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하게 빵 굽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것이 ‘우리 집은 행복하다’고 무언의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동네 빵집 앞만 지나가도 빵 냄새에 마음이 따뜻해지는데, 하물며 여염집 부엌에서 고소한 냄새가 퍼져 나온다면야 뾰족했던 마음일지라도 어쩔 도리 없이 유순하게 녹아내리고 만다. 버터보다 더 부드러운 주부의 ‘정성’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반죽하기 때문일 테다. 김현주 씨는 남들이 빵집과 떡집에서 사다 먹는 것들, 예를 들면 식빵, 베이글, 머핀, 와플, 찹쌀떡, 인절미 등등을 모두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다. 귀찮지도 않은지, 너무 유난스럽다 싶지만 이유는 명쾌하다. 집에서 만들어 바로 먹는 식빵이 세상 어떤 유명 빵집의 빵보다 정말로 ‘맛있기’ 때문에 그 맛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탄탄한 요리 네트워크가 밑천 결혼한 지 14년, 식구는 남편과 그 단출하게 둘뿐이지만 이 집 부엌을 들여다보면 ‘디테일’이 보통이 아니다. 먹고 사는 데 필요한 살림살이 규모와 내용은 대식구의 밥상을 책임져야 하는(조금 더한다면 꼼꼼하고 까탈스러운 시어머니한테 단단히 교육받은) 맏며느리 수준이다. 김현주 씨의 이런 살림살이의 기본 밑바탕은 지난 몇 년 동안 동네별, 분야별로 내로라하는 유명 요리 선생님의 쿠킹 클래스를 완전 섭렵한 데 있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제과제빵뿐 아니라 남편 직장 관계로 중국에 잠시 거주하는 동안 국경을 넘어 홍콩으로 기차 타고 다니며 현지 요리도 배웠다. 자기 손으로 요리하는 게 재미있고, 맛있는 음식 먹는 걸 즐겨하다 보니 새로운 선생님에게 새로운 요리법을 전수받는 것이 그의 취미 아닌 취미가 되었다. 요즘에는 인터넷 요리 블로그가 하도 많아 매일 매일 여러 블로그를 드나들며 좋은 정보를 많이 얻기도 한다. 남다른 점이 있다면, 이렇게 다양한 요리 네트워크를 통해 배운 것들을 일과 연결 짓거나 혹은 노트 안에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살림살이로 녹여내 자신의 일상에 최대한 대입시킨다는 것. 그러다 보니 다이닝룸의 8인용 식탁은 때론 뉴욕풍의 브런치가 놓인 우아한 카페가 되기도 하고, 때론 코스로 정찬이 차려지는 정통 레스토랑이 되기도 한다. 친지, 친구 등 지인들에게는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터라 이 넓은 테이블이 곧잘 풀 부킹되곤 한다.
그렇다고 그가 차린 밥상이 매일 이렇게 이벤트를 여는 것은 아닐 테니 평상시 식사 준비가 궁금하지 않은가? 일단 이 집에서는 요즘 가정 필수품이라 할 수 있는 보온밥통을 사용하지 않는다. 전기밥솥에 한 끼 먹을 만큼만 그때그때 밥을 지어 나무로 된 작은 밥통에 밥을 옮겨 담는다. 모양과 재질이 조금씩 다른 나무 밥통만도 족히 열 개는 갖고 있다. 동그랗고 예쁜 나무 밥통은 식탁 위에 올려놔도 모양새가 보기 좋고, 여름에는 밥이 잘 쉬지 않아 더 좋다. 김은 집에서 직접 기름 바르고 소금 뿌려 석쇠에 구워 먹는다. 상큼한 레모네이드를 만들 때는 인스턴트 가루를 이용하지 않고 진짜 레몬을 아낌없이 짜서 만든다. 그날 지은 밥이 남을 경우에는 비닐팩에 담아 냉동시켜놓았다가 한꺼번에 모아 풀을 쑨다. 김현주 씨는 이불 커버와 베개 커버를 반드시 빳빳하게 풀 먹여 사용하는데, 남은 밥이 이때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부자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는 침대 매트리스 위에 얄팍한 패드 대신 두툼한 목화솜 요를 깐 뒤에 침대 시트를 씌운다. 집에 있던 국산 목화솜이 아까워서 생각해낸 것인데, 솜을 틀어 침대 매트리스 크기와 같게 하얀 커버를 주문 제작하여 그 안에 솜을 넣으니 폭신폭신한 것이 숙면에는 최고다. 남들 다 쓰는 보온밥통도 쓰지 않고, 남들 다 사 먹는 김이며 빵을 손수 만들어 먹으니, 이미 ‘평범한 살림’은 아니다. 이렇게 비범한 살림살이를 몸소 가르쳐주신 가장 훌륭한 선생님은 다름 아닌 친정어머니.
