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학 당한 명탄을 끌고 전북 익산에서 인천으로 터전을 옮겨야 했던 부모의 그늘진 얼굴은 명탄의 미래를 예언하고 있었다. 그 때부터 지난 99년까지 교도소에서 보낸 시간이 그의 ‘인생의 반’이라니.
“전과15범… 후회스럽지만 돌이킬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유일한 속죄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마을’ 교회 조명탄(본명 이종묵·47) 전도사. 인천지역 대표적 조폭 ‘행동대장’이 ‘노숙자들의 천사’가 된 사연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뭉클하다. 대규모 이권에 개입해 해결사 노릇을 하던 조 전도사가 마지막으로 수감된 것은 지난 96년. 어머니와 인천순복음교회 최성규 목사는 틈만 나면 찾아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실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적은 찰나에 이뤄지는 것인가.
무심코 성경책을 들춰보던 그의 눈에 하나의 문귀가 확 들어왔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잠언서 4장을 읽고 얼마나 울었는 지 모릅니다. 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준 피해를 어떻게 보상해야 할 지 막막했던 겁니다.”
99년 출소 뒤 노숙자에게 밥을 나누어주는 ‘사랑의 마을’ 교회일을 시작하자 조직 동료들이 찾아왔다. 한 쪽엔 칼을 차고, 다른 한 쪽엔 빳빳한 돈다발을 들고서.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처음 저를 정신나간 놈으로 쳐다보던 옛 동료들은 제가 너무도 확고하니까 나중엔 존경을 표하더군요. 지금은 후원도 해줍니다.”
그러나 복병은 또 있었다. 전과자를 보는 사회의 싸늘한 냉대와 멸시는 그로 하여금 수십 차례 ‘화려한 어둠으로의 복귀’를 생각나게 만들었다. 봉사활동 3년째인 2002년 9월. 마침내 그는 ‘제3의 삶’을 선택한다.
“약봉지를 들고 월미도로 갔습니다. 그런데 바다 가득 아내 얼굴이 웃고 있는 겁니다.”
그는 아내 조장희씨(33)가 없었다면 다시 어둠의 세계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흔들릴 때마다 그를 꼭 붙들어 준 사람은 ‘당신을 믿어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한 아내였다.
조 전도사는 오는 7월 목사 안수를 받는다. 그의 꿈은 음성 ‘꽃동네’ 같은 사회복지시설을 인천에 움티우는 것이다. /김진국기자 (블로그)free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