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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수필 100년사
- 1910년에서 2000년대를 중심으로 -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I. 서론
본론에 앞서 도입부에서 언급하고 가야 할 것은 ‘제재’와 ‘주제’의 개념과 접근 방법, 그리고 근현대의 ‘시점’이다. 수필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수필은 제재와 주재 중심의 문학이다.그렇다면, 수필가에게 있어서 제재와 주재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오늘의 발제는 참으로 적절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수필은 제재와 주제를 두 축으로 하여 ‘무엇’에 대해 쓴 글이다. 이 무엇에는 세 가지 차원의 접근이 있다.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소재, 제재, 주제를 먼저 이론적으로 살펴보자. 소재란 글쓰기의 바탕이 되는 구체적인 자료 즉 얘기거리다. 제재는 글쓴이가 재료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중심적인 측면이나 속성인데, 본격수필론에서는 이 ‘제재’를 주제에서 ‘제’를 따고, 소재에서 ‘재’를 따서, ‘제재’라 칭한다. 즉 제재는 주제의 재료다. 주제정신을 상징하거나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주제는 수필가가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 즉 중심적인 내용이나 사상을 말한다. 같은 소재라도 다양한 주제나 제재가 나올 수 있다.
주제 역시 세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대체적인 중심내용, 다른 하나는 구체적인 중심 내용, 마지막으로 중심사상이 있다. 이는 주제를 설정하는 단계나 과정을 의미하는데, 첫째, 작가는 넓은 범위의 막연한 상태의 주제를 설정하고 난 다음, 둘째 단계로 가서 가주제의 범위를 좁혀 글의 실질적인 내용과 범위가 되도록 한다. 그러고 나서 최종적으로 글의 구체적인 전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이때 참주제는 글을 다루게 될 범위를 한정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작가는 참주제에 대한 작가 나름의 중심 생각을 문학적의 형상화해야 한다. 주제의식의 의미화다. 여기에서 수필의 문학성이 생기고, 수필이 본격수필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결정된다. 주제의식을 간접화하는 기법은 문학적 글쓰기라는 전략적 차원에서 수필가의 전문성이 요구되어지는 부분이다.
문학이라는 말 앞에 ‘현대’라는 에피쎄트가 붙으면, 그 시점을 어디에서부터 잡느냐가 항상 논란이 된다. 현대수필의 시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근대’와 ‘현대’라는 말을 동의어로 보느냐 안 보느냐에 따라 그 시점이 달라지고, 역사적 차원이냐, 정치적 차원이냐, 문학적 차원이냐에 따라 그 시점이 다르다. 근대와 현대라는 말을 동의어로 보면, 현대문학의 시점은 현대를 해방 이후로 보는 일반적인 관점보다 훨씬 빨라진다. 한국 근현대수필문학사는 일반적인 근대의 두 요건인 ‘국민국가’와 ‘자본제 생산양식’ 그리고 우리 근대의 특수성인 ‘반제국주의 투쟁’과 ‘반봉건주의 투쟁’을 합한 근대와 연결된, 국어의 형식으로 된 문학을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이런 차원으로 볼 때, 우리나라 현대수필의 기점을 1910년대로 삼는 것이 좋겠다. 왜냐하면 1905년에 한글이 국문으로 채택되었고, 1908년도에 창간된 한국 최초의 종합잡지 <소년>에 <半巡城記> <평양행> 등 기행수필이 선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14년에 창간된 <학지광>에 서간문과 수상문이 발표되어 수필의 여명을 알렸고, 현대수필의 효시적인 작품으로 유길준(1856- 1914)의<서유견문록>을 꼽는 점도 고려했다. 100여 년에 이르는 한국현대수필의 흐름을 단기간 안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현대수필에 대한 연구논문을 참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 현대여성수필의 흐름을 주제 양상을 중심으로 정리한 권대근의 논문, <한국현대여성수필연구>와 권대근의 박사학위 논문인 <1980년대 한국현대여성수필의 정체성 연구>, 그리고 1895년부터 1985년까지의 현대수필문학을 정리한 오창익의 논문, <한국현대수필문학 개관>을 주로 참고하여, 본 논고는 1910년을 현대수필의 출발점으로 보고, 2008년까지 거의 100여 년 간 한국수필의 흐름을 중심으로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II, 본론
