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4일 모임입니다.
한병덕 선생님의 성경읽기 생활화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1년 전 첫번째 강의가 있었고, 이번이 두 번째 강의였습니다.
제목 : 성경의 왜곡과 이용 경계
성경은 고린도후서 2장이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
저 사람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냄새.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해서,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 사도들 자신을 가리키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역시 그들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가 향기이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긴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가능핟.
칼빈도, "그들이 세상의 빛으로 물리고 있는 것은 스스로 어떤 광채를 발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눈을 뜨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향기라 한 것은, 그들이 가져온 복음이 온 세상을 향기로운 냄새로 가득 채울 힘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하였다.(J.Calvin, biblehub.com)
그런데 그 향기가 망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라고 하였다. 같은 복음이 누구에게는 생명을 제공하는 복음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멸망시키는 독이 된다는 말씀인데, 이 복음의 이중성을 바울이 다른데서도 언급했고, 예수 그리스도도 말씀한 것이었다.
이어서 바울은 혼잡케 하는 것, 철학과 헛된 속임수를 경계한다. 왜 사람들은 말씀을 비트는가? 왜곡하는가? 1세기 초대 기독교에서는 율법주의자들이 유대율법을 고수하기 위해서였고, 주후 4-5세기 이후 기독교 시대는 악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 복음 왜곡의 목적이다.
나는 그 예를 퀴어신학이라는 이름으로 동성 성행위를 단죄하는 성서 구절들을 입맛에 맞게 해석해서 그것을 옹호하는 데 이용하는 사례다. 이화여대 신약성서학 박경미 교수가 쓴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라는 저서를 보자. 박 교수는 동성행위 범죄에 대해 단호한 성서구절을 들면서, 사회와 문화에 따라 바뀌고 변화된 현대 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라고 비틀어 버린다.
또한 성서에서의 동성 범죄는 힘 있는 남자가 열세에 있는 남자, 특히 소년들에 대한 성착취를 의미하므로, 오늘날 동성애와 같이 동등한 지위의 두 사람의 동성애에 적용할 수 없다면서 성서구절을 거부한다.
이는 명백한 성서 왜곡이다. 시대조류를 맞추기 위해서 집요하게 이것저것 끌고와서 탈락시키고, 물타기하고, 비틀면 성서는 성서가 되지 못하고, 고대 유대사회에서 나온 윤리서 정도가 되는 것이다. 성서를 읽을 때는 나 자신을 비우고 성서를 따라가려고 해야지, 끌어다가 나의 목적에 맞추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왜곡이 될 것이다. 앞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성서가 자신의 세상적인 주장에 걸림이 되면 왜곡하고 뒤틀어 자신에게 맞추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경고한 대로,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베드로도 우리에게 경계를 요청하고 있다.
모두 11명이 참여하여 주께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부러 오셔서 말씀해 주신 한 선생님, 감사합니다.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j0bLq_xoBQU&feature=youtu.be
한 선생님께서 참고하라며 보여주신 이재철 목사의 설교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