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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사순절 기도
글 : 이 클라우디아 (해인) 수녀
<성 베네딕도 수녀회>
아직은 빈손을 쳐들고 있는 3월의 나무들을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경건한 기도를 바치며
내가 나를 타이르고 싶습니다.
죄도 없이 십자가 나무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모습을 기억하며
가슴 한켠에 슬픔의 가시가 박히는 계절...
너무 죄가 많아 부끄러운 나를 매운 바람 속에 맡기고
모든 것을 향해 화해와 용서를 청하고 싶은 은총의 사순절입니다...
우리 모두 나무처럼 고요히 서서 많은 말을 줄이고,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해 주십시오...
나무처럼 깊숙이 믿음의 땅에 뿌리를 박고 세상을 끌어안되
속된 것을 멀리하는 맑은 지혜를 지니게 하십시오...
현란한 불꽃과 같은 죄의 유혹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그럭저럭 살아온 날들...
기도를 게을리 하고도 정당화하며 보고 듣고 말하는 것에서 절제가 부족했던 시간들...
이웃에게 쉽게 화를 내며 참을성 없이 행동했던 지난날의 잘못에서 마음을 돌이키지도 않고 주님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진정한 뉘우침도 없이 적당히 새날을 맞으려고 했던 나쁜 버릇을 용서하십시오...
이젠 다시 사랑으로 회심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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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기적은 우리 가운데에...
윤 클레멘트 (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 신부>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가 11, 29>
오늘의 복음 말씀으로부터 생각할 수 있는 배경에는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의 완고함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는 그 당시 사람들의 모습들을 예수님께서 안타까워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느낄 수 있겠습니다.
“이 세대가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 시대나 오늘날의 우리 시대나 똑같이 우리 사람들의 마음은 그 어떤 표징, 기적, 특별한 것을 보여주거나 나타내 줌 등을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루르드나 파티마의 기적, 혹은 작디작은 그 어떠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현상들도... 그 곳에, 그 현상들에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열광하고 모여들곤 합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서,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의 기적들은, 하느님의 현존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는데...
우리가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
우리 자신들이 부르심을 입고 살아가는 것...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부당함과 송구함에도 우리가 한 소명인들로 살아가는 것...
세상과 그 안에 속한 우리 사람들의 어처구니없음에도 우리 교회는 존재하고 살아있는 것...
다른 여늬 본당이나 공동체처럼 참으로 다양한 우리 자신들이 여기에 함께 모여 살아갈 수 있는 것...
그 모두가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 여기에서 날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들려오고 묵상하며 우리의 삶에 지극한 영향을 주는 것...
성체와 성혈이 메마르고 황폐하기도 하는 우리의 부당한 가슴과 영혼을 적시고 새롭게 하는 것...
그 모두는 저는 오늘 여기에서의 기적이라고 이아침에 묵상하고 싶습니다.
이아침의 거룩한 전례와 지금 우리들의 거룩한 모임도 분명코 지금 여기에서의 기적임을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의 첫 번째 독서에서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할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는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요나 3, 10>
날마다 순간마다 당신의 말씀과 성체, 교회와 우리들의 모임들 안에서 당신의 성령으로 새롭게 하시고 부르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오늘도 이아침의 말씀과 성찬의 제사를 봉헌하고 싶습니다.
“ 주 하느님, 주님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주소서.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 < 시편 51장 >
오늘 축일로 지내는 십자가의 성 요한(1495-1550)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무렵에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의 기도 중에 들었다고 한다.
“ 요한아, 네가 나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하던 일은 바로 나를 위해 해주던 일이란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면서 만지던 손은 나의 손이었고,
네가 감싸주고 옷을 입혀주던 몸은 나의 몸이었으며,
네가 손수 씻어주고 닦아주던 그들의 더럽고 헤어진 발은, 곧 나의 발 이었단다...”
