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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랬지
⎈ 광주 김경일 신부 다녀감. 용화사 다녀옴. 달라이 라마와 만난 사람들 번역. 6학년 마음공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네 인생 네가 만드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을 핑계거리로 삼지 마라, 바람에 날리는 가랑잎으로 살지 말고 바람 타고 제 길 가는 송골매로 살라고 했다. (2016. 11. 16)
⎈ 풍경소리 12월호 원고 넘김. ‘카비르 말하기를’ 새로 연재 시작. (2016. 11. 17)
⎈ 아침 명상 시간에 다하지가 왔다. 이름을 선하지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좋단다. 이제부터 선하지라 부르기로 했다. 선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좋다[善]고 다른 하나는 먼저[先]라고 말해주었다. 선하지 앞날에 선이 가득하기를…
오랜만에 ‘사랑어린 스콜레’에서 시와 음악 강의. 서해는 선하지가 만든 노래와 기녀들(위기의 여자들)의 앙상블을 선보이고 나는 시편 23편을 함께 감상. (2016. 11. 18)
⎈ 두더지, 티베트에서 온 세 수도승, 주중식 선생 내외와 함께 점심식사. 새 식구 모심 행사. 주건일 군이 여주까지 왔던 길에 혹시나 해서 들렸단다. Y에서 이웃분쟁조정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손님들이 좀 많았던 하루다. 밤에는 순천 지역 시인들까지. (2016. 11. 19)
⎈ 아침 명상에 보리밥과 선하지 참석. 한 번에 한 걸음씩 걷자고 했다. 점심을 서해가 갈비찜에 낙지로 두더지 대접. 용화사에서 예배 모임. 범강이 왔다. 회사 업무로 체코에 출장 다녀온 반디가 많이 아프단다. 마음 놓고 좀 쉬었으면 좋겠는데…. (2016. 11. 20)
⎈ 두더지 순례에 잠시 동행하여 대흥사 일지암(一支庵) 다녀옴. 오가는 길에 바람빛이 운전하느라 애썼다. 북미륵암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오를 때는 내려가려는 무거운 몸을 들어 올리며 걷느라 힘들었고 내려올 때는 곤두박질로 굴러 떨어지지 않게 버티느라 힘들었다. 결국 당김의 법칙(law of attraction)에 저항하는 만큼 힘이 들더라는 얘기다. 허공에 떨어지거나 강물에 떠내려가면 아무 힘도 들지 않을 텐데, 사람이 허공에 떨어지듯이 강물에 떠내려가듯이 그렇게 살아갈 순 없는 걸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시내에서 보리밥이 저녁으로 사주는 비빔밥 먹고 돌아오니 반디가 기다리고 있다. 장염(腸炎)이면 꽤 아플 텐데 웃는 얼굴을 보여줘서 고마웠다. (2016. 11. 21)
⎈ 잠시 중단했던 웨인 다이어 글 번역. 이태수 화백 내외와 시내에서 콩나물 국밥으로 점심. 저녁에는 일부(一夫) 아들 전일이 훌쩍 큰 모습으로 나타났다. (2016. 11. 22)
⎈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6학년 마지막 수업. 진정한 선생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하여 이야기 나눔. 카비르 번역. 이유 없이 괜스레 쓸쓸한 하루. (2016. 11. 23)
⎈ 오전 수업 마치고 부산 동래새싹유치원 20주년 기념행사 다녀옴. 서해가 왕복 여섯 시간 운전하느라 애썼다. 그래도 행복하고 보람찬 하루였다. (2016. 11. 24)
⎈ 8, 9학년 마지막 마음공부 시간. 지훈이 묻는다. “할아버지 말씀은 내 몸이 내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자기 몸을 가리키며) 이게 나 아니면 누가 나예요?” “너 해마다 생일이면 부모님이 사진 찍어주셨지?” “예.” “그럼 지금까지 생일에 찍은 사진이 열 몇 장쯤 되겠네?” “그렇겠지요.” “좋아. 그 사진들이 모두 똑같니?” “아뇨. 서로 달라요.” “그럼 그것들 가운데서 누가 진짜 너냐?” 표정이 달라진다. 생각하는 눈치다. 답이 없다. “그것들 모두가 지훈이 너잖아? 그런데 하나도 같지 않으니 그 중에 누가 진짜 너냐고?” 역시 대답이 없다. “지금 네 몸이 내년이면 또 달라질 텐데, 그건 알지?” “예.” “그렇게 순간마다 달라지는 무수한 네 몸들 가운데서 어느 몸이 진짜 너냐?” 답이 없다. 있을 리 없다. 표정만 더욱 진지해진다. 다른 아이들도 생각하는 눈치다. “좋아. 내가 누구인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아마도 인간뿐일 게다. 어쩌면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건지도 몰라. 아무튼 이 몸이 곧 내가 아니라는 건 분명해졌으니 그럼 누가 나인지, 그걸 계속 물으며 살아보자. 그걸 계속 물으면서 사는 사람과 묻지 않고서 사는 사람의 인생은 하늘땅만큼 다르다.”
