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레이건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보를 지냈던 폴 그레이그 로버츠가 어떤 인터뷰에서 미국의 정치를 움직이는 세력에 대한 질문을 받았었습니다. 로버츠는 여기서 첫 번째로 군산복합체를 꼽았고 두 번째로 월가의 4-5개의 대형은행들을 언급했으며 세 번째가 이스라엘의 로비..미 최대 로비 단체인 AIPAC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죠. 현재는 공화당 계열의 인사들이 장악하면서 오바마와는 특히 더 갈등이 있기도 합니다. 네 번째가 농업 관련 산업 또는 기업 다섯 번째가 에너지 등의 채굴이나 채광 산업이나 기업 이렇게 해서 미 정치에 영향을 주는 세력들을 언급했었습니다. 농업 관련한 기업들은 카길이나 몬산토나 타이거 푸드니 많은 미국의 다국적 농축산물이나 식품 기업들은 잘 알려져 있죠. GMO 농산물 문제나 광우병이나 성장 호르몬제를 맞은 축산물 등의 문제점 등에도 항상 거론되고 있죠. 미국의 메이저 에너지 기업들도 잘 알려져 있죠. 그리고 이들이 사실 월가와 함께 결합되어 있기도 합니다. 역시 여기서 첫 번째 언급된 군산 복합체는 백악관을 실제 움직인다고 보여지는 상황들이 자주 나오고 실제로도 저도 언급했지만 국가안보시스템에 의해서 백악관을 움직이는 배후의 권력층으로 자리 잡았죠. 이들도 당연히 월가와 연결되어 있으며 주로 강경파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군부 자체가 강경파일 수밖에 없으며 이들이 기업과 만난 것이기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오는 것이죠. 월가의 영향력도 전부 알 것이고 유대로비 단체인 AIPAC을 통한 이스라엘의 영향력도 가공할 수준이죠. AIPAC이 자금력으로 볼 때 미국의 농업이나 에너지 기업들보다 압도적이기도 않지만 더 쳐주는 이유는 사실 강력한 단결력 때문에 그렇습니다. 거의 맨투맨 형식으로 의원들에게 접근해서 자금 지원을 명분으로 ( 선거 자금 등) 단체에서 결정된 사항에 따라서 조직 전체가 움직여지기에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히 강합니다. 미 민주당에선 소로스 등이 여기에 대응해서 민주당 성향의 J-스트리트란 단체를 만들기도 했죠. 하지만 아직은 영향력은 AIPAC에 못 미치는 모양입니다. 이 AIPAC의 존재가 미국이 자꾸 중동에 집중하게 만드는 요인 중에 하나입니다. 이들이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해서 미국이 대외 정책을 하도록 만들면서 중동에 과도하게 미 정권들이 계속 코를 빠뜨리는 상황을 만들고 있죠. 이들이 또한 미 강경파 의원들을 지원해줍니다. 민주당의 자유주의 매파들과 함께. 그러면서 대외정책의 중심이 자꾸 중동으로만 가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죠. 이스라엘은 그 전에도 몇 번 언급했지만 그레이트 중동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중동에서 유대인 제국을 건설하려는 숨겨진 꿈이 있습니다. 이 뿌리를 따진다면 현대 시오니즘의 아버지라고 하는 데오르드 헤르츨에서부터 출발하긴 합니다. 19 C 후반에 영미가 앵글로- 시오니즘 동맹을 만들고 제국주의를 위한 전비 마련을 위해서 유럽의 유대 자본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 헤르츨을 내세워서 이스라엘의 건국을 위한 비전들을 제시하면서 헤르츨이 알려지긴 하지만 시오니즘 자체는 그 이전에 이미 영국에서 크롬월에 의해서 제시된 것이 거의 시초입니다. 아무튼 이때 헤르츨에 의해서 언급된 것이 기본이 되어서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망을 버리지 않고 있죠. 당시 헤르츨이 수에즈 운하를 포함한 시나이 반도에서부터 유프라테스강까지의 지역에 유대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개소리로 유대 자본들의 참여를 꼬신 것이죠. 여기에 유럽에 당시 금융 제국을 건설했던 로스차일드 등이 함께 하게 된 것이고 이들이 영미를 더 많이 지원함으로써 1.2차 세계 대전에서 전쟁의 승패를 가르게 됩니다. 이러면서 앵글로 시오니즘 동맹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죠. 