1910~1920년대는 근현대 수필문학의 태동기(1908~1919)다. 이 시기는 <소년>이 창간되고 최종호가 나온 1918년까지에 해당한다. 역사적으로는 일제 강점기로서 민족의식이 제고(提高)되던 때이다. 신문학의 흐름이 계속되면서도 서구 문학의 충격을 흡수하면서 새로운 기법과 의식을 담은 현대 문학이 출현하였다. 민족 계몽 의식을 주제로 한 문학이 등장하였으며, 서구 문학의 기법과 의식이 수용되었다. 또, (태서 문예 신보)를 통하여 서구 문예 사조가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당대 수필(隨筆)의 특징으로, 1) 현대 수필의 초창기로서 수필의 형태가 아직 정립되지 못했다. 그러나 개화기를 전후한 전환기의 수필에 비해서는 그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현저하게 새로워진 모습을 보인다. 2) 국민 문학파에 의해 주도되었다. 3) 서간문과 우리 국토에 대한 애정을 담은 기행 수필이 많았다. 이와 같이 기행문, 서간문이 성행하게 된 것은 식민지 문학시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그에 따른 사회구조적 불가피성이 직간접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문족의식을 고발하고 자극하며, 원고 검열을 피해 민의를 진단하고, 자활의 결의를 고무시키는 데는 기행문이나 서간문 이상의 적합한 그릇을 찾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4) 1917년 수필 명칭으로 ‘보통문’이란 장르명이 <청춘>지에 의해 생겼다. 대표적 수필가와 작품을 통해 수필의 주제와 제재를 살펴보자. 방정환의 <어린이 찬미>, 최남선의 <심춘 순례>, <백두산 근참기>, 이광수의 <금강산유기>, 이병기의 <낙화암을 찾는 길에> 등이 발표되었다. 1910년 이후로 개화사상이 전혀 배제된 것은 아니었으나, <소년>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서서히 ‘우리’라는 집단의식을 벗어나 ‘나’에게로 전이되는 가치관의 자각현상을 <청춘>지에 발표된 71편의 수필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20년대는 한국 최초의 문예 잡지 <창조>가 나온 1919년부터 역시 순수문예지 <문예공론>이 창간된 1929년까지가 이 시기에 해당한다. 1910년대 태동하기 시작한 수필은 1920년대로 진입하면서 표현의 자율성을 획득한다. 1920년대야 말로 수필 고유의 문장 기능을 극대화한 시기로서, 1910년대는 발표된 수필이 148편에 불과했지만, 20년대는 시나 소설과 같은 수필, 논설이나 평론과 같은 수필이 무려 1,700여 편이나 양산되었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20년대라는 시대적 특수요인의 내외 작용, 즉 문학환경의 영향이 컸다. 그 외인이라면 1919년 ‘문화정치 표방’에 따른 국내 출판물의 대량 출현이다. 1920년 창간된 <조선일보>와 1921년 창간된 문예지 <장미촌>을 필두로 당대 발행된 출판물의 수는 200여 종에 달했다.
1920년대는 이광수와 최남선을 비롯하여 나도향, 김석송 등이 <생장>지에 수필을 발표하는가 하면 이희승, 유진오 등이 <문우>지에, 양주동, 현진권, 심훈 등이 <문예시대>에, 김동환, 김진섭 등이 <조선문단>에 수필을 발표하고 있다. 이 외도 <개벽> <백조> 동아일보 등에 적잖은 수필이 발표되고 있고, 나도향의 <그믐달>(조선문단 4호, 1925), 민태원의 <청춘예찬>(별건곤 21호, 1929), 방정환의 <어린이 찬미>(신여성 11호, 1924) 등의 문학적인 향취가 풍기는 수준급 작품도 눈에 띈다. 20년대는 평론과 수필의 장르적 구분이 분명치 못했던 관계로, 당대 수필은 문예비평은 물론, 사회만평이나 생활단평 등 그 활동 영역이 매우 광범위했다. 20년대 발표된 수필 1766편 중 454편이, 25%가 비평수필이었다. 이는 망각되었거나 쇠잔해가는 민족혼과 국가관을 환기시키고자 했던 편집자들의 의도적인 제작 태도에도 그 영향이 크지만, 무엇보다도 일제의 침략근성을 노골화하는 시대상과 그를 극복 내지는 저항하려는 당대 수필의 주제의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20년대 수필의 제재적 특성은 ‘인생과 자연’, ‘민족전통과 자주정신’이 강세를 나타내며, 주제적 특성은 주제의 암시성인데, 자기 주장이 강한 주제의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표출보다는 비유나 함축, 또는 우화적인 수법으로 상징되거나 의인화되고 있다. 위와 같은 특성은 장르적 특성보다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의 압박과 제약이 주는 부자유를 극복하기 위한 저항문학성의 배후작용 때문이었다. 백문기는 <공연히 울고 싶습니다>란 작품에서 ‘가을’을 제재로 숨겨진 자유를 노래하고 있다. 울고 싶은 이유를 ‘만상이 고개를 숙이고 묵상하고 있는 까닭이다‘로 의미화해 식미지 시대의 현실을 고발했다.
