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은 제2의 창조이다
1976년 봄 어느날 오후,
나는 강원도 속초시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 허긴진 배를 채우려 근처 식당에서 때늦은 점심을 먹고 우두커니 창밖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속초는 몇년 전(1971년 9월인가??) 군 복무중 이등병 달고 첫번째 복무지로
왔다 일등병 때 파월 되기까지 6개월을 복무한 곳이다.
지금의 속초 비행장옆 육군 000방위사령부 의무실에 근무하면서 대민 진료를 나와봐서 지리도 익히 알고있는 이곳을 오늘은…….??
한 회사의 영업사원으로써 지금 내 옆에 있는 보스톤 가방 속의 물건(샘풀)을 강릉 경포대와 낙산사를 거쳐 지금 이곳까지 아무 실적도 없이 도착하여 마지막 목표한 설악산을 가기 위하여 작전을 구상 중이다.
한참 생각에 잠겼던 나는 벌떡 이르나 가방을 손에 쥐고 다시 설악산 가는 시내 뻐스를 탑니다.
설악산 여관촌에 도착한 나는 싼 여인숙에 숙소를 정하고 내일아침 작전을 위하여 시장조사에 나섭니다.
설악산일때 기념품가게를 돌아보고 현재팔고 있는 기념품도 조사하고 내일아침 만날사람을 수소문하고 작전을 위한 나름대로의 준비를 합니다.
경포대와 낙산사에서의 미숙하고 무모한 작전 실폐을 거울삼아 여기서는
딱 한사람 그 딱 한사람을 만나보기 위한 작전을……….
그리고 다음날 물어 물어 그사람의 가게(집)에 갔다.
“김00 사장님 계세요?”
“어디서 왔는돼요?!”
“아~예 저 사장님 만나뵈러 서울에서 왔는돼요.”
“그러세요?잠깐만”
그리고 조금있다 등치가 지금말로 조폭 두목 같은분이 나오더니
“서울서..!! 일단 들어와 앉어시구랴 그래 무슨일로…!!???”
“다름이 아니옵고…!!”
이때부터 이번 출장길, 입사한지 3일만에 “제가 한번 샘풀 갔고 동해안 관광지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하고 허락받아 출장온 나의 목표를 위한 마지막 작전에 들어갔다.
회사이름(업체명)이 “이화장” 이라’ 처음 든는 업체네요?
“예 맞습니다 저희 업체는 이때까지 기념품을 만드는 업체는 아니고 요번 이 개발품으로 관광지 기념품을 계속 개발하려고 우수한 전직원들의 노력이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이런 제품도 나올것이고…”
그리고 쭉 돌아 보았습니다만 관광지 기념품이 그 제품이 그 제품이라서 새로운 아이템의 개발없이는 기념품의 가치도 떨어지고 동내 잡화점에서도 살수있는 제품을 어디어디 관광기념 이라고 글씨만 인쇄해서 팔면 발전도 없고 매출도 기대하기 힘들지요?
“허긴 맞는 말인데…..”
“이 제품은 기존 “페넌트”와 다른점은 지금팔고 계시는 페넌트는 인조 다후다 원단에 실크인쇄해서 밑에 수술을 달면 페넌트가 우굴쭈굴 울고 조금 걸어놓으면 색도 변화고 1,2년 후에는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본 제품은 우단(인조세무) 원단에다 인쇄는 최신 기법인 털을 원단에 심는 후로킹 기법으로 제작하여 세련되고 외국영화에 나오는 그런 페난트 입니다.그리고……어쩌고……저쩌고….해서…..
이 제품은 가격은 좀 놓습니다만 디자인과 세련된 새로운 제품으로써…..”
“아~그래요 좋으네… 젊은 양반들이 좋은것 개발했구먼,우선 울산바위 하고 흔들바위,비선대,또 토왕성폭포,금강골, 하고 해서 6군데꺼 5000장씩 제작해서 여름시즌 되기전 보내주시오”
“ㅇ~~ㅖ..!!!!??? 알겠습니다”
“그리고 선금은 20%만 줍니다” 하면서 어음장(문방구 어음)을 꺼내더니 짝 써서 주면서….(그때는 문방구 어음이 일반화 편용되고 있던 시절,그것만 줘도 할베요~ 했습니다) 여기 까지 오셨는데 식사하시고 저위 케이불카타고 권금성이나 구경하고 가시오?”