아무튼 그래서 영미가 팔레스타인이 살던 지역에 국가를 건설해주고 이의 명분을 주기 위해서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해주기도 했죠. 이것도 모르고 조선의 독립을 꿈?던 당시 독립 투사들이 (아무래도 국제 정세가 당시는 어두웠으니) 헤이그인가까지 가서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지지를 얻으려고 했지만 사실상 무시만 당하고 오죠. 약소국의 비애죠. 안타까운 일이고. 이미 사실 미국은 뒤로는 민족자결주의와 상반되는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몰래 일본과 맺고 필리핀을 처먹었죠. 대신 조선은 일본이 먹는다고 다 쇼부까지 본 상황이었기에 조선의 독립 요구는 받아 들여질 수도 없었죠. 가쓰라-테프트가 1905년이고 윌슨이 헛소리한 민족자결주의 선언이 1918년이니까 미국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잘 나타나죠. 민족자결주의 따지면 미국의 백인들은 당장 짐 싸가지고 영국이나 유럽 국가로 다 갔어야죠. 인디언들 다 학살하고 남의 땅을 차지하고 민족자결주의를 외친다는 것은 코메디죠. 아무튼 그런 뿌리에서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인 벤구리온이나 그리고 당시에 80년대 오데드 이논이 그런 망상에 따른 중동 정복 계획들을 세우죠.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강경파들이 미 강경파들을 지원하면서 결합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중동 정복을 위한 계획들이 미국에서도 나오게 되죠. 클린브레이크 문서를 통해서 중동을 청소하고 이스라엘의 제국 건설을 지원하면서 미국은 중동 에너지 시장을 완전히 통제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게 되죠. 소련이 해체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죠. 이후 결국 공화당의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 기업연구소의 지원을 받은 PNAC의 네오콘들이 행정부를 장악하게 되고 2003년에 이라크를 침략함으로써 지금까지 헤매고 있는 것이죠. 미국에선 92년에 울포위츠에 의해서 이 계획이 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도 아버지 부시가 이라크 후세인과 전쟁을 벌였었죠. 91년에 이라크를 침략함으로써 정복을 추진했다가 실패하기도 했었죠. 그러면서 계획이 다시 다듬어지고 강경파들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서 2003년에 이라크를 침략한 겁니다. 군산 복합체의 입장에선 사실 어디에서 전쟁을 하든지 전쟁만 하면 이익이겠죠. 월가의 입장도 다르지 않죠. 에너지 기업들의 입장도 그렇고 그래서 이스라엘이 로비 단체의 입장도 그렇고.. 농업 부분도 마찬가집니다. 식량 공급이나 식료품 공급 시장을 장악하면 막대한 이익이 생기기에 반대할 이유는 없겠죠. 그리고 에너지 패권의 장악은 본질적으로 미 달러 신뢰성의 기반이기에 미 국익에도 부합한다는 측면에서 중동이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석유가 있다는 이유 하나로 지금까지 미국의 동네북이 되고 있죠. 그 결과 이제까지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중동 전쟁으로 죽은 이슬람 주민들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죠. 그런데 이런 이슬람 주민들을 보면 테러 세력이라고 알고 있는 바보들이 많죠. 세뇌에 쉽게 당하는 대중들이 많습니다. 역사책만 몇 번 넘겨보면 아는데 인터넷만 몇 번 쳐봐도 아는데 워낙 바보들이 많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으로 죽은 주민들만 쌓아도 남산보다도 높을 수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죽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죠. 그런 이슬람 주민들이 테러로 자국민 몇 명 죽였다고 비난하고 겁이 난답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일제 시대에 일제가 조선의 독립군을 대할 때와 똑같습니다. 