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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ESUSONE 원문보기 글쓴이: 제이원
시편 29:1~11 우렛소리 2020. 12. 9
1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1)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3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6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7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9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2)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10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시편 29편도 다윗의 시편입니다. 시편 29편은 여호와의 소리라는 단어가 일곱 번 나옵니다. 여호와의 소리를 하나님의 우렛소리라고 합니다. 천둥과 폭풍과 같은 바람을 여호와의 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 당시의 주변 나라들은 뇌성과 번개와 폭풍과 같은 것들을 신적인 존재로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한 우렛소리가 여호와의 소리라고 합니다. 전혀 다른 세계관이며 가치관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 벌벌 떠는 우렛소리에 하나님의 백성은 오히려 평안의 복을 받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권능 있는 자들을 하나님을 모시는 천상의 존재들로 보기도 하고 땅의 권능 있는 자들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든지 땅에 있든지 권세와 능력이 있는 자라도 영광과 능력은 여호와께 돌리고 돌리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만물을 창조하신 분은 만물로부터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생들은 권세와 능력을 갖추려고 하고, 또 권능을 가지게 되면 자기를 찬송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은 아직 여호와의 소리를 듣지 못한 자들입니다. 여호와의 소리를 들으면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2절입니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 왜 여호와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너무 크시기에 그가 알려주신 이름에 찬송을 돌리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위하여 두로 왕 후람에게 목재를 요구하면서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겠느냐고 합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이기에 어찌 능히 그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겠느냐고 하면서 다만 그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여 떡을 진설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대하2:3~7). 그 주님께서 거룩한 옷을 입고 찬송하라고 합니다.
3절입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다고 합니다. 성경은 하늘 위에 물이 있고 그 물 위에 누각을 세우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좌정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시편 104:3~4절입니다. “3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4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그러므로 우렛소리는 그 물 아래에 구름에서 일어나는 소리로 보입니다. 여호와는 물 위에 계시면서 목소리를 발하심이 우렛소리와 같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다고 합니다(겔43:2).
4절입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고 위엄있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우렛소리와 같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서에서 본 대로 많은 물소리와도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우렛소리를 여호와의 소리로 표현하여 그 위엄참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렛소리가 난다는 것은 번개도 번쩍입니다. 폭풍우도 몰아치는 겁니다. 한여름에 천둥과 번개가 번쩍이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그런 두려운 상황인데도 시인은 여호와의 소리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5~8절입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시고 부수어 버린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얼마나 위엄차면 그렇게 강한 백향목을 꺾어 부수어 버리겠습니까? 2003년 매미 태풍 때 밀양 솔밭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수십 그루 부러진 것을 봤습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태풍처럼 나온다는 표현입니다. 백향목을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신다고 합니다. 레바논과 시룐이 들 송아지 같이 뛰게 한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송아지가 뛰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알 겁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른다고 합니다. 다른 번역을 보면 번갯불을 번쩍인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산을 뛰게 하고 광야를 진동합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성전에서는 그의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소리에 대한 찬송입니다.
표준 새 번역으로 5~9절을 봅니다. “5 주께서 목소리로 백향목을 쩌개고, 레바논의 백향목을 쩌개신다. 6 레바논을 송아지처럼 뛰놀게 하시고, 1)시룐을 들송아지처럼 날뛰게 하신다. 7 주의 목소리가 번갯불을 번쩍이게 하신다. 8 주의 목소리가 광야를 흔드시고, 주께서 가데스 광야를 뒤흔드신다. 9 주의 목소리가, 2)암사슴을 놀래켜 낙태하게 하고, 우거진 숲조차 벌거숭이로 만드시니, 그분의 성전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영광!" 하고 외치는구나.” 각주 1)은 ‘헐몬 산’으로 각주 2)는 ‘나무를 뒤틀리게 하고’로 번역합니다. 암사슴의 낙태보다는 우렛소리 번개 폭풍으로 산림의 흔들림으로 보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호와의 소리에 성전에 모인 자들은 하나 같이 영광이라고 합니다.
본문 10~1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홍수란 노아 때의 홍수입니다. 온 세상이 물에 잠기는 그 홍수 때에도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보좌는 물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소리의 위엄참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천둥과 번개가 치고 폭풍우가 몰아침으로 산과 나무들이 송아지가 뛰는 것처럼 뛰고 광야가 진동하는데도 여호와는 좌정하여 계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떠한 난리와 난리의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십니다.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 성전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게 소리치기도 하지만 조용하게 일하시기도 합니다.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른다고 합니다(시19:2~3). 오늘 시편은 전혀 다르게 여호와의 소리를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의 소리가 일곱 번 나옵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우렛소리 같습니다. 우렛소리는 천둥소리입니다. 우렛소리로 인하여 엄청난 위력이 나타납니다. 이런 우렛소리로 인하여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우렛소리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렛소리는 우리가 아는 천둥과 번개와 폭풍과 같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여호와의 음성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렛소리를 통하여 여호와의 목소리로 듣는 자들과 듣지 못하는 자들이 나누어집니다.
