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 금융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가 만든 작품
양영빈 기자 승인 2022.11.08 13:52
● 미국 금융시스템 금융위기 후 완전히 바뀌어
● 현재 지급준비금은 위기 이전보다 75배 많아
● 금융위기 후 15년간 전세계 경제는 ‘저금리 경제’
● 최근까지 미국 금융시장을 특징짓는 키워드는
● 낮은 인플레이션과 낮은 금리
[이코노미21 양영빈] 현재 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금융시스템은 금융위기를 전후로 완전히 변했는데 그 사례로 연준의 지급준비금 규모를 들 수 있다. 연준의 부채인 지급준비금은 위기 이전에는 많아야 200억달러 수준이었으나 위기 이후에는 1조달러로 증가했으며 2021년 12월에 최고 4조2700억달러, 그리고 현재는 3조달러 수준이다. 지급준비금의 양으로 봤을 때 현재 지급준비금은 위기 이전에 비해 무려 75배에 달한다.
금융위기 이후 연준의 지급준비금 추이
출처=연준
질적인 측면에서의 변화는 최근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인플레이션과 실효연방기금금리(기준금리)를 보면 금융위기 이후부터 2021년 말까지 그리고 올해 중반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2009년~2021년 3분기는 낮은 인플레이션(평균 2% 아래)와 낮은 기준금리(최대 2.45%)를 유지했다. 2021년 9월 이후에는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8.2%에 머물고 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잡기위해 서둘러서 금리를 인상했으며 기준금리는 현재는 3.8%정도이다.
금융위기 이후 실효연방기금금리와 인플레이션 추이
출처=연준
또한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는 최근 25년 동안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과거 25년간 금리인상이 있었을 때와 현재의 금리인상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그래프의 연도는 금리인상을 시작한 해를 나타내며 가로축은 금리인상을 시작한 이후 개월 수이다.
금리인상 속도 비교
출처=찰스슈왑(https://www.schwab.com/learn/story/fomc-meeting)
금융위기 이후 자산거품을 만들어낸 가장 큰 공은 낮은 이자율에 있다. 연준은 2016년 말부터 금리인상을 그리고 2018년 초부터는 대차대조표 축소(양적긴축)을 시작했다. 당시 3년 반에 걸쳐 매번 0.25%씩 전부 9번 금리를 인상했다. 지금의 금리인상은 속도와 크기 모두 당시보다 훨씬 빠르고 크다.
1차 긴축은 2019년 단기자금 조달시장인 레포시장의 위기와 함께 종료됐다. 연준은 다시 0%를 향해 금리를 인하했고 양적긴축도 이전보다 더욱 큰 규모의 양적완화로 대체됐다. 곧이어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했지만 낮은 금리와 연준의 포워드가이던스(낮은 금리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확신)에 힘입어 자산가격은 다시 상승했다.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에 의해 연준의 대차대조표 크기가 급격히 늘어나자 당시 많은 경제학자들과 분석가들은 하이퍼인플레이션데 대한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설득력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경고와는 달리 인플레이션은 생기지 않았고 연준의 걱정거리는 오히려 디플레이션이었다. 지금 연준의 근원 PCE 인플레이션 목표가 2%였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위기 이전 1조달러에서 최고 9조달러까지 늘어났으며 2022년 6월 양적긴축을 시작한 후 현재 규모는 8조6770억달러이다.
금융위기 이후 연준의 대차대조표 크기 변화
출처=연준
연준 대차대조표는 1차 양적긴축에서는 7000억달러 정도 감소했고 현재는 고점대비 2230억달러 감소한 상태이다. 시장과 연준이 중요하게 보는 지급준비금 기준으로는 처음 그래프를 보면 1차 양적긴축 기간에 9300억달러가, 현재는 고점대비 1조2300억달러가 감소했다. 1차 때보다 빠른 속도로 지급준비금이 감소하고 있다.
연준 대차대조표 전체 크기보다 대차대조표의 일부를 이루는 지급준비금 감소폭이 더 컸다. 연준 대차대조표의 부채는 크게 지급준비금(R), 유통통화(C), 재무부계정(Treasury General Account, TGA), 익일물 역레포(ON RRP)로 구성되는데 시장상황에 따라 각각이 변하기 때문이다.
연준 부채 = R + C + TGA + ON RRP
R↓ + C + TGA↑ + ON RRP↑
유통통화는 단기적으로 변화가 작기 때문에 연준 부채가 일정한 경우 지급준비금(R)이 감소하면 재무부계정(T)이나 역레포계정(ON RRP)이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연준 전체 대차대조표 크기의 변화보다 지급준비금 변화 폭이 큰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도중에 코로나 팬데믹 같은 돌발적인 사건이 있었지만 최근까지 미국 금융시장을 특징짓는 키워드는 낮은 인플레이션과 낮은 금리였다. 낮은 금리는 자산시장 버블을 만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좀비 기업들까지 생명연장을 가능케했다. 저렴한 자본조달비용은 좀 더 위험한 사업 진출을 가능하게 했고 대박 신화를 만들기도 했다.
낮은 금리는 경쟁력이 약한 기업을 도태시키고 경쟁력이 강한 기업을 선별했던 자본주의의 순기능을 마비시켰다. 금융위기 이후 15년간 전세계 경제는 저금리라는 ‘마약’에 의존한 경제였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저금리 마약의 공급이 급격히 줄고 있는 상황이다.
