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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화살림 (위례역사문화연구회)
 
 
 
카페 게시글
좋은 글, 감동이 있는 말 스크랩 몽골인을 위한 한글교실 개교에서 지금까지
김형 추천 0 조회 56 08.10.28 10: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글교실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



나의 이야기는 경기도 곤지암 일원의 영세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몽골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글 교육을 하면서 겪는 현실적 문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와 우리 선생님들이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가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우리들이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가 하는 것이 줄거리가 될 것이다.


< 한글교실을 열기까지 >


지난 해 6월 30여년의 공직에서 물러나 쉬고 있던 나는 송파구에 있는 위례역사문화지킴이(지킴이로 약칭)라는 자원봉사 단체에 가입했다. 이 단체는 송파구에 산재해 있는 한성백제 유적을 정화하고 보호, 홍보하는 것을 활동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7월 초 송파구 잠실교회 곤지암 수련원에서 몽골인을 사역하고 계시는 신동성 목사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몽골인 들에게 지킴이에서 매주 일요일 오후  한글을 가르쳐 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지난 5.22 지킴이는  수련원에 나오는 몽골인 노동자들과 함께 강화도 탐사를 했었다. 나는 이 사실을  집행부에 알렸고 회의 결과 요청을 받아들이고 내가 한글교실 운영을 맡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8월 말부터 수업을 하겠다고 교회 측에 통보하고 수업 준비에 들어갔는데 가장 큰 문제가 교사의 확보 문제와 교재의 선택 문제였다.


국어 전공자나 교직 출신자를 대상으로 교사를 구한다는 안내문을 지킴이 카페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 올리고 주변에도 이야기를 해 두었으나 한 달이 넘도록 지원자가 없었다. 그러던 중 지킴이 총무인 윤기옥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경험도 능력도 없지만 같이 일하고 싶다고 전해 왔고 그 후 모든 일은 두 사람이 논의하고 결정하게 된다.


다음으로 교재 선택 문제인데 한여름 두 사람이 서점, 광나루 소재 몽골학교 등으로 땀 흘리며 다니면서 이 책 저 책 찾아보다가 국제교육진흥원에서 나오는 한글교재 1권 초반부(복사하여 배포)를 2-3주 가르쳐 한글을  읽을 수 있도록 한 뒤 “초급한국어 쓰기(몽골어판, 국립국어원 편찬, 홀림사)”로 강의하기로 결정했다. 이 계획은 별도로 얘기하겠지만 책상머리에서 세운 것이고 결과적으로 잘못된 계획이었다.


우리는 8.31 첫 수업을 앞두고 우리의 교육 목표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누었는데 일차적으로 8.31부터 11.30까지 3개월간( 2,3,4주, 월 3회, 오후 4시부터 5시 30분) 강의해 보고 그 후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중요한 것이 교육방법인데 4-5명 단위 소그룹 지도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가급적 학생들에게 대화의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선생님이 더 필요했고 나중에 몇 분이 교사를 자원해 와 5명의 교사진(지킴이에선 나와 윤기옥님,이미향님)이 갖추어 지게 되었다.


< 출석부를 못 만들다 >


드디어 첫 수업 시간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예배를 드린 후 교실로 이동하여 수업을 하고 저녁식사를 하는 스케쥴인데 학생들이 교실로 갈 생각을 않고 슬슬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교회 측에서는 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려고 하지만 이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쉬는 일요일을 운동이나 하면서 보내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화도 여행 때 알게 된 몽골인 대표 도르치씨(45세)에게 슬그머니 학생들을 데리고 오라고 부탁하여 14명이 첫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첫날 수업>

 

첫 수업에서 나는  우리가 한글을 가르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말을 몰라서 고용주로부터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려는 인권적 차원의 배려라는 것을 설명했다. 이들은 나의 말에 상당히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그 후 우리는 한 달에 세 번씩 승용차로 곤지암까지 가서 수업을 하고 이들과 함께 교회에서 제공하는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일정을 계속하고 있다. 


첫날 한글 실력 테스트를 겸해서 이들의 어려움에 대해 카운슬링 같은 것을 해보려는 요량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한글 실력이 그룹별로 많은 차이를 보였다. 처음에는 한글 수준을 감안하지 않고 막연히 그룹별로 가르치려 했는데 이제는 불가피하게 수준별로 수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체류 3년이 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바로 며칠 전 한국에 온 사람도 있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3개월 주기로 절반 정도가 보다 나은 조건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보니 첫날 수업한 사람이 다음 수업에 나오지 않고  세 번째나 네 번째 수업이 되어서야 얼굴을 내미는 형국이다.  출석부와 신상명세서를 만들어 관리형 교육을 하려던 계획은 완전히 무산 되었다. 학생 수는 40여명이 되나 7-14명이 출석하기 때문에 일관성 있게 지도를 해 나갈 수 없고 특히 초보자 그룹은 매번 다른 사람이 와 앉아 있어 난감해 질 때도 있었다.


