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구팽(兎死狗烹)
중국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진시황은 기원전230년에 천하를 통일하고 재위 16년 만에 죽으니 천하는 또다시 제후국들이 세력을 형성하여 전국시대로 혼란 상태에 빠졌다. 그중에서 가장세력이 강한 초(楚나)라의 항우(項羽)와 한(漢나)라의 유방(劉邦)이 천하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이는 것을 기록한 서적이 유명한 초한지(楚漢誌)이다. 장기를 둘 때 장기색갈이 청색은 초나라이고 홍색은 한나라로 표시하는 것은 두 나라의 군사깃발을 청홍으로 구분하였기 때문에 장기알맹이색깔도 군 깃발 색깔에 따른 것입니다.
초한 두 나라는 8년간의 전투에서 항우는 70여회 전투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이 역발산의 기개세를 자랑하였지만 마지막 전투인 해하대전투에서 유방의 책사 장량(張良)의 심리전에 걸려들었다. 오랜 전장에서 지친 초나라군사들은 달이 밝은 전선에서 고향을 그리며 은은히 들려오는 초나라 민요인 사향곡(思鄕曲)피리소리에 초나라 병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고향으로 도망치니 유방의 30만 대군이 사방을 포위하여 사면초가에 놓이자 항우는 사랑하던 애첩 우미인(虞美人)을 장검을 주어 자결케 하고 자기도 운명이 다된 것을 감지하고 해하전투에서 간신히 탈출하여 강동으로 가는 오강(烏江)나루터에서 자결하게 되는 것이 초한지의 개괄적인 내용이다.
초한지는 단순한 흥미위주의 소설만이 아니고 사마천의 사기에 기술될 정도로 동양사회에 지도자의 통치수단과 군사 전술과 전략및 백성들에게까지 삶의 지혜를 주는 수백 개의 고사 성어들이 생겨난 서적이다. 그중요즘 정가에 많이 인용하는 고사 성어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어원을 알아보고자한다.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한흥삼걸(韓興三傑)이라 해서 소하(蕭何) 장량(張良) 한신(韓信) 세 사람의 영웅호걸을 옆에 두었기 때문에 통일이란 대업이 가능했다. 소하는 승상으로 전쟁수행 보급물자 담당임무를 맡았고, 장량은 전략전술가로 전쟁의 계획을 수립하는 유방의 군사(軍師)이고, 한신은 야전에서 군사를 이끌고 전황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승리를 이끌어내는 대장군이었다.
전쟁을 승리로 끝낸 유방은 한흥삼걸이 장차자기의 정적이 될 것을 두려워 차례로 제거할 생각이었다. 한신 대장에게는 좋은 영지를 할애해줘야 마땅하나 제일 나쁜 불모지인 파촉 땅에 제후로 봉했다. 그리고 은밀히 첩자를 보내 숙청할 구실을 찾던 중 과거에 항우 밑에 있던 종리 매라는 장수와 절친하게 지내는 것을 알아내고 한신을 역모 죄로 몰아 체포하여 가마솥에 삶아 죽여 버린다.
이를 두고 그 당시 제(齊)나라출신 관상가이며 예언자인 괴통(蒯通)이라는 사람은 처음으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용어를 썼다 고한다. 토끼를 다잡으면 쓸모없는 사냥개는 가마솥에 삶아지고 높이나 는 새를 다잡으면 좋은 활도 창고에 들어가고, 싸우던 적국이 평정되면 지혜로운 신하와 장수도 정적에 잡혀서 가마솥에 삶아죽게 되는구나. 라고 했다.
1993년에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선거에 적극 도왔던 친구 김재순(국회의장,7선 의원) 을 부정축재의 허물을 덮어씌워 물러나게 하자 그는 “내가 청렴하게 살아왔나 김영삼이 더 청렴하게 살아왔는가를 국민에게 물 봐라” 하면서 이재 쓸모없으니 토사구팽 당하는구나. 라는 말을 남기고 정계를 떠났다. 북한은현대사에 유례없는 3대 세습체제로 권력을 물려받은 젊은 위정자는 자기 권좌유지에 정적이 될 사람은 피를 나눈 형제와 친인척과 공신들을 가차 없이 독가스와 고사포로 공개처형하니 현대판 토사구팽이 왕조시대 숙청수단보다 더 잔인하여 끔찍하기 만하다.
권력이란 속성은 한번 맛을 들이면 그 자리에서 더욱 집착하게 되고 권력을 남용하여 자기위상을 제고 시키려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그러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하여지고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마련이다. 보물이 집안에 가득차면 지키기 어렵고 가지고도 더욱 채우려는 끝없는 욕망이 불행의 근원이 될 수 있다.
공(功)을 이룬 후에는 자리에서 미련 없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라는 명언이 있다.( 功遂身退 天之道也) 그래야만 자기 자신을 온전히 명철보신( 明哲保身)하는 길이다 .그릇에 가득 찬 물은 넘치게 마련이고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내려오게 되는 것이 순리다. 권력의 맛 들어 오래 머물면 애써 이룬 공적마저 잃어버리고 신변에는 교만과 허물이 그칠 줄 몰라 종말에는 상대방 정적에게 발목이 잡혀 토사구팽당하기 때문이다.
공을 이루고 미련 없이 떠난 사람이 있다. 한나라 유방의 군사인 장량이다. 그는 천하를 통일하자 한고조 유방이 머물 것을 요청하는데도 “나는 세치 혀(三寸持說)를 가지고 제왕의 스승이 되었으며 1만호의 영지를 받아 열후의 반열에 올랐으니 이것으로 내 임무는 끝났다. 앞으로는 속세를 떠나서 선계(仙界)에서 노닐고 싶다” 라며 미련 없이 떠났다. 오래 머물면 한신대장군같이 토사구팽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도 P대통령 시대 때 L정보부장이 있었다. 그는 냉전으로 남북이 단절되어 일촉즉발의 긴장상태 때 통치자의 밀명을 받고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면담하여 남북 간의 평화통일, 민족화합, 상호존중이란 7.4남북공동성명을 성사시킨 공적으로 귀국 후 능력을 인정받아 통치자가 유임을 요청하였으나 스스로 자리를 떠난 후 경기도 산골에 서 속세를 떠나 여생을 온전히 신선처럼 명철보신한 사람이 있다.
요즘정가에서는 좌우로, 동서로 갈라지고 주류 비주류로 쪼개지고 합치고 연대하고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이 난무하더니 지도자가 탄핵을 받아 국정이 마비되는 등 시련을 격고 있다. 10년 세월을 국제연합에서 국제적인 분쟁 난민, 안보, 등을 조정 해결하던 유엔의 수장으로 지낸 분이 귀국하여 권좌에 집착하다 하루아침에 토사구팽 당하는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진다. 난세일수록 권력에 집착하면 토사구팽당하니 공적을 이루었으면 자리에 연연 말고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요 자신을 온전하게 명철보신하는 길이라 생각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감했습니다.
@김기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