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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Luxor)는 크게 두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동안 지역(East Bank)과 서안 지역(West Bank)이다.
동안은 '산 자의 도시'로 룩소르 신전과 카르나크 신전, 또한 박물관이 있고,
서안은 '죽은 자의 도시'로 왕들의 계곡, 하트셉수트 신전, 하부 신전과
멘논의 거상 등 유명 볼거리로 여행객들의 발길을 불러들인다.
동안과 서안은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동, 서로 나누어져 있다.
오늘(2023년 2월 18일)은 동안을 둘러보고 내일은 서안을 보도록 하겠다.
룩소르 신전(Luxor Temple)은 오늘날 룩소르로 알려진 도시의 나일강 동쪽 둑에
위치한 대형 고대 이집트 신전이다. 대략 기원전 1400년 경에 건립되었다.
제 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가 건립하고 제 19왕조의 람세스 2세가 중축하였다.
꽃이 피어 있는 파피루스와 피지 않은 파피루스 기둥이 특이하다.
높이 16m의 원주열은 주랑 측벽에 투탕케멘 왕이 오페드 축제 내용을 새긴 얕은 부조와 함께
신전 중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이다. 대탑문, 람세스 2세의 뜰, 제2탑문, 열주실 등으로 이어져 있다.
원래는 두 개의 오벨리스크가 있었는데 하나는 지금 파리 콩코드 광장에 있다.
하트셉수트(BC 1473-1458) 15년간 통치
성경 속 모세의 양 어머니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안에 있는 년도 표시는 통치 기간을 뜻하는 것임)
아멘호테프 3세(BC 1390-1352) 38년간 통치
투탕카멘(BC 1332-1323) 9년간 통치
람세스 2세(BC 1279-1213) 66년간 통치
PINEDJEM 1세(BC 1070-1032) 38년간 통치
네티네보 1세(BC 379-361) 18년간 통치
이와 같은 모양의 석상을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다.
룩소르 신전의 입구 모습이다.
위에 사진으로 소개한 파라오 들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지난번 다른 신전들을 소개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나무위키에서 인용하겠다.
룩소르 신전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확실지 않지만 대략 아멘호테프 3세의 재위기인
기원전 1400년 쯤에 지어진 걸로 추정된다. 그 이래로 카르나크 신전과 함께 테베를 상징하는
신전으로 자리매김했는데, 당시에는 '남쪽 성소'라는 뜻의 '이페트 레시트'라고 불렀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신에 대한 숭배가 중심인 카르나크 신전과 달리 룩소르 신전은
파라오의 왕권 강화적인 목적이 더 강했다는 것. 일부 학자들은 파라오들이
룩소르 신전에서 대관식을 치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멘호테프 3세가 처음 지을 때 지성소와 내부 광장, 다열주홀이 만들어졌고
후대에 건축광 람세스 2세가 추가로 탑문과 입구 쪽 광장을 덧붙였다.
다만 람세스 2세 외에도 수많은 파라오들이 공사를 진행했는데, 일례로 그 유명한
소년 파라오 투탕카멘도 룩소르 신전에 조금씩조금씩 건물들을 덧붙였다.
이후 룩소르 신전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절을 거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절에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사원들 중 하나로 기능하면서 중요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멸망과 함께 고대 이집트 종교의 쇠퇴,
그리고 이집트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룩소르 신전은
점차 사람들에게 버려졌고, 나중에는 작은 콥트 교회가 사원 안에 들어서기까지 했다.
후일 파티마 왕조가 들어서고 이슬람교가 새롭게 유입되자
룩소르 신전 유적 위에 모스크가 세워졌지만 딱히 거대한 규모는 아니었고
그냥 점차 모래 속에서 무너져가는 유적 정도의 취급만 받았다.
1800년대에 이르자 무너진 잔해들과 그 위에 쌓인 모래들이 겹치고 겹쳐져서
유적 전체에 높이가 15m에 달하는 거대한 언덕을 이루기에 이르렀다.
