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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글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凡草
올해는 부산 신세계 백화점 동화교실에 다니고 있는 정현진씨가 뽑혔네요. 신세계 동화교실에서 박그루에 이어 두 번째 수상자네요. 글나라 해님반에서는 박혜자, 허명남, 이자경, 안덕자, 배유안, 우리아, 강숙, 양경화, 곽미영, 황선애, 정현정, 김정애 등... 많은 사람이 뽑혔구요, 달님반에서는 소산 황미숙, 유영주에 이어 김여나가 뽑혔네요. 별님반에서는 최미정, 정희경, 김영주씨가 뽑혔습니다.
정현진씨, 수상을 축하하며 좋은 동화 많이 쓰기 바랍니다! 심사한 신주선, 이자경 두 분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제 22회 부산아동문학 신인상 수상작품 <상자를 풀지 않는 아이> 정현진
상자를 열었다가 닫았다. “리듬악기, 어느 상자에 담았죠?” “정기야! 상자만 보고 어떻게 알아, 짐 안 풀 거야?” “금방 갈 건데 뭐 하러 풀었다 다시 담아요?” “엄마가 정리해 놓을게!” 엄마는 방바닥에 조그만 거울을 꺼내 놓고 화장을 했다. “아니요, 짐 풀지 마세요. 상자들 그대로 두세요.” 나는 상자를 책상 아래로 하나씩 밀어 넣었다.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엄마, 일자리 구했어. 학교 갔다 오면 엄마 없을 거야.” “아빠 오면 그만 둘 거죠? 우리 집으로 갈 거죠?”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거울을 봤다. “늦게 올 거야. 5학년이나 됐으니 혼자 있을 수 있지?” 엄마 눈길이 행거 아래 반듯하게 놓아 둔 바이올린 케이스로 향했다. “월급 받으면 바이올린 방과후 수업 받자.” “곧 전학 갈 건데 그건 왜 해요?” 쏘아붙인 후 집을 나섰다. 마당 구석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보고 멈칫했다. 꼬리를 세우고 다리를 쭉 뻗은 모습이 발레리나 같았다. 흰 양말을 신은 듯 한쪽 발만 흰색이었다. ‘우리 미미 무늬랑 똑같네. 보고 싶다. 이모 집에서 잘 지내겠지?’ 바이올린 방과후 수업 하기 싫다. 학교에 가기 싫다. 집도 싫다. 이 동네에 있는 건 전부 다 싫다. 끝없이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걸었다. 쭉 내려와 큰길까지 나왔다. 한참이나 걸어야 학교가 보인다. 전학 와서 처음에 말을 걸던 아이들도 이젠 걸지 않는다. 괜찮다. 다시 전학 갈 건데 친해지면 귀찮다. 여자애들은 헤어질 때 울면서 메일 주소를 물어보았다. 바이올린 수업을 같이 받던 애는 편지 보내라며 집주소를 알려줬다. 곧 다시 만날 거라서 쓰지는 않았다. 학교에서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냈다. 선생님도 지쳤는지 그냥 두었다. 아빠만 오면 원래 살던 집과 학교로 갈 것이다. 아빠는 다른 지방에서 일한다고 했다. 온 집안에 빨간 종이가 붙던 날부터 보지 못했다. 흉측한 붉은 종이가 여기저기 붙었다. 엄마는 내 책상에 앉아서 이것만은 안 된다고 버티며 내려오지 않았다. 그 덕에 책상 뿐 아니라 아래 숨겨 둔 바이올린도 지켜냈다. 엄마 물건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아빠한테 엄마 화장대를 사 달라고 해야겠다. 집으로 가면 바이올린 수업도 받고 수영 센터도 다시 갈 것이다. 같이 배우던 애들 진도가 너무 많이 나갈까 봐 걱정되었다. 집에 들어서며 엄마를 불렀다. 일하러 가지 않길 바랐지만 엄마는 없었다. 숙제를 하고 책을 읽었다. 밖이 어둑어둑해져 가는데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네 집이 같이 쓰는 조그만 마당에 달빛이 환했다. 낮은 담장 위로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갔다. 얼룩 무늬에 한 짝만 흰 양말을 신은 고양이, 아침에 본 고양이 같았다. 그 뒤로 지나가는 아이는,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담장이 끝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걸어갔다. 