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당패가 전국을 돌면서 그 지역에서 놀기를 청해 허락을 받는 걸 일컫는 '곰뱅이 트기'. 남사당패가 깃발을 들고 광장에 이르렀을 때 목쉰 사내의 절정에 이른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곰뱅이 텄다" 색종이 조각들이 불빛에 반짝이며 하늘을 뒤덮고 곰뱅이쇠의 꽹과리 소리에 맞춰 풍물소리 가을밤을 흔들어놓는다. 흩날리는 색종이들이 깔린 내혜홀 광장에 바우덕이 축제의 전야제 곰뱅이트기 행사가 시작된다. 곰뱅이 텄다. 곰뱅이 텄다. 계속 외쳐대는 곰뱅이쇠의 목소리와 함께 신명난 가락이 5일간의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광장 한 편에선 누더기 옷을 입은 호리호리한 엿장수가 나비처럼 가볍게 하늘을 날아 오르며 춤을 춘다. 엿장수 가위치는 소리와 이박사 톤의 빠른 음악, 그 앞에서 아이들도 춤을 춘다. 무대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 앞에 선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케 한다. 한 쪽은 보여주고 다른 한 쪽은 그들을 보면서 즐거워 한다. 정치인과 시장이 나와 옥관자를 달아주는 공식행사로 시작된 행사가 곰뱅이 트기와 함께 축하공연으로 이어진다. 남사당놀이를 국제화 시키려는 노력, 세계 민속축제에 관련한 사람들이 대거 참석을 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멕시코의 민속춤, 주름 치마를 입고 미소를 머금은 멕시코의 여인과 탭댄스를 추면서 키타음에 맞춰 경쾌하게 움직이는 무용단이 챙이 넓은 모자 속 키스를 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뒷줄에 앉은 노인이 우스개 소리로 말한다. "허허 뽀뽀 붙었네." 그들의 음악엔 우리의 신명난 가락처럼 흥이 담겨 있다. 요들송의 반주음악처럼 빠르고 가성음을 섞어가면서 워허... 하고 소리치는 그들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광장에 울려퍼진다. 자신의 나라 민속음악과 춤을 보여주기 위한 행사는 또 이어진다. 중국의 우슈공연은 긴 칼을 든 여인이 전통 중국복장을 하고 나와 빠르고 큰 동작의 무술동작을 선 보인다. 그 옆에 콧수염을 단 사내가 짧고 박력 있는 권법으로 하늘을 날아 다닌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중국음악에 맞춰 꽃모자를 쓰고 구름을 끌어가는 여인들, 그들의 신비한 음악과 색채감 있는 옷들에 붙어 있는 빤짝이까지 조명 아래 환상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무대를 중심으로 빙 두른 사람들, 어둠 속에서 조명이 밝힌 마당놀이판 같은 분위기가 도시생활 속에서 오랜만에 가슴 벅차게 다가온다. 사느라 고단했을 서민들의 모습이다. 여성이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달래느라 폐병에 걸려 요절했던 여인 바우덕이의 예술정신을 기리며 시작된 다섯 번째 바우덕이 축제의 전야제는 불가리아 민속공연단의 축하행사로 이어진다. 장수의 나라로 알려진 불가리아, 그들의 옷에 새겨진 문양의 독특함과 여유 있는 웃음, 그리고 특유의 탭댄스와 흰 천을 들고 다니면서 남녀가 만나는 사랑의 장면을 연출하는 경쾌하고 밝은 그들의 춤은 긴 꽃다발을 가지고 마치 부채춤을 추듯 가지가지 모양을 만들면서 춤을 춘다. 크고 작은 원으로 만드는 마스게임 같은 갖가지 꽃다발 맞추기, 화려한 문양의 앞치마를 흔들며 긴 머리카락 하얀 피부의 키 큰 여인들이 알프스의 처녀들처럼 움직인다. 꽃으로 만든 거울 속에 들어 있는 남녀의 얼굴이 독특하다. 꽃을 만들어 빙빙 돌아가는 여자들의 절정에 이른 춤 사위와, 검은 모자를 쓰고 빨간 복대를 한 채 나폴레옹처럼 흰 바지를 입은 남자들이 추는 경쾌한 발춤이 환상의 무대를 만들어낸다. 흰 천을 가지고 밀고 당기며 어깨동무를 하고 도는 동작에도 그들은 중심을 잃지 않는다. 바지 옆에 새겨진 매듭 문양과 발 돌아가는 남자들의 솜씨가 돋보인다. 탭댄스의 경쾌한 걸음들, 접은 흰 천을 들고 한 손 허리에 대고 점점 더 흥겨운 절정으로 관객을 이끌어간다. 그런 그들의 경쾌하면서도 의연한 춤사위엔 장수의 비결처럼 낙천적인 그들의 놀이문화가 전해온다.