- 신부님의 '영성의 물가‘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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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8주일
2019. 3. 3
루카 6, 39 ~ 45
♠ 복음 공부 : 평지 설교 다음의 교훈들에 대한 비유
* 39~42절 : 앞의 26~38절에 하신 말씀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라는 뜻으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 없듯이 형제를 바로잡아 주려면 자신의 잘못부터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눈먼 이’ 는 율법의 세부규정은 강조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율법의 참뜻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저버리고, 오직 형식만 중요시 하는 위선자들이다. 자신의 잘못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지도한답시고 행세한 것이다. 루카는 제자는 눈먼 이와 달리 스승이신 예수님처럼 되어 사람을 바르게 인도해야 한다고 한다. 41~42절의 병행문은 마태 7. 3~5절에서 나오며, 예수님의 말씀 114개를 모아 집필한 토마스 복음 말씀과도 유사한 말씀인 눈 속에 티를 갖고 있거나, 대들보를 담고 있거나, 간에 정도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인간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누구나 소경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바로 보지 못하는 자는 위선자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신앙인들이 제일 먼저 배울 진리는 ‘하느님의 자비’ 이다. ‘보다’ 동사가 3번 사용되어 39절의 ‘눈먼’ 과 대조를 이룬다.
* 43~45절 : 각자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좋은 열매를 맺으면서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한다. 착한 언행으로 좋은 열매를 맺는 만큼 선인(善人)이 될 것이며, 하느님의 자비에 가까이 갈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깊이 깨달았다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기초 없이 지어진 집이 큰물에 떠내려가는 것과 같다고 하신다. 따라서 평지 설교는 실행으로 끝맺고 있다(46-49절).
♠ 복음 요약 :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2차 대전을 승리를 이끌었던 미국 제32대 대통령 루즈벨트는 어느 날 한 주간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기가 형편없는 술주정뱅이라는 기사가 실린 것이다. 기분이 언짢았던 그는 비서관을 불러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물었다. 비서관은 당장 잡지사 사장과 기자를 불러 따끔하게 혼내 주자고 건의했지만, 대통령은 그것은 권력 남용이라고 생각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식으로 법원에 고소하세. 그리고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겠네.” “예?” ‘비서관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했지만, 대통령 지시를 따라야 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재판이 열리게 되고 방청객들이 법정을 가득 메웠고, 마침내 판결이 내려졌다.
“귀 잡지사의 기사는 허위로 판명되었으니, 개인의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을 지급하시오.“ 방청객들은 당연한 결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제 그 잡지사는 문을 닫게 될 거라고 수군댔다. 대통령인 만큼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때 판사의 말이 “이 대가에 청구한 금액은 1달러입니다. 이만 재판을 마치겠습니다.” 방청객은 다시 술렁거리고, 자기 귀를 의심한 비서관은 “각하, 명예훼손 대가가 고작 1달러입니까?” 대통령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내게는 배상금은 의미가 없네. 중요한 것은 진실이라네. 진실이 밝혀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사법부의 재판이지... 재물은 아무 의미가 없네...“ 이 예화에서 참다운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대화 방향 : ① 자기 눈의 들보를 두고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려는 이를 꾸중하십니다.
남의 잘못을 보다가 호히려 자기 자신의 큰 허물을 깨닫게 된 일이 있었다면 나누어 보세요.
또는 누가 나를 비방했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하나요?
② 말씀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은 사람은 강물이 들어 닥치자, 흔들리는 집과 같다고 합니다. 갑자기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나는 어떻게 하는지요?
♠ 참고 문헌 : ▪ 신약성경 주해 루카복음 ( 유충희 지음 / 바오로딸 한남성서연구소 공동기획 )
▪ 루카복음 성서묵상 ( C.M 마르띠니 지음. 성염 옮김 / 바오로 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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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 1주일
2019. 3. 10
루카 4, 1 ~ 13
♠ 복음 공부 : 성서저자의 의도에서 본 예수님의 유혹사화
☞ 개요 : 유혹사화는 각 복음사가의 신학적 관점과 의도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마태오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온 다윗 가문 후손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40년 동안 시련을 받으며 하느님의 시험을 받은 역사에서 과거에 실패했던 유혹을, 예수님은 참된 이스라엘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하시고, 40일 동안 악의 세력에 대한 전쟁터에서 처신해야 할 식별규범을 성경말씀으로 몸소 보여주신다.
