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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자의 버린 돌과 모퉁이 돌
마태복음 21:42~46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 말씀은 매우 엄중한 말씀이며 그것은 역사 속에 그대로 실현된 예언의 말씀입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 됨과 그를 믿는 자들이 진정한 성전으로 지어져간다는 것을 알리며,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은 계속하여 깨어지고 부서지며 망하게 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읽은 이 본문 말씀에서 돌의 이미지를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깊은 영적인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돌, 반석, 바위라는 이 비유적 이미지를 가지고 주님께서 가르치고자 하신 영적 교훈을 오늘 본문 말씀과 성경 전체의 말씀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깨달아가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반석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서 사용한 돌의 이미지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매우 친근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땅 전체에는 돌이 지극히 흔합니다. 유대 광야나 이스라엘의 남부 지역인 네게브 사막이나 혹은 사해 근방의 사막에는 온통 돌 투성입니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수십리 길은 온통 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돌과 반석은 매우 친근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돌 혹은 바위 곧 반석을 성경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편 18편 1,2절 말씀에 보면,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편 73편 26절에서도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신명기 32:3,4 말씀에서도 모세는 이렇게 모세의 노래 중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우리 하나님께 위엄을 돌릴지어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이러한 몇 개의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을 향하여 반석 혹은 바위라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을 크게 칭송하며 찬양하는 의미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성경에서 하나님을 바위, 반석으로 노래하는 까닭은 바위와 반석의 이미지에는 “견고하다, 흔들림이 없다, 변함이 없다, 보호와 그늘이 되신다, 거짓이 없고 진실하고 의롭고 바르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비와 천둥 번개가 칠 때와 뜨거운 폭양의 햇살이 내려쬘 때 피할 수 있는 광야의 큰 반석이 되어 주시고, 고난과 시련의 풍랑이 불어닥칠 때에 안전하게 지켜주는 바위틈 그늘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바위는 쉽게 옮겨지지 않고 변질되지 않습니다. 그렇듯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한 그의 언약에 대하여 영원히 변함이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의 바위가 되시고 반석이 되어주시고 마음의 반석이 되어주시는 것은 큰 위로와 소망과 평안과 담대함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그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반석과 바위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반석으로 오실 것이 예언되었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예언들에 보면 그리스도를 싹이라든지, 순이라든지, 가지라든지, 혹은 목자라든지, 의의 태양이라는 존재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돌, 바위, 반석으로 표현하는 구절들도 나옵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목이 마르다고 불평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호렙산 반석을 향하여 지팡이를 향하여 물을 내라고 명하도록 시켰는데, 그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와 백성들과 가축들이 실컷 마실 수 있는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그 때 물을 낸 반석이 어떤 존재일까요? 고린도전서 10:4 말씀에,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 함으로써, 출애굽 백성들을 늘 따르던 반석은 바로 그리스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스가랴서 3:8,9 말씀에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싹과 돌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고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여기서 당시 여호수아 대제사장 앞에 세워진 돌은 장차 세상에 오셔서 완전한 성전을 세워가실 그리스도를 가리킨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반석이요 돌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매우 복된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반석을 하나님의 별칭으로 쓴 것처럼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부르는 것은 그가 주의 백성들의 견고한 기촛돌이 되며 피난처가 되며 보호자가 되며 불의가 없고 의롭고 견고하고 신실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차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돌로 예언한 것은 그가 자기의 택한 백성들의 피난처요 의지할 반석이요 영원한 보호자가 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세상에 오신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에게 그리스도는 어떤 돌이 되실까요?