서구의 위선이며 이중잣대의 가치관이죠. 자신들은 수백만명 이상을 죽여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것이고 이슬람 주민은 단 한 명을 죽여도 반사회적인 테러범이며 국제적으로 응징해야 한답니다. 사실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 등에선 과거 소련의 영향력도 컸었지만 소련이 약해지고 해체됨으로써 영향력을 거의 잃게 되죠. 그러면서 남은 유일한 국가가 사실 시리아입니다. 시리아는 끝까지 러시아만 남았을 때도 동맹을 유지해줬었죠. 이라크의 후세인과도 동맹 관계이긴 했었는데 2003년엔 러시아는 힘이 없었죠. 그래서 지켜 주질 못합니다. 자국 정치, 사회 안정이 가장 중요했고 어려운 경제 상황을 회복시키는 것도 중요했기에 유엔 안보리에서 거수기의 역활을 하고 이라크를 버리죠. 중동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국가가 이라크임에도 불구하고 포기한 것이죠. 당시 러시아는 부시 정권 시절에 엄청난 수모를 당합니다. 내부적으론 친미 올리가르히들의 컬러 혁명의 위협을 받고 암살 위기에도 처하고 외부적으론 동맹국가들이 하나 둘씩 미국의 컬러 혁명과 직접 침략에 사라지는 것을 지켜만 봤죠. 우크라이나도 2004년인가요 오렌지 혁명으로 친미의 유센코 정권이 들어서면서 안보도 위협 받죠. 이외에도 키르키스탄의 튤립 혁명이나 그루지아 (조지아)의 장미 혁명, 타지키스탄에서도 혁명이 있었고 (이것은 막았지만) 우즈벡이 친미로 넘어가고 심지어 카자흐스탄까지 위협 받고 벨라루스에서도 혁명이 생기는 등의 엄청난 수모를 당했죠. 서쪽에선 유럽의 자주파들이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전략적 동맹을 맺긴 했지만 EU와 나토를 확장하면서 중립국으로 남겨두기로 했던 구소련 국가들을 다 뺏어갑니다. 이러면서 러시아의 푸틴이 열이 받긴 했죠. 구소련의 국가들은 러시아의 입장에선 한국으로 따진다면 제주도나 그런쯤되는 개념이죠. 경제가 어려운 러시아가 어쩔 수 없이 독립을 인정해줬지만 한 국가였던 지역들이죠. 그리고 독립의 조건도 서구와 러시아 간에 중립을 지킨다는 조건에서 이루어진 겁니다. 만일 한국 경제도 아주 어려워져서 서울 등의 수도권이나 충청권만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랬을 때 다시 당연히 재통일의 꿈을 가지고 경상도나 전라도의 분리 독립을 인정해주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겠죠. 그런데 여기를 일본이 조금씩 먹어 들어가는 상황이 러시아가 보는 유럽 상황입니다. 푸틴이 구소련의 영광을 찾겠다고 말한 것은 러시아 입장에선 아주 당연한 발언이란 겁니다. 1991년 말에 소련이 공식 해체됐고 89년부터 분리 독립이 되긴 했지만 당시로 따진다면 러시아의 입장은 내 땅을 뺏기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죠. 이렇게 된 원인들이 많긴 하지만 고르바초프가 확실한 협정을 서류로 남겼어야 했는데 그냥 말만 믿고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독립을 인정해주면서 논란도 있습니다. 동독의 독립을 인정해주면서 서독과 통일을 합의해줄 때 서독과 미국이 나토는 단 일인치도 동쪽으로 넘어가지 않겠다고 안심을 시켜줬는데 그 말만 믿고 동부 유럽 국가들의 독립을 전부 인정해줬다가 다 뺏긴 것이죠. 그러니 러시아에선 옐친이나 고르바쵸프를 좋아 하지 않죠. 병신쯤으로 보는 것이죠. 소련 해체 이후에 클린턴 행정부에서도 러시아를 계속 붕괴시키려고 했었고 이후의 부시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이런 이유 중에 하나는 당시엔 중국이 견제 받을 만큼의 국가가 아니였죠. 그래서 중동과 함께 러시아가 계속 집중 타겟이 된 것이죠. 하지만 미국은 클린턴 시기도 그렇고 부시 시절도 그렇고 중국도 견제를 계속 하긴 했죠. 그래서 당시엔 방어용이라는 명분의 MD 시스템이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추진되기도 했었고 논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닉슨 행정부에서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 적대적인 정책을 대놓고 하긴 어려웠죠. 소련 붕괴에 미국과 함께 전략적 동맹을 맺고 지원해줬었기에 그런 면도 있어서 러시아만 집중 타겟이 된 것이죠. 