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鄧麗君私家相冊 등려군 개인 앨범 (제4부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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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열독: 덩리쥔_특별주제, 화보집_특별주제/ 사진 수색정리 류상욱/金康顯 진캉시앤 飜譯 2011-01-07
第四部分:歌盡桃花扇底風:淡淡幽情歌盡桃花扇底風:淡淡幽情(1)
제4부분: 노래가 복사꽃 그려진 부채 바람 따라 스러져 가버리네 : 노래가 복사꽃 그려진 부채 바람 따라 스러져 가버리네:담담유정 (1)
註: 아마도 복사꽃 치파오를 입고 노래하던 鄧麗君의 逝世를 말하는 것이라
回台后,邓丽君解开了“假护照风波”的纠结,1981年初她在印尼录制了80首印尼语歌曲,重返舞台,比较从前却是更胜一筹,
当年的春节又分别在台北的“迪斯角”、台中“联美”、高雄“喜相逢”等歌厅接连演出,场场爆满,风光无限。
邓丽君重拾当初做歌后的感觉和自信,
대만으로 돌아온 뒤에, 등려군은 가짜 여권 파문의 엉킨 매듭을 풀어 버렸다. 1981년 초에 그녀는 인도네시아에서 80여 곡의 인도네시아 노래를 녹음하고
무대로 다시 돌아갔다. 전보다 오히려 한층 더 나아졌다. 그해 설날에 또 따로 따로 台北의 디스코, 台中의 聯美, 高雄의 喜相逢 등의 음악홀에서
잇달아 공연을 하였는데, 모든 공연 때마다 가득 넘쳤으며 한없이 멋이 있었다. 등려군은 맨 처음의 대 스타로서의 느낌과 자신감을 다시 수습하였다.
19810418~25 香港利舞台演唱]
1981年4月,她第五次在香港利舞台举办个人演唱会,并以七天九场的成绩创下场次最多的记录。
1981년 4월 그녀는 제5회 홍콩 엘리자베스 무대에서 개인 콘서트를 하였으며 아울러 7일 9회 공연의 성적으로 공연횟수 최다의 기록을 만들어 냈다.
这一年她连轴转地活跃在各个舞台,开唱、拿奖不亦乐乎。5月首次主持台湾金钟奖颁奖典礼;8月一次性获得香港“金唱片”奖的五张白金唱片;
10月为yamaha机车拍摄首支电视广告;1982年1月在香港伊利莎白体育馆举办个人大型演唱会;
这年10月又与林子祥、谭咏麟合作,在香港拍摄无线电视特辑;12月在香港参加《欢乐满东华》慈善晚会。
이 한 해에 그녀는 잇달아 여러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상을 차지하는 활약을 하니 어찌 즐겁지 않았으리오!
5월에 제1회 台灣 金鍾奬頒奬典禮(금시계상 시상식전)에서, 8월에 단번에 홍콩 [金唱片(황금음반)]상의 5장의 백금 음반을 차지,
10월에 야마하 자동차를 위한 첫 번 텔레비전 광고 촬영, 1982년 1월 홍콩 엘리자베스 체육관에서 개인 대형 콘서트 개최,
이 해 10월 또 임자상、담영린과 홍콩에서 무선 텔레비전 특집 촬영, 12월 홍콩에서 [歡樂滿東華:환락만동화] 자선 야간 공연 참여.
值得一提的是,邓丽君1982年开始策划制作、1983年正式推出古典专辑《淡淡幽情》,这张唱片由唐、宋、元等历代词坛大家的婉约词作改编而成,
为了这张唱片的完美出世,她投入巨大的热情在策划和制作上,台湾、香港、新加坡等地来回拍摄唱片的mtv,并苦读古典文学名著、诗词,在她的床头,
就放着一本《李后主、李清照词欣赏》。
“天南地北双飞客,老翅几回寒暑”、“问君能有几多愁,恰似一江春水向东流”、“但愿人长久,千里共婵娟”,
这张《淡淡幽情》弥漫着时间的沧桑之感,中国人独有的缠绵缱绻、离愁别恨、含蓄蕴藉在邓丽君婉转悠悠的歌声中表现得淋漓尽致,
“自己忽然有一个奇怪的想法,我能不能与苏东坡和李后主合作,唱出一些可以代表我们民族的声音呢?
作为一名歌者,我能不能也为传统文化尽一点微薄的力量呢?