먼저, 건축자의 버린 돌이 되신다고 예고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42절 말씀을 함께 다시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
이 말씀은 시편 118:22,23 말씀을 인용하신 것인데, 여기서 나오는 돌도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가르킵니다. 여기서 버린 돌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로부터 받게 된 고난과 죽음을 가리킵니다. 이미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천년 전에 기록된 다윗의 시편 118편에서 그리스도는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고난과 멸시 속에 죽임을 당할 것이 예고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40년이 넘도록 계속 건축 중이었습니다. 헤롯 대왕이 에돔 족속 출신으로서 로마 제국 황제의 호의를 입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배하는 분봉 왕의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의 피가 한방울도 섞여 있지 않은 까닭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를 미워하고 경멸하면서 통치에 협조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헤롯 대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뻐하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헤롯 대왕은 거대하고 화려한 성전을 세우려고 엄청나게 큰 반석들을 가져오고 황금으로 그 성전을 덧입히는 대형 건축 공사를 오래전에 시작했는데, 그가 죽고 난 후에도 계속하여 성전을 지어오다가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당시는 공사 시작 후 약 사십 팔년이 지났고 그 후에 약 20년을 더 지어서 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그리고 완공 후 약 이삼년 후에 그 성전은 로마 군대에 의하여 완전히 가루가 되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지금 이 말씀을 하던 당시에는 성전이 한창 건축중이니 성전 이곳 저곳에 건축 자재들이 쌓여 있었을 것입니다. 쓰다 남은 대리석이나 아름다운 미석이나 거대한 바윗돌이나 찍어낸 벽돌이나 멀리서 잘라온 백향목 원목들도 한 무더기씩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성전 한쪽에 쓰다가 버려진 건축 자재 폐기장을 바라보면서, 시편 118편의 그 말씀, 건축자들의 버린 돌에 대하여 말씀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세상의 그리스도로 오신 반석이신 예수님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하여 쓸모없다고 폐기처분을 당하여 완전히 버려지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한밤중에 칼과 몽치로 무장한 자들을 보내어 예수님을 체포해와서 하룻만에 그것도 한밤중에 소집된 재판관들에 의하여 증거도 없이 날치기로 벼락 재판을 해서 사형을 언도하고 이방인인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서 십자가 형에 처하지 않으면 로마 황제의 충신이 아니라고 말하며 반란을 일으킬 것처럼 위협하여 예수님을 그 날 아침에 십자가에 처형하는 악행을 저질렀지 않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완전히 쓸모없는 돌, 아무 짝에도 쓸 데 없는 돌로 취급해서 헌신짝처럼 건축쓰레기 폐차장에 내다 버렸던 것입니다. 주먹으로 때리고 가시로 찌르고 매로 때리고 채찍으로 등을 파헤치고 발가벗기고 못으로 손과 발을 찌르고 십자가에 매달고 창으로 찔러 모든 물과 피과 살을 다 찢어서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의 반석은 철저하게 산산조각이 나고 그들은 그를 내다 버렸습니다. 그는 건축자의 버린 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그렇게 건축자의 버린 돌로만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그 악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는 반석과 거침돌이 되신다고 예고 되었습니다.