여기엔 러시아에 막대한 석유와 가스 그리고 우라늄이 존재한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또한 러시아는 정치적인 영향력이 여전히 있었고 군사적으론 여전히 무시 못할 강국이었죠. 그래서 당시엔 러시아만 최대 위협 국가로 낙인 것이었죠. 러시아 푸틴은 당시엔 최대한 미와 서유럽과 대립하지 않았습니다. 등소평이 말했던 도광양회의 전략을 썼던 시기죠. 당시의 푸틴의 대외 외교 등의 사진들을 보아도 약간 비굴한 모습들이 보입니다. 실제로도 그런 정책을 했습니다. 동맹국들도 다 버렸죠.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처럼 강하게 나오지 않았죠. 그리고도 웃으면서 서구 지도자들을 만나고 내치에만 집중했죠. 이것이 결국 터진 것이 2007년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죠. 미국을 푸틴이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비난하고 자국의 이익은 지킨다고 선언하죠. 하지만 서구는 전부 귓등으로 들었습니다. 왜? 푸틴이 집권 이후에 사실 자신들에겐 비굴한 별 볼일 없는 모습들만 보여줬기에 크게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2008년엔 사실상 러시아 땅인 남오세티아를 조지아를 통해서 침공하는 상황까지 나오게 된 것이죠. 당시 부시나 독, 프, 영 등은 이제까지도 푸틴이 자신의 동맹국들을 다 침략해도 그냥 넘어갔으니 남오세티아를 침략하더라도 서구와 단절하지 않으려고 대응하진 않을 것으로 봤죠. 그런데 러시아가 총 공세를 하면서 몇 시간 만에 조지아의 수도인 트리빌시까지 점령해버리죠. 예상치 못한 대응에 뒤늦게 함대를 보내고 협상을 하게 되면서 러시아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이후에 미국은 공황에 빠지고 패권이 본격적으로 약화될 조짐을 보여주죠. 그러면서 등소평의 도광양회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던 중국을 러시아가 끌어들이기 시작하죠. (후진타오 시기) 미국이 중동과 러시아에 집중하는 사이에 중국이 급성장을 하면서 아시아에서 일본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죠. 2010년부터 GDP가 일본과 역전되기 시작했으니까 당시까진 위협은 아니였지만 이젠 중국도 미국이 견제할 시기가 다가온 것이죠. 미국은 중국이 크려면 한 2015년인가? 이 정도가 되어야 위협이 된다고 보고 견제에 큰 비중을 두진 않았었죠. 그런데 중국의 성장이 워낙 놀라울 정도였고 그러면서 아시아에서 일본의 GDP까지도 완벽하게 추월하는 상황이 나오게 되죠. 여기엔 일본의 쓰나미가 결정적인 역활까지 해주죠. 일본이 영원히 중국을 따라잡을 수 없게 만든 큰 자연 재해죠. 그러면서 미국이 서둘러 아시아 중시 정책을 발표하게 되는 것이죠. 일본은 일본 나름대로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고 미국의 입장에선 중국에 대한 봉쇄를 더 이상 늦출 수 없게 된 것이죠. 이렇게 되니까 미국 내부의 세력 간에 어디에 더 중심을 둘 것인가의 이견 대립이 더 커지게 됩니다. 이전까진 사실 중국이 큰 위협이 아니였습니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확고한 패권을 가졌었기에 미국은 일본만 제어하면 됐습니다. 하지만 지진 해일까지 겹치면서 일본이 나락으로 추락하고 중국은 떠오르는 태양이 되면서 서둘러서 아시아로 올 수밖에 없게 된 것이죠. 이 상황에서 민주당이나 공화당의 온건파들은 아. 태지역의 봉쇄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강경파들은 그래도 러시아와 중동이다라고 보고 있는 것이죠. 어떻게 본다면 강경파들은 러시아와 중동을 확실하게 마무리하고 중국과 뒷마당인 중남미로 가자는 것이죠. 이렇게 갑자기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의 전략의 축이 아. 태 지역으로 이전되려니까 이스라엘의 강경파들이 똥 줄을 타게 된 것이죠. 중동에서 영토를 하나도 확장하지 못했는데 미국이 떠나면 중동에 이스라엘 제국을 건설한다는 꿈은 사라질 것이기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 역사상 최악의 미와 이스라엘 간의 갈등이 생겨난 것이죠. 오바마는 네타냐후라면 아예 인간 취급을 안 하죠. 