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처음 봤을 때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박상우가 생각이 났다. 체격이나 생김새도 흡사했지만 안경 너머에서 바라보는 눈빛은 두 사람이 무척 닮았다. 봉씨라니! 내가 아는 봉씨는 이 세상에 봉준호 감독 한 사람뿐이다. 아마 독자들 대부분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500만을 돌파했을 때, 우리는 그 영화가 80년대 말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한국인의 원형질적 정서와 집단무의식의 상처를 교묘하게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동안 영화 팬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봉준호 감독이 다시 나타났다. 올해 5월 칸느는, 우리에게는 봉준호의 [괴물]이 첫선을 보인 곳이었다.
적어도 한국영화계에서는 올해 칸느는 한적했다. 지난해는 달랐다. [올드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을 받는 떠들썩함이 있었고, 홍상수의 신작 [극장전]이 프랑스 지식인 관객층의 취향에 어필하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 칸느 경쟁부문에 출품된 한국 영화는 한 편도 없었다. 당초 칸느를 겨냥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진 [괴물]이 칸느 경쟁부문 발표 명단에서 제외되자 충무로에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100억원에 가까운 거액의 제작비를 투자한 [괴물]이 사실 형편없는 작품으로 완성되었다는 소문이었다.
그런데 경쟁부문 발표 뒤, 비경쟁 부문 목록에 [괴물]이 올랐다. 그러자 사람들은 아, 경쟁부문에 올라갈 수준은 안되고 비경쟁 부문 정도 수준이구나, 이렇게 추측들을 했었다. 하지만 칸느에서 날아온 소식은 달랐다. 막상 [괴물]이 칸느 감독 주간 시사회에서 뚜껑을 열자, 오히려 경쟁부문 작품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괴물]은 칸느 마켓에서만 700만 달러에 판매되었다.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금액이다.
[[괴물] 속에 표현된 한국적 정서와 영화적 느낌이 서구 사회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쁘다.]
[괴물]은 한강 둔치에서 매점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어느날 정체불명의 괴물을 만나면서 사투를 벌이게 되고 잊었던 가족애를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칸느에서 시사회가 끝나자 열광적인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왼 주먹을 불끈 쥐고 높이 들며 답례를 했다. 그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봉준호 감독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단편 [백색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진학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했다. 연세대 시절 학교 신문에 카툰을 그리는 등 재주 많았던 그는 한국영화아카데미 11기로 졸업하면서 단편 [지리멸렬]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 작품으로 천재 감독이 출현했다는 소문이 충무로에 돌았다.
싸이더스의 전신인 우노필름에서 그는, 왕가위 감독의 촬영감독인 크리스토퍼 도일이 내한해서 촬영 했던 [모텔 선인장]과 최민수 정우성 주연의 [유령]의 시나리오와 연출부를 거친 뒤, 비로소 장편 데뷔를 했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은 흥행에 실패했다. 이성재 배두나 주연의 [플란다스의 개](2000년)는 분명히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 어떤 감독의 영화에서도 만날 수 없는 독특한 감성이 살아 있었다.
[살인의 추억]은 2003년 최고의 영화였다. 거의 모든 영화제의 감독상을 휩쓸었다. 바로 그 직전 개봉된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는 [살인의 추억]보다 더 많은 제작비를 썼지만 흥행에 참담하게 실패했다. 제작사인 싸이더스가 위태롭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살인의 추억]은 전국 500만을 돌파하면서 흥행에서도 성공했고 제작사를 기사회생시켰다. 평단에서도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평단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하면서 보이지 않는 범인과 대치하고 있는 두 명의 형사들 뒤에 전국민을 세워 놓은 이 영화의 힘은, 사건을 끌고 가는 감독의 집요한 힘이 빛을 발한 영화였다.
[괴물]에서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유머가 있다. 봉준호 감독은 현실에서도 독특한 화법을 구사하는데 그의 말투, 독특한 유머가 극한 상황에서도 관객들에게 웃음을 만들어낸다. 괴물이 출현하고 사람이 죽어서 영안실로 향하는데, 영안실 주차장에서는 주차 문제 때문에 시비가 붙어 싸운다. 이런 상황의 언밸런스가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도 웃음을 안겨준다.
봉준호 감독은 사춘기 시절부터 이미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는 잠실대교 교각을 오르는 낯선 괴물의 환영을 보았다. 잠실 장미아파트 13층에 살고 있던 그는 틈날 때마다 창 밖의 한강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잠실대교 교각을 올라가는 괴생물체를 목격했다.
[그때부터 그 생생한 이미지가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지금도 나는 괴물의 존재를 믿는다. 영화 만들면서는 괴생물체의 존재를 어떻게 사실적으로 그려낼 것인가, 그리고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살아있는 드라마 속에서 서로 조화되게 위치할 수 있을 것인가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
에이리언 같은 그 괴물이 실재로 존재하는 것인가, 오직 봉준호 한 사람에게만 보인 것인가,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입시의 압박이 너무 심해서 잠시 헛것을 본 것이라고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그 체험이 너무나 생생해서 나중에 자신이 영화감독이 되면 반드시 영화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괴물이 등장한다고 해서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나 일본 영화 [고질라]를 생각하면 안 된다. [괴물]은 괴수 영화가 아니다. 도시재난 영화이면서 인간에 대한 드라마가 살아 있는 영화다. 한강 둔치 매점을 운영하는 아버지 역에 변희봉,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무능한 장남 역에 송강호, 그리고 배두나 박해일 등 우리 시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등장하는 [괴물]은 무엇보다 한국 관객들이 좋아하는 긴장감 속의 유머가 있기 때문에 흥행을 낙관하고 있다. 입소문도 아주 좋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이 [순수 오락의 결정판]이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한상 한국 사회의 집단적 공기를 미묘하게 잡아내는 봉준호 감독의 특징대로 역시 [괴물]에는 눈에 보이는 믿을 수 없는 실체와, 그것이 일으키는 파장을 통해 현 단계 한국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연기를 해야 하니까 배우들이 굉장히 두려워하고 당혹스러워 했는데 프리 프러덕션 과정에서 스토리 보드도 그리고 여러 가지 비주얼을 배우들에게 보여 주어서 나중에는 배우들이 허공을 향해 연기를 해도 어떤 존재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오히려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가 컴퓨터 그래픽에 도움을 준 것 같다. 그 부분에 있어서 배우들에게 감사한다.]
[짝패]의 제작자이기도 한 류승완 감독의 부인도 연상이지만, 봉준호 감독의 부인도 네 살 연상이다. 그의 부인은 곧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11살짜리 아들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는 아이들이 독특한 역할을 한다. [살인의 추억]도 영화의 시작과 끝에 이상한 존재감으로 등장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이번 [괴물]에서도 아이들의 존재감이 훨씬 크게 등장한다.
봉준호 감독은 차기작으로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그리는 이야기와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 등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