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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땅 남쪽에 개심사 버금가는 정겨운 사찰이 있기에 길을 나선다. 가야산 남쪽의 덕숭산(德崇山)에 둥지를 틀고 있는 수덕사(修德寺)가 목적지로, 그저 한적하기만 한 개심사보다 사찰 규모도 훨씬 크고, 조계종 제7교구의 본사(本寺)로 충남 지방의 말사 36개를 관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 4대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있기에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사찰이다. 그러나 이미 물신이 지배하는 사회 분위기 탓인지, 수덕사를 오르는 길도 생각만큼 유쾌하진 않은 듯 하다. 내포땅의 여유를 바라고 왔지만, 곧 그릇된 생각이었음을 깨닫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성역(聖域)으로 가는 길에 공짜는 없다! 차에서 내린 길손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하는 것은 환영의 말 한 마디 없는 주차료다. 불법 주차와 너도나도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하는 세태도 막고 사찰 보호에도 일조할 수 있다는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어딘지 모르게 이런 산중 고찰에까지 물신(物神)의 손이 뻗친다는 생각에 씁쓸할 따름이다. 그래도 어쩌랴, 사찰 대문이라 할 수 있는 일주문을 향해 걷자. 역시 아직은 속(俗)의 영역을 걷고 있는 지라, 길 양옆으로 대한민국 영토 내의 웬만한 관광지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효자손과 핸드폰줄 등 각종 물품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물론 빈대떡과 탁주를 파는 온갖 식당들이 빠질 리가 없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은 채 길을 오르면 이내 성(聖)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일주문 앞에 서게 된다. 이제는 좀 나아질까 싶지만 여기서 또 지갑을 열어야 한다. 사찰 입장료 2천원씩을 내라는 것인데, 성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공짜는 없는 모양이다. 수덕사 측에서는 주차료와 상점·식당 임대료 등을 거둬들이는데도 또 입장료를 내라 하니, '충남 예산군 덕산면(德山面) 덕숭산(德崇山) 수덕사(修德寺)'에서 보이는 세 번의 '덕(德)'은 날씨가 매서워 잠시 어디로 간 것일까.
일설에 의하면 수덕사 터는 우리나라 불교가 처음 시작된 곳 중의 하나라고 하기도 한다. 즉 서기 383년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수한 자리에 절이 세워졌다는 것인데, 확실한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또한 당(唐)의 도선(道宣)이 찬(撰)한 <속고승전(續高僧傳)>을 근거로 지금으로부터 약 1400년 전인 백제 위덕왕 때 세워졌다는 설과 백제 법왕 원년(599년)에 지명법사(智命法師)가 창건했다는 설, 숭제법사(崇濟法師)가 창건했다는 설 등이 있으나 확실한 사항은 알려지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고려 충렬왕 34년인 1308년에 수덕사 중심 건물인 대웅전을 세우는 등 지금의 가람 배치가 어느 정도 정해진 뒤, 조선 중종 23년인 1528년, 영조 27년인 1751년과 46년인 1770년, 순조 3년인 1803년에 각각 중수한 기록이 확인되었고, 일제 지배를 받던 1936년에서 1940년에 걸쳐 만공(滿空) 스님이 해체 수리한 역사가 있다.
1400여년 전의 도량에서 만난 세 명의 스님 한편 수덕사 이야기를 할 때 빼놓기 힘든 스님으로 세 명을 들 수 있는데, 먼저 한말에 수덕사에 있었던 경허 성우(鏡虛 惺牛; 1849~1912) 스님과 그의 제자 만공 월면(滿空 月面; 1871~1946) 스님이 있다. 9세에 과천 청계사에서 출가한 경허는 개심사와 부석사 등에서 선풍을 일으켰고, 만취한 상태에서 법당에 들어 파계승 소리를 듣기도 했다. 말년(1904년)에는 결국 사찰을 떠나 이름을 박란주(朴蘭州)로 고치고 서당 훈장을 하다 1912년 4월 25일 입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스승의 그 제자라고 해야 할까. 젊은 여자의 맨 허벅지를 베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 일곱 여자의 허벅지를 베고 잤다고 해서 '칠선녀와선(七仙女臥禪)'이라는 말을 낳기도 했고, 밭에서 남편과 함께 일하던 아낙을 갑자기 와락 끌어안는 등 경허처럼 호방한 기질이 다분했던 만공. 그는 이런 엽기적(?)인 일화 말고도 마곡사 주지로 있던 1937년, 조선 불교를 일본 불교화 하려는 조선 총독 데라우치에게 강하게 반발하는 등 기개를 보여주기도 했고, 조선 31본산 주지 중 유일하게 창씨 개명을 하지 않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엽(一葉; 1896~1971)을 들 수 있다. 본명이 김원주(金元周)인 일엽은 목사의 딸로 태어나 서울 이화학당에서 수학하고 일본 동경영화학교(東京英和學校)를 다니는 등 당시 남자들도 힘들다는 고등 교육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영화학교를 다니다 귀국, 우리 나라 최초의 여성 잡지인 <신여자(新女子)>를 창간하고 화가 나혜석과 함께 여성의 사회활동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아버지의 영향 탓이 크겠지만 20세까지는 기독교 신자였던 일엽은 1933년, 38세의 나이에 수덕사에 올라 불교에 귀의한다. 일엽은 속세에 있을 때 수상록 <청춘을 불사르고>를 내기도 하는 등 이름을 떨쳤다. 몬드리안이 수덕사를 보았다면…
수덕사의 시작이자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한 대웅전은, 만공에 의해 중수가 진행되던 1937년 당시 벽 안에서 1308년에 세웠다는 묵서명(墨書名)이 나온 것을 보면 지금까지 창건 연대가 알려져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에 해당한다. 즉 내년이면 696살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젊은이들처럼 요란한 색조화장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담담하기만 한 누런 외벽 사이로 보이는 깊게 패인 나뭇결은 마치 옆집 아주머니의 주름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뿐만 아니라 기둥과 들보, 창방을 연결하는 기능을 하는 공포 역시 화려한 다포보다는 주심포 양식을 취함으로써 간결하게 표현했고, 지붕 역시 안정감 있는 배흘림 기둥 위에 맞배지붕을 올려 단순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주고 있다.
