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그림자 제2탄
직장 동료이자 친구이며 친목모임의 회원이 췌장암일지 모르는 병세로 송파구 풍납2동 소재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하고 입원중이라 내가 대표로 지난 10월 15일 토요일 병문안을 다녀갔었다
입원실에 딱 들어가니 “변계장 왔나” 하며 힘들게 약한 소리로 한마디 했지만 말을 할수 있었다는게 반가웠고 저는 바보같이 수술을 해서 말도 못하는줄 알았으며 초췌한 모습에 목이 메이고 눈시울이 붉어져 바보같이 또 눈물을 흘릴뻔 했다. (참느라고 혼났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들과 같이 고스톱도 치고 담배 한모금에 술도 한잔해가며 명랑하게 즐겼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병상에 누운 초라한 모습을 보니 참 가슴이 아프며 정말 건강히 최고 라고 다시금 느껴보았다.
수술 경과는 좋다고 하며 당초 염려했던 췌장암은 아니고 정확한 병명은 “유두팽대두암“ 이라고 하지만 췌장을 비롯한 간, 위, 쓸개등 손상된 내장 일부분들을 제거했다고 한다.
식사는 물론 약도 아직 못먹어 주사를 맞고 링겔을 여러개 꼽고 있었으며 간신히 말을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가래가 끓어 긴 이야기를 하면 더 힘들어 하는 것 같아 간단히 안부 정도만 묻고 집사람과 조금 인사를 나눈후 병실을 나왔다.
본인은 물론 집사람도 췌장암이 아니라서 다소 안도의 숨을 쉬는 것 같아 저 또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로 갈때는 엠브란스에 실려 갔는데 어제 KTX를 타고 퇴원 했다고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친구의 조속한 쾌유를 빌면서................
각설하고
익일 16일 일요일 서울서 볼일 보고나니 2시정도 밖에 안되 미리 예매한 KTX 4시차 올때까지 모할꼬 ? 생각하다 불현듯이 연천을 가볼까 하니 시간이 맞지 않아 긴급히 4시차를 반환하고 7시차로 다시 예매한후 무작정 연천을 향했다.
의정부에서 경원선으로 환승하고 연천역에 내리니 아늑한게 꼭 고향에 온 것 같은 포근한 느낌 이였다.
역 사무실에 들려 열차 시간등을 물어보고 역무원에게 저의 아버지도 30여년전에 이곳 연천역 철도보선사무소에서 근무하였고 나는 부산서 무작정 연천이 그리워 연천땅을 밟고 싶어 왔노라고 하니 반갑게 맞이해준다.
대합실에 나서니 왼편에 첨성대 모양의 물탱크가 아직도 건재하고 있었으며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등 수년전에 지방 문화재로 보호되고 있어 감개무량 하였고 그 당시 목욕탕이 별로 없던 시절에 아버지가 철도공무원이라 우리 가족들은 그곳에서 목욕도 하고 그랬는데 참 반가웠다.
물탱크 꼭대기에는 비둘기집이 있어 재만이 형인 재호형님을 비롯한 동네 형님들은 그 꼭대기로 올라가 비둘기알을 꺼내고온 했었다.
역전앞 한양상회와 재만이 엄마가 장사 하던곳이 옛날에는 역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것 처럼 느껴졌었는데 그날 보니 바로 지척에 있었다. 참 이상했다. 이렇게 가깝게 있었다니........
무턱대고 한양상회를 들어가니 재봉틀에 앉아있는 여자가 조영동이의 동생인 영희인듯 싶다. 가게 들어와 영동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혹시 날 알아보는가 싶어서 가만히 있어보니 한참 보더만 “이게 누구야 강희 아냐” 하며 깜작 놀라면서 알아보고 반긴다.
30여년만의 재회인데도 알아보니 참으로 반갑다. 저 옆 재봉틀에 있는 여자는 동생이지 ? 하고 물으니 그래 영희다 그런다. 영동이가 동생보고 너 강희오빠 아니 ? 물어 보았으나 잘 모른단다. 나는 알겠든데..........