* 1~10절 : 첫번째 유혹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겪었던 허기짐을 유혹의 출발점으로 그들은 자기들을 해방시켜줄 하느님을 원망하고 다시 이집트의 노예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우리는 걸핏하면 의식주의 유혹에서 무력해진다(탈출16장). 사탄은 예수님의 신원의식을 충동질하여 돌들을 빵이 되게 하여 허기진 백성을 먹이는 하느님의 아들임을 입증해 보이라는 제안에 예수님은 성경 말씀으로 단호히 물리치신다(신명8.3). 두 번째 유혹은 ‘거룩함을’배경으로 예루살렘 도성, 거룩한 성전 꼭대기에서 예수님을 흉내 거룩한 성경 말씀으로(시편91.11-12) 유혹한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원망을 터트렸던 마싸사건(탈출17.1-7)을 들어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신명 6.16을 말씀하신다. 악의 세력에 대한 투쟁에서 남에게 보이려는 권세, 허영, 영광은 하느님만이 받으셔야 한다고 가르친다. 세번째 유혹은 우상숭배를 상징한다. 수시로 하느님을 배반하고 내 것을 섬긴 벌로 바빌론 유배라는 쓰라린 역사에서, 예수님께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주겠다는 우주적 주권에 관한 고도의 악마의 유혹에 타협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인간적인 감정을 내세우려는 반응에 사탄이 작용하는 베드로가 등장한다(16.28). 이 영적투쟁은 인내와 수고, 고통이 수반되며, 한 분이신 하느님(신명6,4)을 믿는 이스라엘의 기본 신앙을 바탕으로 경배 받아야 할 분은 오직 유일한 하느님을 따르는 것임을 보여주신다.
* 11절 : 천사들의 시중은 40일 단식하신 뒤 이루어졌으므로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비롯하여 하느님 친히 당신 아들을 보호하고 계심을 뜻한다.
♠ 복음 요약 : 거룩한 삶을 이끌도록 아버지께서 보내신 아들은 인간 실존 안에 예수님 역시 우리와 똑 같은 유혹을 받으셨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서 우리에게 대적하는 가능성과 방법을 제시해주셨다. 둘째로 악마는 우리의 허점을 노린다는 것이다. 마태오는 단식 후 사탄이 다가 왔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약해졌을 때, 곤궁에 처했을 때 간교한 악마가 흔히 쓰는 수법이다. 예수님께서 체험한 이 세 가지 유혹은 우리 인간의 내면에 통상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재물에 대한 소유욕, 명예, 권력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싶은 욕망, 심지어 하느님까지 조종하고 싶은 유혹으로부터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식별하는 믿음과 사랑의 호소로 인간의 응답 역시 선과 악의 영적 투쟁이며, 매일의 생활은 선택의 여정이다.
♠ 대화 방향 : ① 예수님은 유혹을 어떻게 당하셨으며, 어떻게 대응했는가...?
② 숙고한 후,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내 안에 실존 안에 있는 강하게 느껴지는 유혹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식별하고 체험을 나누어 보시오.