신명기 4:32~36절입니다.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느냐 어떤 1)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호와께서 너를 교훈하시려고 하늘에서부터 그의 음성을 네게 듣게 하시며 땅에서는 그의 큰불을 네게 보이시고 네가 불 가운데서 나오는 그의 말씀을 듣게 하셨느니라”
이 엄청난 일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말씀하시면 두려워서 못 듣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대신 전하여 달라고 합니다(신5:25~27). 그러나 광야 40년동안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여 모세를 몇 번이나 죽이려고 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나라가 망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시기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옵니다. 성전을 재건하고 열심히 율법을 지키면서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리가 없었습니다. 약 4백 년 만에 드디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가 등장하여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 회개란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라는 겁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의 증거를 받고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 자가 없기에 자신을 낮추어 오시니 못 알아듣습니다.
마태복음 8:23~27절입니다.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소리가 바로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12:28~30절입니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져야 함을 압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영광스럽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성육신도 고난도 십자가도 다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그런데 이 응답을 예수님만 듣게 응답하신 것이 아니라 모두가 듣도록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곁의 사람들은 천둥소리로, 천사들의 소리로 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니 천둥소리 같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소리가 우렛소리 들리지만, 승천하신 예수님의 소리가 우렛소리입니다.
사도행전 9:3~7절입니다.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가는 사울을 부르십니다. 음성만이 아니라 대낮에 빛이 하늘로부터 비추었습니다. 말을 타고 가다가 땅에 엎드려집니다. 그때 소리가 들리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고 합니다. 사울이 주라고 부르면서 누구시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합니다. 사울은 완전한 전복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때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를 듣기는 들었는데 그 소리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다는 음성을 천둥소리로 들은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 말씀을 보고 듣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우리에게 우렛소리처럼 들리는 때가 있습니다. 많은 구절이 아니라도 단 한 구절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우렛소리라고 하여 모두가 사울처럼 체험하는 건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들리는 소리도 언어도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온 천지에 가득하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도 바위를 깨는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 아니라 그 후에 세미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각사람 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르게 임하지만 분명한 것은 완전한 방향 전환이 일어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즉시로 어떤 사람은 천천히 일어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들립니다.
2007년도 죠수아 벨이라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미국의 지하철역에서 현재 시가로 70억 하는 스트라디바리우스로 45분간 지하철역에서 연주하는데 거리의 악사처럼 바이올린 통에 잔돈 조금 놓아두고 연주를 하였답니다. 그런데 알아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번 돈은 약 2만 5천 원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피호용 교수도 같은 실험을 하였는데 2만 원도 벌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이 연주회를 하면 가장 싼 좌석도 십만 원이 넘습니다. 화려한 극장에 화려한 연주복을 입고 연주하면 환호를 하는데 지하철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연주하니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겁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면 두려워서 죽겠다고 하면서 모세에게 대신 전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대신 전하니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돌로 쳐 죽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다들 이런 대접을 받았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나라가 망할 지경이 되니 참 선지자인 줄 알고 하나님을 뜻을 물으면서 자기들의 마음에 좋든지 아니 좋든지 간에 듣겠다고 합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응답을 전하니 자기들의 뜻에 맞지 않으니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합니다. 애굽을 의지하고 싶은데 애굽 의지하지 말고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렘42~43장).
본문 9~11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여호와의 소리가 우렛소리 같으니 온 세상이 다 흔들리고 무너집니다. 그러나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모든 것들이란 다른 번역에서 성도라고 합니다. 성도는 여호와의 우렛소리 같은 심판의 말씀을 이 역사 속에서 듣고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우렛소리가 두려움이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고 찬양합니다. 이들은 홍수 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많은 물 위에 왕으로 좌정하여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시고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
우렛소리는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데 몇 곳만 보겠습니다. 먼저 요한계시록 10:3절입니다.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오늘 본문에서 일곱 번 여호와의 소리가 나옵니다. 그 여호와의 소리가 우렛소리입니다. 계시록에서도 일곱 우레가 소리를 내어 말합니다. 우렛소리가 심판과 찬송의 소리가 됩니다.
요한계시록 16:18~20절입니다. “18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잔을 받으매 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여기서는 우렛소리가 심판의 소리가 됩니다.
요한계시록 19:5~6절입니다.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인데 여기서 우렛소리는 찬양입니다.
우렛소리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우리를 발가벗기시면 자기 죄를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자기를 치장하고 살다가 마지막 날에 우렛소리를 듣게 되면 심판의 소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라고 하는 이런 시간은 우렛소리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얼마든지 말씀 보고 기도하면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이기에 함께 모이는 겁니다. 하나님의 우렛소리 같은 말씀은 심판과 찬송이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우렛소리 같은 심판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되면 마지막 우렛소리는 성도에게는 찬송의 소리가 되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소리가 됩니다.
히브리서 12:18~120절입니다. “8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ㄴ)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ㄷ)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시내산 앞의 나팔 소리가 오늘 본문에서는 우렛소리로 표현합니다. 노아 홍수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 소리를 모세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우렛소리와 나팔 소리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종의 모습으로 왔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으로 자기 백성을 피 흘려 구속하시는 놀라운 복음이 십자가 안에 있습니다.
이어지는 22~24절입니다.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모세 때에 하나님의 우렛소리에 땅이 진동합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분은 십자가로 말슴하십니다.
이어지는 26~29절입니다.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ㄹ)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2)은혜를 3)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지금 여기서 우렛소리처럼 들려지고 마음에 새겨지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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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ESUSONE 원문보기 글쓴이: 제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