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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원문보기 글쓴이: 욘 헤이팅하
구분 | 애슐리 영 | 마르틴 페트로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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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슐리 영을 택한 이유] 성장세로 따진다면 단연 눈에 띈다. 올 시즌 활약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최고의 측면 공격자원이란 평가가 지나치지 않다.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이 뽑은 시즌 베스트 미드필더로 이미 이름을 올린 애슐리 영이다. 2부 리그서 뛰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프리미어리그 어시스트 킹을 넘볼 정도로 훌쩍 성장했다. A.영의 나이를 고려할 때 이제 관심은 그의 성장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이냐다. 자메이카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A.영은 와트포드 유스팀에서 공을 찼다. A.영을 포함해 루이스 영, 카일 영 등 3형제가 모두 축구를 했을 만큼 운동 신경이 남달랐다. 1군 무대에 데뷔한 것은 18살이던 2003년 9월13일 밀월전. 후반 교체 투입된 A.영은 1군 데뷔전에서 골을 넣으며 자신의 이름을 팬들에게 알렸다. A.영은 4일 뒤 더비 카운티전에서 또다시 골을 성공시키며 연속득점, 팀의 미래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듬해 A.영은 팀의 주축 선수로 발돋움했다. 2004-05시즌 교체출전을 포함해 34경기에 출전해 7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분전, 올해의 와트포드 영 플레이어로 선정됐다. 2005-06시즌이 A.영 스타 반열 도약의 분수령이었다. 아드리안 부스로이드 감독의 권유로 전방 공격수로 보직을 변경한 A.영은 3경기당 1골에 이르는 골 결정력을 과시하며 와트포드를 챔피언십(2부) 3위로 이끌었다. A.영의 질주는 멈추지 않아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프리미어리그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득점에 성공, 와트포드의 7년만의 1부 진입을 이끌었다. 팀의 유망주에서 프리미어리그의 블루칩으로 급부상한 A.영에게 러브콜이 쏟아졌고 몸값 폭등의 과정을 거쳐 2007년 1월 당시 윈터 브레이크 최고 이적료를 제시한 아스톤 빌라 저지를 입었다. |
[페트로프를 택한 이유] 축구 전문지 <포포투> 3월호는 그에게 '왼쪽 측면의 지배자'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왼쪽 공격에서 그를 능가하는 선수를 찾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페트로프의 가장 큰 장점은 EPL 최고 수준의 왼발 슛이다. 하지만 그의 왼발은 단순히 슛에만 능란한 것은 아니어서 드리블이나 크로스, 짧은 패스와 긴 패스에 이르는 다양한 기술에 걸쳐 풍부한 역량을 과시한다. 왼발잡이가 부족해 대부분의 왼쪽 영역을 외국 선수에게 맡기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불가리아산 왼발' 페트로프는 단연 돋보인다. 맨시티가 올 시즌 꽤 많은 경기를 페트로프의 단독 돌파에 의존했다는 점은 그가 EPL 최고의 왼쪽 미드필더로 올 시즌을 보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불가리아 리그 보테프 브라트사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한 페트로프는 18살이던 1995/96 시즌, 어린 시절부터 갈고 닦은 왼발 킥 능력을 인정받아 불가리아 명문 CSKA 소피아 유니폼을 입게 된다. 이 때 UEFA컵에 출전한 그는 스위스의 세르베트와 가진 2차례의 홈 앤드 어웨이 경기에서 빛나는 활약을 펼쳤고, 그 결과 세르베트로 스카우트되어 스위스 리그에서 세 시즌을 뛰었다. 그리고, 서서히 유럽 무대에 자신의 진가를 알리기 시작한다. 세르베트 시절이던 1999년 6월, 페트로프는 잉글랜드와의 유로2000 지역 예선 전에 출전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자신의 영웅인 스토이치코프와 함께 뛰게 된 이 경기에서 그는 경고 2장을 받고 13분만에 퇴장당하며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만다. 페트로프의 전성기는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면서 찾아왔다. 이 곳에서 네 시즌을 뛰는 동안 그는 리그에서만 28골을 넣는 등 빼어난 공격력을 과시했고, 대표팀에서도 입지를 확고히 굳히게 된다. | |
