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각의 제국’은 영화가 만들어지던 당시 25년 전의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였다.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를 정사 중에 죽인 후 그 성기를 잘라서 속에 품고 다녔다는 ‘아베 사다’라는 일본 여인의 실화를 영화화했던 그 영화는, 그런 충격적인 소재를 영화로 만들기로 선택했다는 점 외에도, 프랑스에도 모든 자본을 댐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작상의 문제에 있어서 감독이 거의 무제한의 선택권을 누릴 수 있는 그런 형식의 일본-프랑스 합작영화라는 점-감독인 오시마 나기사씨의 말을 따오자면, ‘거의 전액을 프랑스가 부담한다. 영화는 일본어로 만들어지고, 프랑스의 출연자는 없어도 되고, 스텝은 거의 다 일본인이라도 좋다는 조건, 그것만으로도 확실히 다른 이때까지의 합작영화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도였다.’라고 한다-, 그리고 남녀주인공 역을 맡은 두 남녀 배우가 정사 신을 실제 정사를 통해 촬영했다는 점 등에 있어서 엄청난 충격을 주었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인간의 욕망을 철저하게 찍는 것이 영화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철저한 성적 표현을 위해 정사 장면을 연기가 아닌 실제 장면으로 찍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일본은 ‘자유주의 국가 중에서는 가장 엄격한’ 상영 시준을 가지고 있어 과다한 노출이나 특히 성기 노출, 베드신등은 제작, 현상, 편집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다. 결국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일본에서 현지 로케를 하는 프랑스 영화’라는 기발한 방법으로써 영화를 찍게 된다. 일본에서 전 영화를 찍되, 미현상된 필름을 프랑스로 가지고 가서 편집과 음악 작업 등 나머지 일체의 작업을 프랑스에서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기지를 발휘해 완성을 했던 그 영화는 더 큰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 영화의 성적 표현 뿐 아니라, 몇몇 장면에서- 어린이들이 일장기를 매단 깃대로 늙은 걸인의 성기를 건드리거나, 군대가 진군해가는 상황에도 상관없이 성에 탐닉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 등이 일본을 폄하하고 조롱하는 것으로 비추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 ‘감각의 제국’ 시나리오 집을 지칭하는 외설물 유포혐의로 발행인과 함께 고소당하여 재판 중이던 감독에게 있어서 그것은 재판을 힘들게 하는 악영향을 주는 요소였다. 한편의 영화가 아무런 편견 없이 상영되는 사회를 위한 지루한 법정투쟁은 7년간이나 계속되었고, 결국은 무죄로 풀려났지만 영화자체는 상당부분 모자이크 처리가 되는 수모를 겪었다. 오리지널 영화가 상영되었던 곳은 프랑스뿐이었다. ‘나에게 있어 포르노영화란 성기나 성행위를 찍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포르노 영화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기 때문에 성립되는 개념이며 〈감각의 제국〉은 볼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일본에서는 완벽한 포르노 영화가 되었다.’ 라고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말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도 25년 전의 일본과 같은 이유로 감각의 제국은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른 작품이었다. 수입 자체도 난항을 겪었었으며, 외국에서 수입된 작품을 그대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도 이슈가 되었던 문제였다. 〈감각의 제국〉외에도 우리나라의 심의 위원회의 가위질을 당한 일로 문제를 일으켰던 영화가 여러 편 있었는데, 그러한 작품의 감독들 중 한 명은 크게 화를 내며 항의를 했던 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었다.
결국 〈감각의 제국〉과, 그 때를 같이한 몇몇 영화들은 우리나라의 영화 심의제도와 영화 심의 등급위원회, 그리고 영화를 심의하고 등급을 부여하는 기준에 대하여 사람들의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선동자 역할을 했으며, 그 논의는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이루어져 최근에는 70대 노인들의 사랑을 다른 우리나라의 영화 〈죽어도 좋아〉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몇 년 전만 헤도 여러 명의 시인, 소설가 그리고 교수를 법정에 서거나 감옥에 갇히게 했던 출판물 심의, 종종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거나 가사를 고쳐야만 하는 음반 제작 심의, 몇몇의 연극들이 공연을 중단하게 되는 공연 심의 등 우리 주변에서 우리가 문화라고 즐기는 여러 분야에서 심의의 그림자는 가실 줄을 모른다. 그나마 다른 분야는 많이 누그러졌지만 영화에 있어서만은 아직 심의를 빙자한 제한의 영향이 꽤 큰 듯하다.