신발을 신고 후다닥 달려 나갔다. 골목 끝에서 이리저리 봐도 아무도 없었다. “분명 유명재 같았는데……, 외국으로 이사 간 거 아니었나?” 명재가 간 방향으로 걸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한참이나 걸었다. 멀리서 고양이 소리가 귀를 할퀴듯이 들려왔다. “가만히 있어.” 사람 목소리도 들렸다. 고양이 소리는 점점 높아지더니 비명을 지르듯 날카로워졌다. 사람 목소리도 점점 높아졌다. “가만히 좀 있어!” 골목 끝에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환한 달빛 아래 명재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벽에 찰싹 달라붙었다. 명재는 고양이를 잡으려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화가 났는지 명재를 할퀴고 팍 튀어올랐다. 명재의 비명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내 옆으로 고양이가 휙 도망갔다.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아 입을 막았다. 한쪽 발만 흰 양말을 신은 얼룩 고양이, 고양이는 꼬리털이 없어 살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꼭 불에 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벌겠다. 뒷걸음질을 쳤다. 골목을 돌아 빠른 걸음을 옮겼다. 따라 걷는 듯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빨라지자 달리기 시작했다. 돌아도 돌아도 새로운 세상이 나타났다. 골목은 미궁 같았다. 미궁은 들어가면 나올 길을 찾기 힘들다. 나도 좁은 골목 세상에서 탈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숨이 차고 땀이 흘렀다. 숨을 헉헉거리고 있는데 발자국 소리가 다가와 멈췄다. ‘악’소리를 질렀다. “정기야, 왜 그래?” 엄마 얼굴을 보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다친 거야, 병원 갈까?” 나를 일으켜 세우며 엄마가 물었다. 순간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엄마 얼굴이 조금 전에 본 고양이 꼬리처럼 벌겠다. “엄마, 술 마셨어요? 일하느라 늦는 거 아니었어요?” “얼굴 빨개진다고 안 마신댔는데…….” 엄마는 말끝을 흐렸다. 화가 나서 엄마를 밀쳐냈다. 집에 와서도 아무 말 안 했다.
다음 날이었다. “일하러 가는데 화장은 왜 해요!” 엄마를 흘겨본 후 가방을 들고 나섰다. “밥 먹고 가야지.” 더 심통이 나서 문을 쾅 닫아 버렸다. 큰길로 내려와 학교가 보일 때쯤이었다. 누군가 어깨를 툭툭 쳤다. 돌아보고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명재였다. 애써 놀란마음을 가라앉혔다. “유명재, 너희 집 외국으로 이사 갔다던데…….” “소문이 그렇게 났냐? 아니야. 나 저기 살아.” 명재는 손가락으로 내가 사는 동네 쪽을 가리켰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명재 눈치를 살폈다. “정기야, 어제 언뜻 봐서 너인가 했는데 맞구나. 언제 이사왔어?” “어? 나는 어제 너 못 봤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래. 넌 못 봤겠지. 운동장에서 축구하다 멀리 가는 거 봤어.” “아, 그랬구나. 여전히 축구 하는 거야?” “응, 넌 바이올린 계속 하냐?” 난 고개를 저었다. 명재는 나를 보며 웃었지만 난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명재가 가만히 있으라고 소리 지르던 것,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꼬리털 벗겨진 모습이 떠올랐다. “고정기, 너희 집 어디야? 옛날처럼 게임 한 판 뜨자.” “어? 이제 우리 집에 게임기 없어.” “그래? 그럼 보드게임 하자. 미로탈출 게임 재밌었잖아.” 이번엔 고개를 아주 살짝만 끄덕였다.