1930~1945년대 초기에는 문학 활동의 기반이 확충되고 예술적 기교가 발달하였으며, 신문이나 잡지의 수가 늘어나 작품이 발표될 수 있는 지면이 확대되어 활발한 문학 활동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다양한 문학 양식이 선을 보였으며, 브나로드 운동의 영향으로 계몽문학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소설이 합리주의적 경향으로 흐르고, 시가 초현실주의적인 표백된 이상의 세계를 더듬는 이른바 순수문학의 시대다. 그러나 1930년대는 수필문학이 문학장르의 한 갈래로 인식되기 시작한 시기다. 수필은 30년대에 와서 2,850여 편이 발표되었으며, 시나 소설이 추구하는 순수세계와는 반대로 표백되지 않은 바탕 그대로의 생활 일상을 투시, 그를 정서화 내지는 상상화함으로써 작품화가 가능했다. 수필의 특징으로, ① 본격적인 수필 이론이 소개되었다. 해외 문학파와 외국 문학을 전공한 이양하 등에 의해 외국의 수필 및 그 이론이 도입되었다. ②전문적인 수필가의 등장으로 수필문학이 정립되었다. 수필이 독자적 장르로 인식되고, 전문적인 수필가가 등장하면서, 수필이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③ <동광>, <조광>, <박문> 등에 발표되었다.
당대 대표적 수필가와 수필로는 민태원 <청춘예찬> -청춘의 아름다움을 찬미, 이양하의 김진섭 같은 전문수필가가 등장하였다. 1930년대 접어들면서, 수필에 대한 두드러진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수필문학에 대한 활발한 이론이 전개됐다는 것과 또 하나는 수필전문지 <박문>이 발간되었다는 것이다. 김기림이 1933년에 <신동아>에 -수필을 위하여- 라는 글을 싣고 김광섭은 1934년에 <수필문학고>를 발표했으며, 김진섭은 1939년에 동아일보에 <수필의 문학적 영역>을 써내는가 하면, 1938년에는 박문서간에서 최영주를 편집 및 발행인으로 한 수필전문 월간지인 <박문>이 1940년까지 20여 호를 발간하게 되었다. 수상수필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서정수필(신변수필)과 사색수필(사회수필)이 양대산맥을 형성하였다. 서정수필로는 <신록예찬>의 이양하, <청포도의 사상>의 이효석, <신록>의 이태준, <신록>의 노천명 등이 있고, 사색수필의 대표주자로는 <생활인의 철학>의 김진섭, <권태>, <산촌여정>의 이상, <밤거리의 축하식>의 나혜석, <소물>의 김동인 등이 속한다.
1930년대 말에서 1945년 동안은 일제 암흑기의 문학시대로서, 소위 내선 일체(內鮮一體)라는 미명 아래, 일제는 창씨 개명, 신사 참배를 강요하고, 우리 말과 글의 사용을 금하는 등 황국 신민화 정책을 폄으로써,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지주를 파괴하려 하였다. 이에 따라, 동아 일보, 조선일보 등의 일간지가 폐간되고, 「문장」, 「인문 평론」 등의 문예지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러한 암담한 상황에서, 일부 문인들은 일제의 강압과 회유에 못 이겨 친일적 행각을 하거나 혹은 소극적 저항의 표시로 붓을 꺾고 숨어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적극적인 투쟁을 감행하여 끝까지 기개를 굽히지 않은 이들이 있었으니, 이육사, 윤동주 등이 그들이다. 이 시기 수필(隨筆)의 특징으로는 특별한 활동은 없었고 다음과 같은 수필집이 간행되었다. 박종화의 <청태집(靑答集)>, 이광수의 <돌베개>, 김진섭의 <인생 예찬>, ,백설부>, 이양하의 <이양하 수필집> 등이 그것이다.
1945년 -1950년 기간은 해방문학 공간으로 불린다. 모윤숙, 전숙희, 조경희 등의 여류수필가들이 해방과 더불어 수필집을 내어 현대여성수필의 맥을 이어 나왔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한 여류수필은 시대의 괴로움, 민족의 비애, 자주정신과 독립정신, 사회비판과 참여의식, 절망과 암흑 등의 주제 경향을 보인다. 8.15 광복과 함께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광복과 함께 국토의 분단은 좌·우익의 대립으로 이어져 정치,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잃었던 우리말과 글을 되찾게 되어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좌·우익의 대립은 문단에서도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였다. 수필문학의 특성으로 1. 문학성을 갖춘 수필이 등장하였다. 2. 지조론(조지훈), 벙어리 냉가슴(이희승), 상아탑(계용묵), 사회와 인생(마해송) 등, 해방 이후의 수필에서 특기할 사항이라면, 작자들의 직종이 문인 중심이었던 30년대와는 달리, 사회 각계 각층으로 다시 재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정병욱, 안병옥, 김형석, 오종식, 신상초 등 학자, 언론인, 종교인 등이 대거 수필 문단에 참여했다. 그리하여 저널리즘에 환영받는 이른바 이지가 번득이는 가십류의 단평이나 논픽션류의 정제된 수필이 양산되었다. 해방 이후는 수필집 간행이 붐을 이루었는데, 1949년 12월까지 출간된 수필집이 48권이었다.