대략 신전 유적 전체의 4분의 3 정도가 이 모래언덕에 묻혀있었던 것.
이렇게 언덕 아래에 묻혀있던 룩소르 신전을 1884년 가스통 마스페로 교수가
이집트 당국의 허가를 받아 발굴하기 시작했고, 이후 1960년대까지 꾸준하게 발굴이
이루어지며 몇 천년만에 다시 지상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60년대에 이르자 이집트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꼽히면서 국가적인 보호 관리에 들어갔고, 1975년에는 바로 옆에
룩소르 박물관이 세워졌다. 현재는 이집트와 룩소르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2013년 5월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룩소르 신전의 부조에 낙서를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장쑤성 난징에 사는 한 15세 중학생 딩진하오(丁锦昊). 알고보니
자금성의 물을 담아두는 청동 항아리에도 낙서를 하고 달아난 화려한 전적이 있다고 한다.
룩소르 신전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내 주관적인 글 보다는 나무위키에
수록되어 있는 이곳의 역사를 인용하면 좋게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인용하였음.
어제 헤어졌던 패트리시아와 왓츠앱으로 서로 연락을 해서
룩소르 신전 입구에서 만나서 오늘도 함께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벽에는 이런 모양을 새긴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상형문자와 벽화는 이미 너무 많이 소개를 하여 이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지나가던 동양인이 나보고 이런 사진은 어떠냐고 제안한다.
나는 여행은 보는 것보다는 사람들과 관계를 쌓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사람을 만나면 아주 쉽게 누구에게든 다가간다.
그런 만남의 추억이 가장 오래 남고 나 자신에게 영양소를 공급한다.
룩소르(Luxor)는 이집트(Egypt) 고대 도시 테베(Thebes)였다.
이집트 중왕국, 신왕국의 수도였고 룩소르 신전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여기에 보이는 '스핑크스의 길'은 카르나크 신전까지 2.5KM 정도 연결되어 있다.
세워둔 스핑크스 모양은 이렇게 생겼고 사진으로 설명을 곁들였다.
룩소르 신전에 만든 이슬람 모스크를 방문하기로 한다.
이곳 정부 관리의 도움으로 쉽게 입장할 수 있었다.
모스크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슬람교도들
모스크 안으로 입장하려면 신발을 벗고 여자는 반드시 히잡(Hijib)을 써야 한다.
신발을 벗은 나는 관리가 안내하는 장소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모스크에서 이맘이 사용하는 설교단 같은 데서 사진을 찍어본다.
모스크 안에서 이집트 정부 관리의 허가를 받고 기념 촬영을 한 것이다.
이곳을 관광상품으로까지 개방하는 이집트인에게 묘한 연민의 정을 느낀다.
모스크 위에서 룩소를 신전을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모스크 위에서 패트리시아와 케니지 투어리더
룩소르 신전에 있는 모스크 견학을 모두 마치고 정부 관리 사무실로 불려 들어갔다.
정부 관리는 자신들이 정성 들여서 안내를 하였으니 과한 금액의 돈을 요구한다.
아니 이럴수가???? 무슨 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명색이 정부 관리들인데,,,
패트리시아와 눈짓을 교환하고 요구하는 금액의 돈은 없고 이것뿐이니
이것이라도 받으면 주고 아니면 배 째라(?)를 바디 랭귀지로 표현하였다.
그랬더니 동료들과 서로 무어라 대화를 주고받더니 그냥 받겠단다.
이런 긴 줄을 생략하고 우리를 VIP로 안내를 했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자리를 옮겨서 카르나크 신전으로 향한다.
이번에도 나무위키에 있는 글을 인용해서 이해를 돕기로 하겠다.
이집트 남부 룩소르의 시가지 북부에 위치한 고대 유적. 고대 이집트를 넘어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넓은 종교 시설 중 하나이다. 카르나크는 옛 테베의
북쪽 절반을 지칭하는 지명으로, 그곳에 아몬 대신전을 중심으로 몬트, 무트 신전의
세 신전으로 구성된 신전군을 통틀어 카르나크 신전이라 한다.
