정을 자문하자는 뜻이라. 그대는 관리로서의 수완이 우수한 데다 또 유교의 학리로써 자신을 수양하였으며 병법에 심오한 연구가였을 뿐만 아니라 형전(刑典)에도 밝으며 더욱이 자기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언제나 중용을 취하며 바른 길을 따라 나갔으니 그대는 진실로 제왕을 보좌할 수 있는 인재라 할 만하다. 문종께서는 그대를 복심으로, 선종께서는 그대를 재상으로 등용하셨으며 나도 즉위하기 전부터 그대의 명망을 익숙히 들었고 선위(禪位) 받은 후에는 오직 그대를 믿고 모든 시책을 반드시 문의하였으며 수상으로 선발하여 큰 권한을 위임하였는데 어찌하여 이렇게도 급거하게 연로했다는 이유를 내 놓고 퇴직하려 하는가? 옛날 태공 망 (강태공)은 70세에 주나라 문왕(文王)을 처음으로 만났는데 그대는 이제 겨우 70이 되었을 뿐인데 재삼 퇴직하려고 요구하니 그것은 내가 기뻐하지 않는 바이다. 하물며 그대는 정신이나 기력이 건강하여 아직 노쇠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조정에 있으면서 국정을 경륜하고 재상의 중책을 맡아 보아야 할 것이다. 고대의 전례(典禮)에 의하여 이제 특수한 은전을 베푸노라”
尋守太傅判戶部西京留守事加門下侍中致仕
하고 이내 수 태부 판 호부 서경류수사(守太傅判戶部西京留守事)로 임명하였다가 또 문하시중으로 승진시키고 치사(致仕)를 승인하였다.
明年加守太師賜 謀功臣號卒謚忠謙配享肅宗廟庭.
이듬해에 수태사로 승진시키고 협모 공신(協謀功臣) 칭호를 주었다. 그가 죽은 후 충겸(忠謙)이란 시호를 주었으며 숙종 묘정에 배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