1950년대 발발된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의 삶을 황폐화시켰다.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와 함께 정신적으로도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 비극적 체험과 상흔은 생존의 어려움과 회의를 안겨 주었으며, 패배 의식과 허무주의를 심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 배경은 전쟁 체험, 현실 참여, 전통 지향 등의 주제로 문학에 반영되어 나타났다. 이 시기 여성 작가들은 대체로 두 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품을 창작하였다. 하나는 전쟁으로 남성이 부재한 시기에 여성들이 한 가족을 유지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다룬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근대적인 체험을 한 여성들이 전통적인 가부장제 윤리를 거부하는 작품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1960년대에도 지속되었다. 1950년대 전쟁의 폭력성과 인간 존재의 실존 문제를 다룬 남성 작가들의 작품과 다른 여성작가들은 개인의 사소한 심리 변화를 다루었다는 이유로 문단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 여성 작가들은 남성 작가들의 실존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를 통하여 전쟁이라는 재앙을 관념적으로 그린 것에 반해, 구체적인 일상 생활에서 고통을 겪는 인간의 문제, 즉 여성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려나갔다는 면에서 식민지 시대 리얼리즘을 계승한 역할을 하였다.
수필(隨筆)의 특성으로, ① 문학적 향기가 높은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었다. ② 사회적 불안이나 가치관의 상실을 다룬 교훈적 수필이 발표되었다. ③ 예술적 기교를 바탕으로 한 서정적 수필도 발표되었다. 대표적 수필가와 작품집 : 이희승의 (벙어리 냉가슴), 피천득의 (산호와 진주), 조지훈의 '지조론(志操論)', 유달영의 '인간 발견' 계용묵의 (상아탑), 노천명의 (나의 생활 백서), 마해송의 (사회와 인생) 등이 있다. 1940-1950년대에 질높은 수필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정수필 중에서도 노자영이나 방인근 등이 보여준 서정성의 미문체 수필과 이태준, 이병기 등이 다룬 자연예찬 등의 수필, 이양하의 <나의 소원> <조그만 기쁨> <신록예찬> 등이 이를 증명한다. 이 시기에는 김진섭의 <인생예찬> <생활인의 철학> 등을 비롯하여 이양하의 <이양하 수필선> (1947)이광수의 <돌베개>(1948) 마해송의 <편편상>(1948) 김소운의 <목근통신> <마이동풍첩>, 노천명의 <산딸기> <나의 생활백서>, 김태길의 <웃는 갈대> 전숙희의 <탕자의 변>(1954) 조경희의 <우화>(1955) 이희승의 <벙어리 냉가슴>(1956) 피천득의 <금아시문선>(1959) 등이 발간되어 질적 우수성을 보여주었다.
분단 이후의 문학은 해방과 한국 전쟁, 그리고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른 이 시기는 한 마디로 격변의 시기였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한민족은 본격적으로 세계사에 편입하게 되었다. 1950년에서 1959년까지 수필집은 167권이 출간되었다. 50년대의 김소운의 '목근 통신', 피천득의 <금아 시문선> 은전 한 닢 제재:은전 한 닢, 주제-맹목적 욕망에 대한 연민, 물질에 대한 인간의 소박한 욕심, 김형석의 '영원과 사랑의 대화', '현실과 구상' 등이 대표적이고, 한국 현대 수필이 예술성을 획득하여 수필로서의 확고한 자리를 굳힌 것은 1959년에 나온 피천득의 「금아 시문선」에 이르러서라는 평가도 있다.
1960년대에 들어서서 서서히 수필의 저변확대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1965년에 <한국수필문학전집> 전5권이 국제문화사에서 간행되고, 1966년에 동아출판사에서 <세계수필문학전집>이 발간되었다. 시대적으로 1, 4.19와 5.16 등으로 정치·사회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2. 분단 현실과 민족의 비극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3.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하고 이에 저항하는 현실 참여 문학이 대두되었다. 1. 서정적이고 교훈성이 강한 수필이 많이 등장하였다. 주요 작가와 작품으로, 피천득 <수필>-수필의 본성과 특질, 황포탄의 <추석>-이국 땅에서 느끼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이양하 <나무의 위의>- 나무를 의인화하여 삶의 태도를 밝힘, 안병욱 <행복의 메타포>-행복의 의미, 전혜린 <사치의 바벨탑> -여성 삶의 진정한 존재 고찰, 박경리 <거리의 악사> -가식없는 삶의 소중함, 김소운 <가난한 날의 행복> -가난 속에서 피는 따뜻한 인간애 등이 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수필이 문학의 대표 주자인 것처럼 널리 읽혀졌다. 전숙희, 윤오영 등의 수필이 유명했고,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안병욱의 <행복의 미학>, 김우종의 <내일이 오는 길목에서> 등의 수필집이 문학 서적 중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대학생과 청년들 사이에 수필집을 팔에 끼고 다니는 것이 유행했다. 그러나 수필문학이 독자적 장르로 문학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시기였다고 하겠다. 노천명은 현실을 외면하는 데서 오는 회상에의 선열한 과격성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전혜린 등 여성수필의 경우, 탐미성의 추구와 순수서정 세계를 그려내는 수필이 많았다.