다만 몬트 신전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무트 신전 역시 일부만 잔존한다.
한편 카르나크 자체는 '요새화된' 이란 의미인 아랍어 쿠르낙 (خورنق)에서 유래되었다.
고대 당시 지명은 '아문의 집이란 뜻인 페르 아문 (신왕국 시기) 혹은
'제일 선택받은 곳'이란 의미인 이브트 수트 (중왕국 시기)였다.
카르나크는 중왕국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까지 2000년에 걸쳐 세워진 신전으로 유명하나,
대부분은 건축물은 신왕국 때의 것이다. 중왕국 시대에는 테베의 주신인 아문을 모시는 작은
신전만 있었다가, 신왕국 시대에 들어 아몬이 주신이 됨과 함께 대대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건축왕 람세스 2세 이전에 하트셉수트와 투트모스 3세를 비롯하여. 그 이후 람세스 3세 등
신왕국의 유명한 파라오들이 수백년에 걸쳐 아몬 대신전을 중심으로 엄청난 규모의 대역사를 벌였다.
비록 아톤을 유일신으로 섬기려는 '종교개혁' 군주 아멘호테프 4세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후계자인 투탕카멘 대부터 복원되었고, 람세스 2세 시기에 대대적으로 증축되었다.
후자는 히타이트를 상대로 싸웠던 카데시 전투의 전승 기념비와 장기 집권의 상징물을 더하였다.
4세기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화하고 356년 이교 신전 철폐령을 내리자 카르나크는 버려졌다.
아문 대신전 만큼은 콥트 정교회의 성당으로 개조되어 현재까지도 콥트어 명문이 남아있다.
다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재차 버려졌고,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모래 속에 반 이상 파묻혔다.
그러다 1668년 카푸친 수도회의 선교사들이 방문하여 인근 아랍 지명인 '엘 카르나크'라 묘사하며
유럽에 다시 알려졌고, 18세기의 탐험가들과 19세기 초엽 프랑스 학자들에 의해 조사되었다.
그리고 1895년 프랑스 학자 조르주 루그랑의 주도로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 다만 발굴 중에도
도굴꾼들이 들끓자 이집트 고고국은 카르나크 담당국을 설치하고 보수와 복원에 나섰다.
한세기에 걸친 조사에도 아직 전체의 10%만 발굴되었다고 한다.
자~~ 그럼 세계 최대의 신전인 카르나크 신전을 보기로 하자~~~
양쪽으로 마주보는 스핑크스가 있는 입구부터가 사람을 제압한다.
신전으로 들어가서 도열된 왼편의 스핑크스를 본다.
반대편에 있는 스핑크스도 위풍당당이다.
조금 전에 보고 온 룩소르 신전과 2.5KM 정도 스핑크스의 길이 연결된다.
저 멀리에는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사람과의 만남이 또 시작된다.
지나가는 나를 보고 웃음으로 사진을 찍으라고 제안을 한다.
신전 안 뜰에서 보는 스핑크스도 대단한 규모다.
이집트 여인은 나를 불러 세우더니 자신을 따라서 자세를 취하라고 한다.
그러며 수줍어하는 모습이 아주 귀엽고 사랑스럽다.
말로만 듣던 '오리지널 이집트 오벨리스크'를 바로 곁에서
보는 기분은 '여행은 참 좋은 것이다'라는 사실을 실감 나게 한다.
다른 방향에서 또 바라본다.
하트셉수트 오벨리스크. 29.6m/325ton. 사진을 보는 방향으로 왼쪽 방향에 있는 것이다.
오른쪽에 있는 것을 하트셉수트의 아버지인 투트모세 1세의 오벨리스크. 23,2m/143ton.
이건 오벨리스크를 정면에서 올려 보고 찍은 사진이다.
패트리시아는 자신이 모델이 되고 싶단다.
