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 가을호 특집 {사상의 꽃들} 에서
삶
반 칠 환
벙어리의 웅변처럼
장님의 무지개처럼
귀머거리의 천둥처럼
반칠환 시인의 「삶」은 그의 상상력과 최고급의 인식의 혁명으로 모든 가치를부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 천하제일의명시라고 할 수가있다. 삶이란 벙어리의 웅변처럼 달콤하고, 삶이란 장님의 무지개처럼 아름다우며, 삶이란 귀머거리의 천둥처럼 장중하고 울림이 크다. 전대미문의 반어법과 역설―, 벙어리의 웅변처럼, 장님의 무지개처럼, 귀머거리의 천둥처럼 도저히 불가능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기적을 이처럼 아름답고 달콤하고, 장중하고 울림이 큰 시로 변주시킬 수 있는 힘은 천지창조의대폭발의 소리와도 같다. 시인의 언어는 수많은 원자가 되고, 이 원자와 원자들이 부딪치면 대폭발이 일어난다. 삶이란 늘, 어렵고 힘들고 이 세상의 최하천민의 삶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인간들은 이 도로아미타불과도 같은 허무함을 “벙어리의 웅변처럼/ 장님의 무지개처럼/ 귀머거리의 천둥처럼”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너자신을 알라’의소크라테스도, ‘인간은사회적 동물이다’의 아리스토텔레스도,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다’의 헤라클레이토스도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던 불구자에 지나지 않았고, ‘최초의 대서사시인이자 최후의 대서사시인’이었던 호머도, ‘명예와 생명은 하나다’라던 셰익스피어도, ‘나는 천하에 제일가는 학자’라던 몽테뉴도 삼중고에 시달리던 불구자에 지나지 않았다. 공자도, 맹자도, 노자도 마찬가지였고, 데카르트도, 칸트도, 니체도 마찬가지였다. 꿈이 크면 고통이 크고, 고통이 크면 천길 벼랑 끝의절경이 될 수밖에없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헤라클레이토스, 호머, 셰익스피어, 몽테뉴, 공자, 맹자, 노자, 데카르트, 칸트, 니체는그 어렵고 힘든 인식론적 장애물들과 싸우며, 벙어리의 웅변같은 시, 장님의 무지개같은 시, 귀머거리의 천둥과도 같은 시를 쓰며, 천지창조와도 같은 새로운 세계를 창출해냈던 것이다.
언어가 시인의 충복忠僕이되어야 하지, 시인이 언어의 충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아름다운 언어와 그 운율을 쫓아가는 어중이떠중이들에불과하지만, 진정한 시인은 언어의 날개를달고 언어가 연주하는 음악(운율)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만하면 된다. 언어는 시인의 눈빛과 표정과 몸짓만을 보아도 그가 어떤 언어를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으며, 꿈과 현실, 진리와 허위, 천국과 지옥, 가상의 세계와 실제의 세계, 즉, 전형적인 상황에서의 전형적인인물을 창출해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된다. 시인은 언어의 창조자이자 모든 사물의 주인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된다. 한 편의 시는 대우주이고, 소우주이며, 우리 인간들의 이상적인 공화국이라고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한 편의 시 속에는 수많은 반대와 이견들을 다 제압한 최고의 가치평가가 들어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 남미와 북미, 오세니아와 아프리카 등의 수많은 사람들의 열화와도 같은 찬양과 찬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진정한 시인 속에는 수많은 시인들과 비평가들과 수천만 명의 독자들이 살고 있고, 언제, 어느 때나 “벙어리의 웅변처럼/ 장님의 무지개처럼/ 귀머거리의 천둥처럼”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기적과 그 기적의아름다움 속에서 살아간다. 경제적인 자산은 한순간이지만 시인의 자산은 영원하고, 아주 잠시 잠깐 동안의 유명세는 물거품과도 같지만, 수천 년의 역사와 시간을 간직한 시인의이름은 영원하다. 시인의 이름은 청동보다도 더 오래 가는 명예 위에 새겨져 있고, 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의 언어의 날개를 타고, 그모든 곳, 즉, 우주와 우주, 이승과 저승을 자유자재롭게 날아다닌다.
벙어리의 웅변처럼
장님의 무지개처럼
귀머거리의 천둥처럼
우리 한국인들 역시도하루바삐 전 인류의 스승들의 책을 읽고, 전 인류의 스승들과 함께, 늘, 호흡하고 배우며, 자기 자신을 높이 높이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