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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상하이 복단대학의 이휘 박사가 쓴 백월민족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분자인류학적 분석을 정리한 글을 번역한 것이다. 백월민족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한국인의 기원과도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추측되는 민족군체이다. 장강문명 중 하나로서 말해지는 하무두 문화를 창조한 민족으로서, 혹은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주요한 민족으로서 알려진 백월족은 동아시아의 가장 오래된 민족군체로서 다른 여러 민족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휘의 글에서 나타나듯, 백월족과 알타이어족군의 여러 민족과는 의외로 높은 빈도로 M119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
<광서민족연구>2002 제 4기 - 이 휘(복단대학 현대인류학연구센터 박사)
개요: 최근의 분자인류학은 Y염색체 DNA를 통해 민족계통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할 수 있다. 백월민족 계통은 중국내 다른 민족계통과 차이가 크나, 남도어계 민족(말레이어계통), 특별히 대만어족군과는 상당히 가깝다. 이미 백월민족군에 대한 유전자연구는 발생관계와 언어문화유형의 차이를 발견했고, 이것은 백월민족의 정체성과 지역분화와 관련이 있다. 백월민족에 대한 분석연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1. 백월민족은 단일한 유전학적 기원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대략 3~4만년 전 광동일대로부터 점차적으로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2. 백월민족은 둘로 나뉘어져 하나는 절강성 동쪽이 중심으로 또 하나는 운남성 시상판나지역이 서부 중심이 되었다. 3. 백월민족은 발전과정 중, 광동으로부터 동북, 서북, 서남 세가지 방향으로 이주하여, 많은 다른 민족과 혼혈이 되었다. 백월족은 광동으로부터 강서성을 거쳐 절강으로 확산되는 과정은 아주 오랜 전 발생했고, 복건, 절강의 월족 군체는 서로 다른 노선을 통해서, 옮겨왔고, 대만의 원주민의 유전자 구조도 이러한 이중성이 나타난다. 서부 태족 계통은 광동으로부터 최근에야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1. 백월족 유전연구의 범위
민족학에서 민족계통의 범위를 정할 때, 민족계통의 독특한 특징에 따라 구분한다. 오래 동안, 민족에 대해 진행해 온 유전학적 연구는 이러한 특징을 찾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혈액형등에서 이러한 특징을 찾으려는 시도는 또 하나의 천일야화에 다름없었다. 최근 10년 동안 일어난 유전자 연구는 민족유전연구에
새로운 희망을 가져왔다. DNA는 가장 잘 인류의 계통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DNA의 구조는 안정성에 떨어지기에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상세한 민족연구를 위해서는 이러한 특징은 결코 도움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연구의 중점은 Y염색체 상의 DNA로 집중되었다. 이 부계 유전자는 정보량이 많고, 안정적이고, 특이한 유전적 표지를 간직하여, 아프리카로부터 발생한 전인류의 계통수를 그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간의 차이도 나타낼 수 있다.
우리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대량의 Y염색체 조사 연구를 통해 민족계통 친연수를 <그림1>과 같이 도시했다.
<그림 1> 동아시아 민족군체계통간 가능한 친소관계
현대 백월민족의 주요한 군체 중 하나인 동태민족은 국내 다른 민족과 명확하게 다른 계통을 지닌다. 흥미로운 것은 남도어계와 상당히 가깝고, 그 중 대만어족과 상당히 가까운 것이다. 따라서, 백월민족과 이 두 어족이 동일한 근원을 가졌다는 가설을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유전학상 백월족의 범위와 언어학상 백월족의 범위는 완전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혈통상 백월족이나 언어문화상 백월족에 포함되지 않는 군체는 당연히 백월족 연구에 포함되어야 한다. 동부의 백월군체가 여기에 해당한다. 대만어족과 이와 같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한편, 언어문화상으로 백월족에 동화되었으나, 백월족과 유전적 혈통을 달리 하는 군체도 있다. 예를 들어, 호남, 광서,귀주성 경계에 거주하는 초묘족은 동어(侗语)를 말하나, 유전학상으로 명확하게 한족의 부계혈통과 묘족의 모계혈통을 지니고, 동족(侗族)의 성분은 적기에 백월족 군체로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백월족 유전연구의 범위는 동태어계(侗傣语)의 동태어족(僮傣语), 동수어족(侗水语), 걸앙어(仡央语)족, 리어(黎语)족, 그리고 당연히 동부지구의 월이군체, 아마도 대만의 몇 원주민을 포함한 인도 아셈으로부터 대만에 이르는 영역 내의 약 100개의 민족이다.
