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8일 갈맷길 6 km
해운대 ~ 미포 ~ 청사포 ~ 구덕포 ~ 송정
오늘의 참여자
중산
춘성
청송
국은
흰내
남계 류근모
장마철이라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
9시 현재 비가 오면 안 가야지 ~ 하고 있는데
9시부터 구름이 옅어지더니 하늘이 슬며시 열리는 게 아닌가.
- 자 나서라!
우산을 배낭에 넣고 집을 나선다.
해운대 장산역 10시 15분
이런 애매한 날씨에도 여섯 친구가 나왔다.
못말리는 6학년 9반 화이팅!
더욱이나 멀리 괴정에서
지하철 1호선 3호선 2호선 을 번갈아 타고
온 중산 친구
고맙소이다.
해운대에서 송정까지 해안길 6km 를 걷는다.
작년부터 부산의 해안길을 갈맷길이라 부르기로
부산 시청에서 정한 바 있다. (시민 공모로 이름을 정함)
장산역을 빠져나와 조금 걸으니 미포
미포 (尾浦) 는 안개가 자욱하여 시정거리 30 m 정도
바다는 보이지 않고 파도 소리만 들린다.
이 지역의 아파트에 사는 국은이 앞장을 선다.
정년 퇴임하고 문예지에
늦깎이 신인으로 당선되어 시인의 타이틀을 얻은
국은 시인은
시인답게
잘 닦여있는 달맞이 언덕의 포장도로를 사양하고
한 단계 아래인 와우산 (臥牛山) 오솔길로 길을 잡는다.
오솔길 우측에 "사색의 길 (The road of speculation)"
이란 나무 팻말이 서 있다.
달맞이 길 (Moontan road) 과 더불어
오솔길치고는 품격높은 이름을 얻었구나.
국은이 아니라도
이렇게 안개 자욱한 날 숲속을 걸으면
누구나 사색하는 시인이 되겠다.
본래 달맞이 언덕은 소가 누워있는 모습이라고 와우산이라 불렀고
그 서쪽 끝 선착장을 소의 꼬리에 해당된다고 尾浦 라고 했다.
오솔길은 제법 울창한 숲속 길인데다가
좌산우해 (左山右海)
좌측은 숲이요 우측은 바다
도심 한 가운데에 있는 보배와 같은 길이다.
안개 때문에 바다가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 유감이지만.
반시간여 걸으니
청사포란 팻말이 나타난다.
靑沙浦 ?
파란 파도가 모래마저 파랗게 물들여서일까
옛날엔 조그만 갯마을이었지만 지금은 횟집촌이 되었다.
마을 뒤에는 해월정사 (海月精寺) 가 있다.
절 이름도 장소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성철 스님이 말년에 여기 와서 요양을 하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주지 스님이 성철의 수제자라 아직도 방 하나를 성철 기념관으로 제공하고 있다.
청사포 초입에서 구덕포까지는 3 km - 제법 걸을 만하다.
안개 속을 걸으니 거리감이 없어 어디쯤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런 날은
독일의 시인이며 소설가인 헷세의 시 "안개" 가 생각난다.
- 안개속을 거니는 고독함이여
덩굴과 돌들 모두 외롭고
이 나무는 저 나무를 보지 못하니
모두들 다 혼자다
나의 삶이 밝던 그때에는
세상은 친구로 가득했건만
이제 여기에 안개 내리니
아무도 더는 볼 수 없다
안개 속을 거니는 고독함이여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
누구나 다른 사람 알지 못하고
모두는 다 혼자다 -
아무리 안개 속을 걸어도
헷세와는 달리 우리는 전혀 외롭지 않다.
인생을 같이 가는 동년배 동반자들이 많으니,
친구들이 많으니
고독과는 거리가 멀다.
아직도 건강하니까 우리의 삶은 밝다.
즐거운 화제, 밝은 화제가 계속 이어진다.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 이야기
(어제 우리는 얼마나 신났던가)
대한민국의 발전상
(어릴 때에 비하여 지금 얼마나 잘 사는가)
고령화 사회와 우리의 자세
등등 화제도 무궁무진하다.
간간히 양념을 쳐주는 춘성의 유머며
와이당까지.
숲 속 쉼터의 벤치들이
간 밤의 비에 젖어
선채로 간식을 먹는다.
중산이 농협 요구르트를
남계가 생탁 2병과 안주로 바삭 과자 (센베이) 를 제공.
미포 찍고
청사포 찍고
구덕포에 도착한 것이 12시 20분경
두 시간 만에 시원한 안개를 마시며
삼포를 다 찍었다.
(1990년대 강은철 가수가 부른 삼포가는 길의 삼포는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삼포리 마을로 부산의 삼포와는 다른 곳이다)
안개도 많이 걷히고 파란 동해바다가 눈앞에
시원하게 열리니 바로 송정 해수욕장이다.
개장한지 보름쯤 되었지만 장마철이라 해수욕객은 없고
수상 안전 요원들이 모래판에서 훈련 중
백사장에는 하얀 파도만 몰려왔다 몰려간다.
송정 초등학교 건너편
송정동 사무소 앞
- 경호 生 오리 돌솥밥 집 - 051)702-5298 에
연착륙한 것이 1시경
점심시간이라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바글거리는 손님은 이 집 음식이 맛이 있다는 보증이다.
춘성의 안내로 전에도 한 번 왔던 곳이다.
7,000 원짜리 돌솥밥이 반찬 가짓수가
(일부러 세어보니) 25 가지다.
남기지 않도록 조금씩 조금씩 담았다.
멍게, 멸치 회무침, 청각, 마른 칼치 무침, 꽁치구이, 파래, 톳, 모자반 등등 해물이 주다.
그 이름을 어찌 다 알랴.
하나같이 짭조름하니 갯냄새를 풍기며 혀에 착 달라붙는 맛이다.
장금이들이 만들어 올리는 조선시대 임금님의 수라상도
12첩 반상으로 12가지 반찬이 올라갔다고 하니
우리가 먹은 25가지 반찬에 비하면 반도 안 된다.
백수들이
옛날 임금님들 보다 잘 먹은 셈이다.
잘 먹고 잘 걸었으니 산삼 (山蔘) 몇 뿌리 먹은 셈이다.
임금님들은 밥심에 補藥으로 살았고
우리들은 밥심에 걸어다니며 자동으로 먹는 步藥 으로 산다.
補藥 먹고 땀흘리는 것 보다
땀흘려 걸으며 步藥 먹는 것이 훨씬 낫다.
인삼 먹는 사람보다 인삼캐는 심마니가 더 건강한 것처럼.
남계 총무가 계산을 풀려고 하니
국은이 벌떡 일어나며
- 이 사람들아 우리 동네 아니가.
내가 쏘아야지.
총무의 만류를 뿌리치고 계산대로 달려가는 시인
오늘 갈맷길 산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적이다.
시인은 집에 가서 오늘도 시 한 줄 건질 것이고.
첫댓글 재미가 철철 넘치는 글입니다. 읽으며 지리공부 역사공부 절로 되니 기찬 글이지요. 감사 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