네타냐후의 말은 믿지도 않습니다. 거짓말만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속이려고만 한다고 믿고 있죠. 네타냐후도 똑같죠. 둘 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싫어하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물론 국가적으론 이스라엘은 중동의 미 지배력의 유지란 측면에서 절대적이기에 지원을 해주지만 백악관은 네타냐후를 인간적으로 싫어하죠. 임기 끝나면 화해할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무지 싫어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이 되면서 미 행정부가 분열되는 시기가 바로 2012년 6월 제네바 합의부터 입니다. 이때부터는 전략의 우선 순위가 본격적으로 온건파와 강경파 사이에 대립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도대체 미국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정책이 계속된 것이죠. 백악관을 보면 중국으로 가려는 것이 보이는데 하는 일은 여전히 중동과 러시아에 집중하고 있는 이해 못할 전략들이 섞여서 나오게 됩니다. 오바마는 중국이 시급하다고 보고 일단 중동을 덮고 중국으로 당시에도 가려고 한 것이죠. 그런데 자유주의 매파들은 백악관의 지시를 어기고 중동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힐러리와 페트레이어스 등의 짤리죠. 하지만 행정부의 대부분은 민주당의 네오콘이라고 볼 수 있는 CNAC의 매파들이 장악하고 있었기에 이들을 짤라도 바뀌지 않고 있죠. 그러면서 오바마가 지신이 신뢰할 수 있는 극소수의 인사들만 가지고 국정을 운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비밀 국정 운영을 하게 되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행동하는 국방 장관들이 짤리거나 또는 희생양으로 이용하게 되죠. 그리고 전권도 주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았죠. 백악관의 온건파들의 전술과 강경파들의 전술은 원래 차이가 좀 있는데 일부 미 정책들을 보면. 우크라이나 사태도 그렇고 북한 문제도 그렇고 샤를리 엡도 사건도 그렇고 누구의 전략인지 구분하기 어렵거나 또는 백악관이 아닌 강경파들의 전략으로 보여지는 상황들이 자주 나오게 되죠.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최종적인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중요한데 상당히 혼란한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해석도 누구를 중심으로 놓고 보느냐에 따라서 180도 다른 해석이 나올 정도로 중요하지만 구분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백악관이 지시해도 어차피 미 행정부에서 할 것이고 백악관 지시가 없는데도 해도 어차피 행정부가 하겠죠. 이런 상황에서 백악관은 자신의 지시가 아닌 일이라고 해도 시키지 않은 일이란 말할 수 없겠죠. 반대로 강경파들은 백악관의 지시를 어기고 한 일을 자신들이 지시없이 한 일이라곤 말 못할 겁니다. 이런 것이 까발려지면 미 체제가 흔들리게 되죠. 국민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이해 못하겠죠. 그래서 미 언론들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진 않지만 아무도 얘기해주진 않죠. 그래서 분석이 더 어렵습니다. 만일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전투가 돈바스랑 다시 시작됐다고 보도가 나오면 이것이 오바마 생각인지 아니면 행정부 독단인지를 구분부터 해야만 무엇을 노린 것인지를 알 수 있기에 사실은 정세 분석이 지금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선 러시아의 반응이나 또는 독. 프 등의 반응도 봐야 하고 어떤 정세에서 발생된 것인가 등도 구분해야 하는데 일반인들이 사실 분석하긴 어렵겠죠. 저도 사이비이기에 한계도 있고. 지금 경제 정책도 마찬가지죠. 