이사야 8:14,15 말씀에 보면, 반석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나옵니다.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
사도 바울도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로마서 9장에서 자기 동족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써 걸림돌과 거치는 반석에 잡혀서 걸려 넘어졌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대적하는 자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걸림돌이 되고 덫이 되어서 괴로움과 시련을 당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나아가 그리스도는 그를 대적하는 자들을 철저하고 심판하여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마태복음 21장 4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건축 공사하다가 흔히 안전 사고가 나지 않습니까? 사람이 돌 위에 떨어지기도 하고, 거꾸로 큰 바윗 돌이 위에서 떨어져서 사람을 덮치기도 합니다. 그러할 때에 사람은 그 돌과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그냥 완전히 박살이 나고 찌부러지고 뼈와 살이 완전히 가루가 되다 시피해서 죽게 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역시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거칠고 무서운 바위가 되시고 무섭게 날아드는 바윗돌이 되어 그들을 산산히 깨뜨려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장 잘 드러내는 구절이 다니엘서 2장에 나오는 바벨론의 대왕 느부갓네살이 꾼 엄청나게 큰 신상의 꿈 이야기입니다. 거기에 보면, 다니엘이 성령의 감동으로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의 내용과 그 해석을 알리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하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 하니”(단 2:34~35,44~45)
여기서 느부갓네살 왕이 보았던 큰 금과 은과 동과 철의 우상은 세상의 모든 시대 모든 나라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역사의 마지막 때에 철의 열 발가락 시대에 뜨인 돌 하나가 나타나 그 신상의 발을 칩니다. 그랬더니 그 모든 금과 은과 동과 철의 전체 우상이 완전히 가루가 되고 맙니다. 이 큰 우상은 온 세상의 모든 나라의 역사를 다 포함합니다. 금의 나라는 느부갓네살의 바벨론 왕국을 가리키고, 은나라는 그 후에 일어날 메대와 페르시아 왕국을 가리키고, 그 다음 동의 나라는 알렉산더 대왕과 그 후계자들의 의하여 세워진 헬라 왕국이요 그 다음 철의 나라는 여러 민족과 백성들로 이루어진 로마 제국을 가리킵니다. 그 로마 제국 시대에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아니한 돌이 하나 나와서 그 세상 나라를 치니 그 모든 금은동철이 다 부서져 겨처럼 바람에 불려 사라지고 그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으니, 이 돌은 로마 제국 시대에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돌 곧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그 돌이 태산을 이루어 온 세상에 가득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가득히 전파되고 그의 백성들에 의하여 세워질 하나님 나라가 세상 모든 나라를 대신하여 영원히 세워지고 흔들리지 아니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부딪히는 모든 것들을 깨뜨리고 부딪히는 사람을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돌은 곧 그리스도이신 자신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된 교회 곧 구약 교회인 이스라엘과 온 세상에 흩어진 신약 교회들과 그리스도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대적한 나라들과 가문들과 사람들은 한결같이 다 무너지고 깨어지고 가루가 되어버리곤 했습니다.
한 예로 예수님과 초대 교회를 핍박하였던 헤롯 왕가는 예수님 당대에 수많은 자손들로 번성하였던 가문인데, 일세기가 되기 전에 순식간에 다 소멸되고 말았습니다. 로마 제국의 그 장구한 역사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했던 왕들이 많았는데, 그 핍박하던 왕들은 대다수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독교를 핍박한 30여 명의 로마 황제와 군주들 중에 자기 아들에게 피살된 사람이 1명이 있고, 소경이 된 사람이 1명, 두 눈이 튀어나온 사람 1명이 있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병으로 시달리다가 죽은 자가 1명이고, 물에 빠져 죽은 자가 1명, 교수형을 당한 사람이 1명이고, 자살한 사람이 3명이고, 전쟁 포로가 된 사람 2명이고, 전쟁 중에 죽은 사람이 8명, 암살당한 사람이 5명이 되었답니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처참하게 죽은 자들만 해도 30명 중에 24명이나 됩니다.
그 중에 한 사람 마지막 핍박자 율리니우스 황제 역시 그러합니다.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베풀었으나 이 사람은 거기에 반대하여 제우스 신을 섬기고 그리스도 철학을 신봉하였습니다. 그렇게 왕위에 올라 기독교에 반대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그는 페르시아를 정복하러 갔다가 갑작스런 적의 공격을 받아 피할 사이 없이 창에 찔려 죽고 말았습니다. 황제에 오른 뒤 3년째 그렇게 배교자 율리아누스는 30대 초반에 갑작스럽게 죽었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 갈릴리 사람아. 네가 이겼다.” 그의 이 마지막 말을 살펴보면, 율리아누스의 마음 속에는 늘 예수님에 대한 대결하여 이기려는 반역의 정신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핍박하던 그는 그렇게 속절없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으니, 무릇 예수님과 그 복음을 핍박하고 거역하는 나라나 가문이나 개인은 커다란 바윗돌과 정면으로 부딪혀 가루가 되는 진흙덩이처럼 스스로 가루가 되는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위와 대결하려는 계란처럼, 무모하게 반석이신 하나님과 부딪혀 싸우려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결코 아니되겠습니다.
