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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중국 북서부 칭하이(靑海)성
위수(玉樹)장족자치주 위수현 에서 규모 7.1의 지진 발생,
2010년4월14일 오전 중국 북서부 칭하
이(靑海)성 위수(玉樹)장족자치주 위수현
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 600여 명이 사망하고 1만 여명이 부상했다.
지면과 비교적가까운 지하33㎞에서 발생
한 규모 7.1 지진에 이어 규모 6.3 여진이 잇따르면서 주택과 사찰, 주유소, 전봇대 등이 구겨지듯 무너졌으며 산사태와 도로 유실, 전력공급 중단 및 통신두절 사태가 초래됐다.
특히 지진으로 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진 현지 가옥들이 대부분 붕괴했고 일부학교 건물도 무너져 인명 피해 규모가 더커졌다.
진앙은 위수현 정부가 있는 제구(結古)진
에서 서쪽으로 50㎞ 떨어진 샹라슈(上拉秀)향 르마(日麻)촌인 것으로 확인됐으며 제구진의 경우 주택 85%가량이 무너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홈페이지에서 이날 오전 7시49분 티베트 창두(昌都)에서 북북서로 94㎞ 떨어진 곳의 지하 33㎞ 지점에서 규모 6.9의 지
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는데 해당지점이 위수현인 것으로 관측됐다고 전했다.
강진에 앞서 이날 오전 5시39분에도 규모 4.7의 지진이 났으며 강진 발생 이후 오전 9시25분에는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하는 등 여진도 잇따랐다.
▶2011년 외규장각 의궤,
대여 형식으로 145년 만의 귀환
👉🏿 2011년 오늘은 외규장각 의궤가 145년 만에 반환된 날이다.
1993년 9월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한-프 정상회담에서 <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상) 1책과 함께 외규장각 의궤를 반환할 의사가 있음을 비쳤다.
하지만 의궤는 반환되지 않았다. 이후 반환과정은 협상이 연기되거나 반환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로 진전이 없었다.
이후 2010년 3월 협상이 재개됐다. 같은 해 11월 12일 서울특별시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중 이명박 대통령과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합의하면서 2011년 2월 7일 합의문이 체결됐다.
이에 따라 의궤 296책은 2011년 4월 14일부터 5월 27일까지 총 4회에 걸쳐 반납됐다.
▶2010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
▶2009년 북한, 미국과 국제원자력
기구(IAEA) 의 사찰 요원들 추방.
▶2004년 한국항공우주산업, 수출용 아파치헬기 동체1호기 출하
▶2004년 애국지사 강동석 선생 별세
▶2004년 국립공원관리공단,
홍도가 철새 이동의 핵심경로라고 규명
▶2004년 동해를 ‘동쪽 바다’로 적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공개
👉🏿 2004년 오늘은 동해를 '동쪽 바다'로 적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여행지도가 발견된 날이다.
동방견문록, 동해를 동쪽 바다로 표기하다
동방견문록은 여덟 개 부분으로 나누어서 서술돼 있습니다. 서편을 제외한 일곱 편은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중국 본토, 인도양, 멀리 러시아와 북극 지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죠. 이 중 가장 오래 머물렀던 중국 본토 대륙은 두 편에 나누어서 다루고 있답니다. 즉 <세계의 서술>이라는 원제에 걸맞게 유럽을 제외한 세계 전 지역을 포괄해 서술한 것인데요!