2. 백월족의 유전자구조
필자와 공동연구자들은 최근 몇 년간 수집을 통해, 대부분 백월족 군체의 유전자재료를 이미 수집하였다. 유전자의 데이타는 이미 실험으로 확보했는 데, 이는 인도의 아훔, 태국의 란나, 동북태 및 석족, 운남성의 태력, 동나, 광서의 장족, 모남족, 무라오족, 걸라오족, 야랑족, 수족, 동족, 라가족, 귀주성의 포의족, 수족, 해남도의 리족, 걸롱족, 상해의 토착종족인 마교인, 절강의 어월, 대만의 태아, 포의,아미, 배완, 조, 한하, 비남, 노개, 샤오, 파즉해족 등이 포함된다.
이 군체들의 Y염색체의 유전구조는 상당히 일치하고, 다른 계통의 군체와 완전히 다르다. 그들은 모두 M119, M110,혹은 M95, M88돌연변이가 있고, 이는 다른 군체는 극히 적게 나타나는 유전적 표지이고, 백월족과 접촉이 적었던 군체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한편, 이 군체는 서로간의 유전관계와 언어학상 민족학상의 분류는 다른 상황을 보인다. 특별히 수족과 걸앙족은 완전히 문화적 분류를 허물고, 새롭게 조합된 것이다. 그림2에서 우리는 선으로서 군체간 유전관계를 나타내고, 점선으로 문화적 분류를 표시했다.
이러한 계통발생과 문화유형간의 차이는 이해할 수 있다. 모든 백월족은 초기 내부적으로 동일한 군체였으므로, 역사서에 백월족이 교지(지금의 라오스, 캄보디아)지역에 정착했다고 기재한 것은 이 민족군을 쉽게 정형화해서 대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 내부분지사이의 문화교류는 초기에는 장애가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초기 동일지역에 이주한 서로 다른 분지사이에서 일정 정도 동화가 일어 났다. 이러한 동화는 어떤 때는 불완전해서, 일정한 발생과정의 흔적을 남긴다. 예를 들어, 야랑족과 라가족 간에는 다른 분지 사이에는 없는 공동 어휘가 있다. 당연히 보다 많은 군체와 보다 많은 연구재료로서 심층적인 연구를 행한다면 이 계통구조는 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3. 백월족의 지리적 분화
현존하는 백월족의 Y염색체 데이타에 근거해서, 우리는 주성분분석 수리통계방법을 통해 데이타의 주요한 추세정보를 뽑아내고, 세 개의 주요한 성분을 알아낼 수 있었다. 각 군체의 대응치에 따라서, 세 개의 주성분은 등고선원리에 따라 그려진 세장의 지도로 나타나고, 이 세 장의 지도는 백월족의 유전구조 중 세개의 주요한 특징을 나타낸다.
제 1 주성분은 정보량의 총 47.0%를 차지한다. 그림3의 단일 중심에서 고도가 완만한 분포로서 명확하게 드러나며, 모든 백월족군체 중 우선적으로 나타나며, 공통성도 가장 두드러진다. 백월족의 혈통은 단 하나의 원류를 가지고, 그 중심지는 광동지역이므로 그림으로 알 수 있듯이 광동지역이 백월민족이 가장 초기 발원지이고, 후에 점차적으로 사방으로 확산되어 갔다.