등려군이 1982년 제작을 준비하기 시작하여서 1983년 정식으로 [淡淡幽情]이라는 고전 앨범을 출시하였는데,
이 앨범은 당, 송, 원 등의 역대 문단의 대가들의 완곡하고 함축적인 글을 다시 고쳐 만든 것으로, 이 앨범의 완벽한 출시를 위하여
그녀는 막대한 열정을 계획와 제작에 그리고,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지를 돌아 다니며 촬영한 음반의 MTV에 쏟아 부었으며,
아울러 고전문학의 명저, 시와 산문을 힘들게 공부를 하느라고, 그녀의 침대 머리맡에 [이후주, 이청조사흔상]이라는 책을 놓아 두었다.
아주 멀리 나란히 나는 새들이여, 늙은 날개에 몇 번이나 겨울과 여름이 왔었나, 그대에게 묻노라 얼마나 마음에 근심이 머물고 있기에
마치 봄날에 강물이 동녘으로 흘러가듯이 인생사 어쩔 수가 없구려, 다만 그대가 오래도록 살아 천리 먼 곳에서도 저 고운 달을 함께 즐겼으면,
이 [淡淡幽情] 앨범은 세월의 온갖 풍파의 정서가 넘치고 있는데, 중국인 특유의 구성지고 깊은 정, 이별의 서러운 한, 함축되고 절제됨이
등려군의 아름답고 여유있는 노랫소리에 남김없이 잘 들어나 있다.
스스로 갑자기 나는 소동파와 이후주의 시를 같이 하여서 우리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어떤 음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특이한 생각을 하였다.
노래를 하는 한 사람으로서,나는 전통문화를 위하여 좀 미약한 힘이나마 온 힘을 다 할 수 있지는 않을까요?
在艺术的回廊里,留下几步脚印,《淡淡幽情》一连串的歌,是我梦想的实现,因为我可以很得意地告诉你,我邀请到的词作家,都是千百年来,
最了不起的顶尖高手,有时候唱着唱着,我觉得不是在唱歌,而是在倾诉古老庄严而且多情的中国。”这张唱片历经20多年的风尘,到现在还有出版,
宝丽金公司还将唱片的版本不断升级,从普通版本cd升级为x级版本cd,而后又使用尖端的第二代xrcd科技升级为更为完美的第三代cd。
鲜花著锦,烈火烹油,1983年2月,邓丽君应邀前往美国拉斯维加斯凯撒皇宫举办演唱会,成为第一个在凯撒皇宫演出的华人。
她以一首《风霜伴我行》开场,演唱了《再见我的爱人》《甜蜜蜜》等许多首歌。
예술의 회랑에 몇 걸음의 발자국을 남긴 [淡淡幽情]의 일련의 노래는 내가 꿈 꾸던 것을 실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자신있게 여러분께 이야기할 수 있는데, 내가 초대한 산문 작가들은 모두 다 아주 오랫동안 가장 대단한 최고의 작가들로,
때때로 노래를 하다 보면 나는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의 장엄할 뿐만 아니라 다정했던 중국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앨범은 20 여년의 먼지 바람을 겪어 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여전히 출시되고 있으며,
寶麗金회사는 또다시 음반의 버전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으며, 일반 버전 CD에서 X급 버전 CD로 업그레이드 되었고,
이후에 또 다시 첨단의 제2 세대 XRCD 과학 기술을 사용하여서 더욱 우수한 제3세대 CD로 업그레이드를 하였다.
비단 같은 신선한 꽃, 맹렬히 따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듯 1983년 2월에, 등려군은 미국 라스베가스의 카이저 호텔이 개최하는
공연회에 초빙을 받아들였는데, 카이저 호텔에서 처음으로 공연한 중화인이 되었다. 그녀는 [風霜伴我行]을 첫곡으로 무대를 시작하였고,
[再見我的愛人], [甛蜜蜜] 등 수많은 노래를 불렀다.
演出取得了意料之外的成功,凯撒皇宫的1100个位置加到1500个,仍有人愿意从“黄牛”手中购买站票。这场演唱会令邓丽君激动不已,
观众的热烈掌声使她不得不再三出来谢幕,在呼声中演唱了《何日君再来》作为答谢。凯撒皇宫的演出为邓丽君赢得了“国际巨星”的赞誉,
人生得意,她到了自己事业的最高峰,1983年12月29日,
공연은 뜻밖의 성공을 얻었는데, 카이저 호텔의 1100개의 좌석이 1500개로 늘렸지만, 여전히 관중들은 암표상의 손에서 입석표를 사고자 하였다.