“결혼 전 친정어머니가 가족들에게 해주셨던 것을 제가 그대로 따라 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해 먹는 게 귀찮기는 하지만 막상 직접 해보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에요. 보온밥통에 넣어둔 밥보다는 그때그때 지은 밥이 더 맛있잖아요. 떡이며 빵, 김 같은 것도 직접 해 먹는 이유는 다른 거 없어요. ‘진짜 맛’ 때문이에요. 이불하고 베갯닛 풀 먹여 쓰는 것도 친정어머니의 영향이에요. 결혼하면서 그냥 편히 살아야지 했는데, 막상 풀 안 먹인 이부자리에서 자려니 영 편치가 않고 자꾸만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주변에 풀 먹여 다림질해주는 집 없나 찾아봤는데, 그런 곳을 못 찾았어요. 그러니 제가 직접 할 수밖에요.(웃음)”
1 살림의 원칙 첫 번째, 식빵과 베이글은 내 손으로 구워 먹는다. 2 동그랗게 만들어 식빵 틀에 담은 반죽. 3 거실의 임스 체어에 앉아 벨기에 여행에서 사 온 찻잔에 커피를 즐기는 김현주 씨. 고급 카페가 부럽지 않다.
식빵 재료 강력분 300g, 우유 210g, 설탕 5작은술, 이스트·소금 11/4작은술씩, 버터 25g
만들기 1) 제빵기에 강력분, 우유, 설탕, 이스트, 소금을 넣고 반죽하다가 실온에 둔 버터를 넣고 다시 반죽한다. 2)볼에 반죽을 담고 랩을 씌워 40분 동안 1차 발효시킨다. 3)②를 주물러 가스를 빼고 3등분하여 10분 정도 휴지시킨 후 동그랗게 말아 모양을 만든다. 4)식빵 틀에 ③을 세 개 나란히 담고 랩을 씌워 40분 동안 2차 발효시킨다. 5 200℃로 예열한 오븐에 25~30분간 굽는다.
(위쪽) 일터이자 놀이터인 김현주 씨의 부엌. 단정하게 정리된 그릇이 수납장 유리에 비친 실루엣으로도 확인된다.
살림의 기술 기본기가 튼튼하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신속하다 보니 음식 맛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데 음식을 맛보기 전에 먼저 감동하게 되는 건, 김현주 씨의 세팅 솜씨다. 커피 한 잔 낼 때도 마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커피 캡슐을 고른 뒤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별 모양, 하트 모양의 예쁜 각설탕을 곁들여 고급 카페에서처럼 내온다. 또 직접 만든 인절미를 바삭하게 구워 서너 조각씩 개인 접시에 깔끔하게 담아낸다. 차를 낼 때도 다반까지 갖춘 ‘완벽 세팅’이다. ‘서빙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다. 이렇게 차린 음식은 김현주 씨 부부가 오랫동안 하나 둘씩 모아 집 안 곳곳을 갤러리처럼 채운 미술 작품들과 함께 어우러져 더욱 빛을 발한다. 십수 년 넘게 미술 작품을 골라온 안목이니, 그의 감각과 눈썰미는 이미 수준급으로 단련된 상태다. 장식장과 주방 선반에 가득 찬 그릇과 조리도구들은 저마다 스타일리시한 면모를 띠고 있을 뿐 아니라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김현주 씨는 해외여행을 가면 옷이나 구두보다 그릇 쇼핑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다행히 그의 남편도 취향이 비슷해 둘이서 여행 가면 예쁜 식기류와 신기한 조리도구들을 공수해온다. 그뿐 아니라 시어머니 가 쓰시던 오래된 옹기 시루, 채반, 대바구니 등 어머니 눈에는 ‘그다지 쓸 데 없는 물건’들도 그에게는 ‘별것’으로 보여 하나 둘 얻어온 것이 벌써 한살림이다. 그렇게 모은 것이 부엌 가득이고, 그 살림살이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기 또한 한 보따리다. 장식장이며 싱크대, 냉장고, 창고까지 수납 솜씨는 또 얼마나 깔끔 단정한지, ‘촬영용 세팅’이 필요 없다.
