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214/200705]유쾌한, 아름다운 토요일 오후
인근에 사는 친구가 추어탕을 한솥 가득 끓였다한다. 추어탕을 끓이려면 미꾸라지가 있어야 할 것인데, 그 스토리가 재밌다. 지난해 가을쯤인가, 운봉에 사는 친구의 지인으로부터 미꾸라지 치어 수만 마리를 무상공급받아 손주 만든 100여평의 방죽(작은 연못)에 넣은 것이다. 그 치어가 자라 손바닥 길이(20여cm)만큼 자랐다. 200여마리를 잡아 요리 잘하는 형수에게 추어탕을 끓이게 한 것.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당연히 인근에 사는 허물없는 친구들을 부른 것이다. 초대받은 것만도 고마운 일. 맨날 제발 빈손으로 오란다. 전주에서 3명, 남원에서 4명, 순천에서 2명, 호스트 부부 포함 13명(엑스트라로 9살 손자가 있다). 대문 앞에는 작년에 올 봄에 조성한‘소공원’이 제법 틀을 갖췄다. 무성한 잔디와 배롱나무, 분재 소나무 등을 둘러 심었는데, 투박한 원목 벤치가 운치를 더한다. 집 뒤안 400여평의 텃밭은 집주인 부부의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300여주의 고추에 주렁주렁 달린 풋고추들과 당장 뜯어 먹을 수 있는 푸성귀가 지천이다. 마당에 마련된 식탁 두 개, 아이스박스, 각종 주류와 음료수. 가든파티garden party가 별 것이던가? 이게 가든파티가 아니면 무엇일까?
모처럼 만난 친구들의 반가운 악수행진이 이어진다. 전주에 사는 한 친구는 자기의 평생‘전공생업生業’이라며 2013년산 천일염을 네 푸대(자루)나 갖고 왔다. 이 귀한 소금조차 이 시대는 이제‘천대받는 귀물貴物’인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음식은 간’이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닌질대 우리의 먹을거리에 소금이 빠진다고 상상해 보라.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아우디를 타고 나타난 순천에 사는 친구부부는 순천 제일의 제빵소(1928년 창업)에서 맛보기 힘든 빵을 몇 상자 갖고 달려왔다. 아영에 사는‘지리산도사’는 언제나 이백막걸리가 트레이드마크이다. 이 막걸리는 큼직한 병모양만 봐도 기분이 좋다. 한잔만 마셔도 200년을 산다하여‘이백막걸리’. 나는 늘 빈손인 게 쑥스럽고 민망하다. 흐흐.
6학년 중반 ‘중늙은이’들이 모이면 무슨 얘기들을 할 것인가? 돈? 섹스? 그것도 시들하다. 제일 재밌는 것이 ‘군대 이야기’이니, 여성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는 일. 군종軍宗으로 병역을 마친 친구의 입담은 구수함을 넘어 흥미진진했다. 한 건물에서 일요일 오전 2시간은 개신교, 이어 2시간은 천주교, 잇달아 2시간은 불교에서 하는 일요예배 준비로‘뭣 빠졌다’는 친구의 총기는 불가사의했다.‘통합종교’가 아닌 ‘성당-교회-불당’으로 차례차례 변신하며 예배를 드린 곳은 70년대 군대밖에 없을 듯하다. 군번軍番은 그렇다하자. 어찌 당시 타고다니던 차 넘버까지 외우는지 줄줄줄 막힘이 없다.
수십 년만에 처음 본 친구는 개명改名을 했다.‘탱크로리’사업을 하고 있는데, 일흔까지는 현역으로 일하겠단다. 건강하기만 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이 모임이 소중한 것중의 하나는 귀농친구들이 많기에 서로‘영농營農정보’를 얼마든지 교환한다는 것이다. 참깨 모가지를 뚝뚝 부러뜨리는 노린재 퇴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추 탄저병의 대비책은? 포도농사는 잘 되고 있는가? 아, 한 친구는 고사리를 35kg를 채취, 삶아 말려서 1근 5만원에 팔아 150만원을 벌었다던가? 150만원이 문제가 아니다. 그 돈을 손에 넣기까지 얼마나 많은 힘든 과정이 숨어 있는지, 대처에 사는 ‘촌넘’들이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뭣도 모르면서‘체험’‘체험’하는 사람들이 야속할 뿐이다.‘대다난 친구’들의 모임이다. 각시같이 곱상하게 생긴 한 친구는 우유회사에서 40년 가까이 일했다던가. 모두 처음 듣는 얘기인 것같이 다소곳이 들으면서 가끔 빙긋이 웃을 뿐이다.
화제야 어찌 끝이 있으랴. 친구들의 동향動向 묻기에도 바쁘다. 동창모임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은 친구 욕도 하고, 재취업을 하거나 이제 사업을 벌인 친구들의 건승健勝도 빌어주고, 남양주 어느 한켠에 별장을 지은 후 친구들의‘사랑방’으로 활용, 1주일에 최소 한번 이상 어울려 당구도 치고, 하이로나 섯다게임을 즐긴다는 한 무리의 친구들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아름다운 피날레는 집주인 형수의 마음씀씀이. 아버지를 모시고 산다는, 세칭世稱‘효자친구들’에게 안겨주는 추어탕 한 그릇. 이런 배려는 타고나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다. 여름날, 누가 좋아한다고 예고없이 친구들의 번개팅을 소집해놓고, 음식 대접을 시키고, 술판을 벌이며 저그들끼리만 재밌다고 낄낄거리는 '철딱서니 없는' 세대주 남편이 미울 법도 하건만, 늘 군말없이 아니 오히려 반기며 낯꽃을 좋게 하고, 마지막 남은 음식까지 챙겨주는 형수가 어제따라 더욱 예쁘시다. 고맙습니다. 내 아내도 귀향하여 같이 어울리면 좋을텐데, 그날이 언제일지, 과연 그날이 오기는 올 것인지, 그것이 걱정이로다.
첫댓글 우천의 글을보니 형관우 회장의 고향 궁평마을이구먼. 형회장의 친구사랑과 이웃사랑, 의리는 우리의 보배요 귀감입니다. 충청 양반댁의 규수 형수님은 천상의 여성이며 얌전하신 분입니디더. 친구들 배려와 우정이 영원하길 바랍니다
언제든 반겨주는 친구들이있어 좋다
육학년 중반 나이에 언제나 건강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친구들이있어 행복하다.
주머니 탈탈 털어 가슴속 마음도 탈탈 털어 무엇이든 주고싶은 피붙이보다 진한 정을 가진 친구들이있어 행복하다
오래 오래 건강하게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