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말씀(2022.12.4일) 말씀/ 느헤미아 1:3~ 2: 10
이런 기도를 하라 “왕에게 고하되 왕이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2:5)ㅜ
여러분 기도 많이 하시나요? 어떻게 기도하시는가요? 6.25전쟁이 한창일 때 한 종군 취재 기자가 포탄이 나르고 있는 전쟁터의 참호 속에 들어가 있던 한 유엔군 병사에게 이 순간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내일을 주십시오.”(Give me tomorrow) 문화적 선진국 사람들과 후진국 사람들을 구별하는 가장 현저한 차이는 내일을 대하는 태도라고 합니다. 주님은 내 일 일을 위해서 오늘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기도는 오늘의 문제만 아니라 내일을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HOW to pray
오늘 본문은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정치적 불안정한 시대 속에서 바사 나라의 외국 왕을 섬기는 위치에서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포로의 자손으로 멀리서 조국 예루살렘 성이 폐허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는 외세의 침입을 받으며 안정되지 못한 조국의 희망이 없고 암담한 현실을 보며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한다고 당장 그의 조국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치 않고 계속 기도를 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4: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데살로니가 전서 5:25절은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아무리 현실이 암담해도 포기치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가정의 미래, 자녀들의 미래,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올해 다은이 민우 민주가 대학에 들어갑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장래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늘 걱적이 될 것입니다. 자녀들의 장래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걱정대신 미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느헤미아가 어떻게 어려운 현실 앞에서 기도를 하였는가 배우고 기도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기도하며 내일을 잉태하였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밝은 미래를 품고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희망을 버린 사람은 더이상 기도하지 않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희망을 붙들고 삽니다. 성경은 느헤미야가 조국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여 마침내 조국에 돌아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경과 되었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2:1에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때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 재건 프로젝트가 시작된 달이었습니다. 니산월은 오늘날 달력으로 4월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한 기도를 시작한 것은 1:1에 보면 “--아닥사스다왕 제 이십년 기슬르 월로 되어 있습니다. 11월에서 12월경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4개 월 이상 경과한 것입니다. 그는 4개월 동안 기도하며 기다린 것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단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며 조국의 아름다운 내일을 잉태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아이를 잉태하면 10개월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새 생명이 태어날 것을 소망하며 건강관리도 잘 하고, 음식도 잘 먹고,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하며 기다립니다. 딸인가 아들인가 딸인가에 따라서 옷이고 양말이고 필요한 것등을 미리 준비해놓습니다. 이것이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잘 기다리지를 못합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뛰고,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 자동으로 닫히는 문의 단추를 눌러 댑니다. 인터넷을 보니까 한국 사람들의 참지 못하는 성질 몇 가지가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복사기에 종이가 나오기 전에 잡아 빼는 사람, 커피 자판기에 커피가 나오기도 전에 컵을 잡고 빼려는 사람..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 빨리"라고 합니다. 중국 사람들의 특징은 만만디. 지금도 그런가 모르겠네요. 이런 습관은 우리가 기도하는데도 성격이 나타납니다. 기도를 시작하고 당장에 응답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꾸준히 잘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결코 헛 시간이 아닙니다. 여러분 당면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랍니까? 평안하기를 바랍니까? 가족들 자녀들의 미래가 잘 되기를 바랍니까? 좋은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미래를 기대합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이런 노래도 있지요. 지금부터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미래를 위해서 심고 저축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좋은 것을 거둡니다. 누가복음 18:1 이하에 주께서는 기도에 대해서 불의한 일을 당한 과부의 예를 들어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바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십니다. 원한 맺힌 과부의 기도도 응답되었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충분히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현실이 암담해도 미래는 아름답습니다. 아멘!
둘째, 기도하며 내일을 계획(plan)했습니다. 느헤미야가 기도하며 또 한 가지 한 일이 있었다면 내일을 계획하는 일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모시고 있던 왕으로부터 그가 기다리던 중 결정적인 질문을 받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그는 마음속에 품고 기도하던 제목을 내어놓습니다. “내 고향 내 조국 이스라엘 땅 예루살렘에 돌아가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라고. 왕은 다시 묻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게 되겠느냐?” 이 때 6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가 “기한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 재건 프로젝트가 소요될 시간을 산출해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7절 이하에는 그가 왕에게 이 프로젝트의 완수를 위한 구체적인 도움의 리스트를 열거합니다. 이 리스트를 보면 우리는 느헤미야가 이 기간 동안 얼마나 치밀하게 기도하며 준비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우선 왕이 주변 총독들에게 조서를 내림으로 그가 예루살렘까지 도착하는 일에 장애가 없게 명령서를 하달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7절에는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려 성과 가옥 건축에 필요한 충분한 재목들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기도는 가만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를 따라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계획을 세우는 일은 마치 아이의 생명을 잉태한 엄마가 기다리면서 태어날 아이를 위해 여러 가지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는 10개월이 되면 분명히 태어날 것인데 10개월 동안 가만히 있는 엄마는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날 경우에 먹일 이유식, 기저귀, 입힐 옷가지며 신발이며 준비를 합니다.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으며 하나님이 다하신다고 하는 사람은 신비주의자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간단히 하고 내가 다 머리를 써서 다 준비하려는 사람은 인본주의자입니다. 극단에 치우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하며 계획합니다. 기도하며 비전을 보고 계획을 수립합니다. 느헤미아는 그렇게 기도와 비전을 함께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느헤미아에게 꿈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 과정에 함께 하셨습니다. 