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와 그 적들> 2권
- 칼 R. 포퍼 (민음사, 1997)
예언적 철학의 등장
1장 헤겔철학의 아리스토텔레스적 뿌리
I.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과 헤겔의 낙관주의적 역사주의
- 현대 역사주의와 전체주의의 아버지 헤겔의 예언 철학에 끼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살펴볼 것. 아리스토텔레스는 생업을 천시하는 귀족주의적 생활관을 옹호, 학문을 놀고먹는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좋은 방법으로 규정. 따라서 그의 철학은 궁중철학으로서 낙관적 색채로 물들 수밖에 없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적 사색과 명상은 ‘선한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봉건적 신사들에게 설득, 그것은 정치적 음모나 전쟁에 몰두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가장 세련되고 고상하고 행복한 방법이기 때문.
- 그의 목적론은 플라톤의 변화에 대한 비관적 생각을 낙관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 그에게 변화는 (퇴화의 과정이 아니라) 궁극 목적을 향해 움직여 가는 과정으로 봄. 사물의 변화는 결국 사물이 지니고 있는 본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파악. 이러한 본질주의로부터 3가지 역사주의의 교설이 나옴.
(1) 국가의 숨은 본질을 그 발전의 역사를 파악함으로써만 알 수 있다. 우리는 사회변화를 연구하여 사회적 존재에 대한 지식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역사를 세계의 심판정으로 보는 역사숭배사상으로 이어진다.
(2) 변화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본질에 숨어 있는 것을 드러낸다. 이것은 역사주의의 운명사상과 연결된다. 국가와 개인의 운명은 자기존재의 본성과 직결되어 있다.
(3) 현실화되려면 본질은 변화 속에서 자기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이것은 이념은 활동에 의해서 현실화된다는 헤겔의 주장으로 발전된다.
- 백과전서전인 유형의 역사가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역사주의에 직접적 공헌을 한 것은 없다. 그는 역사의 일반적 흐름에 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음. 이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의 변화 이론은 역사주의자의 해석에 이용되었으며 또한 거대한 역사주의 철학을 꾸미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II.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주의와 과학적 방법
-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주의 철학은 예언의 철학으로 발전. 그의 정의론(定義論)은 본질철학의 핵심.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 사상을 따라 참된 앎(episteme)과 소견(opinion)을 구별. 참된 앎은 2가지인데, 논증적인 것과 직관적인 것. 논증적 지식은 ‘원인’에 관한 지식으로 삼단논법적 논증에 의한 명제로 구성. 직관적 지식은 사물의 본질적 성질, ‘나눌 수 없는 형상’을 파악하는 데 있다.
모든 증명은 전제에서 출발함. 전제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증명은 결론이 진리임을 근원적으로 보여줄 수 없고 단지 그 전제가 참인 한에서, 그 결론이 참. 전제가 다시 증명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게 되면, 문제는 다시 새로운 전제로 옮겨가게 되어 무한히 소급하게 됨. 이 무한소급을 피하려면, 증명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자체로서 자명한 전제가 있다고 가정해야. 그런 전제를 ‘기본 전제’(basic premise)라 부름. 기본전제들을 모두 모아 놓으면 과학적 지식은 모두 우리 것이 될 것. 그러면 어떻게 이 기본전제들을 얻을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믿기를, 우리는 궁극적으로 사물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파악함으로써 모든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기본전제는 사물의 본질을 서술한 명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한 명제가 바로 그가 정의(definition)라고 부른 것이다.
- 여기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정의 즉 기본전제를 확보할 수 있으며 그것이 정확한지를, 즉 우리가 그릇된 본질을 파악하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는가 하는 것. 이에 대해서 (플라톤은) 우리가 결코 잘못을 범하지 않는 지적 직관에 의해서 이데아를 파악할 수 있다고 가르침. 우리가 사물의 본질을 틀림없이 파악하는 지적 직관 내지 정신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가정을 하고 말았다.
- 완전한 인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견해를 요약하면, 모든 지적 탐구의 궁극적 목적은 모든 본질에 대한 직관적 정의, 즉 사물의 이름과 그것을 정의하는 말을 포함하는 총괄표를 만드는데 있다. 그리고 지식의 진보는 그와 같은 총괄표를 점진적으로 축적해 가는 데 있다.
- 본질주의적 견해와 현대과학의 방법과 뚜렷한 대조 : 과학적 지식에서는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지식은 없으며 오직 시험에 의해 확증된 가설과 이론이 있을 뿐, 이것은 새로운 경험적 사실에 의해 언제라도 수정되거나 제거될 수 있는 잠정성을 지님. 실망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우리는 많은 경우에서 2개의 이론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인가를 자신 있게 결정할 수 있기 때문. 즉 진보가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진리탐구에서 우리는 과학적 확실성 대신에 과학적 진보라는 개념으로 대치해야 한다.