♠ 참고 문헌 : ▪ 이냐시오 영신수련 피정 강의 / 구약성경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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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 2주일
2019. 3. 17
루카 9, 28ㄴ ~ 36
♠ 복음 공부 : 이번 사순 2주 성경 말씀은 다가올 부활의 영광과 기쁨을 미리 예시함으로써 사순절을 보내는 우리들에게 부족했던 믿음과 희망을 다시 한 번 견고히 다지며, 뜻 깊은 부활을 맞이하도록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기 위해 오늘 1독서는 아브라함이 신비경 속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계약’ 은 매우 중요한 의미와 기능을 지닙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면서 그 계약의 조건으로 엄청난 축복의 선물을 제시합니다. 즉, 아주 헤아릴 수 없는 후손들과 그들이 살아갈 삶의 터전인 땅을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땅과 후손이란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기본적인 조건들을 다 채워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 선물들은 아브라함 생전에 주어지지 않고, 먼 후대에 가서 이루어질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인간적으로 볼 때, 하느님의 약속은 현실성이 없고 막연한 것으로 보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약속을 믿고 희망하며 그 계약의 조건으로 변치 않을 신앙을 약속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막연하고 지금은 현실성이 없어 보이더라도 하느님은 보다 나은 미래를 주시리라는 희망적인 믿음을 버리지 않았기에 그는 믿음의 성조가 될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아브라함이 신비경 속에 하느님을 만났듯이, 복음에서는 기도 중에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변모하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장차 예루살렘에서 겪게 될 사건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밝혀주는 의미도 담겨있고, 더 나아가 이분이야말로 고대하던 메시아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제자들 중 베드로가 너무나 도취한 나머지 초막 셋을 지어드리겠다는 고백을 합니다. 이 베드로의 고백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의 고백은 자기도 무슨 소린지 모르고 튀어나온 말이었고, 그러자 그 영광스러운 모습이 사라졌다고 증언합니다. 이 역시 눈앞에 보이는 영광에 급급해 하고, 십자가 죽음 너머에 있는 심오한 부활의 영광은 바라보지 못하는 베드로의 얄팍한 신앙을 지적하는 교훈처럼 들립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순 2주는 전례적인 면에서 우리들이 믿고 희망하는 신앙생활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성과 성찰의 계기를 불러일으킵니다. 눈여겨 보십시오...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사순절을 보내는 우리들에게 참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지 좋은 교훈을 던져줍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필리 3,20).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써 거룩한 품위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 대화 방향 : ① 거룩함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② 성서형제회 회원이 해야 하는 거룩함이란 무엇일까? ‘나를 가꾸는 것일까?’ 아니면
‘남을 돕는 일인가?’ 아니면 ‘남을 가르치는 일이 되는 것일까?’
③ ‘무엇이 바른 길이라 여기는가’ 를 생각해보고, 나는 그길로 가고 있는지 묵상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 보득솔 (가톨릭 청년성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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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 3주일
2019. 3. 24
루카 13, 1 ~ 9
♠ 복음 공부
☞ 개요 : 예수님께서는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권력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길에 백성을 억압하는 종교와 서서히 맞서신다. 그분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아랑곳없이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위해 일하시고자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이야기하신다.
* 1~5절 :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
- 요세푸스의 유다古史에 의하면 기원후 35년경 빌라도가 희생제물을 드리던 갈릴래아 사람들을 학살한 이야기가 나타나 있는데, 1절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예수께서는 희생된 사람들이 죄가 있어서 희생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회개하지 않는 완고한 마음을 지적하신다. 생활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재난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이다.
* 6~9절 :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
예수님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들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마지막 기회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하신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잘라 버리듯이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은 종말 심판을 받으리라는 말씀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한 번 더 주시는 이때에 이스라엘은 회개하여 종말 심판을 피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느님의 자비가 아무리 무한하다 하더라도 지상에 사는 사람들의 시간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 복음 요약 : 1~9절은 예수님을 통해서 오신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말씀이다. 또는 허망한 재물과 명성에 집착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까지라도 멸망하지 않도록 포도 재배인처럼 예수님도 변호자로서 아버지께 기다려 달라고 탄원하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자비가 한없더라도 인간 스스로 놓칠 수 있다는 암시이다.
♠ 대화 방향 : ① 나, 혹은 내가 속한 공동체의 모습은 제 때에 열매 맺는 무화과나무인지 아닌지 나누워 봅시다.
② 나는 결실을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처럼, 분열을 조장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단죄하는 모습은 아닌지 살펴보고, 그런 적이 있다면 솔직하게 고백해 봅시다.
♠ 참고 문헌 : ▪ 여정 (생활성서) ▪ 성서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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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 4주일
2019. 3. 31
루카 15, 1~3. 11ㄴ~32
♠ 복음 공부
* 1-3절 :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가5.32)하신 예수님은 회개의 토대가 된 그들의 착한 마음을 보시고 반겨 맞아 들이셨으며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에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부정한 자들과 사귄다면 그 사람도 부정한 자가 될 것 아닌가?’하고 멸시의 눈길을 보내며 중얼거렸다.
