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작품은 모두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주)오콘에서 만들었다. 서울 강남 오콘 본사에서 김일호 대표(39세)를 만났다. 알록달록 귀여운 캐릭터 봉제 인형들이 회사 곳곳에서 반긴다. 두 작품뿐 아니라 TV시리즈물 <나잘난 박사> <강다구 박사>도, MBC TV 개그콘서트의 로고와 영화 매트릭스를 패러디한 오프닝 동영상 등도 여기에서 만들어졌다. 김 대표는 뽀로로와 디보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내비친다.
“외국 안방을 장악해 시청률 1위를 한 건 뽀로로가 처음입니다. 한국의 어느 콘텐츠 상품이 45개국의 안방을 장악할 수 있겠어요?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얼굴 생김새가 다른 사람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가 보편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는 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요. 그런 장애가 없는 애니메이션 산업은 글로벌 무대에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선물공룡 디보>는 뽀로로보다 더 강한 청신호가 느껴진다고 한다. 지난 12월부터 방영돼 3개월 만에 EBS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고, 외국에서는 TV 방영 전부터 디보 캐릭터 상품을 먼저 만들겠다고 나섰단다.
뽀로로와 친구들. |
EBS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뽀롱뽀롱 뽀로로>와 <선물공룡 디보>는 취학 전 아동을 위한 애니메이션 시리즈물이다. 눈 덮인 숲 속 마을에 사는 귀여운 펭귄 뽀로로와 봉제 인형으로 된 선물배달 공룡 디보. 뽀로로의 부드럽고 고운 영상, 뽀로로와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천진난만한 사건들은 어른들의 시선도 붙잡으면서 아련한 동심의 세계로 초대한다.
뽀로로뿐 아니라 뽀로로 친구들인 말썽꾸러기 공룡 크롱, 꾀돌이 여우 에디, 듬직한 백곰 포비, 깜찍한 비버 루피 등도 각기 어린이 팬이 많다. 3년 전부터 방영된 뽀로로는 TV뿐 아니라 캐릭터 상품으로 더 자주 만날 수 있다. 유아용 도서, 각종 문구류, 옷, 장난감 등 여기저기에 뽀로로와 친구들이 새겨져 있다. 2006년 한해 뽀로로 캐릭터 상품으로 팔린 매출액이 17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디보와 친구들. |
“애니메이션이 우리 사업의 출발이지만, 그건 일부에 불과합니다. 사실은 애니메이션이 퍼뜨린 캐릭터를 이용한 사업 비중이 크지요. 그걸 만들어 내기 위한 수단으로 애니메이션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영상 TV 방영권을 1로 본다면, 상품화나 파생 비즈니스 영역의 사업 규모는 50정도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인 ‘토마스와 친구들’의 경우 토마스 캐릭터의 기업 가치가 4조 5000억 원에 달합니다.”
오콘의 사업 영역은 다양하다. 프랜차이즈 영어 유치원 ‘워릭’, 교육 서비스 상품을 개발하는 ‘에이콘에듀’가 오콘의 자회사이고, 연내 유아전문독서지도원, 캐릭터를 활용한 패션 브랜드 사업, 출판사업에도 뛰어들 예정이다. 해외 수출에 성공했으니 돈도 많이 벌었느냐고 슬쩍 묻자 김 대표는 “TV 방영권으로는 큰돈을 벌지 못한다”며 “매출이 나는 사업은 올해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뽀로로와 디보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CG(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과 교육 효과와 재미를 함께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뽀로로나 디보를 보고 있으면 인형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움직임이 부드럽다. 1초짜리 화면에 30컷이 들어가, 7분짜리 뽀로로 1회분에 1만 2600컷이 들어간다고 한다. 여기에 입체감을 살린 캐릭터들이 생동감을 더한다.
“CG 기술을 세계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입니다. CG 기술 초창기에 우리나라도 함께 시작했고, 그 결과 세계 5대 CG 강국이 됐습니다.”
‘나잘난 박사’와 ‘태권 패밀리’. |
‘엄마 마음’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것도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두 작품의 총괄감독을 맡은 우지희 이사(36세)는 일곱 살짜리 아들 준성이를 둔 엄마로, 김일호 대표의 부인이다. 뽀로로가 탄생한 것은 2003년 준성이가 세 살 때였고, 준성이 눈높이에 맞춰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다. 김일호·우지희 씨 두 사람은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 선후배로 만났다. 절친한 사이로 줄곧 지내오다 1996년 오콘 창립 멤버로 함께 시작했는데, 김 대표가 “둘이 같이 살면서 생활비를 아끼자”며 프러포즈 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경영, 우 이사는 크리에이터로 두 사람의 역할은 정확하게 분리돼 있다. 아무리 회사 규모가 커져도 우 이사는 경영에 참견할 생각이 없단다. ‘디보’가 만들어지는 데는 우 이사의 아이디어가 결정적이었다. 엄마가 알록달록한 털실로 한 땀 한 땀 떠서 만들어 준 봉제 인형 공룡 디보와 그의 친구들. 엄마가 방에서 나갈 때마다 인형들의 세상이 펼쳐진다. 어른들은 모르는 환상의 세계…. 준성이에게 이런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우지희 이사의 마음에서 시작됐다. 김일호 대표는 좋은 콘텐츠는 ‘진실’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뻔한 이 한마디에 오콘의 성공 비결이 농축되어 있다.
“프랑스 엄마나 한국 엄마나 엄마 마음은 비슷해요. ‘내 아이에게 정말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엄마 마음으로 만들 때 세계시장을 두드릴 만한 작품이 나옵니다. 트렌드와 시장을 읽느라 급급했다면 오히려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직원 규모 100명, TV 시리즈 한 편 제작에 60억~100억 원이 소요되는 작품을 수두룩하게 만들어 낼 정도로 회사 규모가 커진 오콘. 하지만 처음부터 오콘이 평탄한 길을 걸었던 건 아니다. 자본금이 거의 없이 시작한 초창기에는 김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먹고살기 위해 별별 일을 다 했다”고 한다.
“그러다 문득 회의감이 밀려왔어요. 이러다 본연의 것을 잃어버리는 게 아닌가 하고. 그때 애니메이션을 만들자고 결심했죠. 그러나 그게 고통의 시작이었어요. 작품을 구상해 제작하고 홍보하는 등 한 작품을 끝내는 데 7년이 걸려요. 지금은 이 사이클이 보이는데 처음엔 모르고 덤벼들었죠. 오랫동안 기다리고 인내하는 게 힘들었어요. 알았다면 아예 시작을 안 했을 걸요? 하하.”
“고진감래가 아니냐”는 질문에 “아직 감래 정도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국내에서는 이 사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한다.
“골드만삭스에서는 지난해 우리 회사에 100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국내 투자는 20억 원에 그쳤는데 말이죠. 골드만삭스가 애니메이션 사업에 투자한 것은 전 세계에서 오콘이 처음이라고 해요. 그만큼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산 것이죠. 10년 후 한국이 이 사업으로 먹고살지 누가 압니까?”
사진 : 이창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