영동이는 바빠서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나간 늦은 시간 이였지만 점심을 여지것 못먹어 마침 짜장면이 배달되어 먹는다 하여 나는 가게를 나와 시간이 많이 없는 관계로(30분 정도) 그 앞에 있는 냇가로 갔는데 아마 그게 차탄천 인가 보다. 역시 마찬 가지로 너무 가찹게 느껴졌다.
그 옛날에 차탄천으로 목욕도 하고 어항으로 고기 잡으러 참 많이 다녔고 겨울이면 도끼들고 얼음을 깨어 땟목처럼 뱃놀이도 하고 찬 물속에 빠져 불을 피우고 젓은 옷을 말려가며 불을 쬐곤 했는데 그런 시절이 또 언제 오려나..........
지금보니 그 맑았던 차탄천은 온데 간데 없고 잡초가 무성히 자라 동네 아낙들은 빨래를 하고 개구장이 우리들은 자갈밭에 옷을 벋고 헤엄치고 놀던일이 다 흘러 지나간 추억이 되버렸네
열차 시간이 다가와 한양상회 영동이 한테 가서 친구들의 근황들을 들었다. 재만이와 호연이와 성모가 삼성부동산을 한다고 들었고 광천이가 조 위에서 분식집을 한다고 들었고 봉춘이가 사망했다는 슬픈 소식도 들었다.
창섭이, 덕식이. 성진이등 여러 친구들의 소식을 듣고나니 너무 반갑고 열차 시간이 다되서 아쉬운 작별을 할려니 발걸음을 떠나기가 너무나 안타 까웠다. 진작 이럴줄 알았으면 월요일 하루 휴가를 내고 올건데........
마침 그날이 매월 16일 모임을 하는 날이라 하니 더욱 그렇다. 이곳 연천중고등학교 일육회 둥지 카페 말고 연천서 살고 있는 30여명의 친구들 모임이 별도 있다고 한다.
영동이한테 모임 명단을 한 장 얻었는데 그 명단에는 임성진, 조영동, 박광천, 원제훈, 현병찬, 이화석, 강승구, 민덕식, 현호연, 신동규, 장태호, 신수복, 홍길수, 양승권, 김성빈, 권순탁, 임한식, 임재욱, 문덕철 등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다들 보고 싶고 반가움에 눈물이 또 다시 글썽 거린다.
영동이랑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침 강승구가 지나가니 영동이가 부른다. 부산서 강희가 왔다고 소개를 하는데 서로가 잘 모른다. 나중에 앨범을 보니 눈이 땡그런 아주 연약한 소년(?) 이였는데 어느새 훌륭한 농부로 변해 버렸다.
매월 16일에 모인다는 이 모임도 매달 오지는 못하겠지만 2~3달에 한번씩 꼭 참석하고 싶다. 물론 이 육일회 둥지 카페는 개최시 마다 꼭 참석하리라 다짐하면서.........
나중에 친구들 만나면 안부 전해 달라고 부탁하며 영동이 한테 주소록 명단을 받아들고 부산으로 내려 오면서 각 친구들의 옛 모습을 회상하며 무거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재만이가 그날 모임에 참석하여 영동이 한테 내 소식을 들었나보다. 월요일 아침에 바로 재만이한테 전화가 왔다. 서로 안부를 전하고 재만이가 이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줘서 바로 가입을 하게 된 것이다.
상규가 둥지지기를 하고 윤균이와 동규와 옥기가 운영진으로 있기에 상규와 윤균이는 나를 잘모를꺼고 나 역시 잘 몰라서 동규와 옥기한테 가입했다는 기별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옥기도 나를 잘 몰라본다. 초등학교 1학년때 짝지를 했는데도 말이다. 하기사 그게 무슨 큰 대수가 ㅎㅎㅎ
카페를 둘러보니 모든 것이 다 반갑고 신비롭기만 하다. 이렇게 멋진 카페가 있었다니 참 대단하고 감격스럽다. 이렇게 훌륭하게 만든 둥지지기 상규는 물론이요 운영진 여러분과 종호와 미옥이, 동실이등 자주 참여하는 여러 친구들에게 정말 뜨거운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다시한번 보낸다.
