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황갈색에 부드러운 맛과 향. 한여름의 더위를 넘겨도 변하지 않는 약주. 경북 김천의 ‘과하주(過夏酒)’는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된 명주 중에서도 상품으로 꼽혔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힘차게 뻗어 내려가던 백두대간이 추풍령을 지나며 숨을 고르는 곳에 위치한 김천(金泉). 지명부터 ‘금(金)이 나는 샘(泉)’이니 이 고장 물로 빚은 술맛이 어떻겠는가. 과하주는 16도짜리 순곡주와 여기에 소주를 섞어 거른 30도 안팎의 재성주(再成酒) 등 두가지가 있다. 과하주에는 충북과 전북·경남의 접경지역으로, 물 좋고 산 좋은 김천의 풍광과 숨결이 그대로 배어 있다.
#다른 곳에서는 나지 않는 맛
“김천 과하주는 온 나라에서 그 이름이 높으며 외지 사람이 그 술을 빚는 방법을 배웠으나 맛이 본토주(김천 과하주)와 같지 아니하였음은 그 샘물이 타지와는 달리 특이한 신비가 있는 연고다.”
오래된 향지 금릉승람(1702년)은 이렇게 과하주 맛의 비결이 이 고장 물에 있다고 적고 있다. 김천의 향토사에 따르면 옛날 이 지방에 샘이 있어 그 샘물로 술을 빚으면 맛과 향기가 좋았다. 이 샘을 금지천(金之泉) 또는 주천(酒泉)이라고 불렀으며 김천이라는 지명도 그 샘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400여년 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곳을 지나다가 물 맛을 보고 중국의 금릉(金陵)에 있는 과하천(過夏泉) 물맛과 같다 하여 김천의 옛 이름인 금릉이란 지명과 과하천이 유래됐다고 한다. 또 이 샘물로 빚은 술을 과하주라 부르게 됐다고 전해오고 있다. 옛날에 금이 났다는 샘인 금지천은 묻혔다고도 전해져 과하천과 같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오랫동안 과하주샘으로 불려온 과하천은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228호로 남산동에 있다. 이 샘에는 1882년 새겨진 ‘금릉주천(金陵酒泉)’이란 글귀가 있다.
#치과의사가 되살린 전통주
김천 과하주는 조선 초기부터 만들어져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의 기록에 남겨질 정도의 명주다. 1930년 한·일 합작으로 김천주조가 설립되면서 대량 생산됐으나 해방과 함께 문을 닫으면서 명맥이 끊겼다. 이를 치과의사이자 김천문화원장이던 고 송재성씨(1912~98)가 복원, 87년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됐다. 김천주조 건너편에서 병원을 하면서 제조 과정을 익히 봐왔던 송씨는 김천주조에서 근무했던 조무성씨와 함께 숱한 시행착오 끝에 과하주를 복원했다. 91년 제조면허를 받아 생산에 나섰으며 기능보유자이던 송씨 작고 이후에는 둘째 아들인 송강호씨(66·전수조교)가 대를 잇고 있다.
#주량에 맞게 골라 먹을 수 있는 술
과하주는 예부터 음력 정월에 빚어서 4월에 즐겨 먹었다고 전한다.
밀을 갈아 샘물로 반죽해 누룩을 만든다. 찹쌀을 샘물에 담갔다가 하루 뒤 건져내 고두밥을 찐다. 이를 떡판에 올려놓은 다음 누룩가루가 24시간 우러난 것과 함께 버무려 떡편을 만든다. 식힌 떡편을 독에 넣고 한지로 밀봉해 서늘한 곳에서 30일 이상 장기 저온 발효시킨 뒤 떠낸 16도 약주가 경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과하주다.
정주(精酒)를 뜨고 남은 술지게미에 증류소주를 부어 숙성시켜 거르거나 16도 약주를 증류시켜 소주를 만든 뒤 이를 16도 약주와 섞어 숙성시키면 한여름 복더위에도 변질될 우려가 없는 30도 안팎짜리 과하주가 된다. 여름에 강해 이름 그대로 한여름을 나는(과하·過夏) 술이다. 소주처럼 톡 쏘는데 맛은 약주로 술이 약한 사람도 즐겨찾는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약간 신맛이 느껴지는 과하주는 손에 묻으면 끈적거릴 만큼 진하다. 숙취가 없고 갈증을 없애주며 적당량을 마시면 혈액순환을 도와 고혈압과 신경통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산이수(三山二水)의 맛과 멋
과하주는 삼산이수(三山二水, 황악산·고성산·금오산·직지천·감천)의 고장이 빚어낸 술이다. 그런 만큼 이 고장의 향토음식이 안주로 제격이다.
껍질과 비계를 그대로 구워도 기름이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로 담백하고 차지면서도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지례 흑돼지는 과하주의 맛을 돋운다. 직지사를 보듬고 있는 황악산의 버섯·참나물·곰취같은 산채와 두부·묵 등도 부드럽고 뒤끝이 없는 순한 과하주와 잘 어울린다.
