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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재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어쩌면 가학적인 심리에서일 것이다. 부서지고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는
동안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이다. 무의식 속에 감추어져 있던 욕망이 화면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쾌감은 무엇보다 통쾌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평상시 느끼는 나라는 존재는 보잘 것 없다.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낸 문명의 상징들은 거대하고 강할 수록
나를 보호하는 것인 한편, 나를 초라하게 만들기도 한다. 강을 건너지르는 다리가 튼튼하고 강할수록 건너는
사람은 안정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건너가는 교통수단이 빠르면 빠를수록 편리하고
자연을 정복하는 쾌감을 맛보기 마련이다. 내 집이 크고 편리하고 화려하면 화려할 수록 나 자신에게
만족감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인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는, 다리는, 건물을 짓는데는 내가 필요치 않다.
나는 단 하나의 부속품일 뿐으로 그 집을 사들이는데 평생을 바쳐야 할만큼 오랜 세월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내 힘이 도저히 닿지 않는 건물들은 그만큼 거대한 힘의 상징으로 나를 안심시키는 동시에 위압하는
존재가 된다. 그것들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는 일은 그만큼 통쾌한 것이다.
영화, <2012>에서 무너지는 것은 집과 건물과 땅만이 아니다. 기존의 가치관들이 통째로 무너져내린다.
<2012>를 보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흑인들의 대거 등장이다. 요즘 들어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예전 영화에서 흑인들은 대부분 눈에 띄지 않는 역할을 한다거나 하더라도 조연에
머물렀다. <80일간의 세계 일주>에서 흑인은 시종이었고 저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흑인은 유모였다. 하인, 아니면 웨이터 혹은 깡패등이 흑인의 주 역할이었던 것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즉 흑인의 사회적 위상이 바뀌면서 그 비중도 바뀌었다. 이윽고 <맨 오브 오너>에서처럼 주연에
가까운 조연을 맡았다가 <리멤버 타이탄>이나 <인디펜던스 데이>에서처럼 기존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영웅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영웅이었다. 그 외의 흑인들은 이 영웅의 들러리 역할만 했을 뿐으로
특히 뛰어난 한 인물외에는 존재감이 없었던 것으로 이들 영화에서 백인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단역-조연-주연으로의 변화는 그만큼 흑인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2012>가 특별한 이유는 흑인이 대거 , 그것도 주연급으로, 인류에게 기여하는 흑인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류애를 간직한 인간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등장하는 사람은 흑인 과학자인 애이드리언이다. 흑인이 나오면 대체 주인공은 언제
등장하나 하고 기다리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그런 편견을 없애줄 정도로 애이드리언의
비중이 묵직했다. (그래도 역시 백인 작가 잭슨 커티스가 등장하고 나서야 비로소 주인공이 등장했구나
하고 느끼는 사람이 많았을 줄 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커티스는 정신없이 도망치는 역할만 할
뿐이다. 전체 상황을 주도하고 이끌어가는 머리가 없다는 뜻이다. 흑백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또 다른 설정이 있기는 하다.)
그 다음에 눈에 띄는 인물은 흑인 대통령이다. 혹시 하고 기대했던 것이 역시 하는 답으로 바뀌었으니
감독 에머리히는 시대 흐름을 정확히 반영할 줄 아는 현실 혹은 미래파임에 틀림없다. 흑인 대통령은
백인 대통령과는 달리 국민들을 내버려두고 떠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재난 영화에서 국가적 위기에
선 백인 대통령들은 종족 보존을 위해 인류를 위해 비행기에 올라타거나 혹은 지하벙커에 숨었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인 수상외에는 모두 방주에 올라탄다. 자신이 뛰어난 사람이며 지도자라는
위치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다 죽어도 자신만은 살아남아 세상을 이끌어야 한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물론 주위인물들의 강권때문이라는 설정이 있기는 하다.).
한데 이 흑인 대통령은 다르다.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남아서 보통 사람들을 돌보다가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적인 대통령이 있을까? 자신도 보통 사람과 다름없으며 그 자리에 다른
이들을 태우라는 숨은 메시지. 인류애 정신이 담긴 흑인 대통령의 희생은 백인 장관인 엔하우저가
보여주는 이기심과 극적일 정도로 대비를 이룬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적인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뿐 아니다. 대통령의 딸인 로즈는 자신이 주도한 행사, 인류 문화의 상징인 모나리자를 보존하는 작업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진행되었고 그 행사의 비밀 보존을 위해 이용되었음을 알자 당혹감을 느끼는 한편
루브르 박물관 관장의 죽음에 죄의식을 느낀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죄의식을 느끼는
로즈와는 달리 백인 장관 엔하우저는 수많은 사람을 살해했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비밀유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것. 흑백의 대비가 참으로 선명하다.
흑인만이 아니다. 재난 영화는 줄거리가 단순하고 극한 상황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며 다양한 인종을
담아내기 때문에 복잡한 심리적 설정을 할 틈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따라서 재난 영화에 등장하는 각 인종은
인종에 대한 가장 단순한 생각, 그리고 뿌리깊은 생각들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2012>에 등장하는 인종은
백인, 흑인, 그리고 황인종으로 온갖 인종을 망라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황인종을 대표하는 아시아인으로는
인도 과학자인 사티, 그리고 티벳인 스님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모습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먼저 인도 과학자 사티는 가장 먼저 지구의 이상을 알아차렸음에도 불구하고 수송기가 오지 않아 타지 못한다.
