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토) 사순절 4일 – 티끌의 기도
말씀제목
– 티끌의 기도
말씀본문 – 창세기 18장 27절
“아브라함이 다시 아뢰었다. 티끌이나 재밖에 안 되는 주제에,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새번역)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개역개정)
말씀묵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맞섭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 고통 가운데 기도합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창18:23). 아브라함이 드리는 긴 기도의 첫 마디입니다. 확신으로 무장한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같이 대하시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도 선명합니다(18:25). 그러나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그의 목소리는 잦아듭니다.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라고 말하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당함을 지적하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몇 명의 의인이 있었을까요? 롯의 가족은 멸망을 면했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19:29) 구해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스스로의 자격으로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도 자신을 ‘티끌이나 재’와 같다고 고백합니다.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고백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만 의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만큼 ‘의로운’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로마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은 다윗의 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시14:1 이하, 53:1 이하). 구약에서 가장 존경받는 두 인물, 아브라함과 다윗도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사순절 시작에 이마에 바르는 재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아프게 지적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기도는 티끌이 드리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창세기에서 구조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8장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삭의 출생 장면은 21장에 가서야 나옵니다. 이 사이에 중요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요. 그 첫 번째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악한 도시가 망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악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고민하지 않고 즉시 결행합니다. 고뇌하는 맘이 있었을 수도, 밤새 하나님께 따져 묻고 항변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그 고뇌의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그런 성경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기도와 항변에는 긴 지면을 할애하는 것이 특이합니다. 마땅히 심판받아야 할 악인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고 간청하는 아브라함에게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발견합니다. 아들보다 악인의 멸망을 더 애타는 마음으로 대하는 성경의 지면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납니다. 아브라함은 티끌이나 재와 같은 사람이었지만, 의로우신 예수, 참 중보자이신 그분을 닮은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티끌이나 재와 같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티끌같이 작은 우리가 이웃을 품고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좁디좁은 우리 마음이 이웃을 향해 넓어질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