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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 소개 >
고려사경, 고려불화 그리고 탕카로 만나 보는
고려와 티벳의 불교 미학
“깨달음, 명상, 그리고 보살의 길
(Illumination, Meditation, and Bodhisattvas)”
김경호, 조이락 초청
뉴욕 티벳하우스 전시
글 | 홍성미
(본지 취재기자)
뉴욕의 3월은 아시아 미술의 달이다. 올 해로 10년 째를 맞고 있는 Asia Week New York (아시아 위크 뉴욕) 행사가 3월에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마다 3월이면 세계 곳곳의 많은 동양 미술 수집가들과 박물관 큐레이터들이 뉴욕을 찾을뿐만 아니라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필라델피아 뮤지엄, 아시아 소사이어티 등 뉴욕의 주요 미술관과 화랑가에서도 아시아 미술을 소개하는 활발한 전시와 미술 경매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아시아 미술 애호가라면 수준 높은 동양의 고미술품과 더불어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까지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올 해의 Asia Week New York (아시아 위크 뉴욕)은 여느 해보다 조금 더 특별했다.
고려 불교 미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고려사경과 고려불화, 그리고 티벳의 불화 탕카(Tnan-ka)의 아름다움을 한 자리에서 비교 감상해 볼 수 있는 독특한 기획의 미술 전시가 지난 3월 13일, 2019 Asia Week New York (아시아 위크 뉴욕) 개막일에 맞춰, 열렸기 때문이다.
“깨달음, 명상, 그리고 보살의 길 (Illumination, Meditation, and Bodhisattvas)”이란 제목의 이번 전시는 미주 현대 불교의 김형근 대표가 설립한 뉴욕 한국 문화 재단과 뉴욕 티벳하우스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 미술 협회 (Korea Art Society)의 후원으로 마련되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던 새로운 기획, 그래서 더 많은 실무적 조율과 대화가 필요했다는 이번 전시는 뉴욕 미술가에 한국 불교 미술의 독특한 미학을 소개하는 좋은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뉴욕 교민들에게는 새로운 시각에서 우리의 위대한 불교 유산, 고려 불화와 고려사경을 만나 볼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3월 13일 뉴욕 티벳하우스 갤러리에서 개최되었던 오프닝 행사는 뉴욕의 많은 아시아 미술 전문가, 미술 애호가, 그리고 언론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시의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플러싱 타운홀의 최성우(숀 최) 홍보 디렉터의 축사를 시작으로 티벳하우스의 총괄 디렉터인 간덴 서먼(Ganden Thurman), 한국 미술 협회(Korea Art Society)의 로버트 털리(Robert turley) 회장, 그리고 뉴욕에서 활동중인 김희자 화가의 축사가 이어졌고, 이에 이번 전시의 두 주인공인 고려사경의 대가 외길 김경호 선생과 고려불화의 전통을 잇고 있는 조이락 화가는 감사의 말로 화답했다.
이 날 관람객들을 제일 먼저 맞이해 준 건, 향긋한 차향이었다. 한국의 차 문화를 소개하는 다례(Tea Ceremony) 시연을 위해 특별히 한국에서 뉴욕을 찾은 선엽 스님은 시연에 앞서 전시장을 찾은 모든 관람객들에게 분주히 차를 대접하고 계셨다. 마치 목욕제계하고 부처님의 힘, 민중의 공으로 만든다고 여기며, 자신의 이름조차 남기지 않았던 수많은 고려의 화공들처럼, 고려사경과 고려불화를 곧 마주하게 될 관람객들은 선엽 스님이 건네는 맑은 차 한잔을 마시며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가다듬고 있었다. 유난히 포근했던 이른 봄 날, 뉴욕 티벳하우스를 둘러싸고 있던 초저녁의 공기는 그렇게 선엽 스님이 만드는 은은한 차향과 함께 영원과 찰나를 넘나드는 고려 불교 미학의 잔잔한 화려함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5월 9일 까지 뉴욕 티벳하우스 갤러리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오프닝 참가자들에게 선엽스님이 손수 만든 차를 주고 있다.
