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가 미흡한 회전식 원형교차로(Rotary,Roundabout) 통행방식
글·녹색자동차문화교실/녹색교통정책연구소 정강
정부가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교통운영체계 선진화 방안의 하나로 제주도를 교통신호등이 없는 회전교차로 녹색교통 시범도시로 선정, 올해(2010년)부터 교차로 개선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서 제주도는 정부로부터 45억원을 지원받아 1단계로 차량 운행이 비교적 적은 제주시 일원의 교차로 20곳을 올해 안에 회전교차로로 바꾸고, 2단계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추가로 53곳에 130억원을 들여 회전교차로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당해 사업은 2009년 4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와 경찰청이 교통사고예방 및 교통운영체제 합리화를 그 목표로 설정, 19가지 과제가 담긴 ‘교통운영체계 선진화 방안’을 내놓았고 “비교적 통행량 적은 신호등 설치 또는 미설치 교차로를 회전식 원형교차로로 전환”이 그 중 하나이다.
회전식 교차로 통행방식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호주 등, 서방선진국에서는 '라운드어바웃(Roundabout)'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돼 왔으며, 90년대 초반까지는 우리나라도 도시 곳곳에 설치돼 이용되던 ‘회전식 원형교차로(로터리: Rotary)’ 방식의 교차로로써 오늘 날 새롭게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로터리 통행방식 부활”에 관한 논의 또한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교통흐름을 막고 낭비적 요소가 많음에도 상대적으로 교통사고율이 높은 신호등 설치 또는 미설치 교차로의 문제점과 “사고발생 시 과실비율에 따른 과도한 분쟁 발생”에 관한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을 찾기 위해서 유럽, 호주등지를 다녀온 필자 또한 지난 2002년경, “교차로 통행 우선순위 관련 도로교통법 개정안(후단 별지참조)”과 함께 도입할 것을 정부(총리실, 경찰청) 측에 제안한 바가 있다.
△ 미국, 영국 등지의 사례와 교차로 통행우선순위 개정을 전제한 로터리 방식 도입제안
그런데, 원활한 소통과 교통사고예방을 위한 합리적인 교차로 통행방식이라는 사회적인 합의에 따라 지속적으로 개선ㆍ발전시켜온 서방선진국 운전자의 경우와 다르게 신호등식 교차로에 익숙한 우리나라 운전자에게는 매우 낯설고 혼란스러운 방식으로써 사고위험이 높다는 게 당시의 반응이었고, 관계 법령의 사전정비와 충분한 교육 및 홍보가 선행되어야 하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도 혼란에 의한 사고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통행 우선권을 단순하고 명확하게 설정하는 개정작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현행 도로교통법의 교차로 통행 우선순위에 관한 규정(아래 관계법조문 참조)을, 접근하는 도로별 여건과 사정에 따라서 양보(YIELD) 및 정지(STOP) 표지판과 정지선을 설치하여 우선권이 있는 도로와 필히 정지하여 양보해야 하는 도로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등의 방안을 그 후속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26조 (교통정리가 없는 교차로에서의 양보운전)
<신호기 등이 설치돼 있지 아니한 교차로의 통행 우선순위>
- 먼저 교차로에 진입한 차
- 폭이 넓은 도로에서 진입한 차
- 우측도로에서 진입한 차
- 직진하는 차, 우회전하는 차, 좌회전하는 차
제안자의 입장에서는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정부의 개정방향 만큼은 옳다. 따라서 정부의 본격 추진방침 및 개정방안을 찬성하고 적극 지지한다. 하지만, 제도개선 및 정책시행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선결과제를 뒤로 미룬 점은 불안하고 위태롭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신호등식 교차로 통행방식과 도로교통법 제26조 등에 의한 신호등 미설치 교차로 통행순위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서방선진국 운전자들과 다르게 로터리방식이 낯설고 어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전 정비를 통한 교육과 홍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비록, 일부 지자체의 자율추진과 제주도에 한정하였더라도 위험한 것은 위험한 거다.
우측차량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 현행 통행방식을 로터리방식에 적용하면 필히 정체와 사고를 부른다. 양보(YIELD) 및 정지(STOP) 표지판과 정지선을 설치하여 “우선권이 부여된 도로”와 “필히 정지하여 양보해야 하는 도로”를 구분하는 신호등이 설치되지 아니한 교차로 역시 “우측차량 우선통행권”이 위험하기는 매한가지다.
