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8월 17일 월요일
[(녹)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의 아내의 죽음을 예표로, 이스라엘의 성전이 더럽혀져도 슬퍼하지도 울지도 못할 것임을 알려 주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에제키엘이 너희에게 예표가 되고, 그가 한 것처럼 너희도 하게 될 것이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4,15-24
15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16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네 눈의 즐거움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너에게서 앗아 가겠다.
너는 슬퍼하지도 울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마라.
17 조용히 탄식하며, 죽은 이를 두고 곡을 하지 마라.
머리에 쓰개를 쓰고 발에 신을 신어라.
콧수염을 가리지 말고 사람들이 가져온 빵도 먹지 마라.”
18 이튿날 아침에 내가 백성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저녁에 내 아내가 죽었다.
그다음 날 아침에 나는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
19 그러자 백성이 나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일러 주지 않겠습니까?”
20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나에게 내리셨습니다.
21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의 자랑스러운 힘이고
너희 눈의 즐거움이며 너희 영의 그리움인 나의 성전을 더럽히겠다.
너희가 두고 떠나온 너희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질 것이다.
22 ─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한 것처럼 하게 될 것이다. ─
콧수염을 가리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가져온 빵을 먹지도 못할 것이다.
23 머리에는 쓰개를 그대로 쓰고 발에는 신을 그대로 신은 채,
슬퍼하지도 울지도 못할 것이다.
너희는 너희 죄 때문에 스러져 가면서 서로 바라보며 한탄할 것이다.
24 에제키엘이 이렇게 너희에게 예표가 되고,
그가 한 것처럼 너희도 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나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6-22
그때에 16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18 그가 “어떤 것들입니까?” 하고 또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19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20 그 젊은이가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고 다시 묻자, 21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2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떤 젊은이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마태 19,16)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면서 몇 가지 계명으로 예를 들어 주십니다. 계명에 대한 말씀이 끝나자 젊은이는 또 묻습니다.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19,20) 정말로 부족한 부분을 행동에 옮기려고 물어보았을 수도 있고, 자기에게는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는 젊은이에게 예수님께서는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19,21)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젊은이는 슬퍼하며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젊은이에게 부족한 것은 자신의 재산을 하느님께서 주셨다는 깨달음과 그 재물을 하느님 뜻에 따라 이웃을 위하여 아낌없이 나눌 수 있는 용기였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느님 사랑에 대한 우리 응답으로 이웃 사랑이라는 모습을 지향하게 됩니다. 그러니 계명을 아무리 잘 지킨다 해도 그것이 그저 자기 만족 때문이라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계명을 다 지켜 온 젊은이였지만 하느님의 은총을 보지 못해 재물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버릴 수 없었음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그 젊은이처럼 우리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지요?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인간적 욕심에서 나누려는 마음이 조금 부족할 수 있더라도 예수님을 떠나는 일은 없으면 좋겠습니다.(유청 안셀모 신부)
고통스러운 유배지에서도 희망을 노래했던 에제키엘 예언자!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언뜻 생각하면 예언자로서의 삶이 무척 멋있어 보입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그릇된 지도자나 악인들의 악행 앞에서 다들 숨죽이며 지내던 시절, 하고 싶은 말 거침없이 하는 것이 참 멋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첫 번째 독서 예제키엘 예언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언자로서의 삶,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항상 고독하고 쓸쓸하며, 혹독하고 신산할 뿐입니다.
어느날 주님의 말씀이 예제키엘 예언자에게 내렸습니다. 죽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타락한 백성 이스라엘을 향해 당신의 말씀을 전하라 하시는데, 그 말씀은 백성을 칭찬하거나 격려하거나 위로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끔찍한 죽음과 멸망을 예고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네 눈의 즐거움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너에게서 앗아 가겠다. 너는 슬퍼하지도 울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마라. 조용히 탄식하며, 죽은 이를 두고 곡을 하지 마라. 머리에 쓰개를 쓰고 발에 신을 신어라. 콧수염을 가리지 말고 사람들이 가져온 빵도 먹지 마라.”(에제 23, 16-17)
에제키엘 예언자 입장에서 그 예언의 말씀을 전하기가 얼마나 난감했을까요? 다들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예고하니, 정말이지 말을 전하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애써 용기를 낸 에제키엘 예언자가 백성들이게 그 말씀을 전했는데, 백성들의 반응은? 냉랭했을 것입니다. 뭔 그 따위 악담을 퍼붓느냐는 질타가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냉담한 반응에 우울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끔찍한 소식이 에제키엘에게 전해집니다. 에언의 말씀을 선포한 바로 그날 저녁에 그의 아내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주님 예언의 말씀이 자신에게 제일 먼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마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하느님께서 주신 예언자로서의 소명에 충실합니다.