* 11-16절 : 작은 아들은 아버지께 드릴 효도와 감사를 미뤄두고 제 욕심을 채우러 돈을 요구한다. 이것이 악으로 가는 첫걸음이었고, 헛된 자유와 쾌락을 찾아 떠나 전혀 절제되지 못한 생활로 인해 결국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으로 인해 유다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수치인 ‘돼지치기’를 통해 얼마나 비참한 타락의 늪에 깊숙이 빠져 있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 17-19절 : 이런 비참이야말로 그의 회개의 시작이 되었고 아버지께 지은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러 결심을 하며 회개의 그 겸손한 말에서도 아직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
* 20-24절 : 아들은 그 결심을 ‘곧’ 실천에 옮긴다. 집에 없는 아들,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희망은 아버지의 사랑을 더 깊게 하였고 진심으로 회개하며 자기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아들에게 가장 좋은 옷(본래의 권리와 지위)을 다시 주고 반지(특별한 권위와 명예)와 신(자유인의 표시, 종들은 맨발이었음)을 주며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을 나누었다.
* 25-30절 : 그런데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큰 아들의 자리이다. 돌아온 큰 아들은 그 사실을 듣고 나서 아버지의 처지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노하며 자기 태도를 변호하고 아버지의 태도를 강경하게 따지고 있다.
* 31-32절 : 아버지는 그의 성실성과 끊임없는 봉사를 부인하거나 모르지 않으며 항상 나와 함께 하며 행복을 누렸지만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기에 매우 기뻐하고 있음을 몹시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설득하고 있다.
♠ 복음 요약 : 이 비유는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아름답고 감동에 넘치는 비유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와 회개하는 죄인에 대한 하느님의 부성적(父性的)인 너그러우심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용서에 앞서서 죄인의 생활과 회개하게 되는 과정을 뛰어난 심리묘사와 감동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비유에서 아버지는 하느님, 작은 아들은 죄인 혹은 이방인, 형은 바리사이파 사람 혹은 유다인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이 아니며 하느님의 길은 우리의 길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진정 ‘죄인’인 사람을 찾아가시되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고 있는 이들은 그대로 방관하신다.
♠ 대화 방향 : ① 나름대로 각자 열심은 우리 F.B인의 모습 안에 숨어있는 큰 아들의 어두움을 깊이 바라보고 성찰하며 나누어 봅시다.
② 나의 지난 삶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어두움에서 벗어나 참된 회개와 용서를 체험한 것을 나누어 봅시다.
♠ 참고 문헌 : ▪ 루카복음 해설(성바오로 출판사) ▪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크리스챤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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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동계 묵상회 스케치 >
내년이면 50주년인데, 금년 묵상회의 풍경은...
FㆍB 서기 : 권 토마 (순)
☧ 찬미 예수님
우리는 성서형제회 생일에 큰모임을 한다.
다시 말하자면 내년 ‘큰모임’이 바로 ‘설립 50주년기념일’ 이 되는 셈이다.
지도신부님이 건강하셨던 그 시절, 잠시 글라라 봉쇄수도원에 머물러 계실 때에 성서형제회지도부는 50주년을 준비하자고 했다. 그러나 어느 분과이든 그동안 한 번의 회합도 소집하지 못하고 있다.
천호성지는 여러 번 다녀갔던 터라, 전주에서 가는 길이 새로 난 길이 많아서인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잠시 지체해서 예상보다 30분 늦게 시작한다.
전국조정이신 레오 형제님의 묵상회 시작인사와 서울 당산동의 파비올라(남은정) 자매님의 묵상기도가 곁들인 묵주기도를 함께 바친다.
전국조정의 안내로 전국 지역별로 인사소개가 끝나고, 제1강의로 김 데레시아 수녀님의 강의가 시작된다.
‘참그리스도인의 삶’ 이다.
하느님의 질문인 '너 어디에 있느냐...?' 이다.
‘우리는 왜 FB인이어야 하는가...?’ 로 질문이 연결된다.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무엇인가...?’ 로 본질적인 질문이 던져진다.