호주가(好酒家)셨던 선친으로 인해 오랜 세월 노심초사하신 어머니를 보며 한때 ‘금주(禁酒)’를 생활신조로 삼은 적도 있거니와 아직도 한 두 잔의 술에 쉬이 정신을 놓곤 하는 사람이 그 오묘한 술의 세계를 알면 얼마나 알까.
그런 내가 과하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화운(華雲) 송재성 전 문화원장께서 작고하신 후 그 전부터 막연하게 알고 있던 과하주가 고인의 오랜 노력 끝에 다시 세상을 보게 된 사연을 접하면서부터다.
대개의 토속 민속주가 그러하듯이 과하주 또한 이 고장에서 생산되는 토종 먹거리들을 주재료로 사용하는데 찹쌀·통밀·쑥·황국(黃菊)이 그것이며 갖은 정성을 기울이기에 현대식 양조술에 의해 대량 생산되는 여느 술에 비견할 바가 아님은 당연하다.
과하주를 처음 대하는 이들의 한결같은 소감은 뒤끝이 없고 은은한 국향이 감돌면서 알싸한 신맛이 일품이라고들 한다. 또 그 황갈색 빛깔은 어찌나 고운지. 이러한 연유로 과하주는 전국 4대 명주의 하나로서 궁중에 진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애주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것이다. 과하주의 또 다른 매력은 이 고장 김천의 지명을 탄생시킨 역사적 배경을 간직한 금지천이라는 샘과의 관계이다. 이 금지천은 현재 김천시 남산동 옛 시립도서관 뒤편 속칭 지게동 부근에 있는 일명 주천이라고도 불리는 과하천을 말하는데 구태여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일화가 아니더라도 이 지방 사람치고 그 물맛을 모르는 이 없는 김천의 명물이다.
예부터 물 좋은 고장에 명주가 난다고 했던가. 삼산이수로 대표되는 김천의 맑고 깨끗한 물이 있었기에 과하주의 탄생이 가능했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과하천 일대에 거주하는 몇몇 어르신들은 음력 정월마다 과하주를 만들기 위해 새벽부터 물을 길어 나르던 물지게 행렬을 옛 김천의 영화인 양 풀어놓는다. 나는 과하주가 단순한 술이 아닌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 향민과 함께 숙성돼온 김천의 향기라고 단언한다.
천년고찰 직지사의 비경과 풋풋한 도토리묵을 안주 삼아 과하주 한 잔 걸쳐보심이 어떨지.
〈송기동·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전통주 기행]“섭씨 18도서 30일 이상 발효”
황악산 직지사 쪽으로 가다가 직지사 1㎞쯤 못미쳐 오른쪽으로 빠지면 저수지가 하나 나온다. 그 저수지 초입에 700여평 규모의 과하주 양조장(대항면 향천리)이 있다.
과하주를 복원한 고(故) 송재성옹의 둘째 아들 강호씨(66)가 이곳에서 대를 이어 과하주를 빚고 있다. 기능보유자였던 송옹이 작고한 이후 과하주에 대해서는 전수조교인 그가 으뜸가는 전문가다. 농림부가 지정한 명인이기도 하다.
과하주가 복원돼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제조허가를 받아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땀이 적지 않게 배어 있다. 서울과 대구의 회사에 근무하면서 과하주 복원에 나선 아버지를 틈틈이 돕다 아예 고향에 눌러 앉아 문화재 지정부터 양조장 설립까지 모든 실무적인 일처리를 그가 했다. 1991년 16도 약주 생산을 시작으로 97년에는 30도짜리도 내놓았으나 99년부터 이를 23도짜리로 바꿔 생산하고 있다. 연간 생산량은 700㎖ 병을 기준으로 16도짜리는 5,000병, 23도짜리는 3만5천병 정도다. 16도짜리는 유통기간이 6개월 정도여서 김천시내에서만 판매하고 23도짜리는 서울의 백화점과 공항 면세점 등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연간 판매량의 70% 가량이 추석과 설에 판매되는 등 수요 시기가 명절에 집중돼 평상시에는 직원 2명과 함께 일한다. 명절을 앞두고는 동네 아주머니를 10여명씩 동원해야 할 만큼 바빠진다. 물은 양조장의 지하 180m 암반수를 쓴다.
송씨는 “일반 약주는 상온(섭씨 23~25도)에서 15일 가량 발효시키는 데 반해 과하주는 섭씨 18도의 저온에서 30일 이상 장기 발효시키는 것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술은 숙성 기간과 물, 온도 등 변수가 많으므로 그 고장 특유의 환경에 좌우된다”며 “과하주는 전래 비법으로 우리 고장에서 나는 곡물로 우리 고장에서 만들기 때문에 우리 고장 특유의 맛이 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