서해와 용산 전망대 쪽으로 노을 짙은 와온 해변 산책. 황홀하게 지는 해가 눈부시다. 진안 호일이 건강해진 몸으로 오랜만에 왔다.
(2016. 11. 25)
⎈ 목포 여성숙 선생 방문. 평생 의사(醫師)로 살아서 그런가? 99세 나이에 죽음, 그것이 궁금하신 모양이다. 뭐라고 설명할 말이 나에게 물론 있을 리 없다. 점심식사 후에 이야기를 계속하시는데 엄습하는 졸음을 참느라고 좀 고단했다. 젊은 사람 앞이면 나 좀 자야겠다고 할 텐데 어른 앞이라 그게 안 되었다. 저녁에는 창해 집에서 금옥이 정성껏 차린 저녁상을 임락경 목사와 함께 받고 어서 자리에 눕자는 몸을 달래며 앉아 있다가 8시 넘어 디아코니아자매회 모원으로 돌아왔다. (2016. 11. 26)
⎈ 꿈을 꿨다. 주인공이 무슨 일을 하다가 자기 힘으로는 더 할 수 없게 되어 도우미를 청했다. 도우미가 와서 일이 계속 진행되는데 어느새 주객(主客)이 뒤바뀌어 주인공이 도우미로 도우미가 주인공으로 바뀌어 있었다. 새벽, 자리에서 일어난 서해한테 말했다. 나 이제부터 세상에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만 살겠다고. 제발 그래달란다. 그럼 됐다.
목포 온누리교회에서 주일예배. 떡과 과일로 생일잔치를 열어준다. 고마웠다. 치과 원장 유하균이 건강한 얼굴로 서울에서 내려왔다. 항암치료 모두 마치고 6개월 뒤에 체크한다고. 자기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단다. 반가웠다. (2016. 11. 27)
⎈ 요 며칠 힘이 없고 몸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어떻게 소문이 돌았는지 혜미원 류명환 원장이 와서 진맥하고 침을 놔준다. 몸이 지쳐서 기운이 달린단다. (2016. 11. 28)
⎈ 서해와 용산 전망대에 올랐다. 관광객들이 북적거린다. 순천만 갈대숲을 내려다보며 노을 진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사람들은 왜 사진 찍는 걸 좋아할까? 뭐든지 조금이라도 남겨두고 싶은 마음에서?