이를 주제와 소재로 하여 다양한 연결고리를 이끌어 내신다.
성가와 휴식이후 이어지는 제2강의는 광주교구의 도미니꼬사비오(장철호) 형제님이 하셨다.
키워드로 성모일도 중 아침기도의 ‘쯔가리아의 노래’ 와 저녁기도인 ‘마리아의 노래’ 를 가지고 풀어낸다.
유럽 지역을 다니면서 수도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경험들과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언제 들어도 신비스럽기만 하다.
제1, 2강의는 물론 그 이튿날 제3, 4강의의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소개하지 않기로 한다.
강의 전체내용을 풀어 표현하기에는 벅찬 일이고, 참석자들의 마음속에 그대로 들어있기만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와 관련 개인묵상과 휴식시간을 가진 후에 우리는 첫 번째 맛나는 식사를 하게 된다.
식후에는 이 말가리다 자매님의 율동찬양이 이어지고, 이를 진정하는 작업을 거쳐서 이번 주일복음을 호흡법으로 10여분 동안 묵상만을 하고, 후속작업은 피정 중 또는 각자 생활 중에서 하기로 한다.
조별 코이노니아를 한 이후에 조별 발표회를 가지고, 서울 보나벤뚜라의 영상묵상을 한다.
5분간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에니메이션을 시청한다.
짧고 짜릿한 영상이다.
본디 개신교 단체에서 만든 영상으로 알려져 있으나, 가톨릭에서의 인용도 좋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참석한 이들은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기도를 바치고 내일 일정을 정리한다.
팀 및 지구 말씀봉사자는 그 이후 월례회의를 갖는다.
여러 가지 진행토론 이후, 성령의 도움을 청하면서 전주교구 지구봉사자와 전국 차기봉사자를 선출한다.
그 이후 몇 분이 세부적인 전주지구에 대해서 세밀히 의논한다.
그날 저녁 전주지구 봉사자로는 이 말가리다(봉순) 자매님, 그리고 차기봉사자로는 팜필로 형제님이 뽑혔다.
이튿날 필자는 새벽기도에 참석하지 못하나 기도와 성지 십자가의 길을 다녀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로 인하여 아침 일정이 20여분 지연되기도 하였다.
대략 25분 내외가 참석했는데, 서울 당산동의 한 개 코이노니아 참석수가 전주교구
전체 참석수보다 더 많은 수가 되기도 하였다.
둘째날 아침식사 이후, 보나벤뚜라 형제가 준비한 영상을 시청한 이후에 제3강의 테마 강의로 전국조정 말씀봉사자인 방 레오 형제님이 김대건 신부님이 잡히시기 바로 직전까지 사목을 한 현장이기도 했던 ‘은이 공소’이며, 전국조정 집안의 구교 이야기를 엮어낸다.
개인 묵상과 휴식시간을 가진 이후에 성서암송시간을 갖는다.
다른 피정과 달랐던 점은 암송한 성경을 왜 그것을 택한 연유와 에피소드를 말하였다
필자가 처음 시작 후 받은 선물을 다른 이에게 전달했는데, 그 이후로 암송으로 받은 선물은 다른 이에게 릴레이식으로 이어져서 풍요로운 성서암송시간이 되었다.
개인 기도와 삼종기도 이후 점심식사를 하려는데 정 아퀼레오(지풍) 신부님께서 도착하셨다.
제4강의는 정 아퀼레오(지풍) 신부님의 독특한 향기가 나는 강의였다.
특히 성서형제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향기로 눈에 보이도록 하셨다.
요즈음 유행되는 추억과 스토리텔링이 있는 신앙의 생활화 좋은 분위기 향내에 대해서 소상하게 말씀하신다.
이런 향내는 미사강론으로 이어졌다.
바쁜 신부님의 옷자락을 잡고 필자를 비롯하여 몇몇 이는 안수를 받고, 다른 이는 사진과 전체 사진을
찍었다.
다들 각자의 느낌으로 그 장소를 떠나갔다.