에제키엘 예언자 아내의 죽음 앞에 세상 사람들은 다들 비웃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예언자로 헌신하고 봉사한다는 사람의 인생이 그게 뭐냐? 엄청 잘난 체 하더니만, 꼴 좋구먼!
백성들의 비아냥으로 순식간에 노리갯감으로 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에제키엘 예언자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엄청난 슬픔과 서글픔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또다시 용기를 내어 백성들 앞으로 나아가 또다시 말씀을 선포합니다.
가장 아끼던 아내를 잃고도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에제키엘 예언자의 모습을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슬픔이 너무 큰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울 기력조차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광복절을 지내면서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일제 군국주의에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청춘을 바친 애국자들, 조국의 해방이라는 대의를 위해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타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순국 선열들의 생애와 예언자들의 생애가 꼭 빼닮았다는 생각 말입니다. 바빌론 유배지 한복판에서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의 '생기'를 예언했던 에제키엘 예언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예언자가 필요합니다. 고통스러운 유배지에서 더 이상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며 좌절하고 있던 백성 앞에 서서 피 끓는 목소리로 임마누엘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 이스라엘의 회복과 부흥을 외치는, 에제키엘을 꼭 빼닮은 예언자!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캐나다의 앨버타주는 석유 개발로 큰 수익이 생겼을 때 주민들에게 일정 금액을 나누어 준 적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알래스카주는 지금도 석유 수익을 바탕으로 조성된 기금에서 주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저도 코로나 팬데믹을 지내면서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지원을 받았고, 신문사도 직원들의 인건비를 지원받았습니다. 보통 우리는 주민은 세금을 내고, 정부는 그 세금으로 나라를 운영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큰 재난이 닥치거나, 공동의 자산에서 이익이 생기면 국가는 그 이익을 다시 주민들과 나눌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여러 형태의 지원을 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될 때, 그 이익을 어떻게 사회와 나눌 것인지에 관한 논의도 나오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일자리를 잃는 사람, 소외되는 사람,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도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열매가 소수에게만 머문다면 두려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 열매가 함께 나누어진다면 기술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천국과 지옥에 관한 재미있는 만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에는 똑같이 맛있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아주 긴 젓가락과 긴 수저가 주어졌습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그 긴 젓가락으로 자기 입에 음식을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젓가락이 너무 길어서 제대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서로 밀치고 다투다가 음식은 바닥에 떨어졌고, 사람들은 굶주렸습니다. 반대로 천국에 있는 사람들도 똑같이 긴 젓가락과 긴 수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입에 넣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 먹여 주었습니다. 서로서로 먹여 주니 모두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음식의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도구의 차이도 아니었습니다. 마음의 차이였습니다. 나만 살겠다는 마음은 지옥을 만들고, 서로 살리겠다는 마음은 천국을 만듭니다.
예전에 선배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말은 적게 하고, 지갑은 기쁘게 열어야 한다.” 말이 많아지고 지갑이 닫히면 후배들에게 존중받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나 때는 말이야!’ 하면서 후배들의 일에 간섭하고 야단치면 ‘꼰대’ 소리를 듣기 쉽습니다. 그러나 말은 줄이고 마음을 열며, 필요할 때 기쁘게 나누는 선배는 후배들에게 존경받습니다. 후배들이 제게 붙여 준 별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조데렐라’입니다. 모임이 있으면 저는 적당한 시간이 되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신데렐라가 자정이 되기 전에 돌아간 것처럼, 저도 시간이 되면 돌아간다고 해서 ‘조데렐라’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얼마니’입니다. 가능하면 후배들과의 자리에서 지갑을 자주 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명 브랜드 이름을 빗대어 ‘얼마니’라고 불렀습니다. 고맙고도 재미있는 별명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받은 것이 많기에 조금이라도 나누며 살고 싶었습니다.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은총입니다.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는 것도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부자 청년은 계명을 잘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거짓으로 증언하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켰습니다. 참 훌륭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 정도로만 살아도 좋은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은 단순히 계명을 지키는 삶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은 마음의 자유였습니다. 재물에 묶이지 않는 자유, 가난한 이웃을 바라보는 연민, 그리고 하느님을 전적으로 따르는 용기였습니다.