이러한 심의 제도는 그렇다면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가? 확실히, 인류가 문화라는 것을 문화로 인식하고 ‘문화생활을 한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 때부터 ‘심의’라는 행태도 항상 있어왔던 듯 하다. 우리는 그 기원을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서양사회의 문화와 학문이란 것이 거지반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와 학문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그러한 그리스 로마시대의 학문의 대부분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아카데미 학파에 이르러 틀이 잡히고 집대성이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양문화의 영향을 극심하게 받고 있는 우리 동양에 있어서도 이제 그 세 사람의 그리스 철학자들의 영향이 무시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특히나 영화처럼 서양에서 처음 시작되었던 문물일 경우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스승의 가르침에 있어 대부분의 경우 반대되는 입장을 취했다고 여겨지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논외로 하더라도, 소크라테스와, 그의 가르침을 후세에 전하며 자신의 생각 또한 덧붙여 서양학문의 근간을 이룬 위대한 저서를 여러 편 남겼던 플라톤은 어떠한 형태로 현대의 심의 제도에 영향을 미쳤는가?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를 플라톤과 같이 언급하는 이유는, 그를 처음부터 떼어놓고서는 플라톤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귀족 정치가 집안의 자제로서 그냥 있어도 그리스의 지도자 무리에 낄 수 있었고, 또한 정치적 야심에 가득 차 있었던 플라톤으로 하여금 철학을 하도록 만든 것도 소크라테스의 죽음이었으며, 또한 그가 남긴 대화편들의 대부분에 소크라테스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꿈에 새끼 백조가 자신의 무릎에 앉는 걸 본 다음 날 플라톤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들의 첫 만남이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소크라테스가 죽기 이전에 이미 이 젊은이의 심혼에 너무나도 큰 감화를 주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행각에 대한 철학적 재구성이 초기 대화편들로 결실을 맺게 된 셈인데, 이것들은 그런 성격 때문에 오늘날 ‘소크라테스적 대화편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대화편들은 대개 윤리적 개념을 ‘정의하는 일’이나 윤리적 문제들과 관련된 것이며, 논박의 성격이 강하다. 이 대화편들에서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용기나 우정, 절제, 분별, 아름다움, 신에 대한 공경 또는 불경, 올바름, 훌륭함(덕), 좋은 것 등의 개념에 대해 “그것이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묻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대화편들의 하나인《국가》에서 보편적으로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한 심의가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논리의 근거가 되는 소크라테스의 논의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비록 화자가 소크라테스로 되어 있는 논의들이지만, 이 국가편은 이미 플라톤의 대화편들 중에서 중기에서도 뒤쪽으로 넘어온 시기의 것이므로 여기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변자인 셈이다. 《국가》는 플라톤의 전 대화편 중 약 18%를 차지한다. 그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내용도 다양하다. 형이상학 ․ 인식론 ․ 윤리학 ․ 정치사상 ․ 혼에 관한 이론(심리학) ․ 교육론 ․ 예술론 등, 그야말로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국가》대화편은 플라톤 철학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국가》편 중에서도 바로 교육론과 예술론에 해당하는 부분을 우리는 참고해야 할 것이다. 플라톤은 이 대화편에서 그가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유토피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은 지상의 어디에도 있을 수 없는 ‘본’의 성격을 갖는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유토피아의 통치자는 철인 치자로서 세상의 명예나 물욕에서 초월하여 있는 자이다. 또한 그는 지성의 화신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런 사람의 출현도, 그리고 이런 사람의 수용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아마도 플라톤은 여기서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비극적인 죽음을 생각한 듯 하다). 그래서 그는 그 대안으로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서 입법을 하는데, 이들이 중지를 모아, 모든 법조문 속에 지성을 최대한 반영한 다음 개인이 아닌 법이 다스리도록 하는 것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법률편》에서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어떤 형태로든 지성이 지배하고, 지성이 실현되어 있는 나라를 꿈꾼 것이다. 그는 또한 이런 최고의 지성들은 ‘의당 천성으로 지혜를 사랑하며 격정적이며 날래고 굳셀’것이라고 한다. 잇따라 그는 이러한 최고의 지성들로 하여금 어떤 방식으로 양육되고 교육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다. 그들은 몸을 위한 교육으로는 체육을, 혼(마음)을 위한 교육으로는 시가(mousike-단순한 시가 아닌 음악이 함께 포함된 노래와 시를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를 꼽는다. 