A.영은 PFA가 선정한 프리미어리그 베스트11 중 비(非) 빅4 클럽 소속 유이한 선수다. PFA는 Professional Footballers' Association의 약칭으로 영국프로축구선수협회를 뜻한다. 함께 뛰며 가까이 지켜본 선수들의 눈으로 최고 활약의 동료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PFA는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베스트11로 C.호날두를 비롯해 리오 퍼디난드, 네마냐 비디치(이상 맨유)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바카리 사냐, 가엘 클리쉬, 세스크 파브레가스(이상 아스날) 스티븐 제라드, 페르난도 토레스(이상 리버풀)와 함께 A.영과 데이비드 제임스(포츠머스)를 선정했다. 소위 프리미어리그 빅4로 일컫는 맨유, 아스날, 리버풀, 첼시(비록 소속 선수가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등 빅4 클럽 외 선수는 A.영과 제임스뿐이었다. 측면을 날카롭게 치고 들어가는 천성의 민첩함과 양발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다재다능함, 좌우 측면 어디에서도 상대를 괴롭히는 플레이 등 유틸리티 능력이 찬사를 받고 있다. 지난 1월 블랙번전에서 보여주었던 절묘한 오른발 프리킥 등 전담 키커로서의 날카로움도 빛을 더하고 있다. 특히 이번 시즌은 공격력이 배가됐다는 평가다. 프리미어리그 승격 이후 개인 최다골(7골)을 넣었고 어시스트는 왕좌를 노릴 만큼 많은 포인트를 올렸다. A.영의 올시즌 도움은 17개. 아스날의 파브레가스(19개)에 이어 2위다. 3위권의 루니, 제라드, 베르바토프(이상 11개) 등 쟁쟁한 선배들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A.영이 프리미어리그 진입 2년 만에 이룬 성취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성장세가 아닐 수 없다. |
페트로프가 최고 선수로 거듭난 데에는 왼발이 큰 몫을 했다.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페트로프는 어린 시절부터 불가리아의 축구 영웅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를 우상으로 삼고 자랐다. <포포투>에 따르면 심지어 그의 버릇까지도 따라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 페트로프가 스토이치코프처럼 왼발에 특히 강한 선수로 성장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볼프스부르크에서 맹활약을 펼친 페트로프는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러브콜을 받고 이번엔 스페인 리그로 건너간다. 이적료는 무려 1천만 유로. 그리고 이 곳에서 두 시즌을 더 뛰며 유럽 무대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고 대표팀에서도 중요한 골을 잇달아 성공시켜 베르바토프 못지 않게 불가리아 축구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로 거듭나게 된다. 그 뒤, 2007/08 시즌을 앞두고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한 페트로프는 브라질 출신의 엘라누와 함께 공격을 이끌며 맨시티의 리그 초반 돌풍을 주도한다. 사실, 페트로프의 활약을 확신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능력 파악의 귀재'라는 에릭손 감독의 선택이긴 하지만, 몸싸움이 강하기로 유명한 잉글랜드에서 데뷔 첫 시즌부터 맹활약을 펼칠 것이라 생각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 하지만 에릭손 감독은 그를 믿었고 이에 고무된 페트로프는 시즌 초반부터 골과 도움을 연일 기록하며 팀의 급상승을 이끌기에 이른다. 시즌 초 풀럼과의 3-3 무승부 경기에서 2골을 몰아친 장면은 그에게 잉글랜드 적응 시간이 그리 길게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완벽한 개인기로 만들어낸 첫번째 골과 엘라누와의 호홉을 과시하며 뽑아낸 두 번째 골은 모두 팬들의 갈채를 이끌어냈다. | |