부자 청년은 계명을 지켰지만, 재물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선한 일을 하고 싶었지만, 가진 것을 내려놓지는 못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원했지만,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재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부자 청년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미사에 참례하고,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내 것을 나누는 일에는 인색합니다. 내 시간, 내 재능, 내 재물, 내 마음을 나누는 일에는 망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진 것을 나누어라. 그리고 나를 따라라.” 완전한 사람은 모든 것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완전한 사람은 많이 나눌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선한 일은 계명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선한 일은 가난한 이웃에게 연민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연민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나눔은 남는 것을 던져 주는 일이 아닙니다. 나눔은 이웃을 나의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나눔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도 말은 조금 줄이고, 마음은 더 열고, 손은 더 기쁘게 펴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가정이 천국이 되고, 우리의 공동체가 천국이 되고, 우리의 삶이 하느님 나라를 미리 보여 주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나에게 그러하신 하느님처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8,21)
나에게
그러하신
하느님처럼
나를
벗들에게
나에게
그러하신
하느님처럼
나의 믿음을
흔들리는 벗들에게
나에게
그러하신
하느님처럼
나의 희망을
무기력한 벗들에게
나에게
그러하신
하느님처럼
나의 사랑을
버림받은 벗들에게
나에게
그러하신
하느님처럼
나의 기쁨을
가라앉은 벗들에게
나에게
그러하신
하느님처럼
나의 섬김을
짓밟히는 벗들에게
나에게
그러하신
하느님처럼
나의 살림을
쓰러지는 벗들에게
나에게
그러하신
하느님처럼
나를
벗들에게
오늘의 성인
성녀 베아트릭스(Beatrice)
신분 : 동정녀, 설립자
활동지역 : 실바(Silva)
활동연도 : 1424-1492년
같은이름 : 베아뜨리체, 베아뜨릭스, 베아트리체
실바의 성녀 베아트릭스(Beatrix de Silva Meneses, 또는 베아트리체)는 포르투갈에서 브리트(Brites)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1424년경 포르투갈의 캄푸마이오르(Campo Maior)에서 비아나(Viana)의 백작의 딸로 태어났으며, 개혁 프란치스코회의 창시자인 복자 아메데우스(Amedeus)의 동생이다. 그녀는 이사벨(Isabel) 공주의 시녀로 있다가 공주가 카스티야(Castilla)의 요한 2세와 결혼할 때 에스파냐로 함께 수행했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는 20세였다. 성녀 베아트릭스의 미모가 공주에게 질투심을 느끼게 하여 어이없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3일 동안 투옥되었는데, 이때 음식조차 주지 않았다고 한다.
석방된 후 성녀 베아트릭스는 궁중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톨레도(Toledo)로 가서 시토회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여자 수도회 설립을 꿈꾸어 오다가, 1484년경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수녀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가톨릭 신자이던 이사벨 여왕이 이 수녀회의 첫 공동체가 사용하도록 갈리아나(Galliana)의 성을 하사하였다. 그녀는 시토회의 규칙을 따랐고 푸른 외투에 흰 수도복을 입었는데, 성모님의 발현도 여러 번 경험했다고 한다.
성녀 베아트릭스는 1492년 8월 16일(또는 9월 1일) 톨레도에서 사망했는데, 이때부터 이 새로운 수녀회는 톨레도의 대주교이며 프란치스코회 회원인 시스네로스(Cisneros) 추기경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클라라회의 수도 규칙을 준행하는 수녀회로 승인을 받았다. 그녀는 1926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6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의 축일은 오랫동안 9월 1일 또는 8월 16일에 기념해왔는데, 2012년에 8월 17일로 변경되었다.
