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 끝자락의 한 갯마을. 매일 돈을 캐러 나간다는 김화분씨(76)가 살고 있다. 김씨는 굴 캐러간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하곤 한다. 홀로 사는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궂은 날씨에도 굴을 캐 생계를 유지한다. 매일 아침 급한 마음으로 부석면 창리 갯벌로 나선 지 60여년째다.
“욕심이 많아 남보다 뒤처질 때는 슬그머니 부아가 난다”고 하는 김씨의 말에 평소 그가 어떻게 일하는지 짐작이 됐다. 그렇게 김씨 인생의 봄은 제철 굴을 캐느라 정신없이 지나갔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 뱃일하는 남편에게 시집왔지만 남편은 빚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빚을 혼자 감당하느라 억척스럽게 일만 했다. 마을에서 ‘창리 불독’이라 불릴 정도다.
올봄도 제철 굴 캐기로 정신없이 보낸 뒤 이제 한숨 좀 돌릴까 했는데 그의 몸에 이상 증세가 찾아왔다. 3년 전부터 심해진 어깨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김씨는 일을 하고 돌아온 밤이면 극심한 통증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고된 일에 어깨가 망가져버려서다. 통증은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그를 괴롭혔다.
낮에는 매서운 바닷바람과 싸우고, 밤에는 욱신거리는 통증과 싸우는 김씨. 그렇게 혼자 혹독하게 견뎌온 세월이 자그마치 20년이다. 김씨는 간혹 어깨 통증이 괜찮아지는 듯싶다가도 한번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팔뚝 아래까지 쑤시고 아프다고 호소했다. 이야기를 듣고 즉시 그의 팔을 들어 올려보았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목질환과 어깨질환의 증상을 헷갈려 한다. 어깨가 말썽인지 아닌지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통증 부위다. 어깨 뒤쪽 등에 통증이 있다면 목이 원인이고, 어깨 아래 팔에서 통증이 느껴진다면 어깨를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어깨가 문제일 경우 환자 스스로가 아니라 의사가 환자의 어깨관절을 움직여보면 알 수 있다. 이때 운동 범위에 심한 제약이 있으면 장기적으로 근육 손상과 강직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
간단한 동작으로 확인해본 결과 김씨는 확실히 양쪽 어깨가 모두 굳어 있었다. 보다 정확한 정밀검사를 위해 그를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모시고 왔다.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결과, 어깨뼈가 약간 구부러져 있는 모습이 확인됐지만 다행히 극심한 통증에 비해서 심각한 편은 아니었다. 여러명의 전문의가 함께 논의를 거쳐 상대적으로 양호한 왼쪽 어깨는 비수술적 치료인 ‘브리즈망’을, 증세가 심한 오른쪽 어깨는 ‘관절 내시경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브리즈망이란 어깨에 부분 마취를 한 후 염증 치료제와 유착 방지제를 주입한 후, 굳어버린 어깨관절을 정형외과 의사가 직접 손으로 풀어주는 방법이다. 별도의 절개가 필요 없으며 수술 후 통증이 적고 회복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오른쪽 어깨에 실시된 관절 내시경 수술은 카메라가 달린 내시경을 1㎝ 정도 절개한 부위에 삽입한 뒤, 파열된 힘줄이나 손상된 부분을 봉합하고 복원하는 수술이다.
다행히 경과는 좋았다. 올라가지 않던 팔이 머리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잘 웃지 않던 김씨가 환한 미소를 보이며 만세 동작까지 해 보인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일반적으로 하루 동안 어깨관절을 사용하는 횟수는 평균 3000번 정도에 달한다. 일상 속에서 물건을 들거나 가슴 위로 팔을 들어 올리는 동작은 어깨관절에 무리를 준다. 굴을 캐기 위해 어깨관절을 반복적으로 사용해야 했던 김씨는 훨씬 더 무리가 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이런 동작을 자제해 어깨관절을 더이상 혹사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옆으로 뻗은 양팔을 앞뒤로 돌려주는 풍차돌리기 동작을 하거나 한쪽 팔로 반대쪽 팔을 당겨 어깨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에도 힘써야 한다.
만약 김씨처럼 어깨가 올라가지 않고 어깨를 눌렀을 때 통증이 3개월 이상 지속된다면 방치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매일 밤 잠 못 들고 어깨 통증과 싸우는 어르신들이 농어촌에 여전히 많다. 기나긴 통증과의 싸움을 끝내고, 하루빨리 적절한 치료를 받아 다시 찾아온 인생의 봄날을 만끽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