향당무. 도깨비 신랑과 도깨비 신부 그리고 중매쟁이가 추는 춤이다. 고깔을 쓴 여자, 긴 종이 깃발 같은 걸 늘어 뜨린 채 신비하면서도 화려한 신랑신부가 피리소리와 징, 북 장고와 북소리에 맞춰 추는 춤이라니. 조명 속의 색채감이 오래 잊고 살아온 한국적 기억을 되살려놓는 듯 다가온다. 원색의 띠를 붙여 맞춘 모자, 조상의 넋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은 은근한 깊이가 느껴지는 춤이다.
태국 여인들의 춤은 그들의 금색 긴 손톱을 흔드는 손동작에서 시작한다. 그들의 발동작은 끝없이 움직이지만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불교의 나라, 춤은 그들의 수행하는 동작을 나타내는 것만 같다. 끝없이 삶의 발자국을 내딛지만 그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중심을 잃지 않은 채 손동작을 동해 그들의 고귀한 깨달음을 표현해내는 것만 같다. 그들의 금빛 날개와 구름 모양의 꼬리들이 주는 신비함은 남녀가 만나 사랑을 이뤄가는 과정에서도 마치 구도의 몸짓을 보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명상적이다. 그들의 탑 모양을 닮은 모자, 화려함의 극치인 양 금빛으로 반짝이는 그들의 의상은 마치 정신적인 니르반에 다다른 부처의 모습처럼 환상적이다. 금빛 천사의 춤, 금날개를 달고 춤을 추는 여인, 그들에게선 파란 비취색 영롱함이 깃들어 있다. 고결하고 범접할 수 없는 깨달음의 경지를 춤으로도 그려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초생달 모양을 한 실로폰과 옆으로 두들기는 봉고의 음악에 맞춰, 남녀는 한 발을 들고 선다. 깊은 명상에 잠긴 듯 그들은 중심을 흐트리지 않는다.
호주의 화이트 포카투 공연단은 마치 코미디를 보는 듯 보인다. 거구의 체구 호주 원주민이 호른처럼 생긴 나무 나팔에 맞춰 부르는 노래는 한없이 슬프면서도 또한 기막힌 반전의 코믹스런 몸동작을 보여준다. 문명에 의해 짓밟힌 그들의 한과 또한 그 안에서 세상을 한껏 풍자해내는 듯한 원시적 몸동작들이다. 꼬리에 흰 털을 달고 리드미컬하게 달려가는 듯 걸어가는 거구의 검은 사내들, 그들이 추는 허리춤은 가히 보는 사람들을 사로잡을 정도로 압권이다. 관객을 향해 손을 내밀면서 끌고 당기는 듯한 동작, 무언가 관심을 주는 듯 하다가 허리를 놀리며 급하게 빠져나가는 그들의 동작에서 그들이 수없이 짓밟히면서도 그 안에서 그들이 지켜나가는 자존심과 전통을 본다.
남아프리카 민속공연단의 공연엔 아프리카의 원시림 속 북소리가 울려온다. 강한 북소리, 그리고 발차기 하는 여인들, 검은 여자들의 발차기는 강하고 순식간에 번쩍 머리 위로 발끝이 올라가는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그들의 강한 생명력을 표현한다. 활력, 근육질, 유연한 힘이 전해진다. 원초적 에너지가 살아 있다. 몸에 대각선으로 걸친 옷, 옷에 새겨진 그들의 문양, 그 세밀함. 나무 실로폰을 두들기면서 그들이 추는 춤은 반복적이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강한 생명력과 점차 더 고조되는 분위기를 나타낸다. 어둠 속의 사람들이 아프리카 여인이 부르는 라이온 킹의 주제가 음악에 환호한다.