넷째로, 반석이신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42절에서 이르기를
“예수께서 이르시되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되고 시험하는 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거친 반석이요 올무와 덫이 되지만,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의지할 반석이 되고, 복된 인생과 삶의 기초가 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기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주셨다는 말씀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은 팔레스타인의 건축 기술 중에 통상 두 가지 용도로 해석된다고 합니다. 하나는 두 개의 건물을 지을 때 그것을 합쳐서 하나로 묶어주는 꼭대기의 둥근 돌을 가리키기도 하고 또 한 가지는 건물의 벽 두 개를 묶어서 하나로 받쳐주는 기촛돌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 둘 중 어느 것이든 간에 모퉁이의 머릿돌은 건물을 붙들어주는 중요한 돌로서, 이 돌이 없으면 건물은 도저히 설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건축자들의 버린 돌처럼 비천하게 취급받을지라도, 그를 진심으로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견고한 기촛돌이 되어주시어 굳건하게 세워주신다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28:16 말씀에 이런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시온에 두신 견고한 기촛돌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급하게 되지 않습니다. 그가 친히 지지해주시고 지켜주시고 굳건히 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신앙을 지키는 교회와 나라나 가문이나 개인의 운명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그를 전심으로 섬기는 진실한 신앙 공동체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굳건하게 세워주시고 붙들어주시고 번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개인이나 가문이나 나라도 축복하실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훗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에도 그들의 인생의 수고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고 그들의 수고에 따른 영광스러운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10절 이하에서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써보낸 바 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고린도전서 3:10~11)
여기서 사도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모습을 반석이신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짓는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인생 집의 기초가 되십니다. 그만이 영원한 저 내세에 이르러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터가 되십니다. 그러나 만약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자기 인생의 터로 삼지 않고 살아간 사람은 그가 아무리 세상에서 황금 빛 찬란한 아름답고 크고 멋진 인생의 집을 짓고 사람들의 부러움과 찬사를 받으며 살았다 하더라도 이 세상이 끝나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그 때에 그의 집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심판의 홍수에 밀려 떠내려가고 남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짓지 아니한 그의 모든 수고와 노력의 인생 집은 종말 심판의 불길이 내릴 때에 하나도 남김없이 다 타고 한 줌 재밖에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무엇보다 우리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우리 인생의 유일한 기촛돌로 삼고, 우리 삶의 유일한 터로 삼고 그 위에 우리 인생의 집을 건축해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은혜가 있는데, 그리스도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데 동참하는 복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2:20,21 말씀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통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베드로전서 2:4~5 말씀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성전의 모퉁잇돌이 되신 예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기 위하여 성령의 감동 감화 인도 역사하심을 받으면서 예수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거룩한 산 돌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이 거하시는 살아 있는 참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영적인 큰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한 예로 사도 베드로를 들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가 누구인가를 물었는데, 그 때 제자 중에 한 사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는 복된 고백을 했습니다. 이에 기뻐하신 예수님은 그의 말이 맞다고 하시면서 베드로를 향하여 이런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6)
베드로란 단어가 ‘반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자기의 교회를 세우시는 건축자로서 말씀하시면서, 그 교회를 세우는 건축 재료로서 베드로라는 한 인격을 귀하게 써서 교회를 세워가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 그대로 베드로는 본래 진흙덩이처럼 힘없는 믿음과 갈대처럼 흔들리는 성품의 사람이었지만, 후일에 주님께서 그를 연단하신 후에는 반석처럼 단단하고 견고한 믿음과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어 초대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는 기둥과 같은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이 베드로의 경우처럼,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연단하시어서 주님을 닮아가게 되어 신앙과 인격이 견고하고 진실하고 불의가 없는 신자로 점점 변화되어 하나님의 교회의 귀한 돌들로 세워져가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형편없는 기질과 인격과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빚어가시고 세워가셔서 하나님의 성전의 귀한 재료로 만드셔서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를 이 함께가는교회로 불러주셔서 반석이 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함께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섯 번째로,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이 어떻게 성전을 짓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먼저, 그리스도와 연합할 뿐 아니라 동일한 동일하신 믿음 안에서 부르심받은 형제 자매들과 연합하여 행해야 하겠습니다.