제 2 주성분은 정보량의 총 35.6%를 차지하고, 그림4에서 그 분화방향을 볼 수 있듯이, 하나는 절강일대, 또 하나는 시상판나일대이다. 그러므로, 백월민족은 단일하게 시작된 후, 다시 이원화의 과정을 거쳐, 동월과 서월로 분화되었다. 단, 보충하여 설명할 것은 서부의 동족, 걸라오족은 동월로, 반면 복건성의 백월인은 서월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이 배후에는 어떤 사정이 있을 것이다.
제 3 주성분은 정보량의 17.4%를 차지하고, 그림 5 중, 광동으로부터 서남, 서북, 동북 세 가지 방향을 향해 진출한 세 개의 동일하지 않은 구조이다. 이 그림은 제 1 주성분의 확산과는 다른 백월민족의 이주과정을 보여준다. 광동 등지에서 한족의 이민충격등을 받은 후, 백월민족은 다시 이주하여 다른 장소에 새로이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백월족의 유전구조는 최소한 '일원이분', 세 방향으로의 이주라고 정리될 수 있고, 이에 대한 보충적인 연구가 기대된다.
4. 백월족의 영향을 받은 민족군체
백월족은 오랜기간, 남방의 주요민족이었고, 일찌기 많은 다른 외래 민족과 접촉하여 교류하여, 유전자교류가 발생하였고, 절강과 복건지역은 일찌기 백월족의 주요한 정치 중심으로서 이 지역의 한족은 상당 부분 백월족의 유전적 표지를 지니고 있다. M119돌연변이가 그 예로서 상해와 절강 한족 26%보유하고 있어, 전국 한족 중 가장 많고, 다음이 광동으로서 20%, 안휘는18%, 요녕과 호북은 17%, 강소 16%, 강서 14%, 호남 13%, 산동 9%, 사천 7%, 운남 4%로서 절강성을 중심으로 연해 해안선을 따라 확산한 것을 알 수 있다. 주의할 만한 것은 M119돌연변의 아변이인 M110돌연변이는 더욱 이러한 동월적인 특색을 보이며, 일반 한족에게는 보이지 않고, 상해 마교원주민 중에 상당한 비율로 있다. 복건은 이와 다르게, 8%의 서월적인 M88돌연변이가 있고, 광동은 7%이다.
한족이 월족의 혈통을 흡수한 것은 강한 민족의 외족혈통흡수이론에 부합한다. 이것은 다른 민족 유전자 구조중 표현되어 있으며, 특별히 백월족과 가장 밀접한 백복족(남아시아어족)에 표현되어 있다. 이 민족 중에서 비교적 강세인 민족은 백월족특정의 성분을 지니며, 약세인 민족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경족은 월남의 주요민족으로 당연히 강세이고, 그 중에는 7%M119돌연변이가 있다. 고면족은 캄보디아의 주요민족으로 4%의 M119돌연변이와 4%M110돌연변이와 12%의 M88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아마도 태족으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특별히 주의할 것은 동부의 알타이계통의 민족 중에서도 소량의 M119돌연변이가 발견되며, 이것이 그들이 원래 지닌 것인지, 백월족으로부터 나온 것인지는 진일보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부리아트족이 가장 많아서 35%, 니우가족 6%, 만주족 5.6%, 몽고족 4.2%, 우얼기(Ulchi) 3.8%, 일본이 3.4%, 예니세이에웬키족 3.2%이다.
백월족과 알타이계통의 퉁구스민족의 유전과 문화적 유사성이 발생관계에서 비교적 가까워서 인지, 상호교류의 영향인지는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백월과 다른 민족과의 융합은 매우 복잡한 과정이고, 백월의 혈통이 외족으로 흘러갔듯이, 외족의 혈통도 백월족으로 융화되어, 서부지역의 많은 소수민족은 전체가 백월족으로 융화된 것 같다. 이것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동부의 월족은 한족화의 정도가 커서, 그 분포와 구조가 대량의 현지연구가 필요하다. 상해의 마교족과 같이 비교적 순수한 월족의 혈통을 지닌 집단이 존재하고, 절강과 복건 등지에 다른 부족이 남아 있는 지는 연구할 만한 의의가 있을 것이다.