원불교 어느 교무가 한 달 넘게 곡기(穀氣)를 스스로 끊고 먼지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입적했다는 소문이다. 자기 놀던 자리를 깨끗하게 치워놓고 잘 갔다. 어제 침 놔준 류 원장이 아내와 함께 보약을 지어서 가지고 왔다. 고마운 사람들. (2016. 11. 29)
⎈ 서해가 밤새도록 많이 앓았다. 어제 온종일 술 거르느라고 알코올 냄새를 맡더니 그예 탈이 난 모양이다. 급한 대로 함박이 와서 사혈(瀉血)을 하는데 피가 방울방울 솟구친다. 그렇게 피를 흘리고 나니 아프던 머리가 금세 말끔해졌단다. 인체의 세밀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저녁에는 무심이 와서 온몸에 침을 놓아준다. 날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카비르와 웨인 다이어 번역. 보약을 먹어서 그런가? 몸이 가벼워졌다. (2016. 11. 30)
⎈ 익산까지는 기차로, 익산에서 서울까지는 서해 차로 왔다. 내일부터 지금여기교회 겨울 성서산책이다. 내일 아침에 치과병원에서 장 목사 만나기로. (2016. 12. 1)
⎈ 어금니 하나를 뽑아야겠단다. 뽑힐 이에 대하여 의사가 환자보다 더 서운해 한다. 결국 환자의 치아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괴감 비슷한 것이겠다. 그럴 것 없다고, 괜찮다고 위로랍시고 해줬는데 잘 한 일인지 모르겠다. 오후 4시 집회 시작. (2016. 12. 2)
⎈ 주일예배 마치고 곧장 괴산 연풍에 왔다. 어제 김 목사 취임예배를 성대하게 잘 치렀단다. 서해가 마련한 선물 받고 모두들 좋아한다. 소리와 슬기가 밝은 얼굴로 왔다. 함께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틈틈이 정향(丁香)의 존재감을 느끼다. (2016. 12. 4)
⎈ 원주 노자 읽기 모임. 담백한 대구탕으로 함께 저녁식사. 세속의 흐름에 거슬러 살라는 게 노자의 가르침이라는 이야기. 유하(流下) 집에서 숙박. (2016. 12. 5)
⎈ 원주에서 서울 치과병원 들러 어금니 뽑고 순천까지 내려오기가 무리인 것 같아 중간에서 하루 쉬기로 했다. 동학사 아랫마을이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장군봉은 그대로다.
서해가 기도할 이유와 방법을 일러주셨으므로 이제부터 기도해야 한다면서 108개 염주(念珠) 알이 한 줄로 꿰어져 있는 묵주(黙珠)를 산다. 아주 잘 된 일이라고 마음속 깊이 축하해주었다. 그렇다. 우리가 할 일이, 마더 테레사의 말대로, 기도하고 사랑하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둘 다 자기가 하는 게 아니라는 진실을 깨닫기까지. (2016. 12. 6)
⎈ 아침에 서해가 묻는다. 정말 당신이 먼저 가면 장례식 같은 것 하지 말라는 거냐고? 그래달라고, 죽기 전에 내 눈으로 내 장례식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익산에서 서해는 식초교실로 가고 나는 기차로 순천까지… 보리밥이 차로 마중 나왔다. 오는 길로 혼곤하게 잠들었다가 점심 먹으라는 아이들의 부름에 깨어났다. 귀엽고 고마운 녀석들!
(2016. 12. 7)
⎈ 수벽치기라는 무예를 평생 닦았다는 육태안 씨가 무심과 함께 왔다. 그에게 안소니 힌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난 토요일, 작정 없이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책 한 권 만났다. 책 이름은 ‘기쁨의 책’(The Book of Joy). 2015년에 달라이 라마가 자기 팔순 잔치에 남아공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를 초대하고 한 주일 동안 다람살라에서 함께 지내며 대담한 내용을 더글러스 아브람스가 정리한 것이다. 아래 대목에서는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안소니 레이 힌튼(Anthony Ray Hinton)은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로 사형수가 되어 30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그는 범죄 현장인 공장 인부였다. 미국 알라버마에서 체포되었을 때 경찰관들은 그가 흑인이기 때문에 감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루에 한 번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좁은 독방에서 30년 세월을 보내야 했다. 사형수로 있는 동안 형장에서 처형된 54명을 포함하여 다른 수감자들의 친구이자 상담자로 되었다. 동료 수감자들뿐 아니라 간수들까지 그의 석방을 탄원하였다.
만장일치 최고법정의 판결로 그는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사람이 자유를 빼앗겨보지 않으면 자유의 가치를 몰라요. 사람들은 비를 피해서 달려가지만 나는 빗속으로 달려갑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이 어떻게 소중하지 않을 수 있나요? 여러 해 동안 비를 맞아보지 못한 덕분에 나는 빗방울 하나하나가 마냥 고맙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두 뺨으로 느끼는 거요.”