시편 133편 1~3 말씀에,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서로 연합하여 한 형제, 한 자매라는 형제애로 뭉쳐서 하나 되어 사랑하며 섬긴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랑의 공동체에 영생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연합하지 않고 홀로 따로 따로 지낸다면 머리 되신 그리스도, 터가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지 못하기에 아름다운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동일한 신앙 안에서 함께가는교회라는 이 작은 공동체에 대한 소속 의식을 가지고 서로 연합하여 주님과 성령 안에서 한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가야 하겠습니다.
건축할 때, 건축자가 모든 재료들을 그의 전체적인 안목 속에서, 전체적인 계획 속에서 재료들을 선정합니다. 그래서 그 뜻대로 안배하여 배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재료들은 그 건물의 가장 돋보이는 곳에 자기가 자리하기를 원하지만 그 건물의 건축자, 설계자는 그의 뜻 가운데 원하는 곳에 그것들을 배치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원하지 않는 곳에 배치되는 어려움과 손해도 따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인내하며 감수할 때 전체의 성전이 아름답게 완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의 각 기관이 자기가 가장 돋보이는 것이 되고 싶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체의 각 기관들이 모두 눈이 되고 싶어하고, 다들 입이 되고 싶어하고, 다들 엄지 손가락이 되고 싶어하고 다들 심장이 되고 싶어하면 그 사람은 결국 이상한 몸을 가진 균형없는 괴물처럼 되어버릴 것입니다.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고 목도 있고 손과 발이 골고루 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조화롭고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성전으로 우리가 지어져갈 때 우리들은 각자의 뜻을 내려놓고 내 교회를 세우신다고 하신 주인 되신 그리스도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연합될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복된 성전으로 잘 지어져갈 줄 믿습니다.
또한 반석이신 주님을 영접한 성도들은 여러 연단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집의 귀한 재료로 빚어져 갑니다.
나무나 돌이나 유리나 금 은 동 철 재료들과 보석들로 집을 세워갈 때 그냥 원래의 본 재료 그대로 사용되는 법이 없습니다. 산에서 실려온 나무도 다시 잘려지고 대패로 깎아내는 고통도 당합니다. 산에서 실려온 큰 암석들도 다시 정으로 치고 깨고 깎는 시련을 당합니다. 금은동철 원강석도 불에 녹여져서 연단받은 후에 쓸모에 맞게 휘고 꺾고 불에 넣었다가 빼내어 다시 찬 물에 넣는 벼리는 과정을 통하여 순결해지고 성숙해져서 쓰임받습니다. 각종 보석들도 원광석에서 나와서 다시 뜨거운 불에 녹여지고 다시 세밀하게 가공된 후에야 이런 저런 다른 재료들로 치장된 후에야 쓰임받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반석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이 거하시는 아름다운 인생의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과정 역시 우리 자신이 연단받는 과정이 반드시 있습니다. 이 연단의 과정을 잘 견뎌내고 이겨내야 합니다. 인내 속에 우리들은 주님과 함께 하나님이 거하시는 진정 아름다운 성전으로 빚어져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격의 시련, 믿음의 시련, 성공의 시험, 실패의 시험, 인간 관계의 시험, 거짓 교리의 시험 등 각종 연단 과정을 만날 때 이를 잘 견디면서 끝까지 믿음을 지켜가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불 같은 시험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정금 같은 믿음, 보석 같은 믿음을 가진 귀한 건축 재료가 되어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값지고 아름답게 쓰임받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도들은 훗날 심판날에 참으로 귀하고 복된 상급으로 갚아지는 복을 누립니다. 고린도전서 3:12~15 말씀에 그 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 받은 것 같으리라”