우선, 운전석이 차의 좌측에 위치한 운전자의 시야확보는 사각지대가 많은 우측보다는 좌측방향이 상대적으로 용이함으로 우측차량이 좌측에서 접근하는 차량에게 양보하는 게 안전하고, 로터리의 경우에는 모든 차량이 우측방향으로 회전함으로 정면에서 진행하는 우측차량과 충돌할 위험은 낮으나 좌측방향에서 접근하는 차량에게 충격당할 확률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우측차량이 진입 전 정지선에 멈춰서 양보하는 게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다음은 소통의 문제다. 좌측방향에서 진행하는 차량에게 우선권이 부여되어야만 우측차량이 로터리 진입 전 정지선에 멈춰서 대기하고 좌측에서 접근해 온 차량이 지나간 다음에 출발하는 방식이어야만 소통의 원활을 기할 수 있다. 반대로, 현행과 같이 우측 우선일 경우에는 우선권이 있는 우측에서 진입하는 차량이 로터리 내에서 진행하는 차량의 앞을 끼어드는 형국을 초래함으로 정지와 서행이 반복되어 소통의 원활을 기할 수가 없게 된다.
“시설확충보다는 법령정비 및 교육과 홍보가 최우선”
차를 운전함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운전자가 평소 몸에 익혀 온 습관과 상식이 인지한 현상과 충돌할 때이다. 그런데, 현행 도로교통법 제26조의 규정에 의한 “신호기 등에 의한 교통정리가 없는 교차로”를 통행하는 자동차의 최우선 순위는 선 진입 차인데, 바로 이 점이 교차로 서행원칙을 비롯한 여타의 우선순위와 충돌하고 있다.
예컨대, 진행하고 있는 차로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고 우측방향에서 진입하는 차량이 있든 없든 직진과 우회전 하려는 차가 있든 없든 이들 차들보다 더 빨리 교차로에 진입하여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접어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이러한 자세와 습관이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발생률을 비롯하여 교차로 내 교통사고가 우리나라의 10분의1 수준에도 미치지 않는 서방선진국의 교차로 통행원칙은 어떠할까.
우선, 이들 국가들의 경우 신호기가 미설치된 십자(+)형 교차로에는 예외 없이 ‘우선통행도로’와 ‘후순위(양보, 정지)통행도로’로 구분돼 있다.
‘우선통행도로’의 조건은 상대적으로 통행량이 많거나 넓은 도로이고 ‘후순위통행도로’의 조건은 상대적으로 시야확보가 어렵거나 도로의 폭이 좁고 통행량이 적은 도로이다.
그 구분은 양보(GIVE WAY) 및 정지(STOP) 표지판 외에도 정지선에 그려진 ‘백색실선’과 ‘백색점선’ 또는 ‘진입로 노면에 아무런 표시가 없는 도로’로 표시돼 구별된다. 백색실선도로에 위치한 차는 표시선 안쪽에서 일단정지 한 후 3초가 지난 다음에 출발(백색점선도로의 차는 서행 후 양보)해야 하고, 우선도로(노면표시가 없는 도로)에서 진입하는 차의 통행을 방해할 수 없다.
또한, 대향차의 경우에는 직진이 우선하고 좌회전 차(차의 좌측통행 국가의 경우에는 ‘우회전 차가 양보’)는 모든 차에게 진로를 양보해야 하는데, 후순위통행도로의 직진 차보다 통행순위가 우선한다.
결론적으로, 후순위도로의 차는 우선권이 있는 도로에서 교차로에 진입하는 차가 좌회전을 하던 직전을 하든지 간에 그 차의 통행을 방해할 수 없으므로 우선권이 부여된 도로의 차는 머뭇거림 없이 교차로를 통과할 수 있으므로 매우 효율적이고 안전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백색점선 노면표시도로와 노면표시가 없는 도로로 구분된 십자(+)형 교차로의 경우 역시, 백색점선표시도로의 차는 노면표시가 없는 도로에서 진입하는 차에게 무조건 양보해야 한다.