▲ 김희자 화가 축사
▼ 오프닝에 참가한 뉴욕 지역 스님들과 선엽스님, 김경호, 조이락 작가
선엽스님의 다도 시연
우리는 고려를 잘 모른다
수도가 한양이었던 조선과 달리 고려의 수도가 개경이었던 점이 그 이유 중 하나라는 의견도 있다. 그만큼 고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유물과 유적들이 개경 일대에 대부분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려는 474년을 유지했던 불교 국가였다. 한 왕조가 500년 이상을 유지한 예는 세계사적으로도 무척 드문 일이라고 한다. 그만큼 나라를 경영하는 능력과 외교력이 탁월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고려의 후신인 조선왕조가 505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고려라는 나라의 축적된 경험과 정신 문명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앞서 고려에도 태조 왕건부터 34대 공양왕까지 474년간(918년~1392년)의 역사적 사실을 기술한, 안타깝게도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고려왕조실록이 있었다. 고구려의 정신을 이어받아 국호도 고려라고 정한 나라, 고려에 대해 알면 알수록 2019년을 살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더 많은 단서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중국과 미국이라는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에서 어려운 외교전을 벌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이러한 외교적 난국의 해법을 찾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가 고려라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동아시아의 패권을 잡기 위한 세력다툼이 극렬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고려는 유목국가였던 요나라(거란), 금나라(여진) 등과 탁월한 외교적 감각을 통해 고려-요-북송 / 고려-금-남송 3강 구도의 팽팽한 세력 균형을 유지하며, 송나라와는 우방관계를 맺었고, 몽고가 세계 최강의 위력을 과시하며 동북아의 패권을 쥐고 있던 시절에도 강렬한 항쟁과 외교적 기지를 모두를 발휘하며 그 난국의 시기를 지혜롭게 헤쳐나갔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서희의 외교 담판, 자주와 실리를 모두 획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외교 천제 서희를 떠올리며 고려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매개체 중 하나는 바로 예술이다. 예술은 한 개인이 갖고 있는 무의식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던 집단 무의식의 자연스러운 발현이기 때문이다. 섬세한 미학과 그것을 현실에 구현할 수 있는 탁월한 기술력을 동시에 지녔던 고려인들, 그래서 주변의 패권국가들도 동경했던 나라 고려. 지금 전 세계는 한류 열풍에 휩싸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영국의 전설적인 그룹 비틀즈 등과 비교되는 K-Pop 그룹 BTS의 인기를 보며, 아마 격세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에게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고려의 역사를 보면, 한류의 원조라고 할 수 고려 열풍이 있었다. 그 당시 동아시아에서 고려 문화의 인기는 지금의 한류 못지 않게 뜨거웠고, 고려 열풍의 주인공이었던 고려불화과 고려사경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유산인 것이다.
전시장 풍경
▲ 김경호 선생이 관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 관객들과 대화하는 조이락 작가
2019년 뉴욕에서 만난 두 명의 고려인, 조이락과 김경호
조선 500년, 일제 강점기, 그리고 6.25전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려불화와 고려사경은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었다. 그 꺼져 가던 불씨를 마치 운명처럼 되살리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 외길 김경호 선생과 조이락 화가, 그들이 거부할 수 없었던 그 강한 끌림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어쩌면 그들은 환생한 고려의 화공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묘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자기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사람들처럼 고려사경과 고려불화에 빠져 들었고, 수백년의 시간을 아우르며 축적되었을 그 예술적 경지를 고스란히 자신들의 화폭에 담아 내고 있다. 고려를 가장 많이 닮았을 것 같은 두 명의 예술가, 조이락과 김경호 작가의 고려 불화와 고려사경을 통해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고려인의 DNA를 한 번 깨워보자!
▲ 김경호 선생 작품을 설치 전문가가 설치하는 모습
▼ 김경호 선생이 한국미술협회 로버트 털리 회장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0.1mm의 붓끝으로 담아내는 부처님의 목소리, 김경호 작가의 고려사경
고려는 사경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사경 문화가 널리 펴져 있었다고 한다. 당시 고려 인구 약 300만명 중 100명 정도의 사경 전문가가 있었고, 이를 오늘날 인구로 환산해 보면, 현재 우리 인구 약 5천만 중 약 1700명 정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고려시대 사경을 전문적으로 했다고 김경호 선생은 말한다.