신부님은 미사 봉헌시 특히 창설 최 바오로마리아(규업) 신부님과 병환중인 윤 클레멘트(양호) 신부님, 그리고 요번에 새로 선임되는 이 말가리다(봉순) 전주지구 대표와 팜필로 전국 차기봉사자를 봉헌한다.
성서형제회를 거쳐 간 여러 신부님들을 직접 뵙지 못하였지만, 그분들의 자취가 그리워집니다.
창설자 신부님과 원장수녀님인 베로니카 수녀님, 그리고 어린아이를 돌보시는 일을 하신다는 안나 수녀님은 경기도 화성 수녀원에 계실 때에 정이 많이 들었는데...
그리고 클레멘트 신부님이 몇 년 전에 경기도 양평에서 머물고 계실 때에 성서형제회 가족들과 함께 찾아 뵀을 때에 말을 어눌하게 하셨지만, 그 앞에 꿇어앉아서 인사를 드렸더니만, 저를 잘 안다고 하시면서 눈을 껌벅거리시는 모습이 눈앞에 생생합니다.
오래 전에 문정동성당에 계실 때에 처음 뵙고 인사드렸더니만, 제 손에 돈을 쥐어주면서 내려갈 때에 차비에 보태 쓰라고 하신 말씀도 눈에 아른거립니다.
속히 건강하셔서 다시 그 이전 상태로 다시 뵐 수 있기도 기도드립니다.
거명되지 많은 분을 포함, 모든 이들이 주님께서 저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성서형제회를 위해서 우리 주위에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아멘... !
그리스도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한국의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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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복음 주제발표 기고 >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박 팜필로 (원석)
서울 이문동 일반팀 FB
♣ 내용 :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행복 선언과 불행선언을 전하고 있습니다.
네 가지 행복선언과 네 가지 불행선언이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어 평지에서 하신 말씀으로 나옵니다.
네 가지 행복선언 가운데 처음 세 가지는 예수 친히 발설하시고 마지막 한 가지는 전승자 아니면 어록작가가 가필했다는 게 신학계의 통설이다.
예수께서 친히 발설하신 삼중 행복 선언의 뜻을 밝힐 차례다.
그분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마르1.15) 라고 외치셨다.
지금은 숨어계신 하느님께서 곧 임금으로 나타나 선정을 베푸실 때가 임박했다는 말씀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고 배부르게 되며 웃게 될 것이다.
못난 자들이 비록 지금은 비참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처지가 아주 달라지겠기에 그들은 복된 것이다.
선하신 하느님이 곧 왕도를 펴시며 지금의 참상이 크나큰 축복으로 뒤바뀌겠기에 그들은 복된 것이다.
예수님도 가난한 이들을 아끼셨지만, 루카는 예수님의 그런 면을 한결 더 강조했다.
마지막 행복선언은 박해받던 유다계 그리스도인이 만들어 덧붙였다.
사실 마지막 행복선언은 그 문체나 내용이 삼중 행복선언과 사뭇 다르다.
삼중 행복선언이 운문이라면 마지막 행복선언은 침상을 길게 늘어놓은 산문이다.
그리고 삼중 행복선언에는 인간이 취할 자세에 대한 말이 없는데 반해 마지막 행복선언은 ‘인자 때문에’ 박해를 받는 자세가 요구된다.
삼중 행복선언에서는 무조건 하느님의 나라를 약속하는데 비해 마지막 행복선언에서는 정당한 보상을 약속한다.
삼중 행복선언은 신론(神論)인데 비해 마지막 행복선언은 그리스도론이다.
네 불행선언은 루카 복음에만 있다. 루카는 네 행복선언과 짝을 맞추어 네 불행선언을 덧 붙였으리라.
네 불행선언 다음에 단 절어 집성문이 있었는데 루카는 대체로 그 배열을 따랐다.
단 절어 집성문을 눈여겨보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보복하지 말라는 말씀 황금률 하느님처럼 자비를 베풀라는 말씀으로 엮여 있다.
오늘 복음을 요약하면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행복하다...” 고 하시며, “부유한 사람들은 이미 위로를 받았으니 불행하다...” 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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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I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많든 적든 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9년 1월 입출금 내역