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친구들과 시골집에서 촌캉스를 즐기고 돌아갔다. 친구들이 즐겁게 보냈다는 인사를 전하고 다시 도시로 떠났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가라는 쪽지 편지를 냉장고 문에 붙여놓고 왔었다.
1박 2일로 시골집에 다녀왔다. 촌캉스를 즐기고 간 아들의 흔적이 그리움을 불러왔다. 안방에 깔아놓은 예쁜 이불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다. 냉장고 문에 붙여놓은 메모지에 아들 친구들이 답장을 써 놓았다. ‘최고의 촌캉스였습니다.’라고 고마운 마음을 깨알같이 적어놓았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그림도 그려놓고 선물도 너무도 예쁘게 포장해서 화장대 앞에 놓고 갔다. 아름다운 젊은이들이다.
마당에서 바비큐를 해 먹은 흔적에서도 그들의 촌캉스 그림이 그려졌다. 얼마나 좋았을까? 수북하게 쌓인 맥주 캔과 소주병, 안주 상자들이 쫑알쫑알 나에게 신나서 그날 이야기를 전해준다. 뒷정리를 얼마나 잘해놓고 갔는지 치울 곳이 없었다. 주방도 정리 정돈을 얼마나 잘해놓고 갔는지 너무 예뻤다. 욕실도 말끔하게 원래 모습이고 수건도 빨아서 건조대에 널어놓고 갔다. 괜히 흐뭇하고 대견하고 마구 보고 싶어졌다.
하루 밭에서 비닐 씌우는 작업을 했다. 땅콩과 들깨 고구마를 심을 준비를 했다. 어머니가 짓던 밭농사인데 형님들이 다 함께 모여서 서툴지만, 놀이처럼 생각하면서 짓고 있다. 남편 위로 누나들이 세 분이 계신다. 아래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다. 여자 형제들이 많아서 언제나 웃음꽃이 핀다. 누나들이라서 남동생을 자식처럼 생각한다. 밭일은 모두 서툴지만, 일 보다는 함께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점심 무렵에 비닐 씌우는 일이 끝났다.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야외 식탁을 펴놓고 커피와 과일을 먹었다. 작년에 심어놓은 홍매화 나무에 꽃봉오리가 맺혔다. 얼마나 반갑고 대견하든지 가까이 다가가서 반가움의 인사를 전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보여주네! 아파트에서 기르다가 시골집으로 옮겨왔는데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이제는 안정적인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올봄에는 꽃을 피워주니 홍매화를 처음 보는 듯 기적처럼 느껴졌다.
호미를 들고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풀을 뽑았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괜찮을 듯해서 뽑지 않았더니 집안이 잡초가 무성해서 사람 사는 집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이 오가면서 풀이 안 나는 약을 뿌리면 된다고 걱정했다. 민들레가 뜰 앞에 노랗게 피어있으니, 정서적으로 좋고 마당도 예쁜데 굳이 뽑을 필요가 있을까? 냉이꽃도 마당에 가득하니 안개꽃이 핀 듯 아련한 풍경을 보여주는데 뽑지 말까? 아직도 나는 잡초인지 풀꽃인지 모르겠다.
저녁에는 마당에서 고기를 굽기로 했다. 상주 시내에 있는 대형마트에 가서 소고기와 오렌지와 간식을 사 왔다. 마당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담요를 깔아놓았다. 아직은 바깥 공기가 차가웠다. 야외 식탁에 먹을 것을 준비했다. 숯불을 피워놓고 고기를 구웠다. 산골 마을에는 밤이 일찍 찾아온다. 이제 밤 아홉 시를 넘기고 있는데 마을이 적막하다. 창문마다 어렴풋이 텔레비전 불빛만 보인다. 가로등이 산골 마을을 지키고 있다. 숯불 온도가 따사롭다. 우리도 젊은 친구들처럼 촌캉스를 즐기고 있는 거네? 작은 말소리조차 뒷집에 들릴 듯한 고요한 밤이다. 적막강산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불씨 톡톡 터지는 소리가 칠흑 같은 어둠을 깨운다. 불멍은 마음을 말랑하게 만든다. 숯불이 전해주는 따스함이 편안하다.
밤이 깊어지면서 숯불도 식어가고 고기도 떨어지니 분위기를 핑계로 소주 두 병을 마신 남편은 취기가 도는지 뒷정리는 내일 하자며 방으로 들어간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내가 뒷정리하고 들어가겠다고 먼저 들어가서 쉬라고 했다. 하루 밭에서 일했으니 얼마나 피곤할까?
말끔하게 뒷정리를 해놓고 의자에 앉아 하늘을 보니 별이 가득하다. 금방이라도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깜깜한 하늘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나에게로 왔다. 순간 전율이 느껴졌다. 내 삶의 후반전은 편안하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을 닮아가는 것 같다. 한기가 느껴질 무렵 담요를 안고서 방으로 들어왔다.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몸을 눕히니 절로 ‘아이고’ 소리가 나왔다. 금방 꿈나라로 나를 데리고 갈 것 같다. - 2024년4월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