외국의 축하공연에 이어 하늘에 출렁이는 상모의 흰 띠, 풍년의 농촌에 울려퍼지는 풍악처럼 흥겹고 신명난 가락이 조명 아래 한바탕 어울어진다. 일곱 명의 아이들, 바지에 흰 끈을 묶은 어린 아이가 머리 위에 올라가 벌이는 묘기, 아이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듯 어른들의 머리 위에서 춤을 춘다. 긴 띠의 상모를 두른 사내가 더 큰 원을 긋는다. 그들이 돌면서 몸을 날리는 동작은 거의 묘기에 가깝다. 하늘 위에서 몸을 돌리는 사내들을 향해 외국인 공연단이 연신 카메라 플래시슬 터뜨린다. 인간 삼층탑은 칠무동상의 모습처럼 이 지역 사람들의 자존심이 무엇인지를 생각케 한다. 절정에서 보여주는 왕의 남자 속 줄타기 대역 권원태씨의 외줄타기 공연은 보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줄타기 장치 설치, 부채를 들고 3센티 미터 두께의 밧줄을 걸어가는 명인의 덕담과 하늘을 나는 동작 때문이다.
"얼씨구 좋구나 좋다. 여보게. 오늘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늘부터 시작하는 축제에 나왔으니 우리 한 번 신나게 놀아보세나."
굿거리 장단에 한 번 놀아보는디. 타령조로 놀아보는디. 자 언능 나오게. 마치 판소리 사설 한 대목을 듣는 것처럼 구수하게 펼쳐지는 줄타기 명인과 남사당 패의 주고 받는 얘기는 줄타기의 재미를 더 하게 한다. 좋다. 얼씨구 하는 추임새 또한 줄타기의 흥을 살린다. 이렇게 걸음 좀 밟고 오늘도 곰뱅이 트기 전야제를 맞아 타령장단으로 한 번 놀아보는디. 명인은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적다면서 한 마디 한다.
"사람은 많은디 박수치는 건 깝깝징 난다. 초장부터 개끝발이라더니."
뒤로 걷는 걸음, 한 손 뒤로 하고 양반걸음, 하이힐 삐딱구두를 신고 오도방정을 떠는 여자의 엉덩이가 동에서 서로 움직이는 동작을 코믹스로운 걸음으로 줄 위에서 표현한 동작하며, 그 장단과 가락도 다양하고 신명나게 펼쳐놓는다. 더구나 한 발로 줄 위를 걸어가지를 않나, 덩쿵 얼씨구 잘 헌다. 뉘집 자식인지 잘 헌다. 명인은 호주의 원주민을 향해 꼭두각시 인형에 나오는 홍동기가 아니라 흑동기라면서 재미난 재담을 늘어놓는다. 날씨가 추운데도 옷을 홀딱 벗고 춤을 추는 그 흑동기 말이요. 그의 목소리는 바로 곰뱅이 텄다를 외쳤던 소리다. 잘차고 뒷짐지고 덩쿵 타령장단에 맞춰 줄 위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몇 번을 가지랑이로 받아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 서는 동작하며, 하늘 위에서 발을 맞추기도 하고 하늘에서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어릴 적 보았던 서커스 동작 이상으로 그의 묘기엔 신명난 우리네 가락과 어울어진 남사당 패의 볼거리가 담겨져 있다.
뒷풀이 한 마당으로 모든 축하 공연단과 출연진들이 어울어져 펼치는 한 마당 뒷풀이, 그 하늘 위로 축포가 터진다. 가을 하늘 위로 펼쳐지는 불꽃놀이의 화려함 속으로 곰뱅이 트기 바우덕이 축제의 전야제가 휘몰이로 접어든다. 뜨거웠던 여름날 햇살, 그 굵은 땀방울처럼 떠나왔던 길 위로 쏘아 올려지는 축포를 보면서 서서히 돌아갈 길을 떠올린다. 인생의 곰뱅이 트기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