우리나라 현대수필의 시발을 1900년대로 잡는다면 1세기가 되었지만, 수필의 대중화가 이뤄진 것은 1970년대이며, 그로부터 30년간이 수필문학 중흥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 <수필문학>지가 나오기 시작한 것을 필두로, <월간문학> <현대문학> 등 종합문예지에서 수필을 문인등용장르에 처음으로 포함시켜 신인을 배출하게 되었다. 한국문단이 비로소 <수필>장르에 대한 새로운 인식변화를 보여준 것이며, 이는 시대적 요청에 따른 결과였다. 일찍이 프랑스 비평가인 아나톨 프랑스가 <수필이 미래의 모든 장르를 흡수해 버릴 것이다>라고 예상한 바 있다. 오늘날, 신문을 비롯한 모든 인쇄매체에서, 수필은 대중에게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문학 장르로 정착되는 단계를 밟고 있다. 생산자인 작가와 소비자인 독자로 엄격히 구분되던 시기가 지나가고 글쓰기가 대중화 일반화되는 추세를 보임에 따라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자신의 삶과 체험을 통한 진실을 형상화하는 수필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이제 수필은 수필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만인의 공유물로서 자신의 삶에 의미 부여와 가치 창출을 위한 탐구와 노력의 한 방법으로 채택되고 있다.
1970년대 이전, 수필문학에 대한 문단 및 독자들의 시각은 결코 좋은 것이 못되었다. 수필은 마치 아무나 쓸 수 있는 장르처럼 인식돼 와 <서자문학>취급을 당해왔다. 그러나 1971년 조경희, 서정범 씨 등이 한국수필가협회를 창립, 수필중흥을 꾀하고 1973년에 기관지 <한국수필>을 발행하고, 1972년도에는 월간 수필문학(발행인 김승우)의 창간으로 수필문학의 인식을 높여갔다. 초창기에는 양대 수필지에서 서정범, 김병권, 김사달, 김규련, 이철호, 이상보, 최신해, 김태길, 차주환, 이기진, 원종린, 김시헌, 장백일, 허세욱, 정진권, 박연구, 김용구, 정명숙, 박재식, 한형주, 윤재천, 이병남, 김효자, 정혜옥, 김승우, 강석호 등 교단 외 명사들과 기성 수필가들이 활동했다. <수필문학>은 창간한 해부터 정식으로 수필가를 배출, 진웅기, 유병근, 정재은, 신택환, 유혜자가 70년대에 신인으로 등단했고, 일간지에서도(한국일보, 조선일보 외) 윤모촌, 오창익, 정상옥 등이 70년대에 등단했다. <한국수필>은 78년도에 이정원이 등단, 82, 83년에 한영자, 주영준, 김경실, 이상인, 고동주 등이 이어서 등단한 후 지금까지 계속 신인을 배출하고 있다. 70년대, 30대의 나이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로 변해명, 유혜자, 이정림, 정목일 등이 있는데, 이들이 추구한 것은 문학의 서정성과 철학성이며, 변해명은 서정성에 사회성의 접목을, 정목일은 ‘달빛’을 제재로 서정수필과 선을 접목하고자 시도했다. 여성수필의 경우, 수필적 관심이 ‘우리 것’에 한한 재발견이나 재해석으로 나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인 수필문학의 활성화가 이뤄진 것은 우리 수필문학 사상 가장 괄목할 만한 현상으로 수필 중흥의 계기를 마련한 시기였다. 시인과 소설가 등 문필가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지식인들이 쉽게 자신의 체험과 사상을 형상화할 수 있는 문학 장르로 인식돼 왔다. 수필은 시, 소설, 희곡 등 픽션과는 달리 논픽션이라는 특성 때문에 굳이 수필가만의 전용물일 수 없으며, 만인의 공유물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이와 같은 특성으로 인해 친숙감을 제공하며 문학의 저변확대와 일반화에 기여하는 일면이 있는 반면, 전문성과 문학성의 결여를 가져오기도 했다. 시대적으로는 1. 산업화·근대화가 본격화되었다. 2. 이로 인해 도시와 농촌 그리고 빈부 격차가 날로 심해져갔다. 3. 10월 유신이 단행되면서 정치적 억압이 날로 심해져 갔고 이로 인하여 민주화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4. 남북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시도되었다. 5. 여성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여성해방의 시각을 제시하며 여성작가들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평가가 이루어진다. 6. 각 대학에서 여성학이 생기고, 여성운동이 일어나면서 여성작가에 대한 연구의 새로운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수필의 주요 작가와 작품으로 윤오영 <달밤>- 아름다운 인간의 정 <까치>- 산뜻하고 담박한 삶의 모습, 법정 <무소유>- 진정한 자유와 무소유의 의미, 한흑구 <보리>- 보리의 순박함과 강인함 등이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인 수필문학의 활성화가 이뤄진 것은 우리 수필문학사상 가장 괄목할 만한 현상으로 중흥의 계기를 마련한 시기였다. 1980년대 들어와서도 수필에 대한 편견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수필이 문학인가>하는 문제를 제기하며 백안시하는 사람이 있고, <주변문학> <비전문학>으로 가볍게 인식하는 시각이 있어왔지만 이제 수필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고 있다. 