마르코 폴로는 각 도시와 지역을 서술하면서 반드시 방위와 거리를 밝혔다고 해요. 또한 주민들의 종교적인 특징이나 생업, 동식물에 관련해서도 자세하게 서술했는데요. 지리적인 특성을 정확하게 서술한 이 책에서 우리나라의 ‘동해’가 명확하게 표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2004년 국내 최초로 경인교회 직원들, `노동조합(노조)` 설립 신고서 제출
▶2004년 통일신라 7세 어린이 유골 발견, ‘인신 공양’ 제사 가능성 제기
👉🏿 1300년 전 통일신라에 어린이를 산 제물로 바치는 ‘인신 공양’의 제사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박영복)은 14일 경북 경주시 인왕동 이 박물관 미술관 신축 예정지의 왕궁터 우물에서 7~8세 가량의 인골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고대의 어린이 유골이 완전한 상태로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이 인골은 깊이 10.27m의 우물 안 뻘층에서 머리를 바닥 쪽으로 향한 채 거꾸로 박혀 있었다.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김재현(金宰賢) 교수는 “유골의 손이 머리보다 아래 쪽에 있었던 것은 손으로 머리를 감싼 것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렇다면 떨어질 때 아직 의식이 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 어린이가 ▲추락사했을 가능성과 ▲어떤 제사의식의 희생양이었을 가능성 두 가지 경우를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인골 옆에서 머리가 위쪽으로 향한 소의 상반신 유골 등 동물뼈가 함께 출토됐고, 강돌로 이 우물을 인위적으로 메운 흔적이 드러났다”며 제사의 희생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2003년 게놈지도 완성
👉🏿 2003년 오늘은 인간게놈지도가 완성된 날이다.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는 이날 6개국 생물학자 3000여 명이 인간의 유전암호를 모두 풀어 게놈 지도를 완성했다고 선언했다.
게놈은 생물에 담긴 모든 유전정보다. 인간게놈지도를 완성했다는 것은 DNA를 구성하는 30억 쌍이 넘는 염기 서열을 밝혀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암을 비롯한 4000여 종의 난치병과 불치병 치료의 길이 열릴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개인 유전 정보는 맞춤형 치료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기대했다.
▶2002년 하누치, 마라톤 세계기록 수립
▶2001년 일본 적군파 해산 공식 선언
▶1999년 나토 전투기 오폭으로 코소보내 알바니아계 난민 75명이 사망했다고 유고 정부 발표
▶1995년 배우 겸 가수 벌 아이브즈 85세의 나이로 사망
▶1992년 독일 적군파 테러 포기 선언
▶1986년 프랑스 작가 보부아르 사망
▶1983년 대도 조세형 탈옥
▶1982년 중국,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반발. 미국에 항의 각서
▶1980년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 임명
▶1979년 정효주양 두번째 유괴
👉🏿 1978년 9월 15일 부산 한 기업 회장의 딸인 국민학교 3학년인 정효주양이 학교 수업을 마친뒤에 하교길에 유괴를 당합니다. 범
인은 이미 유괴를 비롯해 전과 9범이 있는 남자였습니다. 아버지가 진 빚 5000만원을 갚기위해 정효주양을 차 트렁크에 실은채
서울 부산 수원등을 돌아다니며 정효주양 이모에게 전화를 하여 돈 5000만원을 요구했습니다. 이때 극비리에 수사중이던 부산
경찰서의 공길용 경사에게 덜미를 잡히게 되고 결국 유괴 33일만에 범인의 검거에 성공하며 정효주 어린이 역시 무사히 집으로 돌
아오게됩니다. 대부분의 어린이 유괴사건은 돈은 돈대로 챙기고 아이는 돌려주지 않는것에 비해 참으로 다행인 사건이었죠.
이 사건이 있은뒤로 정효주 부모님들은 매일같이 등하교를 직접 시켜주었고 그렇게 반년이 지나 부모들도 정효주 어린이도 악몽의 기억들에 조금식 벗어나려고 할즈음.
단 하루 일이 생겨 등교를 할때 같이 가지못한 1979년 4월 14일 다시 한번 괴한에게 납치를 당하는 있어서는 안되는 불행이 다시 한번 생기게 됩니다.
한번의 유괴를 당해 극적으로 아무일 없이 생명을 건져 온 효주양의 두번째 납치는 전국민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당시 부산시장은 효주양의 전단지를 돌려 반드시 아이를 본 사람들은 연락을 해달라며 시민들에게 부탁을 하였고 정효주의 아버지도 TV에 출연하여 아이만 무사히 보내준다면 그 어떤일이든 하겠다고
눈물로 호소를 하였습니다. 첫번째로 유괴한 교도소에 있던 범인조차도 두번째 유괴를 한 유괴범에게 자수를 권유하는 편지를 쓰기도 하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특별담화로 통해 아이를 무사히 보내면 최대한 선처를 하도록 하겠다는 담화문까지 발표
하늘이 도우신것인지 아님 그녀가 나쁜일을 당할 운명이 아닌지 대통령의 담화가 있던 그날 저녁 경주 톨게이트에서 효주양이 발견되고 이번에도 극적으로 무사히 살아돌아오게됩니다.