고려는 사경에 대한 독보적인 전문성과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부탄을 비롯한 인도 위쪽의 불교국가들 뿐만 아니라 원나라의 요청으로 수차례에 걸쳐 고려의 사경 전문가들은 원나라에 파견되어 금자대장경과 은자대장경 등을 직접 제작해 주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고 한다.
사경은 목판과 금속활자를 탄생시키며 인쇄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고 김경호 작가는 강조한다. 고구려 때 불교가 처음 전래된 후, 사찰의 스님들은 경전이 필요했고, 사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러한 사경 문화는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인들에 의해 꽃을 피웠고, 백지에 묵서 뿐만 아니라 고려인들은 금자/ 은자/ 목판 대장경을 사경하기 시작했다. 팔만대장경의 출현 역시, 그 바탕에는 사경이 있었고, 고려 대장경은 사경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 있는 사경의 변형된 형태 중 하나였다.
1377년에 청주 흥덕사(興德寺)에서 금속활자로 찍어냈던 직지심체요절, 줄여서 직지(直指)는 현존하는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직지(直指)는1455년에 인쇄된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인쇄본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선 것이었고, 우리나라의 금속활자 발명은 직지보다 훨씬 앞서서, 기록으로만 그 존재가 알려져 있는 [고금상정예문]이라는 책은 구텐베르크보다 무려 200년 이상 앞선 것이었다.
미국의 유명 시사잡지인 <라이프>에서 지난 1천 년 동안 있었던 사건 가운데,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100대 사건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이때 1위를 차지한 사건은 놀랍게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었다. 금속활자의 발명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 최초로 우리 조상이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사실은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는 또한 고려의 문화력∙경제력∙정치력이 세계 최고의 수준에 있었다는 것을 뜻하며 고려가당시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금속활자를 통한 인쇄술은 중세시대의 인터넷이라고 불릴 만큼 혁신적인 발명이었고, 그 선두에 바로 고려인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인 직지의 탄생 이전에 그 모태가 되었던 사경이라는 고려의 찬란한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김경호 작가의 고려사경을 통해 알 수 있다. 현대를 우리는 정보화 시대라고 말한다. IT 강국이라는 한국의 위상 역사 우연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고려를 통해 다시 한 번 배우게 된다.
전통사경 기능전승자이자 한국전통사경연구원장인 외길 김경호 작가는 살아있는 한국 사경의 역사라고 할만큼 그가 남긴 사경 연구의 궤적은 독보적이다.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는 삼매 속에서 이뤄지는 예술이 사경이라고 말하는 김경호 작가는 1mm의 머리카락 만큼 가는 붓끝이 종이와 만나고 떨어지는 순간까지 한 호흡으로 이루어지며, 재료의 특성을 고려해 작업실의 온도와 습도까지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 바로 사경이라고 말한다.
사경은 말 그대로 부처님의 목소리인 경전을 필사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는 글 뿐만 아니라 그림 사경도 한다. 한 점의 사경이 탄생하기까지 필요한 모든 공정을 혼자서 해내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을 담고 있는 사경은 부처님의 사리를 대신해 불탑에 들어간다. 서예가 기본이지만 미술도 공부해야 하고, 불교 경전도 공부해야 한다. 더불어 사경의 역사, 중국과 한국의 미술사, 한문의 이해를 통한 한문 해독 능력 등10가지 이상의 분야를 섭렵해야 할 수 있다는 사경은 공부할 게 많은 분야였다. 초심으로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며 아직도 배울게 많다던 그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만 같았다. 김경호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 ‘10음절만트라 (십상자재도)’, ‘감지금니일불일자 화엄경 약찬게’, ‘화엄경 보현행원품 변상도’, ‘초전법륜도 만다라’ 등 자신의 대표작 8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 조이락 작가가 관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 조이락 작가와 이번 행사 큐레이터