1 보온밥통을 사용하지 않는 이 집의 필수품. 아기자기한 나무 밥통만도 열 개 정도 된다. 2 보조 주방에 일렬로 놓아두고 자주 사용하는 소형 가전제품. 왼쪽부터 반죽기, 제빵기, 전기밥솥, 미니 오븐,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3 구입 후 만족도가 아주 높은 와플 기계. 4 꼼꼼히 정리한 요리 노트는 최고의 재산. 5 찻잎을 넣어 잔에 우려내는 스틱형 스트레이너.
“특별히 무슨 노하우가 있는 건 아니에요. 웬만한 주부들은 다 이 정도는 할 줄 아세요. 다만 저는 유용한 조리도구나 주방가전 제품을 필요할 때 곧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손 가까이 닿는 곳에 놓아두고 100% 활용하는 편이에요. 어쩌면 제가 하는 것보다 조리도구가 해주는 게 더 많을지도 몰라요. 신기하고 재미난 도구가 얼마나 많은데요. 도구의 기능만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아도 웬만한 카페에서 나오는 음식들을 집에서 겁 안 내고 만들 수 있답니다.” 독일의 한 시골에서 마음을 사로잡은 촛대, 찾고 찾다 일본에서 겨우 찾아낸 밥통 등 그때 그곳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것들은 고민 없이 사모으는 열성에, 인터넷 장보기와 농촌 직거래, 구매 대행 서비스를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이용해 시간과 비용을 최대한 절약하는 알뜰함까지 갖췄다. 김현주 씨에게 ‘요리’는 마치 재미난 ‘부엌 놀이’ 같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그 놀이에 나도 끼워줬으면 하는 부러움이 들 정도로 신나 보인다. 편하고 쉬우면 재미도 덜한 법. 김현주 씨의 조금 귀찮고, 조금 느리고, 조금 힘든 부엌 놀이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김현주 씨 살림법의 밑바탕에는 친정어머니의 영향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거기에 내로라하는 쿠킹 클래스를 섭렵한 경력이 더해진다. 이렇게 배운 것을 노트 안에 잠재우지 않고 생활로 끄집어내니, 그의 다이닝룸은 때론 코스 요리를 내는 레스토랑이 되기도 하고, 때론 뉴욕풍 브런치가 놓인 카페가 되기도 한다.
1 깔끔하게 정돈된 싱크대 옆 부식 창고. 2, 4 예쁜 디자인의 다양한 조리도구는 요리의 즐거움을 몇 배로 증가시킨다. 3 여행하면서 구입한 그릇과 촛대. 5 벨기에에서 공수해온 그가 너무 좋아하는 장바구니. 마트 갈 때 꼭 데리고 간다. 6 싱크대 위 채반에 놓인 홍시와 고구마가 정물화처럼 예쁘다.
7 모양새가 예뻐서 시어머니한테 얻어 온 떡시루와 바구니. 8 에그볼과 소금통, 스푼을 함께 세팅할 수 있는 그릇.
김현주 씨가 즐겨 찾는 식품 사이트 www.baggro.com 농부가 직접 운영하는 사이트로 달걀, 참기름, 들기름은 반드시 여기서 구입한다. www.saltpeople.co.kr 요리에 필요한 소금은 이곳에서 ‘태안자염’을 구입해 이용한다. www.happyearth.co.kr 큰 토마토를 구입해서 일 년 내내 토마토주스를 갈아 마신다. 그 외에도 www.wrn.or.kr (환경농촌사목위원회)와 shop.hansalim.or.kr(한살림)도 식료품 구입 시 즐겨 찾는 사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