아메리칸 텔레비전의 ‘60분’ 프로에서 인터뷰어가 그에게 당신을 감옥으로 보낸 사람들한테 화가 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자기를 감옥으로 보낸 모든 사람을 용서했다는 것이었다. 인터뷰어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당신 인생에서 30년을 가져갔어요. 어떻게 그들한테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겁니까?” 그가 말했다. “내가 화를 내며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그러면 그들이 내 나머지 인생까지 가져가겠지요.”
용서하지 않는 것은 인생을 즐기고 감사하는 자신의 능력을 빼앗기는 것이다. 용서는 우리로 하여금 과거를 넘어서, 두 뺨을 적시는 빗방울을 포함하여, 현재의 진가(眞價)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스텡들-라스트 수사(修士)는 말한다. “인생이 당신에게 무엇을 주든지 간에 당신은 기쁨으로 그것에 반응할 수 있다. 기쁨은 당신한테 일어나는 일이 무엇이든 그것에 의존하지 않는 행복이다. 인생이 지금 당신에게 제공하는 기회들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힌튼의 경우는 끔찍한 시련에도 기쁨으로 응할 수 있는 인간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강력한 모범이다. 뉴욕의 한 택시 안에서 그가 내게 말했다. “세상은 나에게 기쁨을 주지 않았소. 그러므로 세상이 내 기쁨을 가져갈 수 없는 거요. 사람들은 다른 누가 자기 인생 속으로 들어와서 그것을 파괴하도록 허용할는지 모르나 나는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놔두지 않기로 했소. 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 나를 웃겨줄 다른 어떤 사람이 필요치 않아요. 그냥 나 혼자서도 웃을 수 있소. 하루를 더 살도록 축복받았으니까. 하루를 더 살도록 축복받은 걸 생각하면 기뻐서 저절로 웃음이 나지요.
“나는 ‘여보시오, 나한테 돈이 한 푼도 없다고요.’라고 말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않소. 주머니에 1달러밖에 없어도 상관없어요. 그저 하루 더 태양을 볼 수 있도록 축복받았다는 사실에만 내 마음은 가 있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잔뜩 쌓아둔 채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지 압니까? 백만 달러를 가지고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것과 무일푼으로 아침에 일어나는 것, 이 둘 가운데 당신은 어느 쪽이 더 좋소? 나는 땡전 한 푼 없이 아침에 일어나는 쪽이오. CNN 텔레비전에서는 그날 나한테 3달러 50센트가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날이 나한테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말했소. 인터뷰어가 ‘고작 3달러 50센트로 말입니까?’ 하고 묻더군. 내가 말했소. ‘있잖아요? 우리 엄마는 우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라고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엄마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우리에게 자주 말해줬지요. 네가 행복하면 네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진다고, 우리 엄마는 늘 그렇게 말했어요.’
“나는 가진 것이 참 많은데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그냥 바라봅니다. 그래요, 나는 사형수의 몸으로 30년이라는 세월을 독방에서 보냈습니다. 그들은 하루도, 몇 시간도, 아니 몇 분도 갇혀서 살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행복하지 않은 거요. 나는 나한테 물어봅니다. ‘저 사람들 왜 저럴까?’ 그들이 왜 행복하지 않은지 그 이유를 나는 몰라요. 하지만 내가 왜 행복한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건 내가 그러기로 선택했기 때문이오.”