전시작을 보는 관객들
▲ 전시장 풍경
▲ 전시장 풍경
조이락 작가의 섬세한 감성으로 다시 만나는 고려불화
또 고려불화는 어떠한가? 단 한 번만 봐도 보살이 된다는 고려불화, 얼마나 아름다웠기에 고려의 불화는 보는 이의 마음을 무상무념의 지극한 경지에 도달하게 했던 것일까? 충격에 가까웠을 그 시각적 신선함은 아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 밖의 그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원나라 문헌에도 “화려하고 섬세하기 그지없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고려불화의 명성은 대단했다. 고려시대에는 사찰 뿐만 아니라 집 안에 개인 법당을 가지고 있었던 고려의 귀족들도 불화가 필요했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양의 불화가 제작되었고, 또 얼마나 많은 불화를 그리는 화공들이 있었을까? 현재 전세계에 남아 있는 고려불화는 약 160점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그 중 약 130여점이 일본의 사찰, 박물관, 개인 소장자들에 의해 보관 중인데, 많은 고려불화가 약탈에 의해 일본에 전해졌다고 한다. 일본의 사찰들은 고려불화 한 점 소장하는 것을 무척 거룩한 일로 생각했고,이는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일본 해적들이 약탈한 훔친 물건이라도 후한 가격을 쳐주었고,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고려불화는 일본 해적들의 표적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고려불화를 소장하고 있는 일본의 사찰들은 고려불화를 미술작품이 아닌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 일반인에게 공개하는데 많은 제한을 두고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려불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작가들조차도 우리 조상들의 그림인 고려불화를 직접 보기 힘들다고 한다. 또 오랜 세월 일본에 있던 고려불화들은 송나라 또는 원나라 불화로 오인되는 일도 있어서, 고려의 ‘수월관음도’가 송나라 화가 장사공의 작품으로 취급되어 ‘장사공 관음’이라 불린 적도 있었다 하니 가슴 한 켠이 무거워진다.
고려시대에는 많은 전란이 있었다. 세력다툼으로 인한 주변 국가들의 요동치는 국제정세 속에서 고려는 자국민의 안전과 국권을 지키기 위한 항쟁을 선택했고, 고려의 이데올로기였던 불교는 역경에 처한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해야만 했고, 전란으로 피폐화된 참혹한 현실을 헤쳐나가야 했던 고려인들은 현세와 내세를 두루 보살펴 줄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던 것 같다. 고려불화에는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그리고 지장보살이 많이 등장하는데, 현존하는 고려불화 160여점 가운데 3분의 1이 관세음보살도, 3분의 1이 아미타불도, 그리고 지장보살도가 그 다음으로 가장 많다고 한다. 현실에서 겪는 고난을 구제해 줄 관세음보살, 전란에서 숨진 사랑하는 이들의 극락왕생을 도와줄 아미타불, 그리고 살아있을 때의 죄업으로 지옥에 떨어졌을 때 자신을 구제해 아미타불이 사는 정토로 안내해 줄 지장보살, 고려불화를 통해 우리는 불교 미술의 화려한 아름다움 뿐만 아나라 삶을 향한 고려인들은 치열하고 간절한 염원까지 만날 수 있다.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켰던 문화 선진국 고려인들의 지적 수준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전통 고려불화의 제작 방법과 꼼꼼한 재료 연구를 통해 재현하는 조이락 작가의 고려불화는 절제를 잃지 않는 세련된 표현과 작가의 섬세한 감성으로 고려불화의 정교한 문양과 화려함을 표현해 내고 있다. 석채와 아교를 이용한 채색, 화폭 뒷면에 색을 올리는 배채법 등 조이락 작가는 철저한 연구와 검증을 통해 고려불화를 완성한다. 그러한 그녀의 정성때문인지, 그녀의 붓끝을 통해 만나는 관음보살, 아미타불, 지장보살의 오묘한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의 빗장을 무장해제시키고 있었다. 흰 사라와 붉은 법의, 금니를 사용한 화려한 장식과 정교한 문양들이 돋보이는 조이락 작가의 ‘수월관음도’는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고, 가까이 다가 섰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만오천불도’ 속 부처님의 모습은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시각적 충격을 선사했다. 기사 취재를 위해 전시회에 왔다는 불교명상잡지 트라이시클(Tricycle)의 단야 스펜서(Danya Spencer) 기자는 믿을 수 없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만오천불도’ 앞을 한참 동안 떠나지 못했다. 조이락 작가의 작품은 이미 단순한 고려불화의 시각적 재현 이상의 의미를 관람객들과 공유하고 있는 듯 했다.