우리가 눈여겨 볼 점은, 이들 국가에서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 통행원칙이 잘 지켜지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교통사고 처리원칙에 있다. 이들 국가들은 교차로 내에서 사고가 발생하였을 경우, 충돌부위 또는 충돌형태와 관계없이 후순위 도로에서 진입한 차의 일방과실로 처리되고 예외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우선순위 도로의 차가 보이면 즉시 정차하여 기다리는 등의 교차로 통행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돌아가서, 우리나라의 회전식 원형교차로의 운영 실태를 잠시 살펴보자. 정부의 제주도 시범시행지역 선정 및 본격추진 발표가 있은 2010년 1월 현재, 전국 각지의 몇몇 교차로에 설치돼 시행 중인 회전식 원형교차로의 실태를 살펴보면 “눈치껏 적당히” “혼란과 위험” 그 자체이다.
△마땅히 있어야할 '양보' 또는 '정지'표시가 우리나라 로터리(오른쪽 그림)에는 없다.
[그림출처: 네이버블로그 baehy]
어느 차로의 차가 우선인지, 양보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가야 될지 서야 될지,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 양보도 없고 우선순위도 없다. 그야말로 아비귀환이 따로 없다. 운전경험이 많지 않은 초보운전자나 초행길 운전자가 역주행을 하는 아찔한 순간을 잠시잠깐 동안 수차례 목격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오늘 현재 우리나라 운전자들 대부분은 운전면허 취득 시 ‘회전식 원형교차로’ 통행방법을 배운 바도 없을뿐더러, 경험한 바도 없다. 따라서 당연한 현상이다. 회전식 원형교차로 통행방법에 관한 법령이 없으니만큼, “혼란과 위험”은 당연히 벌어질 수밖에 없는 예견된 현상임으로 허둥대거나 무턱대고 들이미는 운전자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선후가 뒤바뀐 정책은 반드시 화를 부른다.”
새삼스럽게 서두를 이유가 없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가. 무엇에 쫓기고 있는 사람처럼, 권력기관의 발표가 나오기가 무섭게 느닷없고 갑작스럽게 서두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길이 없다. 결코, 국민의 생명은 시험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 시설개수 및 시범시행에 앞서 관계법령의 정비와 함께 대국민 홍보 및 교육이 필히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관계 당국자는 유념하기 바란다.
다시 강조하지만, 교통사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치명적인 결과를 안겨준다. 오늘 정부가 시행하고자 하는 정책이 국민을 살리고 편익을 위한 것일지라도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고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선행되어야할 과제를 누락시키지는 않았는지를 면밀하게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교통정책에 있어서 시행착오란 곧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러하다.
2010. 01. 18.
[별지]
도로교통법 제26조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② 교통정리가 행하여지고 있지 아니하는 교차로에 들어가고자 하는 차의 운전자는 자기의 차가 통행하고 있는 교차로에 들어가기 직전의 도로면에 ‘백색실선’으로 표시한 정지선이 설치돼 있거나 도로변에 ‘정지(STOP)’ 표지판이 설치돼 있을 경우에는 일단 정지하여 좌우를 살펴야 하며, 다른 방향에서 교차로에 들어가려고 하는 다른 차가 있는 때에는 그 차가 교차로를 통과한 뒤에 차를 출발시켜야 한다.
③ 교통정리가 행하여지고 있지 아니하는 교차로에 들어가고자 하는 차의 운전자는 자기의 차가 통행하고 있는 교차로에 들어가기 직전의 도로면에 ‘백색점선’으로 표시한 정지선이 설치돼 있거나 도로변에 ‘양보(YIELD)’ 표지판이 설치돼 있을 경우에는 서행하면서 좌우를 살펴야 하며, 다른 방향에서 교차로에 들어가려고 하는 다른 차가 있는 때에는 즉시, 정지선 안쪽에 정지하여 양보해야 하고 안전을 확인한 후에 차를 출발시켜야 한다.
④ 교통정리가 행하여지고 있지 아니하는 교차로 중, 위 2항 및 3항의 규정에 따른 양보 또는 정지 표시가 없는 교차로에 들어가고자 하는 때에는 좌측도로의 차에게 진로를 양보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