A.영은 아스날의 열렬한 팬이었다. 특히 거너스의 영웅 이안 라이트를 좋아했고 존경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A.영의 형제들도 아스날의 팬이었다는 점. 부모님은 토튼햄의 서포터였다. A.영의 고향이 런던 북쪽에 위치한 스티버니지인 영향으로 풀이된다. A.영이 현재 뛰고 있는 아스톤 빌라와는 거리가 있는 가족내력이었다. A.영 가족 이야기를 꺼낸 건 A.영의 미래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볼만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A.영은 2007년 초 아스톤 빌라로 건너왔다. 그 이전 웨스트햄이 1000만 파운드(200억원)의 이적료를 제시했지만 웨스트햄의 2부 추락을 우려한 A.영의 거부로 계약이 무산됐다. 아스톤 빌라가 800만 파운드(옵션 최대 975만 파운드)라는 당시 겨울이적시장 최고 이적료를 제시했을 때도 웨스트햄의 이적을 거부한 이유 등이 거론되며 계약 성사가 쉽지 않다는 전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한편에선 흥미로운 예측이 제시됐다. A.영의 가족 이야기를 꺼내며 A.영이 토튼햄과 아스날 등 런던을 연고로 하는 팀으로 이적을 할 것이라는 보도였다. 결과적으로 A.영이 아스톤 빌라로 이적했지만 시기는 장담할 수 없어도 A.영이 팀을 떠나 런던 클럽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어지고 있다. 아스톤 빌라의 현재순위는 6위. 웨스트햄과의 최종전을 승리한다면 UEFA컵 진출권을 획득한다. 근래 10년간 최고의 성과다. 욘 캐류, 가브리엘 아그본라호르, 가레스 배리 등과 함께 발군의 기량을 과시한 A.영에게 모이는 시선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이끄는 삼사자 군단에서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A.영의 미래가 어떠한 모습으로 펼쳐질 지 기대감으로 다가온다. |
페트로프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다. 한국 나이로 벌써 서른에 다다른데다, 에릭손 감독 못지 않게 넓은 이마가 노장의 풍모를 느끼게 하긴 하지만 벌써 5개 나라의 리그를 거치며 쌓은 풍부한 경험과 이를 가능케 했던 도전 정신은 페트로프를 여전히 전도유망한 선수로 평가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경기장 위에서 끊임없이 빈 공간을 누비며 공을 주고 받고, 과감하게 차고 들어가 슛으로 마무리하는 그의 스타일은 EPL에서 그가 이룰 것이 훨씬 더 많이 남아있다는 믿음을 준다. 포츠머스와의 경기에서 익숙하지 않은 '오른 발'로 골을 만들어낸 장면은 그 믿음의 또다른 근거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어느 정도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낸 페트로프는 이제 대표팀에서도 더 나은 성과를 얻기 위해 노력 중이다. 베르바토프(토트넘), 스틸리안 페트로프(아스톤 빌라), 보지노프(맨체스터 시티) 등과 함께 불가리아 대표팀의 핵심 요원으로 활약 중인 그는 불가리아 축구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베테랑. 스토이치코프 세대가 활약했던 94년과 98년 월드컵 이후 불가리아 축구는 유로2000과 2002년과 2006년 월드컵에서 모두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유로2004에서는 조별 리그 3경기를 모두 패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에서 맹활약중인 멤버가 많은 현재 팀에 거는 기대는 더욱 크고, 페트로프의 왼발에 걸린 불가리아 축구팬들의 희망은 여전히 묵직하게 느껴진다. 이탈리아, 아일랜드와 함께 8조에 속한 2010년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 불가리아의 선전이 기대되는 이유는 올 시즌 EPL에서 페트로프가 펼친 맹활약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2008년 가을은 페트로프 축구 인생에 매우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이다. 2008/09 시즌과 2010년 월드컵 지역 예선이 동시에 시작되는 그 때에도 페트로프의 왼발이 불을 뿜기를 기대해본다.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football&ctg=vs&mod=read&position=MF_1&nt=20080508105915
첫댓글 잠재성은 영 현재는아직 페트로프인듯..
fm에서 본좌로 떠받들어지던 페트로프...AT에서 죽쓴다고해서 fm이 이번만큼은 틀렸군...했는데 맨시티 오더니 ㅎㄷㄷ
골킵은 VDS vs 제임스네요... VDS 한표
다우닝이없다T_T
FM계에선 한때 페선생이라고 까지 불렸던 왼쪽의 절대강자 페트로프.. 2007할때 공격포인트 압도적1위를 먹어주시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