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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침묵기
(06) 잡지 연재로 성공한 삼인방 2. [발로 뛰는 작가 배금택의 등장] | |
이상무에 이어 배금택 역시 내 화실에서 수년간 작품을 도우며 실력을 연마해 왔다. 그는 1968년 김을순이란 필명으로 ‘여학생’지에 ‘미스 도돔바’ ‘뽀뽀양의 일기’를 선보이며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 한편으로는 단행본 ‘거대한 손’을 펴내는 등 한시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90년에는 주간 청소년 만화지 ‘아이큐점프’에 ‘영심이’를 게재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왈가닥 소녀가 가정과 학교에서 겪게 되는 일상생활을 코믹하게 엮은 것으로 가족 간의 사랑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었다. 이 잡지 연재로 인한 인기 덕분에 단행본도 대량 판매되었고, 애니메이션과 소설로도 제작 발간되는 등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지금도 그때의 흥분과 감격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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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인기와 함께 활발한 캐릭터 산업으로 기대를 모았던 ‘영심이’ | | 여기에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처음 잡지를 발행하였던 서울문화사 사장은 저마다 고액의 원고료를 요구하는 만화가들과 공정을 기하기 위해 묘안을 냈는데, 독자들의 인기투표에 의해 고료를 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영심이’는 최고 인기만화로 선정되어 많은 고료를 받게 됐다. 배금택은 이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많은 자료수집을 위한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10대들의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그 세대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생전 찾아보지도 않았던 먼 친척집까지 선물보따리를 안고 방문하기도 했다 한다. 그 집엔 또래의 소녀들이 줄줄이 있어서 틈만 나면 그들과 어울리며 즐겨 쓰는 유행어와 놀이는 물론, 떡볶이집도 함께 다니면서 화장실에 있는 낙서까지 수첩에 베껴왔기 때문에 때로는 청소년 유괴범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이와 같은 그의 노력은 고스란히 작품 속에 반영되어서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에 이르렀으니 만화란 머리 속에서만 얻어지는 게 아니라 발로 뛰어야 더 멋진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대학 동문 중에 르포작가로 활동하여 성공한 소설가가 있다. 그는 소설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장편보다는 짤막한 단편 문제작가로 더 유명하다. 그의 주머니 속에는 언제나 작은 수첩과 볼펜이 들어 있는데, 어디에서 얻어질지 모르는 소재를 놓치지 않고 적기 위해서다. 그는 어느 장마철 서민들이 사는 산동네를 찾아가 퀴퀴한 냄새가 나고 습기 찬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 자고 온 적도 있다. 한번은 그들의 언어와 생활상과 그들이 처한 입장 등을 뼛속깊이 알아보기 위해 5백원짜리 식사와 천원짜리 잠자리로 일주일을 보내고 왔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취재한 것들을 갖고 돌아와 작품화하였던 것이다. 이윽고 작품을 끝낸 그는 원고를 포장해 김유정문학상 응모작으로 출품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기다리며 며칠동안 안절부절하며 지냈는데, 어느 비 오는 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우산을 내동댕이치며 아버지를 흘겨보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소리내 울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딸의 방에서 나온 부인도 그에게 짜증을 부렸다. 원인은 산동네의 싸구려 잠자리에서 이를 옮아와 딸에게 옮겨 준 것으로, 그 덕분에 딸이 학교에서 놀림거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딸에게 커다란 죄책감을 느끼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며칠동안 무거운 마음으로 딸을 똑바로 볼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비가 개인 일요일, 한 통의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가 받아들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전해주었다. “여보, 당신 작품이 김유정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대요!”그동안 고생한 것을 이제야 보상받는구나, 생각하니 기쁘기 짝 없었다. 게다가 딸이 활짝 웃으며 달려와 아빠의 품에 안기면서 “아빠, 축하해요!”하고 말해 주었을 때, 그는 감격으로 목이 메일 정도였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