결국 우리는 같은 내용을 가지고 세 번 정도 반복하여 가르치게 되는데 그렇다면 3개월 정도로 잡았던 일차 교육이 1년은 걸려야 끝난다는 계산이 된다. 어쨌든 그룹별 교육이 적절한 선택이고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노동자들로서도 지금까지는 교회에서 제공하는 버스로 수련원에 와서 운동하고 놀다가 저녁 먹고 헤어지는 편한 생활이었는데 느닷없이 공부하라고 교실로 내몰리다 보니 아직 수업에 관심이 크게 없는 것 같다. 자발적인 동기보다는 돌보아 주는 기관 방침에 따라 교육을 하는 상황에서 비롯되는 문제인 것 같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우리는 매주 같은 교재를 십여 부 복사해 가야하고 준비 없이 교실에 오는 학생들을 위해  필기도구도 준비해가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아무튼 우리의 당초 계획은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이러한 교육환경을 앞으로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가 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루 3-4시간 잔업을 하고 한 달에 한두 번 쉬는 생활 조건에서  한국어 공부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느끼는 사람이 대다수인 그룹을 대상으로 가르치기는 만만치 않은 일인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교육후 식사시간, 몽골에서 교장선생님이었던 바이나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말만 가르치기 보다는 어려움을  함께하는 마음의 교육으로 >


현재 우리는 매 수업마다 전체 교육시간을 갖고 간단한 공지사항을 전달 후 곧바로 A, B, C 반으로 편성, 담당 선생님 재량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학생들의 한국어 수준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다른 대안이 없어서다.


A반은 한국어가 구사되는 사람들로 편성되며 이들에게는 직장 상사와의 의사소통을 위한 각종 케이스별 대화방법이나 기타 그들이 요구하는 내용의 회화를 미리 준비하여 프리토킹으로 수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른바 맞춤형 교육인 셈이다.

 

 

 


B 반은 우리말로 강의가 가능한 사람들로 편성이 된다. 선생님들은 이들에게 한글 쓰기와 말하기를 가르치는데  여러 자료를 통해 흥미를 돋우어 가면서 가르치고 있어 교육효과가 높은 것 같다.

 

 

 

 

 


C 반은 그야말로 우리말을 거의 알지 못하는 왕초보인데 이 반에는 몽골인 통역이 동석을 하여 도와주고 있다. 이 반은 앞으로도 계속 낯선 사람이 찾아오는 반이 될 것 같다.

 

 

 

 

 


처음 겪는 일이라 시행착오가 많고 의외의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선생님들이 수업에 들어가기 전 여러 가지 교안을 준비하여 오기 때문에 어떤 학생이 오더라도 그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게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학생들도 이러한 교육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한글교육이 계획보다 다소 지연되더라도 우리는 실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교육 목표가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기는 하나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보다 질 높은 생활을 하는 것을 돕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  목표이고 한글교육도 그러한 취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글교육과 더불어 이들의 생활이 보다 안정되고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배려해 가기로 하고 있다.


먼저 의료부분에서 이들에게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각종 혜택에 대한 정보를 이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며 이러한 내용을 설명해 줄 전문가를 찾고 있다.


11월 초에는 법률 전문가를 불러 이들에게 우리나라의 기초적인 법률 상식과 꼭 지켜야할 사회규범에 대해 강의할 계획이다. 현재 강의할 분이 정해졌고 그가  노동부나 봉사단체를 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법률사무소를 하는 친구에게 이들이 부당하고 억울한 처우를 받을 때 자문을 해 주기로 약속을 받아 놓고 있다.


사실 수업이 진행되어 가면서 우리를 대하는 그들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10.3 지킴이 주관으로 이들과 강릉 경포대 여행을 다녀왔는데 한글교실 선생님이 소개되자 환호가 쏟아졌다. 그들이 한글 선생님들에 대해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일이었다.  교사와 학생과의 그러한 교감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는 것 자체가 보람이다.

 

< 강릉 경포대에서>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뜻있는 분들의 도움과 조언을 받아가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상황에 맞는 교육 방법을 생각해 나가간다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사랑을 먼저 생각하고 일해 나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에서 교육 중 있었던  조그만 만남의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선생님,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학생 중  오유나(36세, 여)는 첫 수업(8.31) 하루 전에 병원에서 3개월 정도 진료 받기 위해 입국했다.  그녀의 남편인 미가는 7개월 전 입국하여 월 70만원 을 받고 일하고 있다. 그녀는 온몸의 관절이 아파 서울대 병원에 진료를 받기 온 것인데 첫 수업 다음날 서울대병원을 간다기에 안내를 하기로 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이들 부부와 어린애, 고모와 만나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았다. 시간이 어중간해 모든 사람이 아침과 점심을 먹지 못한 채 진료를 받았다. 허기를 느끼면서 몸짓, 발짓으로 진료가  끝나고 요금을 계산하는 순서인데 5만 6천 얼마가 나와서 그런가 하고 있는데 56만원이었다.


결국 대금을 지불하지 못해 검사도 못하고 집으로 가서 돈을 구해 보기로 하고 병원을 떠났

다. 남편 한 달 봉급 70여만원, 부인 30여만원인데 몽골에서 항공료 70만원을 써가며 무지개, 희망의 나라, 의료선진국 한국에 온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돕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는 있으나 허무했다.


병원에서 진료 관계 서류를 기다리는 중에 그녀는 남편과 몇 마디 주고받은 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마 남편에게 그 말을 그 자리에서 배워 말한 것 같다.


강변역에서 그녀 일행은 내렸다. 그들의 어려운 삶, 그녀의 미소의 여운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사이 우리의 2호선은 한강을 넘어서고 있었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 다소 한스러운 강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에필로그 : 이 글은 한글교실 경험 수기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 쓰여 진 것입니다.  아직 한글교육의 경험으로 내세울 만한 알맹이가 없고 또 그래서 내용도 부실하여 제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만 우리가 지킴이의 이름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활동을 여러분께 보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글교육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두 사람의  몽골인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도르치씨는 지난 추석 때 사고로 사망했고 통역을 해주시던 보르마 선생님은 사정이 있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삼가 조의를 표하며 보르마 선생님의 새로운 출발에 행운이 깃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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