위대한 예술의 탄생은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예술가도 필요하지만,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고려불화는 어느 한 위대한 작가의 작품이 아니다. 긴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불심으로 하나가 되었던 고려인들, 그 모두의 염원이 고려 불화라는 위대한 문화 유산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 때 그 고려의 화공은 지금 여기 있는데, 탁월한 미적 안목을 가졌던 그 고려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당시 세계 최고의 선진 문화를 향유했던 고려 사회, 그리고 그 고급진(?) 문화를 주도했던 고려인들의 고급진(?) 미적 안목이 마치 거울로 비추듯 정확하게 반영되어 있는 고려불화, 그 안에는 부처님의 모습 뿐만 아니라 고려인들의 탁월했던 미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고려인이었고, 그 고려인의 문화 DNA는 아직도 우리 안에 있다. 고려인의 눈과 마음으로 만나는 조이락 화가의 고려불화는 어떨까? 조이락 화가의 고려불화를 통해 우리가 잊고 지냈던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만나보자. 조이락 작가는 수월관음도, 만오천불도, 양류관음도, 지장보살도 등 10여 점의 고려불화 재현작을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고 있다.
전통 예술은 우리의 자화상이다
고려사경과 고려불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고려 불교 미술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는 김경호 작가와 조이락 화가. 그들은 전시회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열심히 잔치상을 차린다. 하지만 정성껏 잔치상을 준비했는데 찾아 오는 손님이 없다면 그것만큼 난감한 상황도 없을 것이다. 눈에 익은 현대 미술 작품과 달리 전통 미술 작품들은 눈에 낯설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모르겠다고 느끼며 흥미를 잃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지만, 문고리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화려한 고려불화와 정밀한 제작과정이 돋보이는 고려사경은 작품 자체가 갖고 있는 시각적 매력이 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고려불화와 고려사경 안에는 이 위대한 예술의 탄생 배경을 담고 있는 멋진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고려의 역사와 시대적 상황, 그리고 불교라는 정신문명을 통해 만나는 고려인들과 그들의 삶을 대하는 자세, 금속 활자의 탄생 뒤에 숨어 있는 고려의 찬란했던 사경 문화, 고려인의 삶과 함께 했던 고려불화, 474년을 살았던 고려 문화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다. 누군가에 대해 궁금하다면 우리는 그/그녀와 관련된 책이나, 인터뷰, 또는 그녀/그의 자서전을 읽어 본다. 예술작품은 보는 자서전이다. 그리고 보는 자서전은 읽는 자서전을 자연스럽게 소개시켜 주기도 한다. 전통 예술 작품은 역사적 사실부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정신 세계와 세계관까지 포괄적으로 엿볼 수 있는 가장 쉽고 훌륭한 방법이다. 고려사경과 고려불화라는 미술 작품을 통해 우리는 고려에 대해 배우고, 그 배경 지식을 통해 다시 만나는 고려불화와 고려사경은 분명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더이상 작가 조이락과 김경호의 작품이 아닌, 나의 한 부분이 담겨 있는 내 이야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렇다. 만약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오늘은 고려 불교 미술의 정수, 고려사경과 고려불화를 한 번 찬찬히 들여다 보자.
이 행사를 후원하신 분:
$50:김현숙(북가주), Se da Suh(뉴져지)
$100:정수지,이건익(뉴욕), 윤세욱(북가주),강인호 석미자(뉴져지)
$150:김영주(뉴져지)
$300:필라 화엄사 화엄회, 조일용한의원(뉴욕), 김경호
$500:정환순.지문자 부부, 이경식, 선엽스님
$1,000:림대지
$6,500:무명
총합 $10,650
“깨달음, 명상, 그리고 보살의 길 (Illumination, Meditation, and
Bodhisattvas)”
김경호, 조이락 초청 뉴욕 티벳하우스 전시 | 3월 13일 ~ 5월 9일 2019
뉴욕 티벳하우스(Tibet House US: 22 West 15th Street, New
York, NY 1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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