느헤미아는 기도 중에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캐취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사 왕을 통해서 느헤미아의 계획이 실현되도록 도우셨습니다. 우리가 세계선교를 하고 싶은 마음 소원이 일어났다고 할 때 믿고 그냥 떠나면 됩니까?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도전적인 믿음입니다. 그러나 더 지혜로운 사람은 그 나 언어를 공부하고, 필리핀 이면 필리핀 탸국이면 태국 로마면 로마 그 나라 문화를 공부하고 사람들을 연구하고 배우는 일을 할 것입니다. 또 그 나라 사람들이 요즘 중요시 하는 것이 무엇인가? 요즘처럼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한다고 하면 한국어 언어 자격증도 따야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복음을 효율적으로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꿈은 꾸는데 구체적인 계획을 담고 실천해나가지 못합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과연 나같은 사람이 잘 할 수 있을까 실패에 대한 두려움와 의심입니다. “이렇게 상황이 어려운데 기도한다고 일이 해결될까?” 존맥스웰은 이렇게 말합니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계획하지 못하는 사람은 실패를 계획하는 것입니다.”(John Maxwell). 진정 복된 내 일을 잉태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비전을 받고 주께서 주신 비전에 따라 치밀하게 내일을 계획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해야 하는 것은 안 된다는 생각과 싸우는 것입니다. 부정과 불신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기도란 무정과 불신과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긴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일하시는 것을 보며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멘! 셋째, 기도하며 기회(opportunity)를 찾았습니다. 기도하는 느헤미아가 한 일은 그 다음 기회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기회를 찾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기도하며 계획한 바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결정적인 때를 찾고 그 때를 붙잡는 것입니다. 기회란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기회란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에게 다 한두 번씩은 온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멋진 백마가 한 두 번은 내 앞을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탈 수 있는가? 준비된 자가 탄다는 것입니다. 준비된 사람은 기회를 잡는 것이고 준비가 안 된 사람은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그동안 기도하고 계획을 세우며 준비한 느헤미아에게 어떤 기회가 왔습니까(2)?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색 즉 근심의 표정이 있는 것을 보고 왕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때로 본 것입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왕께 대답을 했습니다.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까?” 그러자 왕이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4) 그는 다시 묵도합니다. 감사의 기도와 함께 이제 결정적인 기회를 잘 잡을 수 있도록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제 5절을 보십시오, 드디어 그의 요청을 내놓습니다.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는 마침내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왕은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고 묻고 보내기를 즐겨하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요구한대로 강 서편 총독들에게 조서를 내려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도록 합니다. 느헤미아 2:8절을 보면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 기회를 얻기 위해 기도해 왔던 것입니다. “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하여 형통하여 이 사람(아닥사스다 왕)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1:11)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의 기회를 주십니다. 아멘! 계속 기도하면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가끔 놓칠 때가 있습니다. 특히 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 할 때 기회가 중요합니다.
빌리그래함 목사가 존에프 케네디 대통령과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하고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후에 2-3년이 지 나간 후 빌리그래함은 케네디 대통령을 국가 조찬 기도회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 때 빌리 목사님은 감기에 걸려 있었는데 조찬기도회가 끝난 후 케네디가 “목사님, 잠시 백악관까지 가주시겠습니까? 잠시 목사님께 묻고 싶고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하더랍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빌리 목사님은 감기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감기가 들어서 병균을 옮겨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나중에 다시 기회를 주시겠습니까?”했습니다. “다음 기회라고요.---(더듬으면서)그렇게 하시지요”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해 11월22일 케네디 암살 소식을 듣게 됩니다. 대통령 암살소식을 듣자마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뇌리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감기로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했을 때 “다음기회라고요-- ”하고 더듬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다음 기회는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아침 마다 새벽에 산을 오르면서 때론 바닷가로 가서 기도를 합니다. 요즘을 큐티를 올리다보니 큐티 댓글에 맞추어서 댓글을 달면서 기도를 합니다. 전에는 내가 생각하는 관점에서 기도를 했지만 지금은 말씀 앞에서 고백하는 내용을 보며 기도하니 더 좋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객관적인 똑같은 기도를 하지만 말씀이 있으면 말씀에 비추어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게 됩니다. 이런 기도가 내일의 발전과 변화를 위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만 가지고 기도하고 문제가 없으면 안하는 기도가 아니라 문제가 없어도 말씀 앞에 비추어 계속 성장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칫 종교적 형식에 붙들리다 보면 매너리즘의 기도를 하기 쉽습니다. 일상적인 대표기도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매일 말씀을 붙들고 묵상하는 우리 동역자들의 기도를 들으면 감동이 됩니다. 서광호 목사님 한 번씩 기도 평을 하십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는데 이제는 익숙하다고 하고, 지난 번에 김재중 집사님 기도 할 때는 목숨을 거는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문제가 있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미래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이런 미래를 준비하는 평상히 기도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결론, 예수님은 언제나 기도하시면서 때에 민감한 인생을 사셨습니다. 때가 되지 않으시면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의 사역의 절정의 시간에는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다 소명을 이루시는 십자가의 고난의 시간이 가까이 왔을 때 “내 때가 이르렀사오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나 때를 붙잡으셨습니다. 마침내 우리의 죄를 대신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우리는 구원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인생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여전히 소망 중에 기도하며 내일을 잉태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계획하며, 기회가 올 때 몸을 던져 기회를 잡는 준비된 사람, 이러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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