대외 정책에 따라서 경제 정책도 달라져야 하는데 금리를 올릴지, 내릴지도 예측도 그래서 어렵습니다. CFR이 지원을 해주긴 하지만 영향력 측면에서 군산 복합체나 월가 또는 AIPAC 만큼의 영향력은 없습니다. 러시아의 발다이 클럽이 러시아를 움직이는 것은 아니듯이 엘리트들이 여론이란 측면에서 영향력이 있는 것이지 그렇다고 행정부를 직접 움직이고 그런 것은 아니기에 백악관이 엘리트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면서 정당성과 명분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강경파들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또 아닙니다. 레이시온과 같은 군사 업체는 백악관 안엔 반발하고 있죠. 물론 레이시온은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강경파들을 지원해줄 겁니다. 세부적인 자세한 분석은 너무 들어가는 것 같아서 언급하진 않았지만 일단은 많은 군사 기업들도 백악관 안이나 유사한 안을 지지하긴 합니다. 중동 전쟁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4 가지 정도의 의견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 백악관의 안과 그리고 이와 유사한 안이 많은 지지를 얻고 있죠. 가장 현실적이고. 자스민 혁명 이전으로 복원이거나 또는 일부는 리폼맵에 따르는 안인데 더 세부적인 것은 제가 CIA 정보원도 아니니 모르고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강경파들은 다르기에 이들이 자꾸 지시를 어기죠. 자신들이 백악관이 지시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합니다. 여기에 행정부의 대외 정책에 개입하면 안되는 공화당의 강경파 인사들이 지들이 백악관도 무시하고 이스라엘을 만나고 우크라이나 포로센코를 만나고 사우디의 국왕을 만나면서 외교를 합니다. 공화당의 상원 의원인 매캐인이 이 짓을 하는 대표적인 인사죠. 사실 미 외교는 지금 보면 개판입니다. 이 매캐인과 린지 그레이엄이 공화당의 대표적인 중동 전쟁을 주장하는 강경파죠. 둘이 짝짝꿍이죠. 이스라엘의 제국 건설에 동조하고 있고( 시오니즘 사상) 과거 브레진스키의 전략에 따라서 소련을 무자헤딘으로 통해서 막았던 핵심 인물로 이슬람 지하드 운영을 총괄하고 있죠. 그리고 이들과 민주당 싱크 탱크인 CNAS (공화당의 PNAC와 같다고 보면 됩니다.)의 인사인 힐러리나 눌랜드, 사만다 파워, 캐서린 애슈튼이니 존 앨런, 페트레이어스 이런 자유주의 매파와 연결되어서 백악관의 지시 없이 중동에서 전투를 하고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하고 이러고 있는 중이죠. 2012년에 뱅가지에서 죽었던 미 대사인 스티븐스도 오바마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자유주의 매파들과 함께 시리아 전쟁을 다시 확대시키고자 (제네바 합의를 깨려고) 뱅가지의 비밀 CIA 기지에서 무기 등을 터키를 통해서 시리아의 알 누스라 전선 등에 공급하고자 하다가 모하메드 조롱 사건으로 이슬람 지하드 시위 세력에게 죽은 것이죠. 코메디죠. 자신이 지원해주려던 세력에게 자신이 죽은 겁니다. 병신이죠. 당시엔 IS가 아니였고 카타르가 지원하던 이슬함 형제단과 연결된 알 누스라 전선이 가장 컸었죠. 오바마는 이런 사실도 몰랐다가 미 대사가 죽은 이후에 사건 전말을 안 것이죠. 그러면서 이와 연관된 CIA 국장과 당시 나토 사령관 후보였던 존 엘런을 징계를 먹이죠. 페트레이어스는 힐러리와 함께 짤리고 존 엘런은 살아남아서 중동 전쟁의 총 사령관으로 남아서 계속 헛짓하고 있죠. 이런 것도 나중에 밝혀지게 된 것이죠. 당시엔 대선 기간도 겹친 시기였고 자유주의 매파들도 백악관 몰래 작업을 해야 하니 정보들도 거의 나오지 않았었죠. 그래서 사실 국제 정세를 시차 없이 제대로 분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미 오바마도 모르게 하는 일들이 다반사가 되면서 분석이 더 어려워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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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그렇군의 국제정치 원문보기 글쓴이: 그렇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