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영웅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읽고
양기순(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아주 어렸을 때 TV에서만 봤던 기억 속의 삐삐 롱스타킹은 힘이 아주 세고, 혼자서도 씩씩하고, 목소리와 옷차림이 특이하고, 못된 어른을 혼내주는 등 아이들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척척 해내는 정의로운 영웅 같은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책으로 만나 본 삐삐 롱스타킹은 어렸을 땐 보지 못했던 여러 가지 다른 것들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혼자가 된 삐삐 롱스타킹의 외로움, 익숙하지 못해서 대충 하는 집안일, 어른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 모습, 창의적인 생각, 어른보다 더 성숙한 마음 등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삐삐는 이따금 엄마가 있는 하늘에 대고 손을 흔들며 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에는 외로움이 묻어났습니다. 큰 솥 가득 물을 데워 부엌 바닥에 쏟아 솔 두 개를 맨발에 묶고 마룻바닥 위를 스케이트 타듯이 돌아다니며 청소합니다. 집안일이 서툴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또 학교에 가게 된 삐삐는 그림을 그리라고 종이와 연필을 나눠 줬을 때 종이에 다 못 그린 것을 바닥에까지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 얼마나 창의적인 발상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밤마다 딸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던 것을 책으로 묶었다는 삐삐 이야기를 어른이 되어 책으로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어릴 때는 안 보이던 주인공 삐삐의 힘든 상황이 크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렵고 힘든 아이들이 삐삐를 만나게 된다면 분명 큰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또한 삐삐가 벌인 크고 작은 사건을 삽화로 찾아보는 재미도 컸습니다. 글과 삽화가 너무도 적절하게 잘 표현됐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글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 롤프 레티시 그림작가의 그림을 보며 책을 읽는 즐거움도 컸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은 영화로 봤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글, 그림, 영화의 3박자가 잘 맞아떨어지게 만들어진 명작 중의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