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소비자집단분쟁조정위원회는 회의를 열고 한국소비자원 주택공산팀에서 신청한 충북 청원군 오창면의 우림필유 1차 아파트 새시 관련 분쟁을 집단분쟁조정 대상으로 선정했다. 3월 개정된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도입된 집단분쟁조정제도의 첫 번째 대상이다.
충북 청원 우림필유 1차에 이어 남양주시 도농동의 남양주i좋은집 아파트도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서 다뤄지게 됐다. 이 아파트 소유자 57명은 분양계약서상에 명시된 독서실·헬스장 등 주민 공동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다며 시공사인 남양건설을 상대로 주민 공동시설 설치 및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남양주i좋은집 아파트가 집단분쟁조정 대상이 될지 여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아파트 관련 분쟁이 잇따라 소비자집단분쟁조정위원회에서 다뤄지게 되면서 건설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가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선례가 없어 향후 이 제도가 미칠 영향을 가늠해 볼 수가 없어서다.
같은 피해 50명 이상이면 신청 가능
집단분쟁조정은 같은 제품·서비스 등으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을 신속히 구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피해 종류에는 제약이 없다. 주택 관련 분쟁의 경우 부실시공이나 과대·과장광고 등 모든 분쟁이 집단분쟁조정 대상이다. 다만 같은 제품·서비스 등으로 같거나 유사한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최소 50명 이상은 돼야 신청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하려면 일단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에 민원을 제기해야 한다.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집단분쟁조정 신청 자격이 없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한국소비자원, 민간 소비자단체에만 집단분쟁조정 신청 자격이 있어서다.
따라서 번거롭지만 집단분쟁조정을 신청하려면 일단 ▶정부(청와대·국무총리실 민원실 등) ▶지방자치단체 민원실 ▶한국소비자원 ▶민간 소비자단체(중앙·지방에서 현재 활동 중인 모든 민간 소비자단체) 등에 구체적인 피해 내용 등을 적어 민원을 제기해야 한다. 그러면 이들 민원 접수 단체들이 1차적으로 민원 내용을 살펴본 뒤 집단분쟁조정 신청을 한다.
민원 접수 창구가 일원화 돼 있지 않아 소비자 입장에서는 헷갈리고 불편할 수 있지만 가급적이면 한국소비자원(www.kca.go.kr)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집단분쟁조정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재정경제부 소비자정책과 관계자는 "민원 접수 창구를 단일화하기 위해 논의 중"이라며 "민원 접수 창구 단일화 전에는 한국소비자원에 직접 문제 제기를 하는 게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이라고 전했다.
분쟁 조정 신청을 받은 소비자분쟁위원회는 신청 소비자(조정 당사자)들의 자격 등을 따져 일단 집단분쟁조정 여부를 정한다. 만약 신청 소비자 중 해당 피해를 입지 않은 소비자(분쟁 조정 최소 인원을 맞추기 위한) 등이 있는 경우에는 신청을 각하할 수도 있다.
소비자분쟁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해 50인 이내로 구성된다. 상임위원은 위원장을 포함해 2명이고, 나머지는 소비자단체 임원 등 모두 비상임으로 구성한다. 위원장은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임명·위촉 한다.
집단분쟁조정 대상으로 결정되면 소비자분쟁위원회는 한국소비자원 홈페이지나 전국에 보급되는 일간신문 등에 14일 이상 절차 개시를 공고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같은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있다면 서면으로 조정 당사자로 추가 신청할 수 있다.
조정 내용은 확정 판결과 동일 효력
집단분쟁조정은 절차 개시 공고가 끝나는 다음날로부터 30일 이내에 끝난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데 조정기간은 소비자분쟁위원회가 정한다.
집단분쟁조정에서 결정된 내용은 조정 당사자들에게 즉각 통보된다.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결정 내용에 대한 수락 여부를 소비자분쟁위원회에 통보해야 하는데, 15일 이내에 의사표시가 없는 경우에는 수락한 것으로 본다.
어느 한쪽이 조정 내용을 거부하면 소비자들은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집단분쟁조정은 말 그대로 강제력이 없는 조정인 때문이다. 다만 이런 경우 정부는 소비자들의 민사소송 등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양쪽이 모두 수락한 경우 조정 내용은 민사소송법상 확정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따라서 분쟁 조정 후 당사자 어느 한쪽이 조정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집행문을 받아 강제 집행할 수 있다. 또 같은 사안을 가지고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이처럼 분쟁 조정이 신속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신속하고 경제적으로 분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동안은 소비자들이 직접 민사소송 등을 제기하고 승소해야만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공급자인 기업들에 비해 약자일 수밖에 없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소송 등을 진행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도 오래 걸릴 뿐더러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때문이 이 제도의 시행으로 소비자 문제를 보다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건설업계는 긴장
집단분쟁조정의 첫 대상이 된 충북 청원 우림필유 아파트는 주민과 새시 시공 업체의 문제여서 건설사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하지만 ▶유리 ▶미장 ▶도장 ▶방수 ▶기계설비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집단분쟁조정의 당사자는 건설사가 된다.
때문에 건설업계는 분쟁조정제도가 막대한 경제적 피해와 이미지 악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관련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제적인 면은 접어 두더라도 일단 집단분쟁조정 대상이 되면 신문 등에 공고가 나가기 때문에 건설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업계 일각에서는 분쟁조정을 신청하는 소비자단체 등과 조정절차를 담당하는 소비자분쟁위원회가 건설업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고, 기업보다는 소비자에게 치우쳐 공정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자료원:중앙일보 2007.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