이 공연은 등려군으로 하여금 감격을 금치 못하게 하였으며, 팬들의 뜨거운 박수 소리는 그녀를 할 수 없이 여러 번 커튼 콜에 인사를 하게 하였다.
환호속에서 감사의 표시로 [何日君再來]를 불렀다. 카이저 호텔의 공연은 등려군을 국제적 대 스타라는 찬사를 얻게 하였다.
삶이 만족스럽게도, 그녀는 자기의 사업의 최고 수준에 이르렀으며, 1983년 12월 29일 등려군은 국제적 대 스타의 품격과 자신감으로
邓丽君以“国际巨星”的风度和自信在香港红体育馆举办六场个人演唱会,总结自己的30岁和出道15周年。
这场名为《15周年纪念演唱会》拿下香港歌坛的四项记录:首次红体育馆连演六场,并且六场满座,观演人数达十万人,还取得了最高票房。
从1975年起到1983年,邓丽君在香港的唱片销量共计有500万之多,也是当时华语歌坛的一大纪录。1983年6月,邓丽君还推出了第二张粤语专辑《漫步人生路》。
홍콩의 紅隧훙칸 체육관에서 6회 개인 콘서트를 개최하여서 자신의 30세와 데뷔 15주년을 매듭지었다.
[15周年紀念演唱會]이라는 이 공연은 홍콩 가요계의 4대 기록을 세웠다: 紅隧훙칸 체육관의 첫 연속 6회 공연, 아울러 6회 만석, 관중 연인원 10만여 명,
그리고 최고의 입장 수입, 1975년 부터 1983년에 이르기 까지 등려군은 홍콩에서의 음반 판매량이 모두 500만 장을 넘었으며
또 당시의 북경어 가요계의 최고의 기록이었다. 1983년 6월 등려군은 또한 두 번째 광동어 전집 [漫步人生路]를 출시하였다.
1981年3月10日到19日,邓丽君在高雄 “喜相逢”歌厅献唱,观众爆满。香港邓丽君歌迷会会长张艳玲在一篇叫做
《串起寸寸思念忆丽君》的文章中回忆了自己认识邓丽君的过程:让我们用每一颗心儿串起寸寸的思念,送给挚爱的邓丽君。认识邓丽君是很偶然的事情。
从小我喜欢听歌,除了睡觉之外,一睁开眼睛便听电台的节目,这台不听听那台。在1970年的某一天,忽然在电台中听到一曲《高山青》,
有两句很特别的歌词,她唱“阿里山的姑娘没有一个漂亮,只有我邓丽君最漂亮!”当我听到这甜美又自信的歌声时,我暗自下了一个决心,
一定要认识这歌声甜美又漂亮的主人翁,而且要永远做她的歌迷。那时候我已加入青丽之友歌迷会,跟着也认识了邓丽君,那天她穿了一条花的迷你裙,
个儿高挑、青春活泼。当她和我握手的时候,我但愿时钟停留不走,舍不得放手。从此每晚逢有她唱歌的时候,我就上演逃学威龙,
那时的电台是24小时播放,所以我在睡觉的时候也听着,但只要一听到她的歌声,就会蓦然醒来,静心欣赏。
后来更由邓丽君介绍认识了宗惟庆先生,而且由宗伯伯口中可以知道更多邓丽君的事。
1981년 3월 10일부터 19일에 이르기까지 등려군은 高雄(까오슝)의 喜相逢 음악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팬들이 넘쳐났었다.
홍콩의 등려군 팬클럽 회장 張艷玲은 [串起寸寸思念憶麗君]이라는 한 편의 글에서 자기가 등려군을 알게 된 과정을 회고하였다:
우리들로 하여금 마음으로 자그마한 그리움을 꿰어서 진지한 사랑을 등려군에게 보내게 하였다. 등려군을 알게 된 것은 아무 우연한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노래 듣기를 좋아하였다. 눈을 뜨면은 언제나 라디오의 프로그램을 듣곤 하였으며,
이 방송국 저 방송국을 가려서 듣지 않았다. 1970년 어느 날 갑자기 라디오를 듣던 중 [高山靑]이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는데,
이 두 구절이 매우 특별한 가사이었는데, 그녀는 [阿里山的姑娘沒有一個漂亮, 只有我君最漂亮! 아리산의 아가씨는 예쁜지가 않아요,
오로지 나 등려군이 가장 예뻐요!] 라고 노래하였는데, 나는 이 아름답고도 자신있는 노래 소리를 들을 때 남몰래 하나의 결심을 하였다.
