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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와 빌레몬서의 배경아티클 / 성경 주석
상업 도시 골로새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상업 중심지로 발달하면서 골로새는 점점 커졌다. 고대 골로새 역시 로마제국의 소아시아(오늘날 터키의 남서쪽 모서리) 지방의 리쿠스강 골짜기를 통과하는 주요 무역로에 건설됐다. 그곳에서 골로새 사람들이 도시를 유명하게 만든 아름다운 검붉은 색 모직 천을 생산했다.
그러나 상업 중심지로써 골로새의 중요성은 BC 100년경 인접한 지역에 라오디게아가 건설되어 활발하고 상업적인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인접한 히에라볼리와 더불어 이 두 도시는 AD 17년(티베리우스 황제 때)과 AD 60년(네로 황제 때)에 있었던 지진으로 파괴됐다. 이후 재건되기는 했지만 옛 명성을 되찾지 못했고, AD 400년경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도시가 됐다.
골로새 교회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교회를 개척하느라 2년을 보내는데, 사도행전 19장 10절에서 그 중심지에서 뻗어 나온 광채로 인해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 자신이 그 지방을 다니면서 선교 사역에 열의를 보였는지, 아니면 그가 회심시킨 사람들이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골로새에 교회 하나가 세워졌다.
아마도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를 세웠을 것이고 골로새서 1장 21절을 보아 그 교회 구성원이 주로 이방인들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빌레몬은 골로새 시민이었으며, 그 교회의 바른 지도자였다. 그는 종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의 종 오네시모가 도망을 쳤고, 나중에 그 종이 사도 바울을 만나 예수님의 복음 메시지에 반응했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직장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말한다...특히 그는 종들이 자신의 상전을 위해 어떻게 일해야 하며, 상전들은 자신의 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빌레몬에게 보낸 짧은 개인 서신(빌레몬서)은 골로새서 4장 1절에서 말한 바울의 명령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서신의 목적
골로새 사람들과 빌레몬에게 보낸 서신들은 대략 AD 60-62년 사이에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썼다고 여겨지는 4개의 옥중서신 가운데 두 개다. 당시 로마제국 황제는 네로였는데, 그는 바울의 로마 시민권 주장을 무시할 정도로 잔인하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었다... 옥에서 바울은 한때 강한 믿음을 가졌던 골로새의 크리스천들이 이제는 신앙에 대한 속임수에 넘어지기 쉬운 상태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골로새 성도들이 받아들이고 싶을만큼 유혹적인 신학적 오류를 하나하나 반박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 편지는 읽는 이들이 이런 속임의 문제들을 능히 뛰어 넘도록 해 준다. 바울은 그의 모든 독자들이 2천 년 전의 골로새 교회 성도들뿐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들도 하나님의 이야기 안에서 자신들이 살아가는 삶의 정황을 이해하고, 또 그것이 그들의 직업상의 관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쳐야 할지를 아주 신중하게 말한다.
[골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 - 본서의 서두는 바울과 골로새 교회가 피차 처음 알게 되는 상황이므로 담담하게 바울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도'라는 말의 의미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단순히 '심부름을 하는 자'의 의미가 아니라 '파견자의 전권을 위임받은 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정당한 자신의 권위를 알리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권위는 스스로 취한 것도 아니요 사람들의 추천으로 된 것도 아니다(고후 3:1). 오직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권위와 권능을 대변하는 자이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거슬러 올라감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그리고 바울 자신에게로 이어지는 권위의 연속성 주지시키고자 함이다. 형제 디모데 - 디모데는 본서 외에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레몬서의 서두에 언급된다.
이는 디모데가 여러 지역의 교회들에 상당히 알려져 있었음을 말해준다. 본서에서 바울이 디모데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골로새 교인들이 디모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디모데를 자신과 함께 소개함으로써 친근감을 주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뜻이 있었을 것이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에서 바울을 처음 만났고 바울과 동행하면서 함께 사역하였다.