지성과 비평을 갖춘 문학, 감성과 논리성을 겸비한 문학, 인생적인 경지를 끌어올리는 문학, 자유롭고 다양성을 지닌 문학, 미래적이고 가능성이 많은 문학으로 생각이 바뀌어지고 있다. 현재 수필전문지만 들어도 월간 <수필문학> <월간 에세이> 격월간 <한국수필> <수필과 비평> 계간 <현대수필>, <창작수필>, <에세이문학> <수필> <수필 춘추> 등으로 발표지면의 증대와 함께 매년 신인배출만도 200여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수필동인회 결성이 전국 시, 도로 확산되고 정기적인 수필동인지들이 간행되고 있다. 1980년대에 와서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종합문예지뿐만 아니라 수필전문지가 생겨나고, 지역 수필문학 동인 단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필문학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된다. 지성과 비평을 갖춘 문학, 김성과 논리성을 지닌 문학, 인생적인 경지를 끌어올리는 문학, 자유롭고 다양성을 지닌 문학, 미래적이고 가능성이 많은 문학으로 생각이 바뀌어지고 있다.
이 시기는 수필문학이 전성을 이루면서 대부분의 작가들이 테마를 ‘신변잡기’에서 취한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수필의 경우에도, 한두 사람을 제외하고 여성소설과는 달리 억압이라는 반여성적 사회 기제에 대해 투쟁과 갈등을 겪지 않고 현실의 모순을 그대로 수용하려는 자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하다고 하겠다. 수필을 신변잡기로 매도하게끔 한 이러한 현상 하에서 본격적인 수필가들의 문학성 제고 노력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김학, 정주환, 반숙자, 신일수, 문형동, 고동주, 염정임, 이혜숙, 최원현 등의 작가를 들 수 있다.
먼저 1990년대 수필문학은 그간 우리 수필문학이 주로 보여온 감성 위주의 신변잡기적 경수필에서 많이 벗어나, 지성의 활발한 개입을 통해 시대정신에 대해 성찰하는 일종의 중수필적 경향을 비중있게 드러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수필문학의 주류는 작가의 고백성에 무게 중심이 놓이는 경수필들이다. 그 안에는 나날의 삶에 대한 가벼운 감상이나 깨달음 혹은 사랑의 감성들이 녹아 있다. 그러나 90년대를 넘어 갈수록 우리 수필문학은 사물의 본질에 대한 천착이나 날카로운 지성적 성찰을 동반해 가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 수필문학은 감성 편향에서 지성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간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성수필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에 대한 고찰이나 성찰들의 방향이 바뀌고 있는 1990년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고민할 때, 여성작가들의 세밀한 시선과 작은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섬세함, 일상적인 개인들의 욕망과 고통을 풀어내는 힘 등이 새로운 시기에 필요한 새로운 문학이었던 것이다. 1990년대 여성작가들은 여성주의적 작가라기보다는 여성적인 섬세함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여성적 작가이다. 작고 나약한 여성적 세계에서 부딪치는 문제의 심각성을 통하여 세기말적이고 이념이 부재한 인간들의 상실감을 잘 드러내기는 하지만, 여성문제를 본격적인 창작 과제로 설정한 여성주의적 작가는 드물다. 1990년대 여성수필가들이 신춘문예 등으로 화려한 데뷔로 선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에 비하여 그들의 시선은 극히 개인적인 내밀한 욕망에 갇혀, 거시적인 여성 문제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발간되고 있는 수필전문지들은 그 숫자가 매우 많다. 그들의 목록을 예거하면 「월간 에세이」「수필문학」「수필과 비평」「계간수필」「수필」「수필춘추」「창작수필」「한국수필」「현대수필」등인데 이러한 수필전문지들은 열악한 자본 환경에서도 수필문학에 대한 깊은 열정과 헌신으로 이 같은 활황을 연출해내고 있다. 더구나 국내 유수의 문예지들 역시 그 안에 산문 혹은 수필 코너를 두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 사실 수필문학의 지면 상황은 시 다음으로 호조건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외적 조건에 기반을 두면서, 1990년대의 수필문학은 그 활발한 외관과 함께 내실에서도 한 단계 진척된 성과를 보여주었다.