그들은 체육보다는 시가교육이 우선한다는 것에 동의하고 교육되어야 할 시가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러한 시가에 포함되는 이야기에 있어서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것들은 사실과 허구이다. 보통 허구를 먼저 교육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어리고 연약한 어린이들은 제일 유연성이 있어서 누군가가 각자에게 새기어 주고 싶은 인상이 제일 잘 받아들여지’며, 그러므로 ‘어린이들로 하여금 아무나 지어낸 아무 이야기든 닥치는 대로 듣게끔 경솔하게 내버려 둠으로써 그들이 성장했을 때 그들이 가져야만 할 것들로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과는 대개 반대되는 생각들을 그들의 마음속에 지니고 있게 내버려’ 둘 수는 절대로 없으므로, ‘그들로선 먼저 설화작가들을 감독해야만 하겠거니와’, ‘그들이 짓는 것이 훌륭한 것이면 받아들이되, 그렇지 못한 것이면 거절해야만’ 할 것이라고 한다. 이 ‘훌륭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의 차이는 분명하다. 계속되는 논의에서, 그들은 세세하게 그것들을 분류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누군가가 좋지 못한 거짓말을 했을 경우, 즉 어떤 사람이 신들과 영웅들에 관해서 그들이 어떠한 존재들인지를 말로써 묘사함에 있어서 나쁘게 하는 경우- 대화편에서는 크로노스가 우라노스에게 어떻게 복수했는지를 이야기한 거짓말을 들고 있다 -이다. 또한 진실이라 하더라도 철없고 어린 사람들을 상대로 경솔하게 들려줄 수 없는 경우- 크로노스 행적과 그 아들한테서 당한 수난 이야기를 말함이다- 도 들고 있다. 두 경우에 든 신화의 내용은 전부 아버지에 대항하여 아버지의 성기를 자르거나 아버지에게 약을 먹여 그가 삼켰던 형제자매들을 구출한 후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을 몰아내는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전자의 경우는 아예 함구하거니와, 후자의 경우에도 침묵해야만 하겠지만 불가피한 경우에도 소수만이 듣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신은 선하고 좋은 것이며, 그들에 관한 선하고 좋은 이야기들만을 들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설화뿐 아니라 호메로스의 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분류를 계속하며, 미래의 철학자이자 용감한 전사들이 되어야 할 이들에게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되는 자극적이거나 우울하고 암울한 부분들, 무섭고 두려운 부분들을 묘사한 시구나, 때에 따라서는 고유명사까지도 삭제되어야 할 뿐 아니라 거부되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이러한 구절들이나 또는 이와 같은 유의 모든 구절들을 줄을 그어 지워버린다 하더라도 결코 화를 내지 않도록 간청할 것’이며, 이는 ‘그것들이 시답지 못하다거나 또는 많은 사람들이 듣기에 즐겁지 못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한결 시적일수록 그만큼 더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듣지 않도록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왜 작품이 시적일수록 연령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들에게서 멀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없다.
그들은 시가의 내용의 분류에 그치지 않고, 계속될수록 희극과 비극, 노랫말에 따르는 각종 선법의 음악들에게까지 논의가 이어진다. 웃음은 실없고 해로운 것이므로 희극은 안되고, 영웅적이고 위대한 내용을 담은 비극이라면 괜찮으며, 주연에나 어울리는 이오니아나 리디아 선법, 비탄조의 혼성 리디아 선법이나 고음 리디아 선법 등도 금지 당한다. 체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으며 미술 또한 그러한 분류와 금지를 피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의술마저도 교양 없고 천한 것으로 분류되며, 아스클레피오스의 시대는 있지도 않았던 것으로 무시되고 만다. 오히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을 정치의 수단으로 사용한 훌륭한 정치가였던 것으로 결론짓는다.
이상의 내용들에서 한결같이 논의된 내용들이 현대 예술심의이론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비록 대화편에서의 내용이 현대와는 비교도 안돼는 작은 사회를 배경으로 이루어지고, 예술이나 문화에 있어서 표현범위나 표현양식에 있어서도 비교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이 예술을 심의하여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이들에게는 별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플라톤의 논의에서 얻어지는 보편 정당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플라톤이 이 모든 논의의 목적이자 근거이며 바탕인 유토피아적 정치 체제나 그 대안으로 들은 귀족정치가 이미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된 현대에서는 문화의 정의나 예술의 정의, 그들의 존재 목적에 대한 정의가 새로 내려져야 하고 또한 그러한 과정 중에 있으며, 그러한 이유에서 예술에 대한 심의나 등급부여 또한 새로운 목적과 존재이유에 대한 정당성을 획득하여야만 하며, 그 이후에도 방법론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논의와 수단 구축이 있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누구나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사를 통해서 인류가 알게 된 한 가지는 정치체제가 바뀌면 연쇄적으로 그것이 사회구조와 경제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에도 크나큰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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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