[골 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 '성도들'이란 말은 '신자'에 대한 최상의 표현이며, 여기에는 구약적 배경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별하여 선택하였고, 이렇게 '성도'로 불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높은 지위에 걸맞는 삶을 살도록 요청받았던 것이 전제된다. 골로새 교인들도 '성도'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 이는 성도의 영적 위치를 강조하는 말로 성도는 한 육체의 지체들로서 그리스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신실한 형제들 - 만약 골로새 교인들이 인격적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받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투철하며 그리하여 하나님께 충성을 다한다면 그들은 마치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처럼, 바울과 영적 형제가 될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 바울의 편지 서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생략한 채 아버지의 이름만을 언급한 것은 본 서신이 유일한 예이다. 한편 헬라어 서신 형식에서 발신인은 '...로부터'에 의해 드러나는데 본문에서는 '...로부터'가 '아버지 하나님'에 붙어 있다. 이것은 본 서신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암시한다.
은혜와 평강 - '은혜'(카리스)는 하나님에게서 흘러 넘쳐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값없이, 자격을 묻지 않고 주시는 것이다. 즉 '은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구원'을 가리킨다. '평강'(에이레네)은 '은혜'에 의하여 귀결되는 것으로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진 상태이다.
한편 여기까지는 당시의 헬라적 서신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발신자의 이름, 수신자의 이름, 그리고 인사와 기원이 이어지는 형식은 전형적인 헬라식 서신의 서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편지의 서문에 그치지 않는다. 이 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배'하는 시간에 온 회중들에게 낭독되었다.
예배시간에 회중들에게 들려진다는 의미에서 이 편지의 서문은 단순한 인사말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를 기정 사실화하는 구약성경의 축복문의 성격을 띠고 있다.
[골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 바울의 편지 서문에 다른 사람의 이름이 같이 언급되는 경우에도 감사의 부분에서는 '내가'라는 단수형으로 서술되는 것과 달리 본문에서는 '우리'라는 복수형으로 표현되고 있다. 혹자는 이것을 저자 문제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즉 전자의 경우에는 바울이 단독 저자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공저자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보는 것이다. 아마 공저자라면 그는 디모데일 것이고 이는 디모데가 실제적으로 서신 집필에 참여했다기 보다는 곁에서 심정적으로 함께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도할 때마다'는 바울이 늘 골로새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는 의미이다.
공동번역은 '우리는 여러분을 위해서 언제나 기도하고'라고 번역하여 이 의미를 살리고 있다. 이는 바울이 비록 골로새를 방문한 적은 없지만 계속해서 골로새 교회에 대한 사도직을 수행해왔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
모든 감사는 하나님께 돌려진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앞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묘사했는데 여기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서술하고 있다(요 14:6). 따라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자 우리의 아버지이다.
[골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 바울은 직접 골로새 교회를 방문해보지 못했지만 이야기를 들어서 골로새 교인들의 신앙 상태를 알고 있다. 아마 에바브라를 통해서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바울이 들어서 알고 있는 것 가운데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믿음에 관한 것이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는 표현의 의미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일 수도 있고 ,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을 뜻하는 것일 수 있다. 이 둘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다. 바른 믿음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불가 분리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은 성도들간의 폐쇄적 사랑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도들간의 사랑이 더 긴밀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복음이 땅 끝가지 전파되면 이 사랑은 온 인류의 사랑이 될 것이다. 사랑은 믿음과 긴밀하게 결합된다. 사랑은 믿음의 구체화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랑은 믿음의 열매요 참증거인 것이다.
[골 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하늘에 쌓아둔 소망 - 본절의 '소망'은 앞절의 '믿음', '사랑'과 밀접하게 결합된다. 이 '소망' 때문에 믿음과 사랑이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소망은 하늘에 대한 소망이다. 그것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산 결과 하늘에서 받게 될 영광스러운 보상 즉 하늘의 축복에 관한 소망이다.
복음 진리의 말씀 - 복음과 진리는 서로 같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진리' 곧 '복음'은 사람들을 하늘의 소망에로 인도하며 믿음과 사랑의 삶으로 인도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 곧 복음에서 비롯된다. 또한 복음의 진리는 참다운 가르침과 사이비 교훈을 구별해 주는 척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