“ㅇ~~ㅖ..!!!!??? 알겠습니다”
속으로 “아~이것이 정령 꿈은 아닐테지”
잠시후 근처 공중전화 박스에서 “사장님~ 후로킹 페난트 30000장 팔았습니다. 선금까지 받았습니더~ 오늘 밤 강릉에서 기차타고 서울 갈께에…”
회원 여러분~ 이때까지 뭐 거창한 작전일 것 같았죠? 작전은 작전 이였습니다 경포대와 낙산사를 돌아오면서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무조건 소매상을 방문하여 목에 핏발 세우고 설명해 봐야 쇠귀에 경읽기 였습니다.
나중에 알았던 일이지만 한 지역의 기념품 가게에 모든 기념품을 공급하는 지역 오 도매는 따로 있었던 것이였습니다.
그것을 빨리 감파하고 설악산에 오면서 한 사람에게만 성사시키면 그 지역은 다 된다는 것을 깨닦고 작전을 주도 면밀하게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 제품은 저희 회사에서 개발한 제품이 아니였습니다
우연히 미국 갔다온 사람 집에 붙쳐논 페넌트, 괜찬타 싶어 가지고 와서 그대로 모방하여 관광지 그림도안 넣고 제작한것인데 그것이 그대로 그후 대힛트를 쳣습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 당시의 관광지 기념품은 지방 업자들이 전부 서울와서 물건을 주문하고 제작 업체들도 앉자서 장사하는 안이한 판매 전략으로는 발전할수 없다고 저는 생각했고 항상 관광객의 취향과 현지의 동향을 파악하는 가운데 새로운 아이템이 나올수 있고 영업방향도 나올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리하여 74년2월 군 제대후 학교도 집어치우고(학교 다닐래야 다니지 못했습니다 내가 2개월 다닌 서울 시립농과대학 수의학과는 나의 군 제대하는 그해 수의과대학으로 6년제로 되면서 1학년부터는 서울대학교 수원 농과대학으로 편입되었고 전국의 수재들이 들어왔습니다.실력이 부족한 나는 교수님이 다른과 편입을 권고 하는것도 대학은 무슨대학?돈 벌어야지..) 이곳 저곳 직업전선을 헤메다.
일주일전 입사한 지금의 회사에서 새로 만든 제품(페넌트)을 가지고 내가 자처해서 영업한 첫 대박실적 이였습니다.
그때는 조금만한 모임이나 동창회,체육대회,MT을 가도 기념품으로 페넌트를 하였고 전국관광지 기념품가게에 가서 살꺼 없으면 페넌트 한장 사오는 그시절 인기있는 기념품 이였지요.
그후 그회사에 3년을 다니면서 전국관광지는 전부 울릉도까지 다녔고 기념품 종류도 수십까지 취급했습니다.
혹 여러분, 이 제품 아실련지요? 열쇠고리에 조그만 사람해골 달린것, 그리고 인체 뼈다구 주렁주렁 흘들리는 열시고리,또 바베트(납)으로 조그많게 만들어 불론즈 도금한 도끼,등산화,대금.종,호른,트른펫,등 종류도 많은 열쇠고리,줄도 앵카체인, 뱀줄,등 다양했죠 그것도 다 모방이요 카피 였습니다.
남대문시장 시계골목옆 유성상가,그때 전부 그런 액세서리 점포였습니다.
그렇게해서 발전하여 80년대 우리나라 액세사리 업종이 수출과 함계 전성기를 그치고 지금 칭다오 청양 한국액세서리 업체 사장님들, 전부 그때 그 업체 직원들일 겁니다 모르면 몰라도….
그때 한번은 여수 오동도에 납품 하기 위하여 용산역에서 야간열차타고 가면서 홈 파인 반지(?)끼고 열쇠고리 조립하면 옆 사람들이 다 달려들어 같이 조립해줍니다. 졸지에 열차 한칸이 밤세 열쇠고리 조립 공장이 됩니다.
그리고 몇번, 납품은 해야겠고 미처 조립이 안돼 있으면 조립용 짚게,몇십자루 준비해서 그 야간열차 조립공장을 이용합니다.