원래 ‘감성’은 수동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유한성을 나타내는 반면, 인간과 세계를 잇는 원초적 유대고리의 역할을 한다. 즉 이론적 인식에서는 이성적 사고를 위한 감각적 소재를 제공하고, 실천적․도덕적 생활에서는 이성의 지배와 통솔을 받을 소지를 마련하며, 미적인식에서는 자신의 순수한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인간적 생의 상징적 징표가 된다. 따라서 감성적 세계인식은 매우 소중한 감각적, 도덕적, 미적 계기를 우리 인간에게 부여한다. 1990년대 우리 수필문학이 이러한 감성에 토대를 여전히 두고 있다는 것은, 그 점에서 필연적이고 장려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감성 편향이 될 때인데, 그 편향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기능은 인간의 합리성에 바탕을 둔 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지성’은 ‘감성’과는 달리 사물을 개념에 의하여 사고하거나 또는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판정하는 오성적(悟性的)인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그 기능은 합리성, 객관성, 진리 타당성의 검증과 설명에 놓여 있다. 우리 수필문학이 사물에 대한 감성적 해석과 반응에서부터 사회현상 전반에 걸친 이러한 합리성과 객관성을 지향하고 나선 것부터가 수필정신의 확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수필문학에 지성이 개입하는 것은 어느 면에서는 수필 고유의 감성적 기능을 잠식하는 듯이 보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수필문학의 심미적, 비평적 기능을 제고하여 수필문학의 본령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이다.
비평가인 루카치는 수필을 일러 “좀처럼 붙잡기 힘든 인간 영혼의 가장 은밀한 곳에 자리 잡은 마음의 미세한 풍경”을 그리는 양식이라고 했는데, 이러한 은밀하고 신비로운 운명의 영역에 대해 수필문학은 다른 어느 장르보다도 직접성과 균형성을 갖추면서 천착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환경, 생태, 생명, 평화 등의 주제의식을 다룬 수필집이 많이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라고 할 것이다. 이들 수필집은 감성과 지성의 균형 있는 조화를 통해 사물과 사회현상의 실재와 작가 스스로의 인생관을 동시에 노출한 것들이다.
2000년대는 가히 수필의 시대라 할만 하다. 종합문예지와 수필전문지를 통해 나온 수필가들만의 동인회가 결성되어 수필문학세미나 개최와 수필동인지를 정기적으로 간행하고 있어서 수필문단에 활기를 불어넣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밖에 신문사에서 설립한 문화아카데미를 비롯하여 대학의 평생교육원과 사회교육원, 백화점, 구청, 사회단체의 교양문화교실에서 수필이 인기를 얻고 있다. 수강생들이 지도교수의 도움으로 수필동인회를 결성하여 정기적으로 동인지를 발간하며 지속적인 활동무대로 삼는 경우도 있다. 가히 수필의 홍수시대를 맞고 있으며 바야흐로 급격한 양적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문예지들의 신인 양산이 문학의 질적 저하와 품위손상을 가져온다는 지적도 적지 않게 받고 있다.
수필의 양적 팽창에 따라 질적 성숙과 내실화를 위한 노력과 시도도 추진되었다. 수필문학에 대한 이론 정립과 방향모색이 활발히 이뤄졌다. 수필문학세미나, 수필전문지의 특집을 통한 방법이었다. 연례적으로 수필세미나를 열고 있는 단체로는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문학진흥회, 한국수필문학회, 대표에세이문학회 등이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수필가 윤재천씨가 자비로 내고 있는 <수필학>을 들 수 있다. 대학에 재직하는 교수들을 필진으로 취약한 수필문학의 이론계발과 전개, 방향모색을 학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와 같은 시도와 노력은 종전까지 없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로 평가된다. 학문적 이론적인 뒷받침을 강구하고 있다는 것은 수필문학 발전을 위한 청신호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수필문학사상 본격적인 창작론, 작가론, 작품론이 시도, 발표된 것은 큰 수확이다. 또한 수필가 박연구 씨에 의해 화가 김용준, 문학평론가 김동석의 수필이 발굴, 재조명된 것도 우리 수필의 영역을 넓힌 일이었다.
2000년대는 수필평론의 시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수필비평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수필문학 발전을 위해서는 평론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요청에 따라 수필전문평론가가 출현하여 비평을 하고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윤재천, 강석호, 이정림, 하길남, 한상렬, 김종완, 권대근 등이다. 권대근은 본격수필 전문지 <에세이문예>를 통해 이미 2000년 이후 10여 명의 젊은 수필비평가를 평단에 진출시켰다. 수필전문지와 종합문예지 등에 월평, 계간평 등이 인상비평의 수준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작가론 작품론이 전문수필평론가들의 작업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은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수필계 전반을 통찰한 문제제기와 새로운 방향모색, 이론의 개발, 날카롭고 참신한 제시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어 수필이론의 단수화가 시급하다고 하겠다. 좋은 수필문학가와 작품을 뽑아내는 정리 작업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1999년에야 현역 수필가들만을 대상으로 수필문고를 내는 선우미디어를 비롯하여, 수필문학사, 좋은수필사에서 역사에 남을 문고판 수필을 간행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수필의 날 공포하고 전국적인 행사를 해마다 여는 것도 수필시대를 여는 전조가 되고 있다.