범인은 약 1년 8개월뒤에 검거가 되는데 2번째 유괴를 한 범인의 정체는바로 정효주 아버지의 운전기사를 하던 운전기사였습니다.
1차 납치범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대구교도소에서 수감을 하다 1989년 출소를 하였고
2차 납치범은 무기징역을 받았지만 아이를 무사히 돌려보낸것에 부모들이 선처를 바랬고 국민들 역시
아이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돌려보낸것에 조금이라도 감형을 호소하여 20여년정도를 수감생활하다 1999년 5월에 대전교도소에서 출소를 하였다고 합니다. 평생 겪지 않아도 딜 아니 겪어서는 안되는 일은 두번이나 당하고 천운으로 무사히 돌아온 정효주양은 지금쯤이면 아마 40대 후반 즈음의 초등학생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겠군요^^
▶1979년 강원도 함백탄광서 화약
폭발사고로 26명 사망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 1978년 오늘은 세종문화회관이 대중에 공개된 날이다. 1974년 불타버린 시민회관 자리에서 착공에 들어간 지 4년 만에 완성됐다.
221억 원의 공사비가 투입됐으며 5600평 규모에 지하 3층~지상 6층 규모로 지어졌다.
세종문화회관은 초기 서울특별시의 운영으로 "관료주의적이다", "문화공간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 등의 비판을 받았다.
결국 1999년 7월 1일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와 민간이 합동으로 운영하는 방식인 '재단법인 세종문화회관'으로 탈바꿈됐다.
▶1977년 부산-제주 카페리호 취항
▶1977년 미국 정부, 재미영주권 외국인에 북괴지역 여행제한 철폐
▶1970년 남예멘 내전 종결
▶1967년 한국-스위스 무역협정 체결
▶196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국내에서 발효
▶1966년 `한국의 쿠베르탱` 이상백 박사 별세
▶1966년 아프레 이라크 대통령
탑승기 사고로 사망
▶1966년 파키스탄 눈사태로 469명 사망
▶1964년동파키스탄에 돌풍.
1천여명 사망
▶1963년 한국 독립운동가 민필호 사망
▶1962년 드브레 프랑스 내각 총사퇴. 후임에 퐁피두 수상
▶1961년 재일교포 북송 재개
▶1955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의전 병합
▶1948년 일본 오사카의 교포학교 등 19개교에 폐교령
▶1931년 스페인 제2공화국 수립
▶1930년 러시아 시인 블라지미르 마야코프스키 사망
▶1929년 제1회 모나코
그랑프리 대회 개막
▶1924년 미국 근대 건축의
선구자인 설리번 사망
▶1917년 폴란드의 안과의사
이자 국제 공용어 에스페란토어 창시자 자멘호프 사망
▶1912년 타이타닉호 첫 출항서 침몰
▶1907년 14년간 장기 집권한 아이티 대통령 장 클로드 뒤발리에 출생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개막
1592년 임진왜란 발발
👉🏿1592년 4월 14일 선조25년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한국과 일본은 이웃나라로써 우호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었으나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동아시아를 정복하겠다는 계획으로 동아시아의 출입구인 조선을 침략함으로써 7년간의 전쟁인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십만 병력의 일본군은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함락하고 20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두달 만에 평양과 함경도까지 점령하여 급기야는 선조임금이 의주로 피난하게 되었다.
1593년 1월 명나라에서 원군을 보내주어 조선군은 평양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또,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해상권을 장악했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일본군에게 타격을 주었다. 이후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일본군은 직산까지 점령했으나 조선군에게 다시 패했다. 이런식의 소모전이 계속되었으나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전쟁이 끝났다.
전쟁의 결과, 일본은 도요토미 정권이 멸하고 도쿠가와 정권이 세워졌으며 도자기, 활자 등의 활발한 제작으로 새로운 문화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중국은 조선으로의 무리한 원군 때문에 국력이 쇠약해진 명이 멸하고 청나라가 세워졌다. 조선은 국토가 황폐해지고 많은 문화유산을 일본에 빼앗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