5. 백월족 발생과 분화에 대한 추측
백월족의 유전구조와 형성에 대한 가능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의견을 제출하여서, 이후 역사학자나 백월족 유전자 연구자들에게 검증받고자 한다.
우선 백월민족의 기원에 대해서, 최초에는 아프리카로부터 남아시아로 왔을 때, 백월족과 남아시아족은 아마도 하나의 군체였을 것이다. 이후, 백월족은 북진하여 광동에 이르고, 남도민족은 말레이시아에 이르러, 양자는 분리되어 발전한다. 대만어족은 남도민족으로부터 왔는가 혹은 백월족으로부터 왔는가? 이것은 이후 더 많은 유전학적 데이타들이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데이타들은 후자일 가능성이 높은 편향을 보여준다. 광동, 광서의 백월족은 아마 몇 만년에 이르는 오랜 기간 외부로의 이주없이 거주해 왔기에, 동일한 체질과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내부의 몇개의 분지는 외부로의 이주 이전 혹은 이후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아마도 백월족은 우선 남북 두 부분으로 분화한 뒤, 남부는 장족, 태족,리족의 선조가, 북부는 동족, 수족, 걸앙족의 조상이 되었다.
광서 서부와 운남에 백복민족, 호남북부에 삼묘족군이 이미 거주하고 있기에, 가장 초기 백월족이 확산한 방향은 동북과 정동 방향이다. 이것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노선으로서 다른 유전적표지를 지닌다. 발생연도는 상당히 일러서, 최소한 하모도문화 이전이다. 동북으로 이주한 백월인은 북부계통으로부터
나와서 강서로 진입한 후, 이후에 간월(干越)을 형성하였다. 간월의 일부분은 이후 서쪽으로 이동 현재의 동족(侗族)이 되었으며, 동족의 기원에 대한 강서설이 이것이다. 이것은 동족의 유전구조가 오해 동월계인지를 설명할 수 있다. 강서로부터 절강으로 이동 어월(於越)을 형성, 태호평원과 녕소평원에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였다. 정동방향으로 이동한 월인은 남부계통으로부터 나와서, 복건으로 진출, 민월각부족이 되었다. 구월(瓯越)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어디에 속하는 지 밝혀지지 않았다. 대만원주민이 백월로부터 나왔다면, 이 두 분지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절강과 복건의 월족은 비슷하고, 나머지 월족은 어월과 비슷하다. 백월족이 바다를 건너, 대만원주민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므로, 상당히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걸앙족이 이주한 것은 비교적 이른 시기의 사건이고, 그들이 직접 귀주성 서북부로 이주했는 지는 알 수 없다. 단 최소한 주왕조 이전에 야랑국의 기록이 있다. 그들은 확실히 동,수족군체로부터 분화되어 나갔다. 리족이 해남도를 들어 온 것은 비교적 이른 시기이나, 전체가 해남도로 이주한 것은 비교적 늦게 일어난 일이다. 장족과 태족의 대규모 서쪽으로의 이동은 한왕조가 남월을 멸망시킨 이후에 일어나 일일 것이다. 태족이 운남과 태국에 진입한 것은 당왕조 시대라는 증거가 있다. 그러나, 운남으로부터 방글라데시 서부에서 인도에 이르는 지역에 이주한 것은 서기 1215년의 일이다. 그래서 서부의 월족이 광동으로부터 발원한 것은 비교적 명확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서부 월족의 각 분지의 분화는 상당히 복잡하고, 이 부분에 대한 연구를 완성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의의는 동남아 각국에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