2017년부터 중독에 빠진 경제를 치료하려 했으나 2019년 단기자금 조달시장의 폭주로 치료는 급작스럽게 중단됐다. 단기자금조달시장의 금단현상이 걷잡을 수 없는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치료가 중단됐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양의 마약을 투여함으로써 겨우 환자(경제)를 살렸다.
현재 경제가 마주한 최대 문제는 언제 어디에서 금단현상이 발생할 것인가이다. 금단현상의 조짐은 전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최근 영국의 연기금 사태가 바로 그 징후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강원도 지자체 보증채권의 문제가 전체 회사채 문제로 발전한 것을 들 수 있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스위스중앙은행의 연준 달러유동성 스왑 거래가 갑자기 늘어난 것을 두고 스위스 대형은행에 유동성 문제가 생긴 것으로 오해했던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금단현상은 저금리, 저물가의 오래된(15년) 균형점에서 고금리, 고물가의 새로운 균형점으로 급격히 이행하는 순간에 극적으로 발현된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최종 금리가 얼마인지 얼마나 오래 최종 금리에서 머물 것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직도 새로운 균형점으로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와중에 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이 가장 바라는 것은 안정성이다. 금리가 높더라도 금리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면 얼마든지 쉽게 수익을 낼 방법이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금리가 급격한 속도로 오르면 금융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15년의 안정성을 지나고 끝을 모르는 불안정성의 터널의 초입에 있는 때라고 할 수 있다
최악의 금단현상은 미국 시장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2019년에 미국 단기자금조달(레포) 시장에서 발작이 있었다면 앞으로 생길 금단현상은 국채시장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든 상황이다. 양적완화 기간에는 연준이 상당히 많은 국채를 매입했다. 매입 주체가 명확했기 때문에 양적완화 정책이 그나마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양적긴축에서는 이전에 연준이 롤오버했던 국채와 MBS를 월 950억달러 규모로 시장에 내놓고 재정적자로 신규 발행하는 국채의 양도 당장 2022년 4분기 5500억달러, 2023년 1분기 5780억달러로 향후 6개월간 1.1조달러가 될 전망이다. 문제는 이 국채를 누가 매입할 것인가이다. 연준이 매입하지 않는다면 남는 주체는 크게 민간 투자자(헤지펀드 등), 해외 중앙은행, 대형은행이다.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바젤3 규제는 대형은행이 국채를 인수할 수 있는 최대 크기를 제한(SLR 규제)한다. 국채, 특히 만기가 짧은(1개월 좌우) T-Bills에 대한 매입은 머니마켓펀드(MMFs)가 할 수 있는데 현재 MMFs가 참여하는 ON RRP의 금리보다 낮기 때문에 국채에 대한 수요는 적은 편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ON RRP의 금리를 낮추거나 재무부의 바이백이 필요하다.
분기말에 발표하는 10월 31일 재무부 재원조달 보고서에서는 2022년 4분기에 바이백을 하지 않기로 했다. 12월 FOMC 회의에서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번 11월 FOMC 기자회견 내용에는 양적긴축에 대한 내용이 파월의 모두발언에서 “양적긴축을 잘 하고 있다” 딱 하나만 있었다. 금리인상에 대해 모든 것이 집중됐던 이유도 있었지만 양적긴축이 잘 진행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양적긴축이 배경(back ground)으로 밀려난 것이다.
미국 국채시장은 전세계 금융시장의 최후의 보루이다. 또한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가장 중요한 버팀목이다. 그동안 몇몇 경쟁 통화가 나름 달러와 견주어 보려 했지만 미국 국채시장 만큼 유동성과 거래량이 풍부한 국채 시장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달러의 지위를 위협하지 못했다. 모건 스탠리 채권투자팀의 짐 캐론은 “만약 국채시장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것이 문제다”하고 말한다.
이미 미국 국채 시장은 위험 신호를 계속 보내왔다. 멀리는 2020년 3월 유동성이 급격히 사라졌을 때이다. 최근 유동성은 다음 그림의 왼쪽에 있다. 왼쪽은 국채 시장의 호가 규모를 나타낸다. 호가 규모가 2020년 3월 수준으로 감소했음을 알 수 있다. 문제가 생겨 대규모 거래가 생길 때 매우 큰 가격 충격을 줄 수 있다. 오른쪽은 10년물 국채에 대해 1억달러 주문을 냈을 때 가격 충격을 보여 준다. 2020년 정도는 아니지만 최근 증가 추세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국 국채시장 유동성 지표들
출처=JPMorgan(월스트릿저널에서 재인용)
금단현상은 가장 약한 고리로부터 출발해서 상황에 따라서는 매우 빠른 속도로 미국 국채 시장으로 전이될 수 있다. 이미 10조달러 규모의 회사채 시장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현상이 쌓이다 보면 결국에는 순식간에 24조달러 규모의 국채시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복은 쌍으로 안 오고 화는 홀로 안 온다’는 속담처럼 위기는 여러 분야에서 한꺼번에 닥칠 수 있다.
15년간의 대안정(Great Moderation) 시기에서 쌓아온 레버리지는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문제를 알아도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레버리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그다지 여유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개인은 주택에, 회사는 회사채에 국가는 국채라는 레버리지에 묶여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극심한 금단현상을 무릎 쓰더라도 더 이상의 마약 투여를 강력히 거부하는 연준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높은 변동성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레버리지는 최소화하고 홈런보다는 번트라도 안타를 생산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