조립 수고비요? 삶은 계란에 사이다면 족합니다 내가 타는 날은 홍익회 삶은계란 동나고 더 준비해야 됩니다.
아득히 그 시절이 생각나네요. 물 불을 안 가리고 뛰던 그 시절이……….
그럼 또,
2004/11/12 말배
첫댓글 아~성공..!! 흐르는 음악(Danny_Boy) 링크 거는데 명령어 하나 뻬먹어 1시간 고생했습니다.알고 보면 쉬운데...ㅋㅋ
에구 큰일났습니다. 선생님글보면서 존경이 아닌 "사랑 (그런 사랑말고 있지요?)하게될것같습니다. 돈주고도 못사는 경험 선생님으로 인해 한 수 또 배우고 갑니다. 아주 여유롭게 살아온신분같았는데 선생님 인생역정 소설책 몇권내고도 남으것 같네요. 건강하세요
존경스럽습니다. 지금 내 나라,내 동포, 그리고 저에게 필요한 것이 이런 정신과 이런 의지가 필요하겟죠.!
영업맨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지나온 녹녹지 않은 내공을 느낄수 있었는데 직접 이야기를 풀어놓으시니 그 이상임을 알겠습니다... 쭉~ 이어주세요~~~
대단하십니다. 허공에 뜬 이론이 아닌 살아있는 이야기군요.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역쉬역쉬...^^*
30년전에 불철주야 뛰어다니시는 모습이 눈속에 확 들어옵니다.'열차조립공장'기가막힙니다.^^
지금 제 나이때 정도 되셨더랬죠... 저도 하루빨리 뛰어다니는 그런 날이... ㅋ ㅋ ㅋ 암튼 존경스럽습니다 말배님..
엣날 일기장도 공개 하십니까?ㅎㅎㅎ 멋쟁이...
자신감 넘치는 선배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성공한분은 뭐가 달라도 달라~ ^^
그때 기념품가게 김사장님 박사님글 읽으면 새개발품이 아닌 카피임을 알고 고소하면 우짤라고 이렇게 공개를 하시는지요. 고소유효기간이 지난걸 아시고 이제사 ㅎㅎㅎ
아~ 위 저의글에 뎃글로 성원해 주신분들께 감사합니다.어디 작전대로만 되었겠습니까? 실폐의 연속도 있고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세월도 있었지요.카페를 통해서 저의 추억의 역사를 되집허 보는것도 오늘을 사는 한 방법이고 그역사의 거울을 보면서 부끄럽지 않는 미래를 살려고 합니다.조회 해서 읽어주신분께도..
감사 드리고 측천님, 푸른바람님, 호순님 요즘 동향은?? 자주뵙기를 갈망 합니다.
전쟁터에서 버티던 그정신으로 뛰셨군요. 그래서........
충성~! 혹시 옛 동경사로 불리우던시절 복무하셨나요?..ㅎㅎ 지금은 8군단,22,68사등이 그 파생부대가되었죠..그 병원은 지금의 동해병원이 되었꾸요..^^ 저는 22사출신이구요..직속은 아니었을찌 모르더라도 살을 베이듯한 속초바닷바람을 맞아본 후임병임엔 틀림없을것 같습니다..흐흐흐 잘~같다 붙이죠?..ㅎㅎㅎㅎ
이야기가 잠시 여파리로 흘렀는데..ㅎㅎ 직접뛰시면서 영업의 노하우를 터득해나가시는 박사님..아니...선배님모습이 조금씩 낯설지않게 다가옵니다..좋은말씀 계속 기다려집니다....그런데 그당시에도 혹시 대포항에서 오징어순대(야채볶음밥을 넣은^^)를 팔았나요?..맛이..정말 기가막힌데..크흐흐
쿨~한님! 그때 그부대는 동방사(동해안 방위 사령부) 였습니다.그후 동경사와 통합되고 또 재편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군 이야기 함 쓰겠습니다.(끝이 없을텐데..ㅋㅋ)
앗~!..역시 선배님과는 제가 격이 ..ㅎㅎ 한참멀은듯..그전에가 동방사였군요...들은기억이남니다..흐흐흐...대~!선~!배~!님이셔여...그리고 이 섹서폰소리 먹어줍니다..째즈를 좋와해서 그런지..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