사진 놀이를 하는 중간에 다시 아랍 가족을 만난다.
이제는 애기를 포함하여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잔다.
귀요미 아가씨도 모델로 나선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한국인을 좋아한다고 가고 싶다고 말한다.
이것을 찾아서 자리를 이동하였다. 이것은 쇠똥구리 석상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쇠똥구리가 둥글게 빚은 배설물을 굴리는 모습이
마치 아침의 태양을 움직이는 것 같다고 신성한 벌레로 추앙받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쇠똥구리 벌레가 태양신을 대신한다고 할 수 있다.
쇠똥구리 석상 주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번 돌면 행운을,
세 번 돌면 결혼을 그리고 다섯 번 돌면 아들을 얻는다는 미신이 있다.
그래서 순진한(얼빵한) 사람들은 태양신 주위를 계속 돌고 돈다.
태양신, 쇠똥구리와 세 개의 오벨리스크
그 바로 옆에는 신성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상형 문자 앙크(Ankn)를 양손에 들고 있는 파라오 석상
앙크는 '생명'을 뜻하는 상형 문자로 삶을 지탱하고
사후 세계에서 인간의 영혼을 되살리는 힘을 나타낸다고 한다.
카르나크 신전 안에는 하도 신전 수가 많아서 설명 없이 그냥 사진만 남기기로 하겠다.
석상의 크기를 가늠하라고 옆에 서 보았다.
사진만 보아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신전을 다 둘러보려면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이쯤에서 밖으로 나가기로 하였다. 패트리시아의 숙소가 있는
서안으로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가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하였다.
ㄴ
서안 지역에 있는 한 공원에서 또 다른 이집트 가족을 만났다.
가족이 공원에 피크닉을 나와서 지나가는 한 동양인을 만난 후
바로 즉석에서 나를 초대하여 그들의 음식을 대접하는 모습이다.
보통의 경우 아랍 여인과 신체적인 접촉은 절대 금물인데
사진을 찍으면서 내 옆으로 살짝 기대는 모습에 나도 보답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의 춤과 노래로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동영상을 찍긴 하였는데 오픈하여 공개를 하면 좀 그럴 것 같아서 생략.
음식을 손수 내 잎에 먹여준 이 여인은 한국인을 사랑한다면서
한국으로 시집가고 싶다는 말을 나에게 전한다. 아니면 나보고
이집트에 머물며 살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으니 생각해 보란다.
ㅎㅎㅎ, 여행은 이래서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웃고 즐기는 모습을 패트리시아는 본인의 숙소에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가 창을 통해서 모두 보고 나보고 'Funny Guy'란다.
이집트 전통 해산물 식당에서 패트리시아와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배를 타고 다시 나일강을 건너서 동안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붉게 물드는 나일강의 석양은 참 아름답게 보인다.
내일도 룩소르 지역에 머물겠지만 이쯤에서 패트리시아와 이별을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룩소르 박물관을 관람하기로 하였다.
박물관에서 쇠똥구리 벌레를 다시 만나게 된다.
화려한 색상을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다.
스핑크스와 악어신도 여기서 다시 만난다.
가데스 전투 모습도 이젠 전혀 생소하지 않다.
태양의 돛단배 또는 라의 돛단배는 고대 이집트 종교 우주관에서 태양신
라가 은하수와 사후 세계인 두아트를 여행할 때 타고 다니는 배이다.
종종 라 뿐만 아니라 다른 신들도 함께 여행한다.
박물관에는 잘 보존된 유물들이 보기 좋게 전시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상형 문자
전시된 미라도 볼 수 있다.
박물관 직원의 아들이 함께 사진 찍기를 원한다.
숙소를 돌아가는 중간 룩소르 신전에 있는 모스크 입구 사진을 남긴다.
룩소르 신전 야경 모습이다.
룩소르 신전에는 밤에도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온다.
내일은 서안 지역에서 새벽부터 즐기고 볼 것이다.
이집트 여행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