……
운명의 장난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엉터리 재판 끝에 사형수가 되어 감옥에 갇혔을 때 안소니 레이 힌튼은 미국 법률 시스템과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향한 분노와 증오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아무도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을 때 사람은 입을 다물게 됩니다. 나는 굿모닝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굿나이트라고도 말하지 않았어요. 누구한테도 잘 지내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간수가 뭐를 물으면 종이에 답을 적어 줬지요. 나는 화가 나 있었소. 하지만 그렇게 3년을 보내고 4년째 접어들었을 때 하루는 옆방에서 울음소리를 들었지요. 그러자 어린 시절 엄마한테서 받았던 사랑과 연민의 정이 나를 통해서 입을 열고 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어요. 방금 자기 어머니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는 거였소. 내가 그에게 말했지요. ‘이렇게 생각해봐요. 당신은 이제 하느님 앞에서 당신을 위하여 탄원해줄 사람이 하나 생긴 것이오.’ 그러고 농담 한 마디를 던지자 그가 웃었소. 바로 그 순간 까맣게 죽어있던 내 목소리와 유머 감각이 되살아났지요. 그날 밤 그 일이 있은 뒤로 26년 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의 어려운 일에 내 초점을 맞추려 했고 실제로 날마다 그렇게 했소. 앞으로도 나는 그럴 것이고 나 자신의 문제에 갇혀서 지내지는 않을 거요.”
힌튼은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과 연민을 가져올 수 있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지구상의 가장 기쁨이 없는 곳에서 자기 기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달라이 라마와 데스몬드 투투는 자기들의 특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이 슬프고 아픈 세상에서 어떻게 기쁨으로 살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나에게 책은 정보라기 보다 에너지다. 읽는 동안 내 몸에서 신선한 기운이 흐르는 게 느껴진다. (2016. 12. 8)
⎈ 순진이 작곡을 한다는 안 선생과 함께 왔다. 박 대통령 탄핵 결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단다. 광화문 거리의 시위대 이야기를 순진한테서 들었다. 바야흐로 새천년이 밝아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됐다. 거리의 아이들이 고맙고 대견하다. 이제라도 기성세대가 그들을 앞에서 이끌겠다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그들이 설 자리는 젊은 세대의 앞이 아니라 뒤다. 이른바 기성 정치권이나 운동권의 간섭이 이번 촛불 시위에서 통하지 않았다는, 그만큼 젊은이들이 속으로 여물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시대의 희망이다. (2016. 12. 9)
⎈ 생일이라고 서울에서 거창에서 목포에서 여수에서 남원에서 친구들이 왔다. 반가웠다. 일부(一夫)도 함께 생일상을 받았다. 서해가 담근 술로 상을 차렸다. (2016. 12. 10)
⎈ 아침으로 미역국 먹고 차 한 잔 나누고 모두들 창해의 당김에 끌려 목포로 간다. 용화사 예배 대신 반디와 단둘이 바닷가 방파제에 앉아 한울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데 대하여 이야기 나눔. 조용하고 은혜로웠다. 바다 바람이 따스하고 신선했다. (2106. 12. 11)
⎈ 종일 노곤하여 눕기 앉았기를 반복한다. 오랜만에 창환이 왔다. 여태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했는데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잘 모르겠단다. 자기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과거의 아픈 상처를 들추어내는 일로 업을 삼는 사람들에 대하여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 것 없는데 그랬다. 저마다 자기 딴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2016. 12. 12)
⎈ 밤, 류 원장 내외가 와서 맥을 짚어보더니 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심장이 좀 약하니 신경 쓰는 일을 삼가라고 한다. 아직도 나에게 신경 쓸 일이 남아있다는 얘긴가? 하긴 몸이 살아있는데 어찌 신경 쓸 일 없기를 바랄 것인가? 두더지가 히말라야에 잘 도착했다는 소식이다. (2016. 12. 13)
⎈ 한문공부 한 학기 마치며 저녁식사를 나누었다. 함께 공부하는 동안 행복한 시간이었다. 서해는 식초 담그는 자격증을 따기 위한 시험을 치렀는데 국가고시만큼이나 어려웠단다. 브라보가 보약을 다려서 가지고 왔다. (2016. 12. 14)
⎈ 어머니 기일(忌日). 서울 덕주 집에서 모임. 기림 내외가 참석하여 고모와 작은집에 인사 드렸다. 김 목사 감기가 심해서 못 올 줄 알았더니 버스 타고 왔단다. 작은엄마가 조카사위 대접한다며 맛있는 삼계탕을 끓였다. 우리 어머니, 어느 날 새벽기도 다녀오셔서 어린 삼남매 앉혀놓고 이제부터 너들은 내 자식이 아니라고 하셨던 우리 어머니. 그 말이 막내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2016. 12. 15)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