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다가 한국에 잠시 들어온 지인의 아들부부가 한 말이 생각난다. 한국에서 정말 아이 키우기 힘들다고 말이다. 그들의 아이는 아들 딸 한 명씩이였다. 외국에 살때는 단독주택에 살아서 층간소음 이런 것은 정말 신경도 안썼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와 첫날부터 아랫층 사람들로부터 잔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젊은 부부는 아이들 뛰지 않게 하기위해 온 신경을 다 써야했다. 몇달 살 것도 아닌데 바닥에 소음 방지 깔판을 사야했다. 그렇게 해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이제 6살 4살 아이들을 온종일 뛰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하는 것은 그야말로 감옥살이 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젊은 부부는 남은 기간을 채우지 않고 한 달만에 짐을 싸서 떠나버리고 말았다.
한국의 어린이들은 참 불행하다고 판단이 된다. 국민들의 대부분이 아파트에서 거주하는데 아파트의 층간 소음 갈등은 이제 그 골이 깊어질 데로 깊어졌다. 어린이들은 뛰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물론 놀이터에 가서 뛰면 된다. 그러나 겨울철에 그게 쉬운가. 겨울철이 아니라도 하루종일 이런 저런 수업 받으려 다니느라 파김치가 되는데 어디 놀이터에 나갈 엄두가 나겠는가. 그런 어린이들이 잠시 머무르는 집인데 소리내지 말라고 다그치니 어디 견딜 수 있을까. 그런 환경에서 진취성과 도전성을 배울 수 있을까. 하루 종일 듣는 소리가 뛰지 말라는 소리인데 말이다. 같은 또래 외국 어린이들은 놀이터에서 그리고 집에서도 이리 저리 뛰면서 살아간다. 자신의 행동을 있는 그래도 옮기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다른 선진 외국에 비해 진취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도전 정신도 비슷하다. 이것이 현대화되고 아파트화되면서 생겨난 것은 물론 아니다. 한반도 특히 남쪽에 살던 사람들은 어릴때부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물에 대해 공포심을 가지고 살았다. 어린 아이들이 물놀이 하다가 참변을 당하는 사례가 많았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물 조심하라는 소리를 나도 어릴 때부터 귀에 달고 살았다. 나는 바닷가에서 자랐지만 수영을 제대로 못한다. 물가에서 조심하라는 소리를 귀가 아프게 들었으니 물에 대한 공포감이 당연히 생겼을 것이다. 그러니 삼면이 바다이지만 한국인은 수영도 그리고 해양 활동도 잘 하지 못하는 민족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섬 나라인 일본과 영국 등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같은 반도국인 이탈리아나 스페인 그리고 포르투갈 같은 나라들은 옛부터 바다로 진출했다. 지중해를 주름잡고 태평양과 대서양을 호령했다. 대항해시절에 지구 곳곳을 누볐다. 식민지도 많이 획득했다. 하지만 한반도 우리 민족은 기껏 장보고 장군이나 이순신 장군에 만족해야 했다. 배를 타고 끊임없이 한반도와 중국일대를 괴롭혔던 왜구들과는 정말 비교할 수도 없다. 이런 현상은 바로 한반도 민족에게 진취성이나 도전심이 결여되도록 만들었다. 옛 고구려는 북방정책을 펴면서 북으로 뻗어나갔지만 백제나 신라는 바다 바깥으로 나아가는 해상활동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한정된 육지 안에서 서로 치고 받고 하기 바빴을 뿐이다. 무슨 연유로 그렇게 물과 친숙해지는 것을 막았는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진취적이지 않고 도전심이 없는 것은 현대에 와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 바로 아파트에서 자행되는 층간소음 갈등때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린이들이 뛰지도 못하는데 무슨 진취성이 길러지겠는가. 그냥 가만히 앉아 책이나 읽고 컴퓨터 게임하고 텔레비젼이나 보는 것이 고작이니 말이다. 외국 어린이 그리고 청소년들이 방학때면 배낭을 메고 자연을 찾아 떠나고, 전세계로 무전여행에 나서는 모습은 참으로 부럽다. 그런 모험을 통해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냥 방에서 뛰지도 못하고 살금살금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는데 무슨 도전적이니 진취적이니 하는 상황이 일어나겠는가.
아파트 층간소음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건설사에게 강력하게 층간소음 해소책을 강요하든지 정부차원에서 대책을 강력하게 마련하길 바란다. 그리고 어느정도 어린이들에 의한 소음은 아랫층에서 이해해 주길 바란다. 고성방가같은 비사회적 행위가 아닌 정말 어린이들이 잠시 놀면서 일어나는 소음은 나라의 앞날을 위해 잠시 참아주는 그런 어른들의 모습이 절실하다. 이 나라를 이끌 어린이 그리고 청소년들이 움직이면서 조금 소음이 난다고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 나라의 미래를 죽이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진취적이고 도전적이지 않고서는 이 나라의 발전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023년 2월 22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