어찌보면 가장 기여가 큰 그가 버려지고 죽는 모습에서는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아시아인은 무섭게
약진하고 있지만 아직 그 기여도를 인정받을 만큼 위상이 높지 못하다. 결국 경제력의 문제라는 것이다.
한편 티벳인 승려의 모습은 전형적으로 오는 재난을 알면서도 맞이하는 늙은 승려와 그를 피해 달아나는
젊은 승려의 모습은 과거 세대와 미래 세대의 대비이다. 미래 세대는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인, 중국인의 잠재성은 놀라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영화가 <2012>이다.
겨우 몇 년만에 교통이 몹시도 불편한 그 오지에 인류 생존을 위한 프로젝트, 방주 정거장을 완성해낸다는
엔하우저의 멘트는 중국에 대한 최상의 찬상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중국과 같은 정도의 공산주의 국가라야
일사불란하게 이런 일에 집중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비꼼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인의 모습은 극히
기계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중국인 군인들은 초잉계곡을 향해 날아가다가 계곡에 조난당한 커티스 일행
중에서 보딩 패스를 가진 러시아인 유리 가족만 데려가고 패스를 가지지 못한 커티스 일행은 내버려두고
가는 것이다. 즉 중국인은 서구인의 눈에는 여전히 인간성을 완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영화는 아프리카로 돌아간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마련한 극비의 프로젝트, 방주에 탑승해 죽음에서
탈출한 극히 소수의 사람들을 태운 방주가 향하는 곳은 희망봉이다. 그동안 지구에 덮인 물은 에베레스트가
잠길 정도로 깊지만 아프리카 산맥은 잠기지 않았던 것이다.
백인, 흑인, 황인종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이미 읽었다. 그렇다면 방주가
왜 아프리카에 멈추는지 그 결말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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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고편을 보았는데 때리고 부수고 자빠지는 모습들이 너무 현란하더군요...
글쎄요. 전 때리고 부수고 자빠지는 건 못 보았습니다. 지진 때문에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쩍쩍 갈라지고 용암이 치솟아오르고 바닷물이 엄청나게 솟구쳐 오르면서 도시가 잠기는 것만 보았지요.
전 그저 그 지진의 형상에 대한 표현을 말한 것 뿐입니다...^^
앗 지송. 제가 좀 장난기가 심해요. 다 알면서 놀렸어요. 너그러이 양해하시옵기를.(더바님을 놀려야 하는데...넘 진지하셔서 지송해요.)
왜 또 저를??? 시로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영화관에 가야하는데 (하는데?) 2012년에는 눈길이 안 가요. 상상력이 부족한 것 같아서지 싶어요.
분석해 놓으신 희야님의 글을 예습 삼아 관심을 가져볼까 싶은데..... ^^*
아하! 그렇진 않아요. 도시 전체가 물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은 장관이지요. 절대로 상상력은 부족하지 않답니다. 제가 시선을 인종에만 맞추어서 그렇지 저 안에는 볼거리 이야깃거리가 많답니다. 일중독으로 이혼한 아버지가 있고 그 아버지를 싫어하는 아들이 있고 7살이 넘도록 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딸아이도 있어요. 그리고 아내의 전 남편과 전 남편 소생의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남편이 있어요. 아이가 툭툭거리는 모습을 보면 금세 관심이 갈 거예요. 가장 평범한 듯 싶은 이야기가 사실은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거 아시지요. 그건 그 모든 이야기들이 각자의 무게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거지요. 전 언제나 마이너
마이너??? 마이너 리그?
지독한 정치성만 난무하던걸요. 브릭스중에 어떻게 브라질은 빠졌더군요. 보고나니 씁쓸했어요. 러시아와 인도는 희생이 되고 중국은 말하자면 유토피아 -적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곳- 이고 백인 대통령은 내리기 힘든 지극한 인도주의적 결정을, 흑인대통령은 내리죠. 오바마정부에 아부하는 거지요. 그러나 자세히보면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 주인공입니다. 백인에 촛점이 맞춰져 있어요. 에베레스트가 있는 중국령 영토에서 만들어지는 함대중 하나가 침몰하게 되는 상황이 가장 중심인데 그때의 영웅이 누구인가요? 바로 백인입니다. 할리우드의 속내가 이렇게 빤합니다. 볼거리라고는 CG뿐이었지요. 인간의 파괴본능을 만족시켜주는..
좋은 지적을 하셨네요. ^^ 흑인에게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영화에서 흑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떻게 변해왔나를 이야기한거지요. 할리우드 영화에서 흑백이 함께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 인식변화라면 굉장하다는 뜻이지요. (오바마 정부에 대한 아부라고 봐도 좋을테지만 백인 대통령이 해도 상관없었을겁니다. 그만큼 흑인은 소수니까) 백인 장관이 방주 문을 닫자고 할때 그에 대항해서 각국 대통령에게 인간적인 호소를 해서 결국 그들을 움직이고 많은 사람을 태운 사람은 흑인이지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지성 뿐 아니라 인간미도 있으니까요. 백인 주인공은 머리 아닌 몸으로 움직입니다.
미국의 역사에서 흑백이 차지해 온 자리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지요. 주인공 백인 가족은 문을 닫는 역할에서 주동적 역할을 하지만 그건 전체에서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을 살아나게 해준 현남편, 계부를 너무도 쉽게 잊어버립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표면만 이야기한다면 이런 이야기는 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요. 저 위에서도 지적했지만 재난 영화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그러나 단순하므로 그 속에 담긴 속내는 더 정직한 것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이런 점들을 더 자세히 이야기하려다가 별로 흥미있어 하실 것 같지 않아 대강 이야기한 것이랍니다. /앞으로도 지적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