III.
글의 가치는 어떠한 소재를 다루었느냐보다는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생활주변의 소재를 이용해서 이를 문학적으로 향상화해 자신의 현실인식을 적용시켜낼 때, 수필은 가치를 지니게 된다. 1910, 1920년대의 수필은 소재로는 생활주변의 것을 취하였고, 주제로는 개인적인 좌절로 인한 자아갈등과 국정에 대한 염려가 나타나 있다. 현대로 오면서 내용과 형식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1930년대 수필에서 특기할 점은 수필의 성격이 개인 체험의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쪽으로 주도되어, 사회 지향의 계몽적 성격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40,50년대, 이 시기에 이르러 이론적 추구와 그리하여 저널리즘에 환영받는 이른바 이지가 번득이는 가십류의 단평이나 논픽션류의 정제된 수필이 양산되었다. 이와 함께 개인적 수필과 사회적 수필이라는 본격수필의 유형이 형성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 절대 빈곤의 시기를 지나면서 경제개발이라는 최우선적인 정책 수립의 결과는 일단 양적인 삶의 새 길을 찾게 하였고, 이 시기의 수필은 체험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시대적 비판을 내용으로 삼는 수필은 물론이고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수필, 자의식을 내용으로 하는 수필 등이 등장하여 이와 더불어 개인 수필집 발간이 본격화되었다. 1970년대는 한국의 수필문학이 본격 수필문학의 시대를 열어가는 시기라 하겠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본격수필가가 없었다. 따라서 수필문학이 수필가만의 전유물이 아닌 타문인에 의해 창작되어 수필 장르가 유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애초 본격수필가에 의해 창작되지 못한 수필문학이 문학성이나 독자성을 지닐 수 없었다. 수필의 주류는 서사적인 이야기를 극단적으로 배제하고 있으며, 시적 수필로 인해서 주제의식이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가운데서 윤오영, 김태길, 서정범, 김병권, 김시헌, 박재식, 이상보, 김용구, 김영배, 박연구, 정진권, 허세욱 등 많은 분들이 문학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1970년대는 등단 1세대 작가로 오창익, 변해명, 유혜자, 이정림, 정목일 등이 수필의 질적 향상을 위해 분투했던 시기다.
1980년대 와서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종합문예지뿐만 아니라 수필 전문지가 생겨나고, 지역 수필문학 동인 단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필문학의 독자성과 아울러 지역성, 전문성의 조화를 꾀하고자 했다. 한편으론 수필은 아무나 쓸 수 있다는 통념이 지배했다. 여성수필의 경우, 여성의 자아와 일에 대한 주체적 요구가 늘어났지만, 페미니즘의 전성기임에도 불구하고 여류수필가 한두 사람을 제외하고, 시대적 여성의식을 수용하지 못했다.
1990년대로 진입하면서 수필문단은 황금기를 맞는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시대인 1990년을 넘어서면서부터 삶의 질을 우선하는 인식의 변화를 불러왔다. 폭발적인 수필 인구 증가와 경향 각지에 산재한 수필동인회의 활성화, 그리고 각종 문예지의 등장은 황금어장을 형성해 갔다. 1980년대 조합문예지와 수필 전문지가 10여 종 정도 안팎이던 모습과 판이한 모습이다. 특히 이 시기의 특기할 일은 수필 문단의 여성화 경향이요, 신변잡기의 범람이었다. 1990년대 들어와서 문학이 환경, 생태에 관심을 보였는데 반해 수필 속에서 그런 류의 작품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런 경향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은 테마수필이었다. 유혜자의 <클래식 음악>, 이정원의 <꽃>, 은옥진의 <나무> 조재은의 <영화>를 테마로 한 수필이 그것이다.
2000년대로 들어선 오늘날에는 소비산업의 극대화가 몰고 온 엄청난 변화의 양상을 도처에서 목도하고 있다.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는 지난 시대는 자본의 시대였고, 다가올 시대는 전문가의 시대라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이 실체로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 수필의 평가는 아직 이르다. 아직도 자잘한 이야기 일색의 수필이 우리 수필문단이 일상성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박종숙, 송명화 등 여성수필가를 중심으로 사회의식을 형이상학화하는 수준 높은 문학성 위주의 글, 정여송 등을 중심으로 수필의 외연을 확대하는 실험성의 수필이 자주 발표되고 있는 것은 수필의 위상제고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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