- 희랍철학은 페리클레스와 소크라테스, 데모크리토스 등의 ‘위대한 세대’의 전통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으로 구성. 전자는 이성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열린사회를 지향하는 사상적 흐름과, 후자는 전제주의의 닫힌사회와 연결된 사상적 흐름과 맥락을 같이 함.
2장 헤겔과 새 종족주의
I. 헤겔 철학의 형성 동기
- 헤겔은 현대 역사주의의 원천,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직계 후손. 그의 전체주의 사상은 플라톤의 전체주의 사상과 현대의 전체주의 사상의 교량 역할. 그의 사상은 프러시아 전체주의를 옹호하고, 프레데릭 윌리엄 3세의 정부를 비호하려는 동기에서 형성
- 중세의 권위주의는 르네상스와 함께 붕괴되기 시작. 그러나 대륙에서 중세적 봉건주의는 프랑스 혁명 전까지 심각한 도전을 받지 않았다. 열린사회를 위한 투쟁은 1789년 사상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 1815년 이에 대한 반동적 세력이 프러시아에서 권력을 다시 장악하게 되자, 그 반동세력은 이데올로기가 절실히 필요. 헤겔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임명. 헤겔은 자유와 이성에 대한 항구적인 반역을 담당하고 있는 플라톤 사상을 재발견. 종족주의의 재생시키고 국가가 전부이며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 헤겔철학은 프레데릭 윌리엄 3세의 프러시아 정부의 회복에 대한 관심이 동기가 되어 형성되었으므로 그것을 대단한 것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 그러나 그 이야기를 내뱉은 사람은 독립심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 불과. 가장 좋은 증인은 쇼펜하우어, 그는 플라톤적인 이상주의자였으며, 보수주의적이지만 진리를 소중히 아끼는 지고의 순수성을 지닌 사람. 그는 철학적 문제에서 당시 최고의 심판관. “증명된 위대한 철학자로서 위로부터 권력에 의해 임명된 헤겔은 무미건조한, 구역질나는, 무식한 허풍장이였다. 그는 지랄 같은 얼빼는 넌센스를 갈겨 놓고 그것을 퍼뜨리는 데 용맹스럽기가 이를 데 없는 사람이다. 이 넌센스는 금전적 이익을 탐하는 추종자들에 의해 불멸의 지혜로 떠들썩하게 받아들여졌으며 모든 어리석은 자들에 의해 얼른 받아들여졌다. 어리석은 자들은 경탄의 합창을 불러댔다. 권력을 쥔 사람들이 헤겔에 마련해주었던 폭넓은 정신적 영향력은 한 세대에 전체를 지적 부패에 빠뜨리게 하였을 뿐이다.”
II. 헤겔의 역사주의와 도덕적 실증주의
- 헤겔의 ‘변증법의 3단계’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반대자 투쟁의 사상을 달리 표현한 것, 변증법은 정, 반, 합의 3단계로 역사적 발전 과정을 설명.
- 플라톤과 달리 헤겔은 변화 가운데 있는 세계의 진행의 추세가 이데아로 향해 가는 것, 즉 진보라고 가르침. 헤겔의 역사주의는 낙관적.
- 정반합의 변증법적 주장은 비판적 논의인 과학적 사고가 진행되는 방식에 관한 나쁜 묘사는 아님. 그러나 과학에서 모순은 용납될 수 없으며 피할 수 있는 것이라는 가정 위에서 진행되며, 모순의 발견은 과학자에게 그것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강요한다. 과학은 모순을 받아들이면 반드시 무너져 버린다. 그러나 헤겔은 그의 변증법적 삼단계에서 매우 다른 교훈을 도출했다. 모순이 과학적 발전이 이루어지는 수단이므로, 모순은 용납되며 피할 수 없는 것일 뿐일 뿐 아니라 대단히 소망스러운 것이라는 결론. 이것이 바로 모든 논의와 모든 진보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헤겔의 교설.
헤겔의 의도는 모든 모순과 더불어 자유롭게 기동하는 것. 모든 사물은 그 자체 모순적이라고 고집. 그가 모순을 받아들이기를 원한 이유는 합리적 논의, 그와 함께 과학적 지적 진보를 중단시키기 원했기 때문. 모든 논의와 비판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그는 그의 철학을 모든 비판으로부터 면제시키려고 하였다. 그 자신의 철학을 모든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강화된 독단주의 그리고 모든 철학적 전개과정에서 아무것도 능가할 수 없는 최고 정상을 확보할 수 있게 하려고 했다.
- 헤겔사상의 두 기둥 중 다른 하나는 동일철학(philosophy of identity). 동일 철학의 핵심은 윤리적 법적 실증주의인데, 그것은 지금 존재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주장, 즉 힘이 곧 정의라는 주장이다. 모든 합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모든 것은 합리적이라는 주장은, 기존 체제와 질서를 옹호하는 윤리적 법적 실증주의의 간결한 표현.
