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이충기
공장 변주곡 외
거울을 깬 손으로도 칼을 쥐어야 할 우리는
안경에 맺힌 물방울이 사라질 때까지
안개에 의지했다.
안개가 가라앉은 공장에서는 칼 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밖에 비가 오지 않는데도 우리는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땀을 계속 흘리며 흠뻑 젖어야했다.
창문이 아주 살짝 열릴 때에도,
우리는 날짜에 대한 개념이 없어 주변을 살폈다. 미세하게 열린 창문 틈새로 칼이 꽂힌 뒤에야, 거울 앞에 돌아온 우리는 귀를 기울였다. 칼 가는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비좁은 공간 안에서도 하루가 다 지나가는 건지
점점 납작해진 허리를 제 손으로 붙잡으며
우리는 칼질한다.
발밑으로 떨어진 우리의 미래 따위가 분쇄되지 않도록
한껏 웅크린 불꽃들을 계속 들추어본다.
금이 간 거울이 우리를 비출 동안,
더 이상 우리 스스로가 깨지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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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독
첩첩산중에서도
단단할 줄 알았던 팔에 가시가 박혔다
손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났다
어떤 사람은
하얀 눈꽃이 날리는 나무의 몸통을 도끼로 치고 있다
나까지도 얼굴이 크게 달아올랐다
죽어가고 있는 나무에게까지
기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나는 맹세한다
넉넉지 않은 몸에서도, 누구든 가까이 다가오면
천년을 살아갈 하얀 눈꽃들과 함께
샘물이 솟아 나오는 산이 되기로
허나 몸에서 버석버석 소리가 나더라도
산속에서부터
서서히 볕이 드는 평지까지
소복을 몇 움큼씩 떨어뜨리며
가시가 스친 자국에 물도 뿌린다
물을 마시지 못해
죽음의 문턱에 선 다른 인간들의 눈과 마주칠 때면
물방울의 표면은
산의 숨소리
숨을 다듬는 나무줄기로, 빛은 슬며시 모여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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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기|2020년 《사이펀》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최소한의 안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