달빛이 환한 날이었다. 이번 달에 두 번째 보는 보름달이었다. 고양이들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골목이 좁다 보니 담장 사이를 잘 넘어 다녔다. 꼬리털 없는 고양이를 봐도 많이 놀라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한 번 크게 놀랄 일이 생겼다. 잘린 건지 토끼처럼 꼬리가 뭉뚝한 고양이를 만났다. 명재 얼굴이 떠올랐다.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명재를 찾고 싶은 마음과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같이 들었다. 멀리서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렸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주저앉아 귀를 막았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 버릴까.’ 이 동네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상자도 풀지 않고 방과후 수업도 듣지 않고 친구도 사귀지 않고 말이다. “예전에 명재는 밝고 재미있는 아이였는데…….” 꼬리털과 꼬리가 없는 고양이가 어른거렸다. 일어나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렸다. 예전에 봤던 장면과 같았다. 환한 달빛 아래 명재와 고양이가 있었다. 명재는 구석에 있는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고 있었다. 고양이가 사료 먹는데 집중하자 명재는 살금살금 다가갔다.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명재야, 안 돼!” 내 소리에 고양이는 달아나고 놀란 명재는 주저앉았다. 명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명재는 나를 보더니 어이가 없는 듯 말했다. “야, 너 뭐야, 뭐가 안 된다는 거야?” 명재 손목을 붙잡았다. 손에 꼭 쥐고 있던 건 약통같이 생겼다. “이게 뭐야?” “고양이 연고. 요새 자꾸 다친 고양이들이 보여서 약 발라주려고 했어.” 이번엔 내가 주저앉고 말았다. “아, 다행이다.” “뭐가? 내가 뭐한다고 생각한 거야? 고양이들 괴롭히기라도 한 줄 알았어?”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미안해. 흐흐흣.” “요게, 웃어? 고양이 연고 사려고 간식도 안 사먹고 용돈 모았는데 말이야.” 명재는 눈을 부라리는 척 했고 난 비는 척을 했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우리가 담벼락 그림자에 몸을 숨기자 고양이들이 사료를 먹으러 왔다. 꼬리가 뭉툭한 고양이와 꼬리털 없는 고양이도 왔다. 꼬리털 없는 고양이 옆에 다른 흰 양말 고양이가 있었다. 우아한 발레리나 같은 고양이, 마당에서 본 고양이는 꼬리가 그대로였다. 둘은 흰 양말이 서로 반대였다. “명재야, 나 엄마가 준 돈 있어. 컵라면 사 먹자. 내가 쏠게.” 큰길로 나와 상가 쪽으로 걸었다. 처음 와 보는 길이었다. 명재가 편의점 가는 길을 안다고 했다. 앞서 걷던 명재가 멈췄다. “다 왔어?” “정기야, 너희 엄마 아니야?” 가리키는 곳을 보니 어떤 가게 뒷문 쪽이었다. 엄마가 커다란 그릇에 고기 불판을 가득 쌓은 채 닦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는 나를 명재가 툭 쳤다. 나는 명재를 끌고 골목으로 숨었다. 고개를 살짝 내밀어 엄마를 살폈다. 앞치마는 불판 그을음 때문인지 얼룩이 묻었고 묶은 머리는 땀에 젖어 있었다. 엄마 몸 전체에서 고기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엄마가 가게로 들어가고 나서도 한참이나 서 있었다. 가게 앞 쪽으로 가보았다. 유리창 안으로 엄마 모습이 보였다. 다른 아주머니와 밥을 먹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술병을 들어보이자 엄마는 손사래를 쳤다.
명재와 나는 왔던 길을 돌아왔다. 우리는 함께 골목을 걸었다. “이 골목길, 미로 같지?” 명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난 미궁 같던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궁…….” “미궁은 들어가면 괴물한테 잡아먹혀서 못 나오잖아. 그렇게 무서워?” 내가 쑥스럽게 웃자 명재가 어깨를 툭 쳤다. “미로 곳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으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어. 나도 찾는 중인데 벌써 많이 찾았어.” “찾은 보물이 뭔데? 어디서 찾았어?” 명재는 대답은 안 하고 씨익 웃기만 했다. “아까워서 그래? 보물 좀 같이 찾자.” “네가 지도를 그려서 직접 찾아봐. 보물이 숨겨진 곳은 자기만 찾을 수 있으니까.” 나도 하나는 찾은 것 같았다. 명재가 걸어가자 미궁 같기만 하던 골목길이 훤히 눈에 들어왔다. 밤이 늦었다. 엄마는 일찍 잠들었는데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땀에 젖은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일어나서 엄마 휴대폰으로 손전등을 켰다. 잠든 엄마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책상 아래 밀어둔 상자를 꺼냈다. 옷이 든 상자, 학교 준비물이 든 상자 사이에서 보드북 게임이 든 상자를 찾았다. 나는 이사 온 후 처음으로 상자를 열어 보았다. -끝- |
첫댓글 정현진 선생님,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신인상!
듣기만 해도 신선합니다.^^
착오로 회보에는 퇴고가 덜 된 원고가 실렸다고 하니 이 글을 참고바랍니다! 수상을 축하합니다♡
신인상 당선자인 정현진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목표가 등단이라더니
이루었네요.^^
정현진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이제 드디어 시상식 날이네요. 있다 뵈어요!
- 원고 올려주신 최미혜 선생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