대웅전 벽이 주는 아름다움은 아무래도 면의 분할에 있고 그 색에서 우러나는 자연스러움에 있는 듯 하다. 즉 건물 측면에서 보았을 때 기둥을 수직으로 가르며 지붕을 떠받치는 기능을 하는 구조물, 즉 보를 11개나 볼 수 있는데, 많은 수의 보에 비해 그리 복잡해 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아름답게 보일 뿐만 아니라 단순성의 미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게다가 다른 건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우미량이라고 하는 부재가 보이는데, 그 곡선에서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생생한 율동미가 느껴진다. 그러나 아무리 구조가 훌륭하다 해도 누런 색의 벽이라는 평면이 없었다면 좀 심심해 보였을 수도 있었을 텐데, 기둥과 보 사이의 한지처럼 편안한 느낌의 누런 벽면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그 무언가가 있는 듯 하다. 몬드리안이 수덕사 대웅전을 보았다면 깜짝 놀랐을 법한 아름다운 예술품이라 할 수 있겠다.
도솔천이 따로 있나… 연세 지긋한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수덕사가 많이 변했다고들 한다. 이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직접 본 적이 없으니 뭐라 확신은 못하지만, 사진 자료 등을 통해 접하는 수덕사와 요즈음의 수덕사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나서서 뭐라 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수덕사도 엄연한 문화유산이지만 어디까지나 사유재산인 만큼 궁궐이나 성곽을 유지·보수하는 문제와는 다소 차원이 다르니 말이다. 어쩌면 여기서 불교계의 고심이 더욱 아쉬워지는 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길손에게 다행인 것은 아무리 가람 배치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등 부산을 떨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대웅전을 보기 위한 답사, 자연을 느끼기 위한 답사가 아닌가 싶은 수덕사 답사, 유달리 높은 석축 여러 개를 지나 지친 걸음을 재촉해 다다른 대웅전은 그저 말없이 길손을 맞는다. 황하루가 아무리 앞을 턱 하니 가로막고 가파른 돌계단이 다리를 지치게 해도, 명성으로 아무리 사람이 미어터져도, 그저 대웅전 앞에 서면 마음이 편안해 지고 돌아서서 저 아래 내포땅을 바라다보면 그 동안 답답했던 가슴마저 확 트이는 느낌이다. 도솔천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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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무기내요... 그래도 조금 읽었습니다 ㅜㅜ 가고싶네요 ^^^
사진에 사람이 있는데 선생님 께서 찍으셨나요?
요즘 인기가 많은 곳인가벼~
한번 가보고 싶다.
한번 가보고 싶다.
한번 가보고 싶다.
한번 가보고 싶다.
한번 가보고 싶다.
한번 가보고 싶다.
한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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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가보고 싶다.
한번 가보고 싶다.
한번 가보고 싶어요,
이난희 도배햇다 ㅋㅋ
도배하지마
이난희 뭐하는데 ??
정말한번 가보고싶네요
너무 멋있어요 저도 가고 싶어요
이난희 도배닷 근데 사람들 진짜 많다
음 가보고 싶네
사람들이 엄청 많네요~~
도배가쫌심하다..
잘읽었습니다..
헉 -_-.. .. 난희야 미안해 ㅜ_ㅜ (미안해 할이유 있음) 읽고 갑니다아 ㅜ_ㅜ
난희 도배하지마!
그이유 나는 알지롱.ㅋ. 혜민아.. 말 않 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