헤겔은 자신의 철학을 교묘히 이용하여 프러시아 군주정 옹호에 씀. ‘군주헌법은 발전된 이성의 헌법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헌법은 이성의 자기실현과 발전의 하위에 속한다.’ ‘모든 헌법 가운데 최고의 것을 지닌 절대 왕국으로 축복된 나라에 대해 헌법을 요구할 정도로 그렇게 어리석을 수 있을까. 그런 요구를 하는 사람은 분명히 자기가 무엇을 하며 무엇을 말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마치 자유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프러시아 절대왕국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가 자유스러운 존재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눈먼 사람이다.’
- 이런 비열한 봉사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유의하는 것이 중요. 이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비판, ‘철학이 국가편에서는 하나의 도구로, 다른 편에서는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오용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진리가 하나의 부산물로 드러나리라고 과연 누가 참으로 믿을 것인가?’.
- 헤겔은 진보적이며 혁명적인 듯이 보이는 점에서 출발하여 사물을 왜곡시키는 변증법에 의존하여 마지막에 가서는 참으로 놀라울 만큼 보수적인 결과에 도달하게 했다.
III. 민족주의 - 새 종족주의 - 의 등장
- 헤겔의 자유와 평등의 이론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뒤집어 놓기 위해 구상. 그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거꾸로 뒤집어 놓아 절대국가의 울타리 속에 가둠. 프로시아가 자유와 이념의 실현이 절정에 도달한 자유의 역사의 최종 발전단계라고 주장.
그는 프로시아의 전체주의적 민족주의의 편을 들음. 민족주의는 종족적 본능과 정념과 편견에 호소하며 개인적 책임을 집단적 책임으로 대치함으로써 그 책임이 주는 긴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에 호소. 이것은 근본적으로 평등주의와 인도주의를 지향하는 열린사회와 대립되는 비합리적인 집단주의적 운동.
- 독일에서는 혁명적 민족주의가 나폴레옹 침입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루소적 의미와 프랑스 혁명적 의미의 민주주의적 개혁을 요구했으나, 그 민주적 개혁에는 프랑스 침입자는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들은 공국의 왕들과 황제에 대해서도 등을 돌렸다. 이러한 초기 민족주의는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인도주의적 요구를 싸고 있는 의상으로서 새로운 종교가 지니는 힘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러한 길들지 않은 새롭고 민주주의적인 종교는 지배계급 특히 프러시아 왕에게는 대단한 신경과민과 위험의 원천이 되었다.
혁명전쟁이후에 프레데릭 윌리엄은 먼저 그의 민족주의적 보좌관들을 해고하고 다음에 헤겔을 임명함으로써 그 위험에 대처. 프랑스 혁명은 철학의 영향력을 증명해 주었으며 이 점은 헤겔에 의해 적절히 강조. 그의 당면과제는 반동에 힘을 부여하는 것, 반동세력의 힘을 철학이 강화하는 작업을 통해. 그는 민족주의를 드러내 놓고 반대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잘 훈련된 프러시아의 권위주의로 변형시켜 놓음으로써, 민족주의를 길들여 놓았다.
IV. 역사주의의 역사
V. 현대 전체주의와 헤겔
- 헤겔의 역사주의는 현대 전체주의의 급속한 성장을 위한 묘밭과 비료를 제공. ‘전체주의 운동의 무기창고’. 현대 전체주의는 자유와 이성에 대한 영속적인 반역운동 가운데 하나에 불과. 파시즘은 헤겔의 사상과 19세기 유물론(헥켈판 진화론)을 결합한 것.
(a) 국가는 국가를 창조하는 민족정신의 화신이라는 역사주의적 성격을 지닌 민족주의. 하나의 선택된 민족은 세계를 지배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다.
(b) 한 국가는 다른 국가의 천적이므로 전쟁에서 자기의 존재를 주장해야 한다.
(c) 국가는 어떤 종류의 도덕적 의무로부터 면제되어 있다. 역사적 성공이 유일한 심판관. 집단적 유용성이 개인적 행위의 유일한 원리. 선전꾼의 거짓말이나 진리왜곡이 용납된다.
(d) 오래된 국가에 대한 신생국의 전쟁도발은 윤리적이다.
(e) 위대한 인간에 대한 개인숭배
(f) 소시민과 천박한 범용의 삶에 반대되는 영웅적 인간과 영웅의 삶을 이상화.
- 헤겔의 역사주의는 현대 전체주의의 철학과 동일하다. 그러나 그 사실은 분명하게 인식되지 못했다. 헤겔의 역사주의는 여러 분야 지식인의 언어가 되었다. 헤겔의 광대놀음은 이미 충분한 해독을 끼쳤다. 우리는 그것을 중지시켜야 한다. 새 세대는 이러한 지적 사기, 인류문명에서 가장 엄청난 사기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며, 인류문명의 적과의 싸움에서 해방되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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