아까 예로 들었던 베드로는 본래 시몬이라는 자연인으로서는 참으로 진흙덩이 같고 부스러지는 한 줌 볼품없는 돌멩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를 반석으로 빚어주신다는 약속대로 오랜 연단의 과정을 겪으면서 단단하고 튼튼한 반석이 되어 주님의 귀한 초대 교회를 세우는 밑거름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랬더니 후에 저 천국 집인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의 기초석을 이루는 복된 보석이 되었습니다. 계시록 21장 14절에
“그 성의 외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지금은 한낱 진흙덩이와 같고 푸석푸석한 잡석과 같은 존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영원한 반석이시요 산 돌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은혜를 입은 자로서 주님의 터 위에 성령의 은혜 가운데 연단을 받으면서 변함없이 우리 자신을 드리며 충성하면 후일에 베드로처럼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광스러운 저 영원한 성전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영광스런 존재가 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이 소망 가지고 더욱 반석이신 주님과 그의 교훈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속에서 부족한 모습 그대로 더욱 충성스럽게 섬기는 자가 됩시다.
여섯 번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으로 보내신 돌과 반석이라는 점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 20:22, 23)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돌과 반석이 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은 우리들도 세상에 대하여 돌과 반석이 되는 것입니다. 직장의 반석, 가문의 반석, 교회의 반석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핍박과 시련을 당할지라도 끝까지 반석이신 주님과 연합한 자가 되면 우리는 기어코 직장을 복음화하며 가문을 복음화하며 교회를 반석처럼 든든히 세워가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과 깊이 연합된 반석일진대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은 걸려 넘어질 것이요 쓰러지고 가루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귀한 사명을 성령 충만함으로 잘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 나온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대적하고 그를 알면서도 부인하고 끝내 죽였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죽인 뒤 얼마 후에 그렇게 아름다운 미석과 황금으로 꾸며진 예루살렘 성전도 흔적도 없이 다 무너졌고 그 종교 지도자들도 완전히 다 멸망당했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 후대의 여러 세상 나라와 가문과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반석이신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도전하다가 결국 걸려 넘어지고 자빠지고 부서지며 가루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처럼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넘어지는 걸림돌이요 가루로 만드는 심판의 바윗돌입니다. 하지만 주 예수님은 그를 신뢰하는 자들은 그의 집들을 든든히 세워주고 지켜주고 영광스럽게 만드는 인생 집의 모퉁잇돌이 되시며 하나님 집의 영원한 모퉁잇돌이 되셨고 지금과 후에도 영원히 그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고 그와 연합한 자가 됩시다. 그와 함께 지어져가기 위하여 때로 다가오는 연단 과정을 끝까지 잘 인내합시다. 우리가 귀하게 쓰임받기 위하여 역사의 설계자이자 영원한 하나님의 집의 건축자이신 우리 주님께서 그 뜻대로 우리를 깎으시고 녹이시고 두드리실 때에 기꺼이 잘 인내하며 순종합시다. 하나님의 집을 세워가는 일에 함께 부름받은 믿음의 형제들과 겸손으로 연합하며 즐거이 헌신합시다. 우리를 부르신 이 함께가는교회의 한 지체로서 서로를 뜨겁게 사랑합시다. 때가 되면 주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 날에 주님께서 불로써 우리의 모든 공력을 시험할 것입니다. 그 때 우리 모두 주님의 터 위에 헌신한 우리의 공력들이 불타지 않고 전부 더 빛이 나기를 바랍니다. 후일 주님을 위하여 행한 우리의 모든 수고들은 만세 반석이신 주님으로부터 아름다운 상급으로 갚아질 것입니다. 주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성도님들 모두가 영원히 빛을 발하는 귀한 보석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