성 히야친토 (Hyacinth)
활동년도 : 1185-1257년
신분 : 신부, 선교사
지역 : 크라쿠프(Krakow)
같은 이름 : 히야친또, 히야친뚜스, 히야친투스, 히야친트, 히야킨또, 히야킨뚜스, 히야킨토, 히야킨투스
서폴란드의 유명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1185년 폴란드 남서부 슐레지엔(Schlesien) 근처 란카 성에서 태어난 성 히야킨투스(Hyacinthus, 또는 히야친토)는 크라쿠프와 프라하(Prague)에서 초등교육을 받고 볼로냐(Bologna)에서 법학과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폴란드로 돌아와서 크라쿠프 교구장의 비서가 되었다. 1220년 주교와 함께 로마(Roma)에 갔다가 그곳에 와 있던 성 도미니코(Dominicus, 8월 8일)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고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다.
폴란드로 돌아와서 1222년 크라쿠프에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설립하고 그 수도원을 중심으로 여러 곳을 순회하며 설교를 하였다.
그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비롯하여 프로이센(Preussen)과 리투아니아(Lithuania) 전역을 돌며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1257년 8월 15일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지칠 줄 모르는 선교활동을 계속하였다. 폴란드의 사도로서 공경을 받는 그는 1594년에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마마 (Mamas)
활동년도 : +275년경
신분 : 순교자
지역 : 카이사레아(Caesarea)
같은 이름 : 마마스, 마만스, 맘마, 맘마스
성 마마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에 살던 양치기였으나, 전심으로 하느님을 섬기려는 불같은 열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박해자의 손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직 소년이었는데 너무나 열심하고 또 용감하여 아우렐리아누스 앞에까지 끌려가서 돌을 맞고 순교하였다고 한다. 어느 전설에 따르면 그 도시의 산속에서 이리들과 같이 살았지만 아주 평화스럽게 야생동물과 지냈으며, 꿀과 우유만으로 생활했다고 하며, 순교한 것이 아니라 야생동물과 함께 사라졌다고도 한다. 그는 맘마(Mammas) 또는 마만스(Mamans)로도 불린다.
성녀 요안나 들라누(Jeanne Delanoue)
활동년도 : 1666-1736년
신분 : 설립자, 수녀
지역 :
같은 이름 : 요한나, 잔, 잔느, 쟌, 제인, 조반나, 조안, 조안나, 조한나, 지아나, 지안나, 지오바나, 지오반나, 후아나
성녀 요안나 들라누(Joanna Delanoue)는 1666년 6월 18일 프랑스 앙주(Anjou) 지방 사뮈르(Samur)에서 포목상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종교용품점을 운영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열두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1691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녀는 어머니의 사업을 이어받아 현명하고 성실하게 운영해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
1698년 성령 강림 대축일 주간에 그녀는 인간의 삶과 일의 가치에 대한 두 개의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 하나는 환시 체험이었고, 다른 하나는 렌(Rennes)에서 순례를 떠난 과부 프란체스카 수쉐(Francesca Souchet)의 신심 깊은 권고의 말이었다. 이 두 사건은 그녀의 사고방식을 바꿔 자신의 안위에만 만족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보다 영적인 수준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잘 나가던 상점 문을 닫고 세상의 안락함과 성공이 아닌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특별히 사뮈르 지역의 고아들에게 큰 관심을 기울였는데, 마침 그녀의 선행에 감동한 사람들이 세 채의 집을 기증하자 이를 가난한 고아들의 안식처로 만들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자선활동에 동참하면서 작은 모임이 형성되자 그녀는 1704년 ‘사뮈르의 하느님 섭리의 성녀 안나 수녀회’(Sisters of St. Anne Providence of Samur)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수도명을 ‘십자가의 요안나’(Jeanne of the Cross)로 정하였다.
성녀 요안나 들라누는 치유의 기적을 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1721년 무렵에는 그녀와 그녀가 설립한 수녀회가 이미 프랑스 전역에 많은 고아원과 병원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고행과 기도 속에 늘 헌신적으로 자선활동을 벌이던 그녀는 1736년 8월 17일 프랑스의 팡세(Fencet)에서 선종하였다. 그녀는 1947년 11월 8일 교황 비오 12(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2년 10월 3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로마(Roma)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