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전국의 감리교회에 드리는 글 | ||||
진도교회 김두현 목사 | ||||
| ||||
| ||||
여객선 침몰사고가 있던 16일 오후 12시 30분 경, 인천의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조카가 세월호에 타고 있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봐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언론에서는 승객 대부분이 구조되었다고 보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에 있겠거니 생각하며 여기저기 전화도 해 보고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에도 가 보았으나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무렵 언론에서는 상당수 인원이 실종 상태라는 정정보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학생은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거립니다. 일어나기 어려운 사고였기에 답답하고, 희생자들 다수가 어린 학생들이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제 마음이 이러한데 학부모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들 옆에서 밥을 먹는 것조차 주저되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바닥에 주저앉아 “캄캄한 데서 얼마나 무서웠니. 물속에 잠겨 가는데 얼마나 숨 막혔니.” 하고 절규하며 오열하는 어느 어머니 모습은 차마 지켜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린 부모들의 슬픔과 충격은, 사태의 전말이 드러나고 구조작업이 진행되면서 분노와 절망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책임자들을 색출하여 엄벌에 처하라는 지엄한 명령이 대통령 입에서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게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가 이런 유형의 비극을 많이 겪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해이와 안전 불감증, 무능, 이기주의, 재난 대응 시스템 부실이 빚어낸 전형적인 인재(人災)라고만 알고 있으나, 그 기저에는 추악한 욕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목회자들이 인간의 욕망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예언자적인 정신과 설교 그리고 행동과 운동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더 다급하고 우선적인 할 일이 있습니다.
현재 저희 전남서지방에서는 본부와 호남선교연회의 지원으로 진도실내체육관 앞에 막사를 설치하고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개체교회 목회자들과 교우들이 나서서 간단한 식수・간식・생활용품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곳에는 여러 많은 기관과 봉사단체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도 넘쳐나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서는 방문 자제를 요청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저희가 굳이 감리교회 이름을 내걸고 자원봉사에 나선 것은, 다른 단체나 기관, 종교를 의식해서가 아닙니다. 생색내기나 드러냄을 위한 행위도 아닙니다.
목사이기 이전에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 해야 할 일, 그리스도의 제자이기에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먼저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그래서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환란 당한 이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사고가 일어나고 3일 동안을 로만칼라를 착용하고 현장으로 찾아가 조심스럽게 가족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고 함께 기도하며 보냈습니다. 딱히 무슨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저를 통해 위로를 주시는 이는 성령이셨습니다. 고맙다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하는 말을 들으며 보람을 느끼기보다는 더 많은 이들에게 성령의 위로하심을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예기치 않게 닥쳐온 재난이라는 악을 겪으며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가?’, ‘왜 내게 이런 일이 닥쳤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엘리 위젤이나 몰트만은 침묵하며 숨어 계신 방법으로 고난의 현장에 동참하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 함께 아파하며 함께 고통당하신 아버지, 그래서 십자가에서 함께 처형당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맞습니다. 우리 주님은 고통 가운데 함께하는 분이어서 그 이름조차 임마누엘입니다. 그분은 사고 당시에도 함께하셨고 지금 실종자.희생자 가족들과도 함께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사태 속에서는 ‘왜?’라는 의문이 더 강하게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 꽃다운 청춘들이 꽃도 피어보지 못하고 비명에 가버리고 말았는지, 왜 주님은 믿는 자들을 보호해주지 않으셨는지, 왜 주님의 통치와 섭리 하에 이런 악을 경험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2004년 남아시아 지진해일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 직후에 당시 영국국교회의 수장이었던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는 “믿음을 가진 자의 반응은 남은 사람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아픔을 나누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기독교의 본질은 “이해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펼쳐진 상황을 아주 조금이라도 바꿀 방법을 찾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와 전남서지방 목회자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 실종자와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주님 뜻이라고 저희는 믿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봉사캠프를 찾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매일 오후 5시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기도회를 갖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인 우리만이 해야 할 일입니다. 절망과 울분으로 가득 찬 그들 가운데 성령께서 임하셔서 위로와 소망의 물꼬를 터 주셔야 합니다. 목회자들과 교우들, 실종자 가족들이 한데 모여 기도하는 시간이야말로 성령께서 일하시는 때입니다. 기도회를 통해 그들이 위안을 받고 상한 감정이 정화되고 있습니다. 성령의 어루만지심과 회복하게 하시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은 고난주간에 일어났습니다. 저희 교회를 포함한 많은 교회들이 부활절 행사를 취소하거나 축소하였습니다. 부활의 기쁨을 침통한 사회 분위기 속에 나타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고 부활하신 이유가 이런 절망스런 상태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고난의 밤이 어둡고 고통의 무게가 견디기 힘들다 하더라도, 오히려 지금처럼 고통과 슬픔이 더할수록, 부활의 복음과 성령의 강림은 더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전국의 모든 감리교인들이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고성과 절규가 가득한 이곳에 영적인 기류가 흐를 수 있게 기도해 주십시오. 상실의 상처를 품어 안고 평생을 살아야 할 그들이 부활의 생명으로 새로워질 수 있게 간구해 주십시오. 저희 진도교회와 전남서지방이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현장에서 필요한 부분을 지원해 주십시오. 이미 각종 봉사단체들의 부스가 체육관 주변을 빙 둘러 설치되어 있고, 식음료와 생필품 제공, 위생, 의료, 빨래, 금융, 우편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지원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꼭 필요로 하는 인력이 있습니다. 바로 저희 캠프입니다. 특히 여성교우들의 손길이 절실합니다. 커피를 타 주는 간단한 봉사뿐 아니라, 함께 기도할 수 있는 4, 50대 여성분들이 꼭 필요합니다. 제가 봉사캠프 서기 겸 회계를 맡고 있으니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