반드시 이 달콤함고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내서 언제까지나 그녀의 팬이 되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때 나는 이미 靑麗之友歌迷會에 가입되어 있었으며, 게다가 등려군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한 송이 꽃 같은 미니 스커트를 입었는데
날씬하고 젊은 생기가 넘쳐났다. 그녀는 나와 악수를 하였을 때 나는 오로지 시간이 멈춰서 가지 않기만을 바랐으며 손을 놓기가 아까웠다.
이 때부터 밤마다 그녀가 노래할 때가 되면은 나는 공연에 학교를 빼 먹고 그때의 라디오는 24시간 방송을 하였으며,
내가 잠 잘 때에도 들었기 때문에 오로지 그녀의 노랫소리가 들리면, 문득 깨어나 조용히 감상을 하였다. 나중에 등려군이 소개를 하여서
宗惟慶을 알게 되었고 게다가 宗伯伯의 입으로 더욱더 등려군의 일을 알게 되었다.
那时候有三个女孩想为邓丽君另组歌迷会,想用“青春玉女”的名字,但宗伯伯说人总有长大的一天,那时还叫“青春玉女”就不合适,
于是为我们改了名字为香港邓丽君歌迷会,就这样成立了,那天是一九七六年三月三十日。和邓丽君多年的交往中,她给我的印象,
是一个绝对没有架子的人,最深刻的一次,我和一位朋友去接她的机,当她看见我身旁的人,便马上上前和她握手,她这举动深深感动了我。
她已是一位名歌星,却毫无一点儿架子,未经介绍便自动打招呼,这样懂得尊重朋友的朋友,真是非常难能可贵。……邓丽君走了可舍得吗?
그때 3명의 여자들이 등려군을 위한 다른 팬클럽을 만들려고 하여서 [靑春玉女]라는 이름을 쓰고자 하였지만
宗伯伯은 모든 사람들이 성장해 가는 날이 늘 있으므로 [靑春玉女]라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香港鄧麗君歌迷會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 졌으며 그날이 1976년 3월 3일이다.
등려군과 여러 해 동안 사귀던 중 그녀가 내게 준 인상은 절대로 허세가 없는 사람이었으며 가장 심각한 것은 어느 날 내가 어떤 친구와 같이
그녀의 비행기를 마중갔었는데 그녀가 내 곁의 사람을 보더니 곧바로 나아가 그녀와 악수를 하였다. 그녀의 이런 행동은 나를 매우 깊히 감동시켰다.
그녀는 이미 하나의 유명 가수이었으나 조금도 허세 같은 것이 없었다. 소개를 거치지 않고서 스스로 인사를 하였는데
이렇게 친구의 친구를 소중히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로 매우 하기 힘든 일을 해내서 소중하게 생각할 만하였다.
..등려군은 갔으나 미련이 없을 수 있나요?
我只当她又去旅行,只是这次去得更远,没有时间回来而已。可有眷恋吗? 二十年来的共处,点点滴滴在心头,所以她仍活在我的心中,长长久久地直到永远。
나는 단지 그녀가 또 여행을 갔다고 보고 그저 이번은 좀 더 멀리 떠났다고 보고, 돌아올 시간이 정해지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리워하고 있나요?
20년동안 더불어 마음속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그녀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살아 있기에 아주 오랜동안 쭉 영원하리라 봅니다.
첫댓글 즐겁게 감상 했네요. 추운날씨에 몸 건강 하세요.^^*
잘읽었습니다 .
흔적 남기며 ~~매력적인 등려님의 음성은 언제들어도 내 가슴을 파고들어라
鄧麗君 小姐 謝謝
鄧麗君 小姐 謝謝
鄧麗君 小姐 謝謝
장염령 사진을 교체했습니다, 컴터 파일에 김미(가정 관리사)와 나란히 있어서 잘못 첨부했었네요, 죄송합니다.. ;;
張艶玲(香港鄧麗君歌迷會長) 사진: 이것을 마우스 우측 클릭 복사하여 본문에 붙여 넣으시면 됩니다.
(우선 본문 복사금지를 해지하고 수정한 후, 옆 사진을 복사하세요.. 한 번 클릭하면 400x 사이즈로 보여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