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들의 달력은 여러가지 잔잔한 감상을 북돋운다. 1월부터 12월까지 자연과 어울려
아가는 그네들의 삶의 달마다 붙인 이름이 그대로 드러나지만(예: 모든 것이 다 사라진 것
은 아닌 달) 특히 2월은 '홀로 걷는 달'이라 이름을 붙여서, 왠지 내 가슴을 퉁 치고 지나
간다. 홀로 걷는다 - 그 유유자적함은 쓸데없는(?) 일로 마음이 바쁘면 절대 못하는 일이
다.
지난 연말연시를 돌아보면 이건 뭐 쫓기는 일과표에 헉헉댔다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유유자적? 홀로걷기? 내 마음 속으로 들일 수 없는 좋은 말들이었다. 정신없는 일과표에 쫓
기는 동안 내가 꿈꾸었던 휴가는 너무 낡아 구멍이 몇 개 나고 닳아서 거의 속옷이 된 편한
운동복을 입고 세수도 안 하고 뒹굴며 재미난 만화책과 비디오를 산더미처럼 쌍아 놓고 보
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제대로 못 누려본 채 이제 2월이다.
20대의 나에게 무엇보다 일이 우선이었다. 어린 마음에 더 이상 내려 갈 수 없는 맨 끝
바닥에 내려앉은 자세를 일으키고, 동생들도 자신이 공부하고픈 만큼 뒷바라지를 해 주려
면, 일이 구원이자 모든 것이었다. 대 여섯 벌도 안되는 청바지와 셔츠, 연예인 또는 무대
에서 노래하는 가수(?)의 옷가지라곤 못봐줄 정도의 조촐한 의상을 바꿔 입으면서도 부끄러
워한 적이 없고, 깨끗이 빨아 입으면 그것이 바로 내 분수에 맞는다는 생각엔 지금도 변함
이 없다.
지금도 나는 TV가 원망스러운 게 워낙 살이 쪄버린대다 옷대가 나질 않으니 쓸데없는 에
너지를 옷 입는데 버릴 일이 아니라. 가수는 그야말로 가수니까 노래만 잘 하면 되고 아예
모든 가수에게 교복처럼 지정복을 입히면 어떨까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할 정도이다. 70
년대 초반에 청바지와 운동화가 얼마나 틀을 깨는 파격의 무대의상이었냐 하면 당시 유명한
중견가수 한 분이 저따위를 의상이라 걸치며 무대를 우습게 보는 아이와 한 무대에 설 수
없다고 역정까지 낸 걸 보면 아실 것이다. 운동화가 닳아 밑창에 구멍이 나서 발이 시려우
면 다음 달부터는 고무신을 신었다(청바지에 참 잘 어울린다.)
하루도 안쉬고 일만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일이라는 쇠귀신에게 잡혀 질질 끌려 다니는
나를 발견하고는 내 인생의 주인이 일이라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있다.
2000년 한 해 동안 나는 여성시대 빼고는 안식년처럼 휴지기를 가질 생각이다. 내 자신을
위한 체력단련 훈련과 노래 연습을 다지겠다. 체력이 뚝뚝 떨어지고 갱년기도 이미 지나고
이젠 깍쟁이같이 자기관리를 안하면 큰일 날 조짐이 보인다. 그래서 운동으로 살과의 긴싸
움을 시작하기까지 할 판이다. 바깥의 일을 줄이고 살림 규모도 줄이고 내실을 기하며 '홀
로 겉는 달'이라는 인디언으 ㅣ2월을 미하며 아므이 여유롭고 싶다. 만약에 내가 체력단련
훈련을 재미 붙여 꾸준히 한다면 이 세상 어떤 아줌마도 따라 해낼 수 있으리라. 응원해 주
시길. <여성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