이곳 부산에서 32년간을 살면서 그동안 여러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의 초, 중 학교 모임들을 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부러웠고 얼마나 그리웠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그 마음은 고향을 떠난자만이 알 것이다.
나도 뒤 늦게 가입한 지각생이지만 이제 부터라도 열심히 동참하여 조금이나마 이 카페에 힘을 불어주고 미약하나마 최선을 다해 보려고 노력할려고 한다.
내년 2월에 모임을 한다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인다. 그동안 친구들이 얼마나 변했는지, 보면 서로가 알아 볼수 있는지, 어디서 살고 무엇을 하는지 등등 모든 것이 궁금하고 모든 것이 다 새롭기만 할 것이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하루는 재만이 집에서, 하루는 동현이 집에서, 하루는 창섭이 집에서, 하루는 호연이 집에서, 하루는 덕철이 집에서, 하루는 영동이 집에서, 하루는 미옥이(안되면 경옥이 언니집이나 경자언니집) 집에서, 하루는 옥기집 근처에서(재워주지 않을것 같으니까 ㅎㅎㅎ) 자며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하며 밤새도록 지내고 싶건만 또 마음뿐이네.........
와 ! 그럴려면 일주일 휴가내고 가야 되겠네 ㅎㅎㅎ
아무쪼록 다음에 만날때까지 모든 친구들 건강히 잘있고 직장 또는 사업에 충실하며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가정에 행복을 빌면서 이만 두서없는 글 마친다. 안녕 친구야............
2005. 11. 1
멀리 부산에서 강희가
※ 좀 아쉬운게 있다면 근 100명이나 되는 회원이 몇몇 회원만 동참하는 것 같아 좀 안타깝고 아직 가입하지 않은 친구들과 가입후 가만히 있는 회원들에게 가입 권유 및 동참할수 있도록 하여 다 같이 지낼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주제넘게 해본다
첫댓글 위 사진은 2005. 7. 3 부산 남구 용호동 소재 장자산 산행시 이기대에서 부산의 상징이자 명물인 오륙도를 배경으로 찍은것임
ㅋㅋㅋ~강희야~! 너 추억의 그림자 몇탄까지 쓸거냐~? 뭐시라? 끝까지 쓸거라공~?ㅎㅎ그랴~50을 두달남짓 남기면서도 이리 순수한 마음이 있었다니~갸륵하구나...근디~니가 남친이 아니고 여친이라면 한달을 있어도 괜찮은디~남친이라는것 땜시 우리집은 안되겄당~ㅋㅋ 경자언니네는 맨 여자가 득실~야네들이 출가를 하나도
안했어 경옥언니는 형부가 밤낮 외국에 나가있고 딸 송이는 뉴욕으로 유학중 여자혼자있는집에(누나이긴 하지만) 네가 과연 잘수 있을까~? 안되겄지? ㅎㅎㅎㅎㅎ
몇탄까지 쓸꼬 ? 한 10탄 까지만 쓸까 ㅎㅎㅎ 맨날 술에 담배에 여자에 찌들려서 인자 기억도 없다 ㅎㅎㅎ 경자언니 애들(한 40 됐겠네) 은하와 선하가 ? 갸들 이쁜것들이 눈이 높아 가지고 시집 여태 안갔나 ? 모꼬 ㅎㅎㅎ 부산에 노총각들 천지 빼까린데 항개 소개 해줄까 ㅎㅎㅎ 하루는 경자누나집에 갈란다 갸들도 볼겸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늠름한 모습도 그렇고, 잘도 읽었네~! 친구가 쾌차하길 바라며.. 연천까지 내려간 그 심정을 이해하네. 글고 눈시울이 자주 붉어진다니 자네도 감성적인가봐~^_^ 그게 뭐 나쁠거야 없지.
인제 앞으로 서울근처에 오면 반드시 연천을 가볼 생각이다
강희가 그동안 연천이 많이 그리웠구나...이제 일육회와 함께하니.그간의 서러움 외로움 다 날려 버리렴....ㅎㅎㅎ
그래 정말 많이 그리워 했다 말을 안해서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