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jV81sj1V6v0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생애 가운데 소돔과 고모라 심판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성경에 나오는 도시입니다. 타락과 심판의 대명사처럼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소돔에서 나온 영어 단어 가운데 소도미라는 단어는 동성애, 비정상적인 성관계를 의미한다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 도시가 의미있는 것은 이곳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 도시의 심판은 남의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보시면 하나님이 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실 조짐을 보이자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생각해서 어떻게 해서든 멸망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중보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16절부터 읽었습니다만 1절부터 나오는 내용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직접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집에 방문하시는 내용이 나오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육신을 오신 줄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극진하게 대접을 하는 중에 다시 한번 이삭의 출생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2절과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 셋이라고 하는 것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있고 성자예수님과 두 천사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내려오셨다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육신으로 오신 경우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구약에서부터 성육신의 모형이 나타나고 있음을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성육신의 모형은 구약성경 여러군데에 나옵니다만 본문의 특별한 점은 셋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중요한 시점이고 중요한 사건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현재 어떤 사건을 앞두고 있는 것입니까? 이삭의 출생과 소돔, 고모라의 심판입니다.
이삭의 출생이 중요한 것은 이삭 때문에 아브라함이 성경에 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삭을 낳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존재하지도 않고 예수 메시야도 세상에 오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브라함이 성경에 등장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모세오경을 모세가 썼습니다만 모세도 이삭의 혈통이기 때문에 이삭이 없으면 모세도 없고 성경도 없게 됩니다. 이삭의 출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한데 그 이삭이 어떻게 태어난 것입니까? 인간의 힘과 노력은 제로,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무에서 유로 우주만물이 창조된 것과 같은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질문을 할 것이 있습니다. 이삭의 출생이 그토록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이삭이 태어나는 시점에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당하는 내용을 굳이 성경에 기록한 이유가 특별히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때도 아니고 이삭이 태어나는 시점에 맞추어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이유가 있는가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과 구원에 대한 모형인 것입니다.
이삭의 출생과 소돔의 멸망은 매우 대조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쪽은 죽음이 생명으로 한쪽은 생명이 죽음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하기 전의 모습이 마치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과 같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생명이 넘치는 곳이 한순간에 저주와 죽음이 땅이 되고 만 것입니다. 결정적인 기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함께 하지 않느냐의 차이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문화와 문명이 계속 발전해서 그야말로 유토피아를 향해 가는 것 같습니다. 성경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마치 망하기 전의 소돔과 이삭이 태어나기 전의 아브라함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반전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날이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 성경의 결론인 것입니다.
■고후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알라스카가 미국 땅이라는 것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원래 알라스카는 러시아 땅이었는데 미국에서 1867년에 720만달러를 주고 산 것입니다. 당시 국무장관 스워드라는 자가 구입한 것인데 미국 사람들은 엄청나게 비판을 했습니다. 그런 쓸모없는 땅을 왜 샀냐고.. 하지만 얼마뒤에 알라스카는 돈주고도 살 수 없는 땅이 된 것입니다. 금과 석유과 가스가 쏟아져나온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산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것을 산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이는 세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천국, 하나님을 모시고 생명과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2절부터 보시면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에 살고 있는 조카 롯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기도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2절, 23절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타락하고 범죄한 도시이지만 그래도 의인이 소수 몇 명이라도 살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함께 멸망당한다면 너무나 억울한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모습이 아닌 것 같습니다. 50명이라도 있으면 멸망시키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50명 있으면 멸망하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50명이 안될 것 같아서 5명 줄인 45명을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10명까지 내려갑니다.
다음장 19장에 소돔, 고모라 도시가 멸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만 결국 의인 열명이 없어서 멸망당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의인 열명이 있었으면 소돔은 절대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악한가도 중요하지만 의인이 몇 명 있느냐가 결국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워낙에 타락해 있기 때문에 얼마나 깨끗하냐를 기대하는 것은 출발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나마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모든 인류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의인 한 사람 때문에 지옥에서 천국으로 자리가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 의인이 누굽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한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롬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의인 한 사람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때문에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사회와 나라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의인입니까? 본문의 아브라함이 그 모델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처럼 기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 의인임을 기억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는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내 힘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까? 내 힘으로 살았습니까? 사실 내 힘으로 산 것은 세상은 인정하지만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무효입니다. 기도하는 흉내라도 내셔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의 열매는 바로 조카 롯입니다. 롯이 그나마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롯이 전쟁 포로로 잡혀갈 때 아브라함이 데리고 있던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구출해낸 적이 있습니다. 대단한 사랑이고 대단한 은혜이고 대단한 작은 아버지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브라함의 힘으로 구출한 사건입니다만 이번에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출하게 된 것임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구제하고 육신적으로 돕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만 기도와 말씀으로 영적인 권면을 하고 복음을 전함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진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도로 돕는 인생, 영적으로 돕는 인생.. 기도하는 이 시대의 의인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마지막으로 19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태어날 이삭을 비롯한 후손을 택하신 이유가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소돔과 고모라에는 의와 공도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의는 올바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론, 정석... 공도는 의를 이루기 위한 수단, 방법.. 재판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도 사라지고 공도도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유 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유다서에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다른 육체를 따라가는 일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육체관계가 아니라 비정상적인 말하자면 동성애와 수간같은 것을 말합니다.
유다서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예로 드는 이유는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교사들 때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단사상을 가지고 들어온 것입니다. 한데 이들을 겨냥해서 말씀을 전하다가 소돔과 고모라 예를 든 이유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은 것이 소돔과 고모라 같다는 것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동성애만 죄가 아니라 살인 강도 거짓말도 죄인데 왜 동성애만 가지고 그러냐고 사람들이 말합니다만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살인 강도 거짓말은 모든 사람들이 죄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성애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유다서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죄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의와 공도가 사라지니 혼란 그 자체가 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도 죄를 짓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것입니다. 기준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절대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만해도 아는 신학자들.. 티브이에도 자주 나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은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나그네 대접을 제대로 못하고 집단강간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고 진보라는 이름아래 죄가 자행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부름받은 이유가 바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는데 있음을 기억하고 돌아가시길 축원드립니다.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죄인이지만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기준이 될 수가 있고 또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아브라함의 세상의 의의 영향을 끼치는 부분을 살펴봤습니다. 기도로 소수의 의인에 속하시고 의와 공도를 행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