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한 자태로 미끄러지듯 유유히 헤엄치는 백조는 우아함과 정갈함의 대명사이며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백조는 고니의 일본식 표기라서 고운 우리말로 부르는 것이 좋겠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클래식 음악의 통로가 일본이다 보니 많은 부분이 일본식 발음으로 표기되어 있다. 번역가들의 의식이 너무 아쉬운 부분인데 이런 현상이 아직도 없어지지 않는걸 보면 앞으로도 쉽게 고쳐지지 않을 듯하다.
음악 서적을 번역하는 사람은 거의가 전문 음악가 이거나 최소한 클래식 음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번역한 책이 음악서적이지 맞춤법 교과서가 아니라는 식으로 마구 베껴댄다. 하기야 백조의 호수를 고니의 호수라고 번역하면 좀 웃기겠지만, 처음부터 그랬다면 지금쯤은 자연스러운 단어가 되었을 게 분명하다. 백조의 호수가 고니의 호수로 바뀔 때 까지는 우리 어린이들은 고니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천시할 것이다.
실은 고니가 모두 흰색도 아니다. 검은색 고니를 백조라고 부른다면 얼마나 웃기는 건가. 또한 백조는 일부일처제의 정조를 지키는 새로 알려져 있었지만, 호주의 조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암컷 백조들이 밤 11시쯤에 둥지를 떠나서 3시경까지 다른 수컷 백조들과 바람을 피우고 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약 20%의 새끼가 다른 수컷의 자식이어서 아빠 백조가 양육을 게을리 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 하는 것도 파악되었다. 차라리 이런 사실은 모르고 음악을 듣는 게 훨씬 감동적일 텐데. 백조를 소재로 한 음악 중 대표는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음악 '백조의 호수'지만 생상스가 작곡한 동물의 사육제에 나오는 백조가 훨씬 대중적이며 자주 접할 수 있는 음악이다.
생상스(1835~1921)는 모차르트에 비견 될 정도로 천재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다. 2살 때부터 절대 음감을 갖고 있었고, 3살 때부터 글을 읽었고, 5살 때 첫 공개 콘서트에 참가했고, 7살 때 수준급 라틴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지리학, 고고학, 식물학, 인류학 등을 공부했고, 수학에 뛰어났다. 따라서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유명 인사들과 토론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철학 논문도 썼고, 시도 썼으며, 희곡도 썼다. 게다가 프랑스 천문학 협회의 회원이기도 했다.
따스한 친화력으로 온 유럽의 음악계를 넘나들며 활동하던 그였지만 언제나 고독이 따라 다녔는데 그 이유는 변덕스러운 성격과 음악적인 고집 때문 이었다. 결혼 생활도 평탄한 듯 했으나 사랑스런 어린 두 딸을 잃고 어느 날 훌쩍 아내 곁을 떠나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고 여러 나라를 방랑하며 음악과 더불어 생명을 다 한다.
만년의 생상스는 당대의 거장 바그너와 독일의 음악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퍼부어서 반대파들과 극한적인 대립관계가 되었고, 이런 골치 아픈 것들을 피해 오스트리아의 조그만 동네인 크루딤에 사는 친구를 방문했다. 마침 그 동네에서는 사육제가 열리고 있었는데 사육제는 종교적인 의미의 대중적 축제(carnival)이다. 그의 친구는 뛰어난 첼리스트이기도 해서 축제의 마지막 날의 음악회를 위해 쓴 곡이 ‘동물의 사육제’이다. 다시 말해 동물들의 축제이다.
이 곡은 14개의 제목을 붙인 모음곡인데 12종류의 동물과 엉터리 피아니스트가 한 사람 등장 한다. 사자의 당당한 행진으로 시작되는 음악은 암탉과 수탉, 나귀, 거북이, 코끼리, 캥거루와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열대어를 거쳐 긴 귀가 달려있는 나귀, 뻐꾹새, 새장, 피아니스트, 화석에 이어 곡의 백미인 백조가 나온 뒤 마지막으로 피날레로 끝난다. 어느 한 곡도 감상에 난해함 없이 동물들의 행동을 익살맞게 그려낸 곡으로, 생전의 생상스는 이곡이 구닥다리 음악으로 매도될 것을 염려해서 백조 이외의 곡은 출판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지금의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바이올리니스트는 flare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flare란 순간적으로 확 타오르는 불꽃이란 뜻인데 아마도 생상스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듣고 있으면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제13곡인 백조는 말할 것도 없고 거북이, 코끼리 등은 자연과학을 좋아했던 생상스의 날카로운 관찰력에서 생겨 난 것으로, 한 번 들으면 웃지 않고는 못 배기는 유쾌한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