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육부 훔치는 범죄 가장 큰 형벌 받아야 마땅
2004년 7월 도난됐던 전북 서고사 나한상 8구와 복장 유물
작은 크기에 친근한 표정으로 대중 위로했던 나한이었으나
유랑하다 경매장에 등장…일부는 전 사립박물관장이 은닉해
서고사 나한상, 1695년, 높이 50~54cm, 2014년 회수.‘다시찾은 성보’. 대한불교조계종, 경찰청, 문화재청, 2014.
2004년 7월경 도난된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만성동 84 서고사(西固寺) 나한상 8구와 복장물이 2014년,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되돌아왔다. 서고사 나한상 4구가 경상남도 고성 옥천사 나한상과 함께 2014년 6월2일 서울 관훈동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마이아트 옥션에 경매물품으로 나왔던 것이다. 우선, 나한상을 도난문화재로 압수한 후 숨겨진 불교문화재를 찾기 위해 끈질긴 노력 끝에 ‘문화재보호법’ 위반의 전과가 있는 서울의 전 사립박물관장의 새로운 은닉처에서 2020년 7월에 서고사 나한상 4구를 추가로 찾았다.
회수된 서고사 나한상은 대좌 안쪽에 묵서로 숫자가 적혀 있어 5구의 존명이 확인되었다. 십육나한 중 제3존자 가낙가발리타사(迦諾迦跋釐惰闍), 제5존자 낙거라(諾距羅), 제7존자 가리가(迦理迦), 제14존자 벌나파사(伐那婆斯), 제16존자 주다반탁가(注茶半託迦)에 해당된다. 8구의 나한상 중 4구에서 복장 발원문이 발견되었는데 거의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1695년 5월23일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사는 문만영이 시주하고 수화승 성심(性沈)을 비롯하여 체원, 민성, 성인, 진열 등 8명의 조각승이 가섭·아난존자와 십육나한상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원래는 전라북도 부안면 선운리 백련사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하였다고 하나 어떤 연유로 서고사 나한전(羅漢殿)에 모시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십육나한상은 석가삼존불상 좌우에 8구씩 배치되어 나한전이나 응진전(應眞殿), 영산전(靈山殿)에 주로 봉안되었으며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전반인 조선 후기에 많이 조성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서고사는 10세기 초 후백제의 견훤이 창건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으며 전주의 서쪽에 배치되어 동고사, 남고사, 북고사와 함께 사방을 지키는 사고(四固)사찰의 하나라고 한다. 서고사는 1950년 6·25 한국전쟁 때 완전히 불타버린 후 근래에 나한전과 요사채가 중창되었기 때문에 이렇다 할만한 오래된 유물이 남아 있지 않다. 최근에 회수된 나한상 8구 중 4구는 제자리로 돌아가 서고사의 본사(本寺)인 김제 금산사성보박물관에 봉안되었으며 2017년 11월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252호로 지정되었다.
서고사 나한상, 1695년, 높이 50-54cm, 2020년 회수. 필자 제공
서고사 나한상 8구는 대개 정면을 바라보거나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고 때론 턱을 약간 들고 쳐다보면서 바위 형태의 대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높이 50~54cm 정도의 작은 나한상이지만 얼굴은 미소를 띠고 있거나 무표정하며 앉아 있는 자태에서 세속적인 이미지가 엿보인다. 이런 친근하고 인간적인 나한상의 모습에 일반 대중들은 쉽게 다가갈 수 있었으며 마음의 안정과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서고사 나한상은 도난된 후 새로 채색되면서 따뜻한 나무의 질감이나 예스러운 색감을 잃어버렸다.
제3존자상은 흰눈썹과 흰수염을 가진 늙은 노인의 모습이며 제14존자상은 굵은 눈썹과 콧수염, 턱수염으로 중후한 중년의 모습을 표현하였다. 나머지 나한상 6구는 앳된 얼굴에 가는 눈썹과 턱수염을 간략하게 처리하여 젊은 청년을 나타냈으나 그중 1구는 개채하면서 노인에서 중년의 이미지로 바꿔져 있어 원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몸에는 y자형의 내의를 입고 그 위에 대의와 가사를 걸치고 있는 것이 공통적이다. 자세는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거나 한쪽 다리를 다른쪽 다리의 무릎 위에 올려 놓은 반가좌(半跏坐) 또는 한쪽 무릎을 세워 편안하게 앉아 있는 윤왕좌(輪王坐)를 하고 있다. 특히 윤왕좌는 인도 고대 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좌법에서 유래된 것으로 오른손은 무릎 위에 걸치고 왼손은 왼쪽 다리 뒤로 바닥을 짚고 기대고 앉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십육나한상은 시대마다 형상이 약간씩 다르나 근엄한 불상에 비해 자유롭게 표현되었던 것만큼 다양한 형태의 지물을 쥐고 있다. 서고사 나한상에서는 염주, 홀, 합, 막대기 등과 같은 지물이 확인되나 전설상의 상서스러운 서수(瑞獸)는 보이지 않는다. 지물이 없는 경우에는 한 손을 무릎 위에 걸치고 있거나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 놓았다. 14존자상의 경우 대좌 앞면에 새끼 호랑이가 표현되었는데 이는 조선 후기의 나한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호랑이는 중국의 토지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온갖 잡귀를 막아주는 벽사(辟邪)의 의미를 갖고 있어 민간신앙이 불교에 수용되었음을 의미한다.
서고사 나한상, 1695년, 높이 50-54cm, 2020년 회수. 필자 제공
서고사 나한상 8구는 모두 등부분에 장방형의 구멍이 뚫려 있다. 그 안에는 나한상을 조성하게 된 내력을 적은 발원문과 여러 종류의 물품을 넣은 동제 후령통(後鈴筒), 경전, 다라니(陀羅尼) 등의 복장물이 들어 있었다. 복장(腹藏)이란 불상의 몸 안에 발원문을 비롯한 각종 물건을 넣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불상이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종교적인 상징물로서 신성함과 생명력을 불어넣은 생명체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불상의 복장은 인간의 중심부인 오장육부(五臟六腑)에 해당되는 셈이다. 복장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후령통은 불상의 심장부분에 넣는 것으로 원래 은으로 제작해야 하나 동(銅)이나 철을 사용하여 많이 만들어졌다. 후령통에서는 금강저, 번, 산개, 곡식, 약재, 향을 각각 넣은 5개의 보병(寶甁)을 오색실로 묶은 오보병(五寶甁)이 나왔다. 특히 오색실과 오보병은 밀교의 금강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오방(五方)과 그 색깔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렇듯, 종교적인 신성함을 의미하는 불상의 복장물을 훔치는 행위는 불상 자체를 파괴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중국 당나라 때 편찬된 ‘법원주림’에는 불상의 머리나 얼굴, 손 등 부처님의 신체를 훼손하는 것은 살아 생전의 가장 큰 다섯가지 죄인 오역죄 중의 하나로 지옥 가운데 가장 혹독한 곳인 아비규환 지옥에 떨어진다고 했다. 그만큼 불상을 훼손만 해도 가혹한 처벌이 따르는데 불상의 오장육부인 복장물을 훔치는 행위야말로 가장 큰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중국은 당나라 때 불상 안에 복장을 넣기 시작하여 송대 이후의 불상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와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불상의 복장물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는 고려시대에 목조불상이 본격적으로 제작되면서 금동불이나 석조불상에 비해 불상 안에 복장을 안치하기가 용이했던 점도 하나의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조상경(造像經)’이 간행되어 불상 조성에 따른 복장 의식과 절차가 일정한 법식에 의해 행해졌으며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출처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